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외부 관점
나는 아모스와 공동 연구를 시작하고 몇 해 지나
고등학교 과과과정에 판단과 결정을 넣어야 한다고 이스라엘 교육부 관리들을 설득했다.
교과과정을 설계하고 그에 따라 교과서를 집필하기 위해
내가 소집한 팀에는 경험 많은 교사, 심리학 분야의 내 제자,
그리고 당시 히브리대학 교육대학원 원장이자 교과 과정 개발 전문가인
시모어 폭스(Seymour Fox)가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는 약 1년간 매주 금요일 오후에 만나면서 학습 계획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하고,
챕터 두 개를 쓰고, 교실에서 시험 삼아 수업도 몇 차례 해보았다.
그러면서 다들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느꼈다.
하루는 불확실한 양을 추정하는 절차를 토론하던 중에 문득 실제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초안을 완성해 교육부에 제출하기까지 얼마나 결릴지 추정해보라고 했다.
우리가 이미 교과과정에 넣기로 한 절차를 그대로 실행해볼 심산이었다.
이 절차에 따르면 집단에서 정보를 이끌어내는 적절한 방법은
공개 토론으로 시작하는게 아니라 각 구성원의 판을 비공개로 수집하는 작업으로 시작한다.
흔히 하는 공개 토론보다 이 방식이 집단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활용하기에 더 적합하다.
나는 추정치를 모아 칠판에 결과를 적었다.
여러 추정치는 얼추 2년을 중심으로 최저는 1년 반, 최고는 2년 반이었다.
이때 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교과과정 전문가인 시모어에게
우리처럼 교과과정을 아예 처음부터 새로 짰던 팀이 있었냐고 물었다.
당시는'새로운 수학' 같은 몇 가지 교유 혁신을 도입하던 때였고,
시모어는 그런 팀이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그 팀들의 진행 상황을 자세히 아느냐고 자, 그는 몇 팀을 아주 잘 안다고 했다.
나는 그들이 언제 지금 우리 만큼의 진전을 이루었는지 기억해보라고 했다.
그들은 그시점부터 교과서 집필을 마칠 때까지 얼마나 결렸을까?
그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여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듯하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 아 , 그게,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우리와 비슷한 단계에 있던 팀이
모두 작업을 끝낸 건 아니었어요, 상당히 많은 팀이 끝을 보지 못했죠"
걱정스러웠다. 우리는 일을 끝내지 못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불안감이 커졌고, 그에게 "상당히 많은 팀"이라면 어느 정도냐고 물었다.
그는 "약 40퍼센트"라고 했다. 연구실에 우울한 기운이 드리웠다.
다음 질문은 뻔했다. "끝낸 팀은 얼마나 걸렸나요?" 그가 대답했다.
"7년 안에 끝낸 팀은 없었던 것 같아요, 10년 넘게 걸린 팀도 없었고"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우리 능력과 재원이 그 팀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그들과 비교해 우리 순위를 매긴다면요?"
시모어는 이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했다. "평균 아래예요, 많이 아래는 아니지만"
이 말은 팀에서 상당히 낙관적인 추정치를 제시했던 시모어를 포함해 모든 이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시모어의 머릿속에는
그가 아는 다른 팀의 진행 상항과 우리 미래에 대한 그의 예측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시모어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 기분은
단지 우리가 '아는' 사실만으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분명히 '알고' 있었다. 최소 7년과 실패 확률 40퍼센트가
조금 전에 우리가 종이에 적어낸 숫자보다 우리 작업의 운명에 더 가깝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아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로 등장한 예측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꽤 잘 진행되는 것 같은 작업이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야 끝날 수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 이상한 사건들의 전말을 보여줄 마법 구슬 따위는 없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약 2년 안에 교과서를 집필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계획뿐이었는데,
다른 팀은 실패하거나 터무니 없이 오래 결렸음을 보여주는 통계와 상반되는 계획이었다.
우리가 들은 것은 기저율 정보였고, 우리는 거기서 인과관계 이야기를 추론해야 했다.
그렇게 많은 팀이 실패했다면, 그리고 그나마 성공한 팀도 아주 오래 결렸다면
교과과정 설계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추론은 이제까지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는 우리 경험과 상충된다.
시모어가 알려준 통계는 결국 다른 기저율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적어놓고 재빨리 제쳐두기,
우리는 그날로 일을 접었어야 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실패 확률이 40퍼센트인 이 일에 6년을 더 쏟아부을 생각은 없었으니까.
끝까지 매달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쯤은 분명히 감지했어야 하는데도,
누구도 그 경고를 당장 일을 그만둘 설득력 있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몇 분간 두서없는 토론 끝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힘을 합쳐 하던 일을 계속했다.
교과서는 8년(!) 뒤에 마침내 완성되었다.
그때 나는 이미 이스라엘에 살지도 않았고 그 팀을 나온 지도 오래엿다.
팀은 예상치 못한 많은 우여곡적 끝에 작업을 완성했다.
교육부의 애초 열정은 교과서가 나롱 때는 이미 시들해진 상태엿고
새 교과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당혹스러운 이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교훈으로 남았다.
나는 여기서 세 가지를 배웠다.
하나는 매우 다른 두 가지 예측 방식을 구분하는 법을 그 즉시 우연히 알게된 것인데,
아모스와 나는 훗날 이를 '내부 관점(inside view)', '외부관점(outside view)'이라 이름 붙였다.
두번째는 교과서 집필에 약 2년이 걸릴 것이라는 애초 우리 예상은
'계획오류(planning fallacy)'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리 추정치는 현실적 평가라기보다 최상의 시나리오에 가까웠다.
뒤늦게 인정한 세 번째는 교훈은 그날 그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어리석음,
그러니까 내가 '비합리적 인내'라고 부른 어리석음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는 모험을 포기하지 않고 합리성을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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