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오전에는 침대위를 뒹굴다가 오후가 되어 살짝 움직였다. 택시를 불러 먼저 간곳은 국제산악박물관, 산악의 나라답게 박물관에 볼것이 많을 것 같아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박물관에는 나름 다양한 내용들로 꽉 차있었다. 먼저 곳곳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봉우리들을 찍은 대형 사진들이 걸려있고 그 봉우리들을 정복한 산악인들의 모습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산악인들의 모습이 사진과 함께 잘 꾸며져 있는데 아직 생존해 있는 사람도 있고 더 많은 봉우리들을 탐닉하다가 사망한 사람들도 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 코너에 비해 가장 먼저 가장 넓은 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정상정복에 경쟁적으로 열을 올렸는지 알 것 같았다.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정상정복을 위해 바치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일인가 싶다. 물론 죽음을 예견하기는 하지만 지난번에도 무사히 다녀왔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까딱 발 한번 잘못 디디면 저 세상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에베레스트’나 ‘버티칼 리미트’ 같은 영화를 보면 그곳이 얼마나 춥고 위험한 곳인지 알 수 있다. 특히 크레바스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그 깊이도 알 수 없어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다는 공포 그 자체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 산악인으로 8천미터급 14좌를 가장 빠른 기간내에 정복하겠다고 나섰다가 기록은 세웠으나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는 길에 실족하여 추락사한 고미영 대원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한참동안 뉴스에 헤드라인으로 나와서 전혀 그 부분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나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는데 자신의 죽음을 전혀 예견하지 못하는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고 찍은 사진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 진한 아쉬움으로 남지 않았을까?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웃는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이곳에서도 그 사진이 젤 앞에 걸려있어 그때의 안타까움이 다시 살아났다.
그 외에도 박영석 대원,
이곳에 소개는 되지 않았지만 네팔 트레킹을 꿈꾸면서 열심히 보았던 동영상 자료들을 보니 김홍빈 대원이라는 분이 가장 멋있고 처절한 인생을 살다간 산악인이었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시 소개를 해 보겠다.
동영상을 보다보니 김영미라는 여성 대원이 남성 대원들과 오르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얼마전에 뉴스에 나왔다. 혼자서 썰매를 끌고 몇 날 며칠을 걸어 남극점에 도달했다고. 그래서 동영상에 더 나와 있는 것이 있나? 하고 찾아봤더니 한겨울에 얼어있는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를 썰매를 끌고 혼자서 횡단을 하는 것이 있었다. “나를 죽이려면 약도 필요없고 칼도 총도 필요 없어. 그냥 추운데다 몇 시간만 내다 놓으면 바로 얼어서 죽어 버릴 거야.”
“그래도 언니가 나보다 더 오래 살걸. 내가 더 먼저 죽을거예요. 손 좀 줘보세요. 나보다 언니 손이 더 따뜻하다는 것은 나보다 혈액순환이 더 잘되고 있다는 뜻이예요.”
여의도에 63빌딩이 생기면서 아이맥스 영화관이 문을 열었다. 보통 영화관의 화면보다 열배이상 큰 화면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화면이 움직이면 영화관이 움직이는 듯한 실감을 맛보는 곳이다. 초창기에 상영한 ‘에베레스트’를 아이들과 함께 현장학습을 가서 보게 되었다. 그때의 초등학생 현장학습 코스가 아이맥스 영화보고 지하에 가서 수족관 보고 꼭대기 전망대에 올라 서울의 모습을 한바퀴 빙 둘러가며 보고 오는 것이었다.
‘에베레스트’는 죽음을 각오하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을 찍은 영화이다. 다음날 아이들이 써 온 감상문을 읽었다.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면 죽을 수도 있지만 나도 꼭대기에 꼭 올라가 보고 싶다.’
이렇게 쓴 아이가 있고.
‘에베레스트 산에 오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절대로 에베레스트 산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쓴 아이도 있었다.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삶은 스스로의 선택이고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그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나 역시 고미영 대원이나 김영미 대원처럼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에베레스트를 오르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은근히 부럽기도 하고 가다가 못가면 말더라도 가는 데 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언니에게 고산병에 대한 공포심을 주변 사람들이 하도 많이 주입해줘서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언니는 이끌고 어떻게 고산에 오를지 계속 고민중이다. 포카라까지 와서 산에도 안가고 호수주변만 돌아다녀야 하나? 그러다가 집에 갈까봐 걱정이다.
박물관에는 네팔에 거주하는 수 십 개의 부족들 중 대표적인 부족들의 의상과 생활모습이 마네킹으로 제작이 돼 있어 부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의상이다. 부족이 무려 수 십개에 언어도 수 십종에 달한다고 하니 같은 나라 사람이 만나도 말이 안 통하니 공용어인 네와르어를 따로 배워야 한다고 하니 참 불편할 것 같다. 옛부터 수 천m에 달하는 산속에서 고립된 삶을 살다보니 언어도 생활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는 길에 데비스풀에 들렀다. 폭포는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전혀 폭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 않은 도심 한가운데 폭포라니.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보니 소리는 들리는데 물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지 폭포라기 보다는 힘차게 물줄기가 내려오는 계곡같은 곳이어서 약간의 실망을 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