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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내가 전도하기 위해 왔노라 , 골4:5-6,막1:35-39
어느 날, 한 예쁜 집사님이 누군가를 전도했습니다. 그때 전도 받던 여자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예뻐요?” 그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예수 믿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예뻐져요. 저도 원래는 얼굴이 기미로 뒤덮였는데 예수 믿고 기미가 다 빠졌어요.” 그 말에 이 여자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왜냐하면 수시로 외박을 하는 바람난 남편 때문에 자신의 얼굴에 기미가 그칠 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예수 믿으면 예뻐진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처음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배드리면서 자기 생애 처음으로 마음껏 울었습니다. 늘 남편을 증오하며 살다가 얼굴까지 망가진 자신의 비참한 삶을 회개하고 그날 그녀는 다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지금처럼 살지 않겠다. 남편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고 예수 믿고 살겠다.” 그때부터 그녀는 예배에 열심히 참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얼굴의 기미가 벗겨졌습니다.
그 후 한 달 만에 바람난 남편이 옷을 갈아입으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즉시 욕설이 나갔습니다. “당신 왜 들어왔어! 여기가 세탁소야!” 그런데 그날은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그동안 잘 있었어요? 어서 오세요.” 남편은 10년 만에 들어본 아내의 친절한 말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런데 말뿐만 아니라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음식을 얼마나 정중하게 주는지 정말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그날 밤 남편은 자면서 혼자 별의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사람이 죽기 직전에는 저렇게 침착해지는 경우가 있다는데 오늘 저녁 자살하려고 하나? 오늘 자살하면 내가 덤터기를 다 쓸 텐데 큰일 났네.” 남편은 겁이 덜컥 났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내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처럼 걱정하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다행히 그날 저녁에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그가 집을 나서는데 또 아내가 밝고 편한 얼굴로 90도 각도로 인사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어디에 있든지 편하게 있다가 오세요.” 그 인사를 듣고 집에서 나왔는데 “편하게 있다가 오라!”고 하니까 더 편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에 가서도 걱정이 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이제 자살하려고 마지막 인사를 한 건가?” 그리고 12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어 있을 아내를 생각하니까 미움은 다 사라지고 미안함만 생겼습니다. 겁도 나고 일손도 잡히지 않아서 오후에 집에 와 봤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여전히 밝은 모습으로 맞았습니다. “여보! 왜 지금 이 시간에 오세요.” 그런 아내의 모습이 너무 이상해서 남편이 둘러대며 말했습니다. “뭐 좀 찾으러 왔소. 그런데 당신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소?”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예, 한 가지 아주 좋은 일이 생겼어요. 제가 요새 좋은 분을 만나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남편의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남자들은 자기는 바람을 피워도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은 싫어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남편이 정색을 하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떳떳해요. 혹시 시간이 있으면 오늘 저녁 그분 만나는데 함께 갈래요?” 그래서 그날 저녁 10년 만에 함께 외출해서 수요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여보, 이제 당신도 예수 믿으세요. 저도 최선을 다할게요.”
그때 아내의 모습을 보니까 너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마음도 달라졌습니다. “내가 그렇게 교양적이고 착한 부인을 놔두고 어디로 가나?” 그때부터 그 남편은 더 이상 외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에 직장에서 가정문제로 고민하는 한 부하 직원을 보고 말했습니다. “자네 부인 교회 다니나?” “안 다니는데요.” “빨리 교회로 보내!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 주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은 총 동원 전도 주일을 앞두고 두 본문을 중심으로 “내가 전도하기 위해 왔노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은 전도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1)전도의 목적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막1:38-39에서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하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전도를 위하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마을에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전도하셨습니다. 전도의 목적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갈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은 삭게오를 만나 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9-10)
2)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우선적이고, 소중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새벽부터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열심히 예수님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너무 피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제 가버나움에 들어가 하루 종일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의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쫒아 주었습니다. 회당에서 나가서는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물어 해 질 때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데려 오자 예수님은 그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너무 피곤한 상태입니다. 그런 중에도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예수님을 찾던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도하는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주님을 만나 지금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우린 여기서 전도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왜 전도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필요로 하여 주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이 됩니다. 천만 명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고, 4천만 명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전도 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4천만 명이나 있습니다. 주님은 마9:37에서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찾는 자들 중에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는 자들도 많지만 무엇보다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필요치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구원 받는 일은 가장 소중한 일이고 우선되어야 할 일입니다.
3)온 천하를 얻고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G20 정상 회의가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 20개국의 정상들이 모여서 회의를 가졌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20위 안에 드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고 개인 소득이 늘어나는 일도 좋은 일이지만 물질적인 부보다 더 귀하고 소중한 것은 영혼이 사는 것이요, 민족이 복음화 되는 것 입니다.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그 영혼이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했다면 어리석은 자요, 불상한 자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마16:26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영혼이 잘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필요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범사가 잘되게 하십니다. 우리나라는 100여 년 전만 해도 이 땅에 소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초대 선교사들이 초창기에 선교 보고한 것들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저주 받은 나라요, 전혀 소망이 없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이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분은 예수님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을 했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결국 그들의 믿음대로 우리나라는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 남은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전도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오늘 우리가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2.예수님은 전도를 우리에게 당부하셨습니다.
