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기독교” 요약. C. S. 루이스.
발표자: 이동기목사
3부. 그리스도인의 행동
도덕의 세 요소
도덕 규칙이란 인간이라는 기계를 잘 움직이게 만드는 지침으로 세 가지 사항과 관련이 있습니다.
첫 번째, 도덕은 각 개인이 서로 공평하게 처신하며 조화를 이루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 번째, 각 개인의 내면에 있는 것들을 정돈, 또는 조화시키는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세 번째, 인류의 삶 전체가 지향하는 보편적인 목적, 즉, 인간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는가, 선단(편대를 지어 항해하는 배들)이 가야할 경로는 무엇인가, 악단 지휘자가 연주하려는 곡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2. 기본 덕목
오랜된 분류 체계에 따르면 도덕에는 일곱 가지 ‘덕목’이 있습니다. 그중 네 가지는 ‘기본 덕목, 나머지 세 가지는 ’신학적 덕목‘이라고 하지요(9장에서 설명).
기본덕목:
분별력: 자신이 지금 어떤 행동을 하고 있으며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것,
절제: 온갖 쾌락을 완전히 하지 않는 다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정도까지만 한다는 의미,
정의: 정직함, 공평한 교환, 성실함, 약속을 지키는 일등 삶의 모든 부분이 포함된다,
꿋꿋함: 고통 속에서 버티는 용기와 위험에 맞서는 용기가 포함된다.
3. 사회도덕
저는 하나님 사랑하기를 배우지 않는 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 한 그분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4. 도덕과 정신 분석
도덕적인 선택에는 두 가지 요소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택의 원재료(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과 잠재의식에서 무언가 잘못되는 바람에 생긴 아주 자연스럽지 못한 감정들로 이루어진 재료)가 되는 다양한 감정과 충동 같은 것들입니다.
심리적재료가 나쁜 것은 죄가 아니라 병입니다. 따라서 회개해야 할 것이 아니라 치료받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은 선도 악도 다 알지만 악한 사람은 선도 악도 다 모릅니다.
5. 성도덕
순결의 규범은 모든 기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해당되는 반면, 예의범절의 규범은 늘 바뀌게 마련입니다.
순결은 기독교 덕목 가운데 가장 인기 없는 덕목입니다.
완전한 순결을 갈망하기가 힘들어진 세 가지 이유
첫째 이유는, 우리의 뒤틀린 본성과 우리를 유혹하는 마귀, 그리고 정욕을 부추기는 현대의 온갖 선전들이 합세하여 우리가 억누르고 있는 욕망들을 지극히 자연스럽고 지극히 건강하며 지극히 온당한 것이므로 그것을 억누르는 것은 거의 비정상적이고 왜곡된 태도라고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이유는, 많은 이들은 기독교적인 순결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지레 겁을 먹은 나머지 시도해보기도 전에 진지하게 노력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습니다.
셋째 이유는, 사람들이 심리학에서 말하는 ‘억압’을 종종 오해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성에 대해 꽤 길게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기독교 도덕의 중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습니다. 육체의 성적인 죄는 악하지만, 다른 죄(교만)에 비하면 가장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8장에서 설명).
6. 그리스도인의 결혼
기독교의 결혼관은 남편과 아내는 하나의 단일한 유기체로 ‘한 몸’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의지로 유지되며 의도적인 습관으로 강해지는 깊은 연합, 두 사람이(그들이 그리스도인 부부라면) 하나님께 구해서 받는 은혜로써 강화되는 깊은 연합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에도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이 그렇듯이 결혼 생활 역시 흥분은 처음에만 찾아오는 것으로서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습니다. 흥분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소용없는 일일 뿐 아니라 가장 나쁜 일입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중년의 남녀들이 사방에서 새 문이 열리고 새 삶의 지평이 나타날 나이에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채 배회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머리가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
첫째는 결혼이 영속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남자가 머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아내 자신들이 남편 위에 군림하는 일을 어느 정도 부끄러워하며 그렇게 자신에게 휘둘리는 남편을 경멸하는 것을 보면, 아내가 남편 위에 있어야 한다는 규칙은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자녀와 남편의 이익을 맡은 특별한 수탁자입니다. 남편의 역할은 이러한 여성의 자연스러운 편애가 가정을 주도하지 못하도록 살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강력한 가족 사랑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후 결정권을 갖습니다.
