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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길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맬 때에. -『단테 <신곡>
"우리 인생길의 한가운데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단테의 『신곡』「지옥 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는 저자 '단테 알리기에리'의 페르소나인 시인 '단테'이다. 단테이자, 단테가 아닌 또 다른 나 자신인 셈이다. 단테는 '어떻게 숲에 들어섰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만 진정한 길에서 벗어난 그때는 어쩌면 꿈결일지도 모른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골짜기를 헤맨다. 다시는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에 젖어 고통스러운 밤을 보낸 후, 황량한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긴긴밤이 지나고 산꼭대기 위로 별들과 함께 태양이 솟아오르는 시간이다. 그는 길 잃은 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어렴풋한 희망을 느끼는데, 그때 가볍고 날랜 표범 한 마리가, 연이어 암늑대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광폭한 야수들은 입을 벌리고 단테를 위협한다. 이제 단테는 골짜기의 끝으로 내몰려 죽음의 공포에 떤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 멀리 한 사람이 어렴풋이 보인다. 단테는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그에게 살려 달라고 외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죽은 시인 '베르길리우스'이다. 잃어버린 인생길에서 만나는 모종의 구원자, 새로운 길로 안내할 길잡이이자 스승, 헤매는 자의 손을 잡고 함께 걸어 줄 친구요, 동반자가 나타난 것이다.
단테의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베르길리우스가 단테 앞에 나타난 것은 천상의 고결한 영혼(후에 밝혀지길, 단테가 청년 시절 순수하게 사랑했던 연인 베아트리체)이 단테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줄 것을 간곡히 청했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단테를 구하되, 대신 자신을 따라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고 통보한다.
"이 숲을 벗어나고 싶다면 너는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우리가 인생길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헤맬 때에, 뒤엉켜버린 삶의 길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 이제껏 우리가 살아온 인생길과는 전혀 다른 곳, 그것은 공포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인 동시에 지나온 길을 돌아 보며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하는, 깊은 슬픔이 예비되어 있는 길이다.
단테는 길을 떠난다. 길잡이 베르길리우스가 그를 붙잡아 주고, 안내하며, 험하고 사악한 골짜기와 흉측한 괴물들 앞에서 그를 지켜주지만 멈추지 않고 길을 가야 하는 것은 오롯이 단테 자신이다. 그는 '영원한 곳'을 통과하는 길 위로 발을 들인다. 길 위에서 그가 만나는 이는 누구인가. 그는 죽음 후에 또 다른 죽음을 부르짖어야 하는 고통을 영겁의 시간 동안 받아야 하는 영혼들을 만난다. 언젠가 다시 축복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불 고문을 참고 견디는 영혼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종내에는 모든 곳을 다스리는 높은 왕좌와 '그분'이 있는 곳, 그곳에 들어간 자들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길은 이어진다. 이는 바로 '지옥', '연옥', '천국'이며, 단테-즉 '나'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시험의 장場이자, 인생길의 반 고비를 살아온 영혼과는 또 다른 영혼으로 거듭나는 성찰의 길이다.
하지만 이는 차마 두려운 일이다. 때로 우리는 인생길 한가운데서 올바른 길을 잃고 깊은 숲속을 헤매게 된다. 어둡고 깊은 숲으로, 밤이 지나고 날이 밝도록 헤매어 보지만 길은 험하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올바른 길을 걸어갈 때 우리의 머리 위에 빛나며 삶의 이상과 표지가 되어주던 저 별은 여전히 산꼭대기 위에 빛나건만, 태양이 떠오르고 날이 밝아 와도 희미한 희망은 잡힐 줄을 모른다. 길은 점점 더 황량하고 산꼭대기를 향해 다시금 올라 보지만, 무겁고 더딘 발걸음은 우리를 골짜기로 내몬다. 때로는 표범이나 암늑대가 그 길을 가로막고, 이제 더 이상 앞으로 헤매며 나아갈 길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다.
단테의 『신곡』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출판될 당시부터 큰 반향을 일으킨 후, 문학과 예술에 있어 영감의 원천이 되며 각 시대마다 새로운 『신곡』의 형태로 끝없이 새롭게 재해석, 재구성, 재창작 되는 등 그 명성이 드높다. 그런데 이러한 명성과 달리, 이 장엄한 시곡詩曲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이는 흔하지 않다. 마치 성경과도 같은 아이러니인데,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책의 첫 장을 펼친다. "우리의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이 한 문장이 주는 슬픔과 고뇌가 너무 깊다. 수없이 많은 말보다 때론 한 마디의 짧은 음성이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뜻을 전하듯, 『신곡』의 위대함은 사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
자, 이제 여행을 떠나볼까. 그간 당신의 삶은 어떠했는지, 삶을 돌이킬 때 때로 나는 참 막막하고 아리다.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진 서로 서로가, 때로는 그리움으로 떠오를지라도 보이지 않는 서로가, 당신이, 혹은 많은 시기의 나 자신들이 사라져 보이지 않는 까닭은 이것일까. 우리의 인생길 한가운데에 때로 우리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길로 들어선다. 여전히 나는, 당신은 그 숲을 헤매고 있는가? 혹은 여전히 꿈결에 취해 헛된 희망을 품고 망설이며 머뭇대고만 있는가.
