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칼에 베어주게 >
복자 최필공 토마스(1744-1801),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1741?-1801),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1760-1801)
형장에서 망나니들은 사학 죄인의 목을 단번에 베지 않았습니다.
경험이 부족해 헛손질을 하거나, 형 집행을 당하는 죄수의 의연한 태도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세 번 이상 칼질이 더해지는 경우,
죄수에게 고통과 공포를 극대화시켜
가족이나 친지에게 돈을 뜯어내려는 계산된 행동도 있었습니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는 형장의 마지막 순교 장면들이 생생하게 나옵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베르뇌 주교는 양팔을 뒤로 묶인 채 형장에 끌려왔습니다.
망나니 하나가 다가가 주교님의 양쪽 귀를 접어 화살을 위에서 아래로 꿰뚫었습니다.
다른 망나니 둘은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석회를 뿌립니다.
그러고는 몽둥이 두 개를 겨드랑이 밑에 꿰어
광장을 몇 바퀴 돌며 조리돌림을 시키고는,
여섯 명의 망나니가 주교님의 둘레로 고함을 지르며 돌다가
죄수와 구경꾼의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칼을 내려칩니다.
고통을 가중시키려고 일부러 빗맞춰 주교님의 머리는
세 번째 칼을 맞고서야 땅에 떨어졌습니다.
다블뤼 주교의 참수는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망나니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뒤 칼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보수 금액을 흥정하기 시작합니다.
주교님의 사지는 격렬한 고통에 경련을 일으키며 마구 뒤틀렸습니다.
흥정을 마치고도 주교님은 두 번의 칼질을 더 받고서야 목이 떨어졌습니다.
쁘띠니꼴라 신부는 세 번,
브르트니에르 신부와 볼리외 신부는 네 번의 칼질을 받고 나서야
머리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초대 교회의 최필공 토마스는 첫 칼에 목이 반쯤 잘리자,
흥건한 피로 손을 적시며 ‘보혈!’이라고 외쳤고,
내포 사람 김광옥 안드레아는 형장으로 끌려갈 때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오늘 천주 곁으로 가서 끝없는 복락을 누리게 되었소.”라며 기뻐했습니다.
망나니의 첫 칼날이 어깨를 빗겨 찍자 벌떡 일어난 그는
“조심해서 단칼에 잘라주게.” 하며 마지막 칼날을 받았습니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천주를 우러러 죽겠다며
아예 하늘을 향해 누워 떨어지는 칼날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놀란 망나니가 벌벌 떠는 통에 첫 칼은 그의 목의 절반만 잘랐습니다.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난 정약종은 크게 성호를 긋더니
하늘을 보고 다시 누워 두 번째 칼날을 받았습니다.
최고 기록은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여섯 번의 칼날을 받은 것입니다.
며칠 뒤 그의 시신을 거둘 때 보니 머리는 어느새 목에 단단히 붙어 있었고,
흰 실낱같은 흉터만 남아있었다고 하는군요.
“단칼에 베어주게! 천국으로 가겠네.”
이 보혈이 산하를 적셔 이 땅에 주님의 교회가 우뚝 섰습니다.
어떤 신앙이었길래 여러 번의 칼질로도 그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을까요?
그 신앙의 터전 위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간절하고 의연합니까?
정민 베르나르도 |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