7. 용서
누구나 용서란 훌륭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용서가 필요한 상황이 되면 용서라는 말만 꺼내도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게 마련입니다. 용서가 너무나 지키기 힘든 이유는 용서가 고차원적인 미덕이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하기 싫은 창피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한복판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주 명백한 일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라”는 말씀을 실제로는 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을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여기라는 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지요. 하지만 기독교는 잔인한 행동이나 배신 행위에 대한 미움을 티끌만큼이라도 줄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런 일을 미워해야 하며, 그런 일에 대하여 나쁘다고 했던 말을 단 한 마디도 철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쟁이나 사형처럼 불가피한 경우 사람을 죽일 수는 있어도, 미워하거나 미워하기를 즐겨서는 안됩니다. 불가피한 경우 벌을 줄 수는 있어도 그것을 즐겨서는 안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안에 적의나 복수심이 결코 자리잡지 못하도록 그런 마음을 없애야 한다는 것입니다.
8. 가장 큰 죄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악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에게서 그것이 나타나면 누구나 혐오하는 악, 그리스도인 말고는 자신에게도 그런 악이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악이 있습니다. 이 악이 많이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이 악을 더 싫어합니다. 이 악은 성적 부정, 분노, 탐욕, 술 취함같은 것들도 이 악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악마는 이 마음 때문에 악마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맞서는 마음입니다. 바로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교만입니다.
여러분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은 남과의 비교입니다. 즉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이상을 얻었을 때에도 단지 자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합니다. 교만은 본성상 경쟁적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겸손해지고 싶은 분이 있다면, 제가 그 첫걸음을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첫걸음이란 바로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은 우쭐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아주 우쭐대고 있다는 뜻입니다.
9. 사랑
이미 말했듯이 기독교의 덕목에는 네 가지 ‘기본 덕목’이 있고 세 가지 ‘신학적 덕목’이 있습니다. 세 가지 신학적 덕목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기독교적 의미의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정의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상태로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자연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남에 대해서는 배워서 익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법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든, 인간을 향한 사랑이든, 기독교적인 사랑은 의지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곧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감정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감정을 만들어 낼 수는 없으며, 또 우리에게는 이런 감정을 달라고 요구할 권리도 없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감정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10. 소망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전환하는데 토대를 놓은 사도들이나 중세를 확립한 위대한 인물들, 노예 제도를 폐지시킨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지구상에 이 모든 흔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천국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다음 세상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기독교는 세상에서 그 힘을 잃고 말았습니다.
11. 믿음(1)
지금 저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모든 것이 도무지 사실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자 시절에는 기독교가 정말 사실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분은 여러분의 진정한 자아에 반기를 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의 습관을 들이기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믿음의 습관을 훈련하는 첫 단계는 사람의 기분은 바뀌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상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그 주요 교리들을 잔잔히 정신에 새겨나가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하나님께 대해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런 시험이나 거래에 관련된 생각을 합니다. 진정한 기독교를 믿을 때 처음 생기는 일은 그런 생각이 산산조각나는 것입니다.
12. 믿음(2)
이제 저는 두 번째 의미의 믿음, 좀 더 고차적인 의미의 믿음에 대해 말하려 합니다. 이 두 번째 의미로서 믿음의 문제는 기독교 도덕을 실천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한 후에야, 또 설사 실천에 성공했다 해도 그것은 원래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린 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에야 비로소 대두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행동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우리가 일정한 특성을 가진 피조물이 되느냐-그의 의도에 맞는 피조물이 되느냐, 일정한 방식으로 그와 관계를 맺는 피조물이 되느냐-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파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전까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시작할 수 없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태어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실천하신 완전한 순종의 삶을 자기 역시 어떻게 해서든지 살게 해주신다는 사실, 또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의 부족함을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다른 의미에서 볼 때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맡긴다는 것은 노력을 포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에게 맡겼다면 그에게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입니다. 기독교가 온통 도덕 얘기만 하고 의무와 규칙과 죄와 덕에 관한 말만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이 모든 것을 통해 도덕 너머의 것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는데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