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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역사는 그저 지나간 과거인줄로만 알았댔읍니다. 그러나, 과거는 늘 오늘로 이어진다는 불변의 진실을 꿴것은 그리 오래전은 아니었지요. 마치 미래가 오늘에 연하여 현실로 다가 서듯이~
조선의 제 25대 임금이신 철종이 강화섬에 숨어살던 시절이 있었기에 이 강화부성 안파루 가는길에 강화도행렬도가 서있듯이 1906년 한 선비의 발자취가 시공을 초월한 허공중에 지금도 엄연히 살아있어 오늘도 강화섬은 나들길이란 이름으로 화남길을 찾아서란 명목으로 활기찹니다.
선비는 말을 타고 지났을 이 강도남문 안파루를 1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린 걸음에 발을 맡겨 길을 갑니다. 멀고도 가까운 일산,서울에서 귀한 길벗님들이 새벽댓바람을 가르고 채 6시가 되기도전 풍물시장도착 게서 문수산우으로 불끈 솟아오르는 햇님을 맞이해 손 흔들고.
일반 민가에선 귀한 아치문이라선지 늘 이곳을 지날때마다 괜시리 흐뭇한 건 왤까요? 가끔은 포크레인도 없었는데 순전히 인력으로 어찌 저리 멋스러이 세웠을꼬? 갸웃거리며 이 문을 통과하여 강화역사문화연구소로 향하곤 합니다.
어쩌다 하루에 동서남북문을 모두 지나가는 날들도 있는데 그런 날은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서울에서도 걸어서 하루에 사대문을 다 통과할 수 있으려나???
걷기 길에 중언부언 역사를 돌아보는거 그리 즐겨하지 않으나 언제다시 인연될지 알 수 없기에 그래도 백범 김구선생님이 사셨던 황부잣집을 잠시 설명하고 사실 내심은 그 분의 치열하게 살다가신 그 올곧은 실천정신을 스스로도 배우고저... !!!
용흥궁 입구입니다. 유수 정기세가 철종이 등극한 연후에 초가자리에 이렇게 지어놓은 철종잠저.
바그다드에서 온 순한 길벗일까요?
한양에선 특히나 현대문명을 자랑하지만 글쎄요. 시골뜨기여선지 제경우는 시골 민가나 소박한 한옥 흙마당이 기앙 좋기만~ 비오시는 날의 서정을 이야기하는 중이죠. 비 오시는 날 나름 도심에 둘러싸여 있는 이곳엘 오면 빗줄기는 비의 커텐처럼 떨어져내리는 정경 빗방울은 금새 초미니호수위로 뛰어내려 라이브 오케스트라연주가 부럽지 않아지는 순간을 맞닥뜨리곤하죠. 결코 홈통으로 멋없이 흘러가버리 않거든요.
황금빛 아침햇살에 선비의 사랑채는 첫사랑에 빠진 듯 설렘과 고요가 춤을 춥니다. 궁전의 미학이란 자연가까이란 듯...
지리산님입니다. 이 순간만해도 그녀의 수고를 헤아릴 길 없었던.
엘도라도를 꿈꾸는 총잡이들 눈에 아침 태양이 그 빛을 던지는 매 순간순간이 황금인줄 알았다면 아니 천금을 희롱한대도 살 수 없는 경이로움인줄 알았다면 아마도 세계사는 지금 에덴동산이었을텐데~~ 황금을 손에쥐고 죽어가는 모습이 오늘 내 모습은 아닐까? 돌아보는 것은 새벽창문을 두두려대던 우박덩어리속에서도 살펴보게 됩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사계절 그 때 그때마다 참으로 멋스런 건물 강화성공회 유리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며 탄성을 지르고 십자가가 새겨있는 한국종을 들여다보고 선비나무의 이야기며 한국축구의 시원이 강화섬이었던 것 등등 몇몇가지 이야기 주고받으며
도착한 북문 벗꽃길가에 앙징맞은 차한대 나신의 미녀인 듯~
막 벙글기 시작하는 꽃님을 닮으려는지 길벗님들 환~한 웃음 꽃들캉 키재길하고
초록으로 군락을 이루어 올라오는 이름모를 풀 무어냐고? 노란꽃을 피울 괴불주머니들의 하늘거림아래 시선을 던지던 순간이죠.
물길바람길가는 길 사랑하는 이들이 숨쉬던 고향마을 가는 길 그러나 지금 그 곳엔 코흘리개시절 동무들만........ .
북문 진송루 성밖에서 나누어먹는 초코릿 하나 둘 셋....... 맛있다. 하나 더 ㅎㅎㅎ
무얼보고??? 비밀이야여 !!!!!!!!!!
ㅡ 사진은 지리산님과 토순님 작 ㅡ
산성 여기저기에도 진달래꽃이 피었읍니다. 길벗님들 등뒤처럼 꽃맘 피었읍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섬 강화도 심도기행 화남길위에서 단기4344 신묘년 사월그믐 아침 비오시고. 춤추는 길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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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춤님에 나들길 사랑을 어찌 하오리까?ㅎㅎ
꽃대궐님의 나들사랑인게지요.ㅎㅎ
춤님 아름다움의 극치십니당~~
증말루여~ ???
어젠 반가웠댔어요. 줄다리기는 이기셨나요? 지셨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