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달마순\정리론 제80권
9. 전(全) 8품 총결(總結)
9.1. 정법(正法)의 본질과 주세(住世)
지금까지 여러 수승한 법문에 대해 분별하였는데, 이는 모두 다 세존의 정법(正法)을 널리 수지(受持)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정법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응당 어느 때에 머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부처님의 정법에는 두 가지가 있어
교법(敎法)과 증법(證法)을 본질로 하니
지니고 설하고 행하는 자가 있으면
이것도 바로 세간에 머물게 될 것이리라.
佛正法有二 謂敎證爲體
有持說行者 此便住世間
논하여 말하겠다.
세존의 정법(正法) 자체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교법(敎法)이며, 둘째는 증법(證法)이다. 교법이란 이를테면 계경(契經)과 조복(調伏)과 대법(對法)을 말하며,71) 증법이란 3승의 온갖 무루도(無漏道, 즉 菩提分法)를 말한다.
만약 증법의 정법이 세간에 머물러 있으면, 이것에 의해 널리 수지[弘持]하게 되는 교법 역시 [세간에] 머물 것이니, 이치상 필시 마땅히 그러하다고 해야 한다. 지금 바로 보건대, 동방(東方)에는 증법이 쇠퇴하고 미약[衰微]해졌기에 교법도 대부분 은몰(隱沒)해 버렸지만, 북방(北方)에는 증법이 여전히 성하기 때문에 세존의 바른 교법을 유포하는 이가 많다.72) 이에 따라 여래의 위없이 높은 지혜의 경계[無上智境]와 여러 성자들의 거처[栖宅]와 아비달마의 전도됨이 없는 진실의 뜻은 이 나라(즉 북방의 迦濕彌羅)에서만 성행하게 된 것으로, 동방 등의 [여러 나라에서는] 능히 전승하여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정법 중 교법은 대개 ‘지니는 자[持者]’와 ‘설하는 자[說者]’에 의지하여 세간에 머물 수 있지만, 증법의 정법은 오로지 ‘행하는 자[行者]’에 의지하여 [머물게 된다]. 그렇지만 ‘행하는 자’가 오로지 증법의 의지처만이 되는 것은 아니니, 교법 역시 마땅히 ‘행하는 자’에 의지하여 [세간에 머물기 때문이다. 즉 전도됨이 없이 법(즉 증법의 정법)을 닦고 행하는 자들이 있어 증법은 능히 세간에 오래 머물게 되는 것이며, 증법이 [세간에] 머물 때 교법도 역시 머물게 된다.
따라서 교법은 ‘지니는 자’와 ‘설하는 자’와 ‘행하는 자’로 인해 [세간에] 머물게 되며, 증법은 다만 ‘행하는 자’로 말미암아 머물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정법은 이러한 세 [부류의] 사람들에 따라 [그들이] 머무는 시간만큼 세간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73)
9.2. 본론을 짓게 된 취지
아비달마(阿毘達磨)는 이 논의 소의(所依)로서, 여기서는 그것의 진실된 요의(要義)를 포섭하고 있다.74) 그러한 [아비달마] [본]론(本論)의 뜻을 해석하는 데에는 다양한 방도가 있을 것인데, 지금의 이 논 중에서는 어떠한 이치에 근거하여 해석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가습미라에서 논의의 이치가 이루어졌으니
나는 대부분 그것에 근거하여 대법을 해석하였지만
조금이라도 폄훼하여 헤아렸다면 그것은 나의 과실이니
법의 올바른 이치는 모니(牟尼)만이 판별할 뿐이다.75)
迦濕彌羅議理成 我多依彼釋對法
少有貶量爲我失 判法正理在牟尼
논하여 말하겠다.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의 비바사사(毘婆沙師)들이 논의한 아비달마는 그 이치가 매우 잘 성립된 것으로, 나는 대부분 그것에 근거하여 대법(對法)의 종의를 해석하였다.”76) 경주(經主)는 여기(본송)서 자신의 본래의 생각[本意]을 서술하여 [이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즉 [그는] “이 나라(즉 가습미라국)의 여러 선서(善誓)의 제자들이 [모여] 대법의 이치를 논의한 『대비바사론』에 근거하고, 정근(正勤)을 일으켜 이치대로 관찰하여, 정법이 오래도록 세간에 머물러 유정들을 요익(饒益)하게 하기 위해 이 논(『구사론』)을 지었다”고 말하였지만, [본송 중의] ‘대부분’이라고 하는 말은 [대법(對法)을 해석하는데] 조금은 다른 방도가 있었음을 나타낸 것으로, 이를테면 형색[形]과 상색(像色)과 과거ㆍ미래세 등의 [문제가] 그러하였다.77)
그렇지만 제(諸) 법성(法性)은 광대하고도 지극히 심오하여 참답게 설하는 자를 만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나 중현은] 각혜(覺慧)가 지극히 미열(微劣)하여 [대법의 이치를] 참답게 설하는 자를 능히 힘써 구하지도 못하였다.78) 그래서 널리 논의하며 세운 이치 중에서 “조금이라도 [가습미라의 비바사(毘婆沙)를] 폄훼하여 헤아렸다면 그것은 나의 과실이다”고 하였던 것이다.79)
제법의 올바른 이치[正理]는 광대하고도 지극히 심오한 것이어서, 요컨대 옛날 일찍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부처님의 처소를 가까이하여 참된 지혜[眞智]의 자량을 닦고 익힌 자만이 바야흐로 지혜의 경계[智境]에 대해 어떠한 미혹도 없다. 인각유(麟角喩)의 독각(獨覺)조차 법상(法相)에 대해 능히 결정적으로 판별[決判]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온갖 성문은 어떠할 것인가? 이는 곧 그가 증득한 법이 다른 이의 가르침(즉 불타의 교법)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로 볼 때, 제법의 올바른 이치는 오로지 진실로 위대한 모니존(牟尼尊)께서만 결정하고 판별할 수 있을 뿐으로, 그렇기 때문에 아비달마는 진실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佛說]임을 결정코 알아야 한다.
그러니 마땅히 그것을 따라 믿고 수지하며, 전도됨이 없이 닦고 행하여 부지런히 힘써 해탈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