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좌산 상사 "자기편 맹신, 상대편 불신땐 다 같이 공멸”
전북 익산시 금마면 구룡길에 있는 원불교 상사원을 찾았다.
바로 뒤에는 미륵산이 우뚝 서 있었다.
거기서 원불교 최고 어른인 좌산(左山) 이광정(李廣淨ㆍ84) 상사를 만났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근황이 놀라웠다.
좌산 상사는 지난해 12월 라오스로 의료봉사를 떠났다가 현지에서 쓰러졌다.
긴급 이송해 한국에서 심장 박동장치를 다는 심장 수술을 했고,
올해 1월에는 구강암 수술까지 했다.
수술 후 불과 며칠만에 그는 병원 복도에서 하루 2만보씩 걸었다.
담당 의사는 “이렇게 빨리 아무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깜짝 놀랐다.
그것도 80대 중반의 환자가 말이다.
좌산 상사는 『국가경영 지혜』라는 책도 썼다.
익산 금마면 구룡리에 좌산 상사가 들어와 ‘십룡(十龍)’이 됐다는 이야기가 돌만큼
도인(道人)으로도 통하는 그에게 ‘나라 살림의 지혜’를 물었다.
좌산 이광정 상사는 "코로나를 계기로 합리적 지혜의 시대가 열려야 한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독선이다"고 말했다.
중세 때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 뒤에 비로소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뭔가.
“코로나는 ‘합리적 지혜’를 외면하는 인간의 오만을 강타하는 것이라 본다.”
어떠한 인간의 오만인가.
“중국에서 처음에 한 의사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를 했다.
중국 정부는 그걸 무시했다. 그리고 호되게 당했다.
거기에는 중국식 정치 제도의 오만이 있다. 코로나는 그러한 오만을 강타했다.
또 미국은 자유에 대한 오만 때문에 크게 당하고 있다.”
자유에 대한 오만이라면.
“‘코로나가 확산돼도 나는 괜찮다’며 자유롭게 생각하는 식이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가 오만에 빠지면 남을 해코지한다.
미국은 그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
코로나는 바이러스 아닌가.
오만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로 대처해야 한다. 그게 이치에 합당한 것이다.”
좌산 이광정 상사는 "자기 자신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으려면,
항상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로 나아가려고 해야 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면 합리적 지혜가 매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좌산 상사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코로나 시국에 ‘나의 신앙생활은 괜찮아’라고 하는 것도 오만이다.
그 때문에 우리 사회가 심한 홍역을 치렀다.
한국 사회는 두 가지 병을 앓고 있다.
소위 ‘믿음 병’ 이다.
하나는 무조건 믿는 맹신 병이고, 또 하나는 무조건 안 믿는 불신 병이다.”
맹신과 불신의 대표적인 곳이 정치권이다.
자기 진영에 대한 맹신과 상대 진영에 대한 불신.
한국사회 진보와 보수의 무조건적인 대립과 갈등은 어찌 풀어야 하나.
“정치 현실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게 있다.
역사는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아니다.
살아서 움직이며 늘 변용한다.
그래서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더라도 진보적 시각으로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
반대로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더라도 보수적 시각으로 대처해야 할 때도 있다.
이걸 제대로 못 하면 어찌 되겠나. 나라가 망한다. 역사 속에 그런 예는 많다.”
좌산 이광정 상사는
"밥을 먹는 건 순리이고, 독약을 먹는 건 역리다.
그런데 이치를 모르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독약을 먹고 있다"고 말했다.
맹신과 불신을 거듭하면 나라가 망한다. 그 사례는.
“구한말에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주의자들이 우리도 문호를 열자고 했다.
흥선 대원군은 그걸 안 들었다.
오히려 그들을 잡아다 죽이려고만 했다.
결국 36년간 일제 식민통치를 당하지 않았나.
보수주의자라고 해도 진보적 시각을 택해야 할 때가 있는 거다.
해방 후에는 어땠나.
국제 정세가 자유주의 대 공산주의 진영으로 갈라져 싸웠다.
그때 보수주의자가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이 공산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나마 반토막이라도 지키고 있는 거다.
