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보상절을 읽은 세종은 석가세존의 삶에 깊이 감동한다.부처님의 공덕을 대서사시를 지어 노래한다.
바로 월인천강지곡이다. 부처님이 천백억화신을 나투어 중생세계에 나타나는 것이 마치 하늘의 달이 일천강에 그림자를 비치는 것과 같다고 한것이다.
세조는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 소헌왕후의 공덕을 빌기 위해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본하고 내용을 보충하여 월인석보를 간행하였다.
월인석보에 안락국 태자전이 수록되어 있다.안락국. 태자전은 불화로 제작되었는데 불화 21편의 장면에 금자 한글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요즘 웹툰이나 동화책 처럼 만들어서 경전의 내용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불화의 화기에는 주상전하(선조). 왕비전하(의인왕후)의 무병장수를 빌고 공의왕대비.덕빈저하.혜빈정씨등 다수의 비빈들이 공덕을 기원하는 축원이 적혀 있다.
간기에는 사라수탱이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좀먹고 마멸되어 그 형상을 알아볼 수 없게 되어 이를 다시 모사하여 그렸다고 적혀 있다.
간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불화는 선조때 작품이지만 그 전부터 전해진 불화임을 알수 있다.
세조때 월인석보가 간행되고 그 속에 실린 안락국 태자 이야기가 궁중 여인들에게 인기리에 읽혀지고 궁중화가를 통해서 불화로 제작되었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그 뜻을 바로 전하기 위해서 그림 한편 한편에 한글로 자세한 설명을 붙인 것이다.조선 불화를 전부 살펴봐도 이런 한글 해설 형태의 불화는 유일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불화는 일본의 시고쿠 조그만 시골 마을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다행히 관리를 잘해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형편이 허락되면 일본에 남아 있는 안락국 태자경 변상도를 그대로 모사 복원하여 국내에 모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훈민정음 창제하고 최초로 만든 책이 석보상절이라면 훈민정음이 최초로 그림에 쓰인 작품이 아래의 변상도이기 때문이다.
조선불화 연구와 초기 한글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다.
조선은 유교를 받들고 불교를 억압했지만 왕실은 불교를 받들었다.특히 왕실의 여인들은 종교적인 욕구를 불교를 통해서 해소하였으며 정토신앙을 통하여 죽은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였다.
안락국 태자경은 조선왕실과 조선의 민중들이 정토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신앙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안락국 태자경은 최초로 한글이 쓰여진 변상불화의 소재이다.
안락국 태자경은 중국.인도에 없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경전으로 추정하고 있다.경전의 내용은 제주도 전래 무가인 이공 본풀이와 기본 줄거리가 너무 비슷하다.
그래서 불교에서 무가의 영향을 받아 한국의 정서에 맞게 창작된 경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반면 무교에서 불교경전의 영향을 받아 이공 본풀이가 생겨났다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내용을 자세히 살펴 보면 우리 무가의 감동 깊은 이야기를 불교 포교와 대중화를 위하여 변문 형태로 차용했음을 알수 있다.
안락국 태자경의 내용은 경주 기림사의 창건설화로 둔갑하고 고려때는 경전의 형태로 틀을 갖춘다.세종때 우리말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 안락국 태자 이야기가 들어간다.
안락국. 태자 이야기 변상도 불화는 월인석보 내용을 조선왕실에서 불화형태로 그린 것이다. 이제 내용을 살펴 보자
범마라국 임정사에 광유성인이 오백제자를 거느리고 중생을 교화하고 있었다.그때 서천국에는 사라수대왕이 왕비 원왕부인과 함께 400여개의 소국을 다스리고 있었다.범마라국에 7년간 가뭄이 들어 정원에 화초가 말라 시들어 갔다.
광유성인은 승렬 비구를 사라수대왕에게 보내 물 길을 채녀를 보내달라고 하였다.
대왕은기쁜 마음으로 여덟 궁녀를 보내주었다.광유성인은 3년 후에 절의 규율을 맡을 유나를 시키려고 사라수대왕이 직접 오기를 청한다.대왕은 선뜻 나라를 동생에게 맡기고 임신한 왕비 원앙부인과 함께 범마라국으로 떠난다.
몇달을 걸으니 만삭이된 원앙부인이 걷지를 못해 스스로 죽림국의 자현 장자집에 황금 2000근을 받고 몸종으로 팔게 된다.원앙부인은 사라수대왕에게 왕생게를 일러주고 광유선인께 몸 판돈을 시주하여 공덕을 쌓도록 한다.대왕은 울면서 떠난다.아들이 태어나면 안락국으로 딸이 태어나면 효양으로 이름짓게 한다.
원앙부인은 장자의 집에서 아들을 낳았다.아들 안락국이 일곱살 되던해에 아버지를 찾으니 범마라국 임정사 광유성인을 찾아가라고 일러준다.장자의 집에서 도망가다가 계집종에게 붙잡힌 안락국은 이마에 불도장을 찍히고 큰 고통을 당한다.
다시 장자의 집에서 도망하여 임정사를 가는 길에 여덟 궁녀를 만나 원앙부인이 알려준 왕생게를 듣는다.
아버지 사라수대왕을 만나 이름인 안락국과 왕생게를 통해 부자임을 확인하고 서럽게 운다. 사라수대왕은 남편과 자식을 떠나 더욱 슬퍼할 원앙부인을 생각하며 빨리 돌아 가라 한다.
죽림국 자현장자 마을에 돌아온 안락국은 자기가 도망간것에 분노하여 어머니를 자현장자가 세동강 내서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그리워 천리 만리 찾아가더니 돌아와서는 어머니를 찾을 길 없구나. 그신세 참으로 처량하구나 고독한 안락국이여.‥
멀리서 목동의 노래소리가 들려온다.자신의 탈출로 장자의 노여움을 사서 몸이 세 동강난 어머니의 시체를 한데 모아 이어 놓고 엎드려 울면서 서방을 향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