1)지상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초기에 제자들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전도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둘 씩 짝을 지어 전도하게 하셨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주님의 당부대로 그들은 전도하는 일 때문에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죽음에 이르러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전도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전도자는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의 행동에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흠 없으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인류가 구원에 이르게 된 것처럼 전도자의 희생으로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의 희생으로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전도는 영혼을 죄악의 늪에서 건지는 일입니다. 혼자 하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둘이 하면 쉽습니다. 셋이 하면 더 잘됩니다. 함께 전도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며, 사람들이 천국가족이 되게 하는 너무 소중한 일입니다.
2)성령으로 도우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전도하는 일에는 많은 고난이 있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으로 비유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전도를 당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8-20) 주님이 전도자들과 항상 함께 있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을 통해 도우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과 함께 모인 무리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하시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하셨습니다.
3)전도는 항상 지속되어야 할 모든 믿는 자들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보십니다. 사람은 사명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명이 끝나면 인생의 막이 내려갑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의탁하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며 운명하셨습니다. 바울도 사명의 길을 다 마치고 죽음을 내다보며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합시다.
비록 배운 것이 부족하더라도,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비록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다면 나는 사명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목회의 길을 가는 사람이나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들을 사명자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그들은 사명자입니다. 하지만 그들만 사명 자가 아닙니다. 목회 사명, 선교 사명은 아니더라도 내가 일하는 일터가 나의 사명지요, 내가 만나는 모든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할 대상들입니다. 사람들마다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사명도 다른 것입니다.
정말 행복한 인생, 성공한 인생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불행한 인생, 실패한 인생은 돈이 없고, 재주가 없고, 명예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세상 것에 취해 속아서 헛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3.전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있습니다.
1)언행을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골4:5)
본문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예수님에 대해서 긍정적인 증거, 또는 부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면 나를 면밀히 살핍니다. 그들은 믿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어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만원버스에 두 자리가 났습니다. 자리가 나면 그 자리 앞에 있던 사람이 앉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뒤쪽에서 손가방을 집어던지더니 달려와서 앉더랍니다. 그리고 옆 자리에 자기 가방을 놓고는 다른 사람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면서 “집사님! 빨리 와서 앉아” 하더랍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목사님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기를 기대합니다. 세상에서 떡먹듯이 일어나는 비리가 교회에서 일어나면 맹공격을 합니다. 요즈음 방송과 포털들이 돌아가면서 교회를 비판하는 현상이 나타나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과거 MBC가 기독교에 대해 맹렬히 공격하는 일을 수년 간 지속해 왔습니다. 이에 SBS까지 가세하면서 기독교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기독교 정서로 몸살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KBS가 2012년 10월 21일에 교회세습을 두고 또 다시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기독교에 대한 반정서로 나타나 전도의 문을 막게 됩니다.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 성도들과 교회를 주시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언행을 지혜롭게 해야 전도의 문이 막히지 않습니다.
2)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면서 복음 전할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고 말합니다. 전도의 기회를 잡기 위해 항상 친절하고 상냥한 말과 태도, 고난당하는 자를 위로 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일이 필요합니다. 전도는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논쟁을 통해서는 결코 사람들을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로 상대를 이긴다 하더라도 논쟁적이고 거친 말투로는 사람들의 영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덴에서 철학에도 능통한 바울은 철학적인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철학자들에게도 ‘말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논쟁에서 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의 전도여행지 중에 가장 열매가 적었던 곳이 아덴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느낄 때 하나님에게로 이끌립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따뜻하고 정중한 태도를 취하면서 전도의 기회를 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 마을에서 17세의 소년 마이크 뷰캐넌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출했고 아버지는 심한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너무 많은 문제와 걱정 속에서 몇 해를 고민하다가 자살을 계획한 것입니다. 이 때 한 신사가 지붕으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네 아버지가 되겠다.” 그는 윌리엄 폭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소년이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가 자신의 사랑을 믿고 받아들일 때까지 계속 말을 했습니다. 결국 마이크 뷰캐넌이라는 이 소년은 그를 따라 내려왔고 그는 약속대로 그 소년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초청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아버지의 돌보심을 받는 자들입니다. 전도는 이 사랑을 입은 자들이 사람들을 사랑의 아버지 앞으로 초청하는 일입니다.
3)경우에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일입니다.(골4:6)
바울은 누구에게든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기독교 복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중요합니다. 베드로사도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벧전3:15)고 말합니다. 합당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평소 성경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는 시간,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과 친밀한 사람은 자신의 지혜가 아닌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전도 파송하시면서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지혜와 지식의 영이십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서 힘쓰셨고, 당부하신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는 복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012. 10. 28. 성산 교회. http://cafe.daum.net/sungsansar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