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선화가 (미상)
■ 현대어 풀이
[서사] 백화보에서 본 봉선화의 아리따운 모습
규방에 할 일이 없어 백화보를 펼쳐 보니, 봉선화 이 이름을 누가 지어 냈는가. 신선의 옥피리 소리가 선경으로 사라진 후에, 규방에 남은 인연이 한 가지 꽃에 머물렀으니, 연약한 푸른 잎은 봉의 꼬리가 넘노는 듯하며, 아름다운 붉은 꽃은 신선의 옷을 펼쳐 놓은 듯하다.
[본사 1] 향기 없는 봉선화는 정숙한 여인의 기상
고운 섬돌 깨끗한 흙에 촘촘히 심어 내니, 봄 삼월이 지난 후에 향기가 없다고 비웃지 마시오. 취한 나비와 미친 벌들이 따라올까 두려워서라네. 정숙하고 조용한 저 기상을 여자 외에 누가 벗하겠는가?
[본사 2] 손톱에 봉선화 물을 들이는 모습
긴긴 날 옥난간에서 보아도 다 못 보아, 사창을 반쯤 열고 차환을 불러내어, 다핀 봉선화꽃을 따서 수상자에 담아 놓고, 바느질을 중단한 후 안채에 밤이 깊어 밀촛불이 밝았을 때, 차츰차츰 꼿꼿이 앉아 흰 백반을 갈아 바수어, 옥같이 고운 손 가운데 흐무러지게 개어 내니, 페르시아 제후가 좋아하는 붉은 산호 궁를 헤쳐 놓은 듯하며, 깊은 궁궐에서 절구에 붉은 도마뱀을 빻아 놓은 듯하다. 가늘고 고운 열 손가락에 수실로 감아 내니, 종이 위에 붉은 물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모양은, 미인의 뺨 위에 홍조가 어리는 듯하며, 단단히 묶은 모양은 비단에 옥으로 쓴 편지를 서왕모에게 부치는 듯하다.
[본사 3] 봉선화물이 든 손톱의 아름다움
봄잠을 늦게 깨어 열 손가락을 차례로 풀어 놓고, 거울 앞에서 눈썹을 그리려고 하니, 난데없이 붉은 꽃이 가지에 붙어 있는 듯하여, 그것을 손으로 잡으려 하니 어지럽게 흩어지고 입으로 불려고 하니 입김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 여자 친구를 불러서 즐겁게 자랑하고, 봉선화 앞에 가서 꽃과 손톱을 비교하니, 쪽 잎에서 나온 푸른 물이 쪽빛보다 푸르단 말, 이것이 아니 옳겠는가?
[결사] 규중 처자와 봉선화의 인연
은근히 풀을 매고 돌아와서 누웠더니 푸른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홀연히 내 앞에 와서, 웃는 듯, 찡그리는 듯, 사례하는 듯, 하직하는 듯하다. 어렴풋이 잠을 깨어 곰곰이 생각하니, 아마도 꽃귀신이 내게 와서 하직을 고한 것이다. 수호를 급히 열고 꽃수풀을 살펴보니, 땅 위에 붉은 꽃이 떨어져서 가득히 수를 놓았다. 마음이 상해서 슬퍼하고 낱낱이 주워 담으며 꽃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한스러워 마소. 해마다 꽃빛은 옛날과 같으며, 더구나 그대[봉선화] 자취가 내 손톱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동산의 도리화는 잠깐 지나가는 봄을 자랑하지 마소. 이십사 번 꽃바람에 그대들[도리화]이 적막하게 떨어진들, 누가 슬퍼하겠는가? 안방에 남은 인연이 그대 한 몸뿐일세. 봉선화 이 이름을 누가 지었는가? 이렇게 해서 지어진 것이로구나!
■ 핵심정리
1. 지은이: 허난설헌(?)
2. 갈래: 내방 가사
3. 연대: 미상
4. 주제: 봉선화에 비친 여인의 아름다운 정서
5. 구성 : 서사 - 본사 - 결사
■ 이해와 감상
작자와 연대 미상인 내방 가사로, 봉선화꽃잎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던 고유한 풍속을 소재로 하여 여인의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정일당 잡지>에 실려 있어, 지은이가 조선 헌종 때의 정일당 남씨(南氏)라는 설도 있고, 허난설헌의 한시 <염지봉선화가(染指鳳仙花歌)>를 비롯한 기타의 다른 작품들과 구절이나 시상이 매우 흡사하여 허난설헌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내방 가사가 여성으로서 지켜야 할 수신 윤리가 아니면, 규방에서의 한을 읊은 것인데 비하여, 이 작품은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여성 고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정서를 노래하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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