그게 아니라면 진작에 공산화되지 않았겠나.
그걸 과연 피할 수 있었겠나.”
좌산 상사는
“역사 속에는 진보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고, 보수가 대처해야 할 때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만히 현실을 주시하고 있다가 진보적 시각이 두드러질 때는 이쪽 사람을 쓰고,
보수적 시각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는 또 저쪽 사람을 써야 한다.
그걸 잘해야 한다. 그럼 누가 좋아지겠나. 결국 국가가 좋아지고, 국민이 좋아지는 거다.
그런데 지나치게 자기 진영을 맹신하고, 상대 진영을 불신하면 어찌 되겠나.
다 같이 공멸하고 만다.”
이어서 좌산 상사는 “권력 뒤에는 반드시 부정부패가 따르게 마련이다”고 말했다.
좌산 이광정 상사가 상사원 뜰의 오두막 처마에 걸어놓은 곶감을 만지고 있다.
평소 부정맥이 있는 좌산 상사는 ,
라오스로 의료봉사를 가는 날 아침에 좌선을 하다가
잠깐 고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주변에서 말했다.
라오스에 가면 죽어서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죽어 오면 죽어서 오는 거지.
그렇게 마음을 먹고 라오스로 출발했다"고 말했다.
왜 권력 뒤에는 부정부패가 따르나.
“그동안 사회 부정부패를 어지간히도 봤다.
이만큼 세월을 살다 보니까 보이는 게 있다.
인간의 속성상 평소에는 잘하다가도 권력만 잡으면 달라지는 사람이 있다.
왜 그렇겠나.
권력을 잡으면 이기주의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그걸 깨려면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게 쉽지는 않다.
원불교의 교리도 마지막 결론은 ‘무아봉공’이다.
나의 사리사욕을 다 없애고, 공(公)을 위해서 일하는 거다.”
얼마 전 작고한 이건희 삼성회장은 원불교 교적에 등록된 교도였다.
좌산 상사는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제4대 종법사를 역임했다.
그에게 소회를 물었다.
“지금은 반기업적 정서가 많지 않나.
그런데 여러분 세대는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얼마나 일본과 대립하면서 살았나.
그래도 ‘일제, 일제’ 하고 ‘소니, 소니’하면서 최고로 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한국 제품은 알아주지도 않았다.
그걸 삼성 이건희 회장이 나와서 바꾸어 놓았다.
원불교 교도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그 공로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우리 역사 속에 찌들어 있던 가난을 바꾸어 놓지 않았나.
그걸 어떻게 과소평가할 수 있겠나?”
좌산 이광정 상사는 지난 연말과 올해 초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으며
'풍랑이 그친 피안'을 체험했다고 했다.
그는 "그 경험을 하고 났더니 죽음을 두려워 할 이유가 하나도 없겠다 싶더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상사원 앞뜰을 잠시 거닐었다.
날이 꽤 차가웠다.
“가장 가슴 깊이 담아두는 원불교의 한 구절”을 물었다.
좌산 상사는 “요건 좀 매운 질문”이라며 ‘일원상 게송(偈頌)’을 꺼냈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가 열반에 앞서 미리 내린 게송이었다.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좌산 상사는
“유에 있어도 유에 집착하지 않고, 무에 있어도 무에 집착하지 않으면
대자유의 세계에 있을 수 있다”고
풀어주었다.
좌산 이광정 상사가 말하는 신통과 합리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창교자, 본명 박중빈, 1891~1943)님 계실 때였다.
당시 집들은 대부분 초가였다.
대종사님이 제자들에게
“짚으로 지붕을 덮었으면 새끼줄로 묶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도 안 묶었다.
대종사께서 “갑자기 바람 불면 어쩌려고 안 묶었느냐?”고 물었다.
제자들은 “여기는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습니다.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날 밤에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결국 지붕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이튿날 제자들은 “대종사님 신통(神通)이 있으시다.
지난 밤에 바람이 부는 걸 어떻게 아셨지?”라고 수군거렸다.
그걸 보고 대종사님은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합리적이고 바른길을 일러주었지. 신통하는 길을 일러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