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간 비판
마빡에 도끼 자국 선명한 망령 하나가 활터를 배회한다. 정간이라는 망령이……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것을 귀신이라고 한다.
귀신 중에서도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망령이라고 한다.
정간은 실체가 없다. 그러므로 귀신이다.
게다가 정간은 국궁의 장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러므로 망령이다.
정간은 국궁의 미래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장애물이다.
실체도 없으면서 마치 실체가 있는 양 행세하기 때문이다.
정간은 유래도 출처도 알 수 없는 물건이다.
게다가 거기에 대고 인사를 하는 이유조차도 불분명하다.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것,
그것이 망령이 아니고 무엇인가?
정간은 말 그대로 망령이다. 정간이 과연 어디에서 생겼으며,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 아무도 분명한 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 것이다. 이런 이상한 관행에 대해 최근 들어 몇몇 연구가 나왔고, 결론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구사들에게 인사하던 관행이 젊은 사람들을 길들이려는 권위주의 형태로 변형된 것임을 밝혀냈다.
그렇게 밝혀졌으면 그런 정에서 그렇게 인사하면서 저희들끼리 살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부득불 해방 전부터 있던 거라며 억지주장을 펴다가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니까 이제는 애시당초 정간에 있지도 않던 뜻을 여기저기서 넝마주이처럼 주워다 붙여서 견강부회하기 시작했다.
먼저 옥편을 찾아서 <正>자 중에서 뜻이 좋거나 활과 관련이 있는 구절을 끌어오고, 또 <間>자 중에서 유리한 것만을 골라서 끌어다가 해석한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정간이 활과 쇠뇌를 가리키는 것이라고도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어도 이보다는 더 나은 해석을 할 것이다. 이렇게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분들을 위해서 차라리 다음을 권하고 싶다.
활터 건물 중앙에 <똥>자를 크게 목판으로 새겨서 붙이자. 똥이라는 글자야말로 활의 본질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 활은 만작 시에 ㄷ자로 휘므로 <똥>의 <ㄸ>은 활이 두 개가 펼쳐진 형국이며, 그것은 우리가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국 마음의 활과 몸의 활이 한꺼번에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쌍디귿이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ㅗ>의 <ㅡ>는 곧은 화살 모양이다. 여기에 점을 더한 것은 활과 화살이 각기 다르지만 서로 결합해야 비로소 활쏘기가 됨을 뜻한다. 그래서 <ㅗ>가 된 것이다. 밑의 <ㅇ>은 과녁의 둥근 부분을 뜻한다. 따라서 <똥>은 활과 화살과 과녁이 하나로 혼연일체된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활에 관한 한 가장 심오한 철학을 담은 글이 <똥>이므로 이 글자를 널판에 크게 새겨서 활터 건물의 한 복판에 붙이고 매일 같이 정중하게 배례를 올리자. 그것이 활터의 기강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똥! 얼마나 좋은 말인가? 심오한 철학과 오묘한 활의 원리를 담고 있는 똥에게 매일 배례를 하자.
이런 해석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그러니 근원도 모르고 자구에 매달려서 좋은 뜻을 갖다 누더기처럼 붙이는 것은 아는 체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계기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은 것이 조금이라도 덜 망신을 당하는 길이다. 한 번 지껄인 말은 곁에서 듣는 사람 몇의 기억으로 끝나지만, 글쓰기는 영원히 자료로 남는 법이다.
다음으로는, 정간에 대해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어디선가 궁도를 사랑한 대표급 선배님들이 무언가 좋은 뜻으로 '궁도계의 장래를 위하여' 정간을 달기로 합의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참 눈물겹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한 장소라든지 거기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든지 그들이 한 말이라든지 하는 증거자료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의 적실성이 살고 그 말이 효력을 발생한다. 정간은 겨우 20년 정도밖에 안 된 물건이니, 그때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이 거의 다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우리가 그렇게 했노라고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나서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 일이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나설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그런 사실이 과거에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소설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것도 글이라고 발표한 사람도 있으니, 참으로 정간이라는 망령에 대한 그 애정이 눈물겨울 뿐이다. 그 애정으로 활의 장래를 한 번 더 생각했다면 지금쯤 활은 태권도처럼 전세계가 즐기는 스포츠로 성장했을 것이다. 소설을 쓰려면 제대로 된 소설을 써야 할 일이다. 제대로 된 소설을 써도 감동을 줄까말까 한 세상이다.
다음으로, 궁지에 몰린 정간옹호론자들이 하는 주장 중의 하나가 '20년 된 전통도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 도끼를 들어 제 발등을 찍는 논리이다. 20년 된 전통도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면 그 전에 5천년을 내려온 전통 역시 지켜야 할 것이다. 5천년 동안 정간이라는 것이 없었던 유구한 전통을 버리고 겨우 20년 된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정간이 모든 활터에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굳이 5000년을 버리고 20년을 선택하자는 것은 논리 이전의 무지이다. 무지가 아니라면 궤변이다.
정간은 활을 쏘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력이다. 그 앞에서 저 혼자 마음을 가다듬든 정신을 통일하든 그건 제 맘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야 하는 어떤 압력으로 작용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것은 신사참배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정간이라는 현판이 글자로 파여서 활터에 걸려있는 한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 들어온 신사들을 향해 고개 숙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망령이라고 하는 것이다.
걸어놓고서 하는 사람만 하자는 주장 역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정 건물 중앙에 현판으로 내걸린 정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냥 두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다 치자. 외국인들에게 가랑이를 벌리고서 그 밑으로 들어와서 활을 배우라고 한다면 그런 모욕을 감수하면서까지 배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의심스럽다. 설명을 제대로 해주어도 먹힐까 말까 한 궁색한 논리가 정간이다. 그것을 앞세우고 국궁의 장래를 스스로 자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이유가 없다. 이유가 있다면 있다고 분명히 밝혀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간의 의미는 구사들이 신사들을 군기 잡으려는 황당무계한 의도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활터에 올라와서 하는 예절은 '조선의 궁술'에 나오는 <등정례> 하나면 족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간은 국궁의 미래에 관한 문제이다. 국궁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세계인의 스포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있지도 않던 것을 만들어서 활을 배우러 오는 외국인들에게 굳이 신사참배를 시킬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국궁이 세계로 뻗어 가는데 정간은 장애물이 되면 되었지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간을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정간은 우리 활의 앞날을 좌우할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