= 세계 배낭 여행기 =
<4> 티티카카호수와 갈대섬 우로스(Uros)
호반도시 뿌노(Puno)는 태양의 신이 처음 내려온 곳으로 알려진 잉카신화의 중심이었으나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하여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식민도시가 되었는데 이곳에 살던 인디오들은 산속 오지(奧地)로 도망가거나 우로스(Uros)섬으로 숨어드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곳 뿌노는 인디오들 영혼(靈魂)의 땅으로 인식되며, 주민 중 인디오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잉카제국 때 이곳에 살던 우로스족은 잉카족에 밀려 호수 가운데에 있는 태양의 섬에 모여 살았는데 섬이 워낙 작으니 갈대로 인공섬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섬이 셀 수 없이 많은데 이 섬들을 통틀어 우로스(Uros)라고 하며, 이 우로스섬을 방문하려면 작은 유람선을 타고 가야 한다. 호숫가 부두에는 항상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데 나는 가이드의 권유로 방문하는 섬의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줄 과자 나부랭이를 20달러 정도 샀다.
정원 30명은 됨직한 모터 유람선은 달랑 우리 네 명과 가이드만 태운 채 호수 가운데에 형성된 섬마을을 향하여 출발한다. 2층 갑판에 오르니 풋풋한 물풀 냄새와 밝은 햇빛, 볼을 스치는 싱그러운 바람으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우리가 떠난 뿌노를 뒤돌아보니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들어선 도시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수정처럼 맑은 수면을 가르며 10분쯤 달리자 길게 자란 갈대들이 나타나고 그 사이로 뱃길이 나타난다. 이름 모를 수백 마리의 물새들이 수면을 스치며 날고, 이따금 물닭 종류인지 꽤 큰 물새들이 갈대들 사이에서 목을 내밀고 우리를 살핀다.
얼마쯤 달리다 보니 젊은 인디오 부부가 배 위에서 그물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보여 손나팔을 만들어,
‘올라, 세뇨르! 세뇨리따, 부에노스 디아스~!’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스페인어로 ‘세뇨르’는 남자, ‘세뇨리따’는 아가씨, ‘세뇨라’는 아줌마이고 ‘부에노스 디아스’는 ‘안녕!’이다.
배가 지나는 물길 옆에는 몇 군데 사방 4~5m의 작은 갈대 섬이 보이고 돼지들이 꿀꿀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돼지를 키우는 작은 섬은 별도로 만드는 모양이다.
물길이 끝나는 곳에 높다랗게 지은 전망대가 보이고 이곳을 통과하면 호수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수많은 갈대 섬들이 있는 우로스 마을의 중앙광장인 셈이다.
이 우로스섬들은 줄에 묶은 돌멩이를 호수 바닥에 내려놓아 닻처럼 섬을 고정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떠다니는 섬이라고 한다.
♧ 삐라고라소(심장) 섬
첫 번째로 방문한 삐리고라소 섬은 ‘심장(Heart)’이라는 의미라는데 5가구가 거주하는 조그만 섬이었다. 우리 배가 다가가자 섬 전체의 주민인 듯, 아이들을 포함해서 열댓 명이 나와 손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한다. 토토라(갈대)를 두껍게 깔아서 만든 섬은 무척 푹신푹신 하지만 물이 묻은 곳은 매우 미끄러워서 조심해야 한다.
섬 안에는 갈대로 만든 오두막이 몇 채 있고 창고로 사용하는 오두막은 따로 지어져 있다.
오두막 안을 구부리고 드려다 보니 옹색하고 좁아 보였는데 바닥에 울긋불긋한 인디오 특유 문양의 담요가 깔려있고 구석에는 텔레비전도 보인다.
섬 한편에 커다랗고 둥그런 텔레비전 수신용 안테나가 보였는데 전직 일본계 후지모리 대통령이 인디오들의 생활향상을 위하여 설치해 주었다고 한다.
이곳저곳을 돌아보는데 마을의 대표인 듯 40대의 인디오 남자가 우리에게 섬의 중앙에 갈대를 둥글게 드럼통 모양으로 묶어 뉘어놓은 의자(?)에 앉으란다. 우리를 환영하는 공연을 펼칠 모양인데 관광객이 많이 왔으면 좋았을 것을, 달랑 넷이 앉아서 공연을 관람하려니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든다.
♧ 인디오들의 환대
우로스 인디오들과 함께 노래를 / 우로스 인디오들의 집과 주식인 감자
전 주민이 한 줄로 늘어서서 손뼉을 치며 노래를 시작하는데 모두 우리나라 동요들로 10여 곡 이상을 부른다. 우리 가이드는 남편이 몸이 아파서 부인이 대신 나왔다는데 남편은 특히 이 섬에 정성을 들여 한국노래도 직접 가르치고 올 때마다 설탕이며 밀가루를 가져다준다고 한다.
주민들은 모두 원색으로 짠 인디오들 전통 복장과 모자 및 장신구들로 갖추어 입었는데도 햇볕에 그을린 새까맣고 지저분한 얼굴, 거친 피부, 새까만 손과 맨발이 안쓰럽다.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도 없고 제대로 씻는 시설도 없는 열악한 생활환경이지만 인디오들 표정은 너무나 순박하고 착해 보인다.
