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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7:1-4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사람 냄세 많이 풍겼던 야곱의 이야기가 이제 그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20년 넘었던 야곱의 방랑 세월은 끝이 나고 아버지가 우거 하였던 그 땅에 거하였습니다. 형 에서도 떠나고 이제는 야곱의 가족들의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2절에 보면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약전이 무슨 말입니까?
대구에 가면 약전 골목이 있습니다. 가보셨나요?
창세기에 기록된 약전은 그런 예기가 아닐 것이고요.
네이버 사전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개인의 역사를 간략하게 적은 전기”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야곱의 약전이라는 말은 야곱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이러하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서 가족 중 누구의 이야기가 나옵니까?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이루고 있다면 마땅히 예수님 족보에 들어가는 야곱의 넷째아들 유다의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유다의 이야기는 다음장에서 한 장을 기록하고 있고요.
대부분이 요셉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족보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역할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우리 이제 요셉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만 요셉의 흠 없는 생활 그리고 사랑받던 아들에서 종으로 그리고 죄인의 신분으로 그리고 영광의 자리로 이 모든 것이 누구를 묘사한 내용처럼 들립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들어내기 위한 인물처럼 보입니까?
예 요셉은 예수님의 역할의 한 부분을 맡아 신실하게 그 역할을 잘 감당하였던 인물입니다.
오늘은 사랑받는 아들에서 종으로 팔려 가게 된 배경이 되는 말씀을 우리는 함께 읽었습니다.
관련된 말씀이 37장 3절과 4절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37:3-4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행복하였던 가정에 불화의 원인이 될 만한 어떤 모습이 보입니까?
불화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 형들이란 누구의 형들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요셉의 형들
그들이 무엇을 보고 동생 요셉을 미워하였다고 합니까?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야곱이 요셉을 더 사랑하였습니까? 3절에 이런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야곱이 왜 요셉을 다른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였을까요?
우리는 지난 긴 시간동안 야곱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수가 있죠?
그런데 야곱이 마음으로만 아니고 사랑을 하되 표가 나도록 사랑하였습니다. 어떤 표가 나도록 사랑하였습니까?
채색옷을 입혔다. 좀 심한 표현이 아닙니까?
채색옷이 어떤 옷입니까? 증언의 말씀은 이런 기록을 주고 있습니다.
부조 209 “일반적으로 고귀한 사람들이 입는 그런 값진 겉옷 곧 무릎까지 내려오는 외투를 요셉에게 준 아버지의 무분별한 선물은 그들에게 그의 편애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가 되었고 그것은 야곱이 장자를 제쳐놓고 장자의 상속권을 라헬의 아들에게 주려고 한다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누가 입는 옷이라고 합니까? 고귀한 사람들이 입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겉옷 그리고 외투라고 합니다.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은 또 무슨 의심까지 가도록 하였다고 합니까?
장자의 상속권까지 주려고 하고 있다.
사실 성경도 증언의 말씀도 침묵을 하고 있지만 요셉이 자기의 아들 둘을 아버지 야곱에게 데려 왔을 때 야곱이 요셉에게 한 말을 보면 일찍부터 요셉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고 하고 있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 보겠습니다.
창 48: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게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무슨 내용입니까? 야곱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요셉은 자기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를 방문합니다.
그러니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무슨 말을 합니까?
내가 애굽에 오기전에 네가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나의 것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내가 두 몫을 너에게 주겠다는 표현이 아닙니까? 다른 말로는 장자를 삼겠다는 말입니다.
야곱은 요셉을 장자로 삼겠다는 의지가 다른 아들들이 의심을 했던 것처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특별한 외투를 통해 나타난 들어나지 않은 야곱의 마음이라고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제사장으로 삼겠다고 하는 의지도 있고요.
그러한 모습이 누구의 마음에 시기심을 불러 일어켰습니까?
형제들의 마음에 시기심을 불러 일어켰다.
증언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조 35 “죄는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 다음가는 최고의 영광을 받았으며, 하늘 거민들 가운데 가장 높은 권세와 영광을 가졌던 자에게서 시작되었다. “아침의 아들” 루시퍼는 덮는 그룹들 가운데 으뜸이었으며 거룩하고 흠이 없었다. 그는 크신 창조주의 어전에 서 있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을 둘러싼 영광의 끊임없는 빛이 그에게 머물고 있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印)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2-15)“
그 다음 말씀은 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동 ”루시퍼는 차츰차츰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욕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 28:17),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13, 14). 그의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에도 이 힘센 천사는 그것을 자기 자신의 소유인 양 생각하게 되었다. 하늘 무리들 중에 최고의 영광을 누리면서도 그는 자기의 지위에 만족하지 않고 감히 창조주만이 받으실 수 있는 존경을 탐냈다. 그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들의 애정과 충성에 하나님을 최고로 삼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그들의 봉사와 충절을 자기 자신이 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이 천사장은 무한하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부여하신 영광을 탐내고 그리스도만이 가지신 대권(大權)을 갈망하였다. 그리하여 완전하던 하늘의 조화는 파괴되었다. 창조주 대신에 자신을 섬기려는 루스벨의 태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불안한 생각을 일으켰다“
그리고 루스퍼의 마음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한 분에게로 솔리게 됩니다.