깊은 숲에서 벗어나 삶으로 소생하는 것은 원래 있던 그 길을 다시 찾는 일이 아니다. 이제껏 몰랐다. 헤매는 길 끝에 출구가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 단테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우리의 소생은 다른 길에 있다. 자, 이제 여행을 떠날 시간이다. 언젠가 니체의 글을 읽다가 접어 둔 한 귀퉁이에서 철학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더랬지. "나를 죽이지 못한 시련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망설이고 두려워하며 우리는 새로운 여행길에 오른다. 가장 두렵고 슬픈 영혼의 밑바닥까지 맞닥뜨려야 하는 험한 길을 지나 희망이라는 단 하나의 담보를 의지 삼아 고통을 견뎌야 하는 더딘 기다림의 길도 지나고, 숭고하고 고결한 천상의 그곳에 이르기까지, 단테는, 그리고 나는 고난의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날이 저물고, 불그레한 하늘은
지상의 모든 생명에게 하루의 고달픈 일을
놓고 쉬라고 하는데, 나 홀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방랑의 길을
떠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단테는 수난일(성금요일) 해 질 녘에 지옥으로 내려가고, 삼 일 간의 여행 끝에 부활절 일요일 새벽에 연옥의 해변으로 올라온다. 지옥과 연옥이 지구의 대척점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의 여행은 선형이면서도 원을 그린다. 결국 이 이야기는 여행기인데, 이 여행은 물리적인 여행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여행,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회귀의 여행이자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시작의 여행이다. "우리 인생길의 한가운데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라고 시작한 순례의 여행은 지옥의 마지막 구덩이를 통과하여 연옥 산에 이르며 이렇게 끝난다.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와 별들을 다시 보았다."
단테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지하며 과연 이 상황에서 자신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깊은 우울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순례기이고, 회고담이며, 성장기이자 여행기이다. 동시에 이 이야기를 읽으며 단테의 여행에 동참하는 모든 독자는 자신 또한 인생길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다는 것을 인지하며 자신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깊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단테의 이야기인 동시에, 나 자신의 이야기이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도에도 없는 땅을 헤쳐 나가며 그 끝에 비로소 단테는 깨닫는다. "우리의 끝에 우리의 시작이 있다" 결국 이 이야기는 '그 여행에 대해 시를 쓸 수 있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이며, 여행의 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되는 여정이다. 단테의 『신곡』이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며 무수히 재탄생되는 까닭이기도 하고, 수없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인생의 순례길을 떠나게 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니 '우리의 인생길 한가운데서' 우리의 삶이란,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인생의 작가가 되고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기 위한 여정이다. 단테가 이십여 년의 세월에 걸쳐『신곡』을 완성하고 그 일 년 후에 죽음을 맞이하였듯, 종내에 우리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것이고, 그 이야기 속에 유일한 주인공은 나 자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길이란 내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 위해 깊고 풍부한 가치를 쌓아 나가며, 인간의 많은 행위와 경험에 대해 숙고하고 성찰하는 노력의 순간들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삶의 완성이자 동시에 시작이며,『신곡』이 오래도록 진리를 전하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듯, 우리의 삶 또한 어딘가, 누군가에게는 영원히 지속될 삶으로 남을 것이다.
단테의 『신곡』은 고전 중에 고전이지만, 이제껏 한 번도 읽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교유당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프루 쇼'의 『단테 <신곡> 읽기』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책들은 저자가 원전에 대한 깊은 사랑에 빠져 오랫동안 작품과 작가를 연구한 결과물을 출판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자가 머리말에서 밝히듯 궁극적인 목표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원전인 『신곡』을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끝으로, 『신곡』의 테마는 궁극적으로 '여행'이다. 지도에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것은 힘든 테마에 관한 긴 문학작품을 쓰는 노력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렇다면 『신곡』을 읽는 것은 길잡이는 있으나 결국 스스로 헤쳐가야 하는 지도 없는 이 광대한 문학의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지옥편」의 첫 구절을 넘기지 못하고 그 슬픔에 깊이 빠져들었는데, 지옥의 마지막 구덩이를 빠져나온 단테가 "밖으로 나와 별들을 다시 보았다"라고 말한 순간, 슬픔이 가장 고결한 눈물의 한 방울로 농축되어 세상에 흘러 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우리의 인생길 한가운데에, 때로 우리는 올바른 길을 잃고,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곳으로 순례를 떠나야 하지만, 슬픔과 번뇌의 여행길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연민하고 사랑하며 수용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다시금 '별'이 뜨는 세계로 나서게 되리라.
인생의 여행길에 오른 모든 순례자들에게 이 책, 『신곡』을 추천한다. 그리고 우리가 넘어지고 두려워하며 발걸음을 멈출 때 길잡이가 되어주는 누군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