이들은 물새를 잡기도 하고, 별도의 작은 섬을 만들어 야채를 가꾸기도 하지만 주로 물고기를 잡아서 말려 육지로 가져가 옥수수나 감자로 바꾸어 생활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이 떨어뜨리는 팁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생리현상인 배설도, 마시는 식수도 모두 이 호수의 물로 한다는데 식수는 섬에서 좀 멀리 떨어진 깨끗한 호수의 물을 길어다 먹는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이 줄을 맞추어 우리 앞으로 지나가며 악수를 하는데 이때 우리는 과자를 한 봉지씩 들려주었다. 그리고는 대표인 듯한 남자에게 약간의 팁을 주었다.
갈대집 방안 / 식량으로 잡아서 말려놓은 물새
그들은 자기네 주식인 수십 종의 감자, 옥수수 등을 보여주었고 또 잡아놓은 물고기들, 말려놓은 물새 등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자기네들 전통 간식이라며 갈대 껍질을 벗기고 하얀 속살을 먹어보라고 주었는데 들쩍지근하고 풀냄새가 나서 씹을 만은 하였지만 차마 삼키기는 어려웠다.
또 호수가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겠다며 섬 가운데 갈대 뭉치를 뽑으니 구멍이 생기는데 그 속으로 돌멩이를 묶은 끈을 집어넣었다가 호수 바닥에 닿은 후 끌어올렸는데 20m는 족히 되어 보였다.
갈대 섬은 밑 부분이 자꾸 썩으며 가라앉아서 몇 개월에 한 번씩 계속해서 갈대를 깔아주어야 한단다. 3m 정도 자라는 갈대를 베어다가 한 아름씩 여러 부분을 묶어 차곡차곡 쌓는 형식인데 물속에 잠긴 부분이 가늠되지는 않지만, 굉장히 두꺼워 보이고 발에 힘을 주고 걸으면 바닥이 일렁일렁한다.
<5> 영원히 잊지 못할 티티카카
까미사리끼(Welcome) 섬
광장(호수) 건너편에 있는 다른 섬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는 모터 유람선을 빈 채로 보내고 1인당 2불씩 내고 갈대로 엮은 배를 타고 이동하였다. 엄청나게 뚱뚱한 인디오 여자가 노를 잡았는데 30여 분의 거리를 거친 숨 한번 내지 않고 단숨에 저어 건넜다.
팔뚝 굵기가 내 두 배도 넘어 보인다.
우로스섬들은 섬마다 높다란 기둥 위에 갈대로 엮은 고유의 조형물을 얹어놓는데 커다란 새 모양, 물고기 모양, 이상한 짐승 모양 등 섬마다 상징물의 모양이 다르다.
두 번째로 방문한 까미사리끼(Welcome) 섬은 삐리고라소(Heart) 섬보다 훨씬 큰 섬으로 호텔도 있고 식당도 있고 카페며, 제법 큰 기념품 가게도 있다. 호텔은 나무로 엉성하게 대문 테두리를 만들고 위에 호텔이라는 간판을 붙이긴 했는데 조그만 갈대 오두막이 달랑 5~6채 있는 것이 전부다.
대문을 들어가 갈대 문을 열고 오두막을 들여다봤더니 갈대로 엮은 무릎 높이의 침대 위에 인디오 전통문양의 침대보를 씌워놓은 것이 전부였고 가구로는 달랑 작은 책상과 의자 하나, TV가 있다.
10여 년 전 일본의 혈기 방장한 젊은이가 이 호텔에 들었는데 인디오 여자를 끌어들여 자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인디오 여자가 임신하였고 낳은 아이가 지금 거의 20세가 되었다는 가이드의 귀뜸이다.
그 젊은 일본 놈은 연락이 닿지 않은 것은 물론 그 이후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젊은이가 아니고 40대 중반쯤 되었을꺼라는.....
♧ 바람둥이 인디오(Indio) 남자들
인디오들은 눈이 맞으면 쉽게 동거하고, 아이를 낳으면 남자는 쉽게 도망을 가버린다고 한다.
정식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로, 인디오 남자들은 이른바 책임감이 없고 바람둥이들이란 말인데 아이들이 생기면 당연히 여자들이 양육을 도맡고 남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인디오는 무책임한 종족이다.
인디오 여자들은 항상 등에 원색으로 울긋불긋 수놓은 틸마(선인장 줄기로 짠 보따리)를 지고 다니는데 온갖 짐은 물론 아이까지 넣고 업고 다닌다.
인디오 여자들은 바람둥이 남편들 때문에 항상 속을 썩이는데 남편을 그 보따리(틸마) 속에 넣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 영원히 잊지 못할 티티카카
드높고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이고 웅장하게 뻗어있는 안데스(Andes)의 준봉(峻峯)들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티티카카호수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의 갈대숲
까마득히 호수를 에워싼 만년설을 이고 있는 고산 봉우리들
호수 위로 스칠 듯 떼를 지어 나르는 이름 모를 물새들
갈대로 엮은 작은 섬 위에서
원색의 전통 복장을 차려입고 하염없이 관광객을 기다리는
검은 얼굴의, 한없이 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
뇌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하늘 호수 티티카카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LA 공항에서는 남미에서 왔다는 이유 때문인지 입국수속 때 마약견이 두 차례나 훑고 지나가고 짐도 샅샅이 뒤져서 기분이 언짢았는데 결국 쿠스코에서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고 하여 사 오던 암염(巖鹽)이 문제가 되었다.
암염(Rock Salt)이라고 설명을 했는데도 나를 붙잡아 세워놓고 들고 가더니 한참 후에야 들고 와서 통과를 시킨다.
훌리아카(Juliaca)에서 비행기를 타고 LA를 거쳐 댈러스(Dallas)를 경유하고, 텍사스주 러벅(Lubbock)의 딸 집에 도착하기까지 꼭 23시간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