부조 36 ”하나님의 아들은 창조주의 위대하심과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루스벨에게 나타내시고 또한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불변성을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의 질서를 세우셨으므로, 이 질서를 벗어남으로 루스벨은 창조주를 멸시하고 자신에게 파멸을 초래할 것이었다. 그러나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로 주어진 경고는 반항심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루스퍼의 질투심은 더욱 굳어 갔다“
누구에 대한 질투심이 굳어 갔다고 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질투심
사람으로 오시기 전에 예수그리스도는 하늘에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셨습니까? 하나님
그러나 활동하시는 모습은 예수그리스도만이 나타나신 모양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자기와 비교 해 보니 특별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가 그렇게 만드셨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부조와 선지자 그 다음 말씀은 이런 기록을 보여 줍니다.
상동 ”하나님의 아들의 최상권에 이의를 제기하고 그리하여 창조주의 지혜와 사랑을 비난하는 것이 이 천사장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이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는 그리스도에 버금가며, 하나님의 천군들 중에 으뜸가는 그의 위대한 정신의 능력을 기울이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기록을 보여 줍니다.
부조 34 ”아버지의 바로 앞에 있는 자기의 자리를 떠나 루스퍼는 천사들 가운데 불만의 정신을 퍼뜨리려고 나갔다“
누가 어디를 떠났다고요? 루시퍼가 자기 자리를 떠났다.
제가 지난번 한자 용 용자를 보여 드렸죠.
용 (龍)자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다고 들으셨습니까?
용용자 위에 집을 의미하는 집 면자를 덮으면 무슨자가 된다고 했습니까? 은총 寵
그 은총총자가 집을 떠나니 무엇이 되었다고요 용이 되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모두도 루시퍼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어떻게 된다고요 용이 되어 무슨 일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까?
불만의 정신을 퍼뜨리려고 활동한다.
그런데 루시퍼가 하나님의 정부에 대하여 아들에 대하여 불만의 정신을 다른 천사들에게 이야기를 하였을 때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인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성도님들 우리도 교회가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가 하고자 하는 일에 반대 입장을 가질 수가 있습니까?
다른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한 교회가 교회를 옮기려고 계획을 세웠답니다.
이유는 지하를 빌려서 교회로 사용하고 있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지상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직원회에 목사님이 끄집어 내었습니다.
그러니 한 장로님 외에는 다 찬성을 하였습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로서 장로들과 성도들은 다 잘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일을 결의하기 전에 반대했던 장로님이 다음 직원회 까지 좀 더 생각을 해 보고 결의를 하자고 하드랍니다.
그래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직원회에서 교회 이전에 대하여 목사님이 끄집어 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고 모두가 다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감이 잡힙니까?
사실 목사는 몇 년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입니다.
누가 그 교회에 오래 동안 있어야 됩니까? 지하에서 예배드리면 교회의 발전과 성장에 지장이 있을까요? 그런데 그렇게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그 교회 전도사님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성도님들 부조 34쪽에 있는 ”아버지의 바로 앞에 있는 자기의 자리를 떠나 루스퍼는 천사들 가운데 불만의 정신을 퍼뜨리려고 나갔다“는 이 말씀을 오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기의 생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 특히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포섭하려는 일들이 우리 교회에서는 없다는 사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들 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가 무덤에 들어가는 날까지 그런 일들이 우리 장유교회에서는 일어나지 않길 소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루시퍼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습니까?
창 37: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무엇을 보고 미워 하였다고요? 아비가 형제들모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미워 하였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였습니까? 죽였습니까?
나중 다시 나눌 기회가 있지만 요셉의 옷을 벗기고 깊은 구덩이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채색옷을 양을 잡아 그 피에 적셔서 아들 요셉이 죽었다고 전하였습니다.
사랑받는 아들이 형들의 시기심으로 인하여 질투심으로 인하여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대항하여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여서 전쟁을 일으킨 루시퍼는 사탄의 미혹으로 죄인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요한 계시록 12장은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여 일으킨 전쟁의 기록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계 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어디에서 일어난 전쟁이야기 입니까? 하늘에서
아까 우리가 읽은 증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아들의 최 상권에 도전하는 사탄은 불만의 정신을 퍼트리러 나갔다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하늘 별 3분의 일을 미혹하는데 성공 하였습니다.
그것을 사도 요한은 계 12:4절에서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패하여서 땅으로 내어 쫓겨 났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를 미혹하는 일에 성공하였고요. 그 두 사람으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오게 되었고 모든 사람이 다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를 비우시고 잃어버린 자식들을 찾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렇게 그런 일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죄를 짓고 떨고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가르쳐 주셨죠,
그리고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되어 오실때를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패한 그 전쟁을 설욕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하나님께서 스스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광경을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고요.
계 12:4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용이 어떻게 하고 있다고 합니까?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삼키려고
용이 그렇게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우주의 창조주께서 사람의 보호가 필요한 연약한 갓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30년을 가정에서 효도하는 아들로서 보내시고요.
삼 년 반을 인류를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한 일들을 하셨습니다.
결국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기 위하여 겟세 마네를 찾으셨을 때 사탄은 그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를 많이 썼을까요?
십자가도 사실은 사탄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음 보다 더 강한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시 한번 이기셨습니다.
하늘에서는 강함으로 이기셨고요.
지상에서는 겸손으로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누구를 통해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제가 드리고 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요셉의 일생을 통하여서
한번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라는 말씀입니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고요, 다윗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요, 아브라함에 대한 이야기 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시대 예수님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펼 때마다 누구를 보아야 할 것입니까?
예수역활을 한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까?
집에서도 요셉의 이야기를 많이 읽으시고요.
앞으로 얼마 동안 요셉의 이야기를 할지 모르지만 요셉이야기를 할 때마다 우릴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우리 모두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창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창 37:2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 37: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