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풍전 (李春風傳) - 미상
[줄거리]
이춘풍은 본시 거부의 아들로 호강을 누리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주색잡기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부인 김씨가 온갖 일을 하여 5년만에 금을 수천을 모아 의식 걱정 없이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본래 성품이 어디 가랴. 춘풍은 다시 방탕한 마음이 일어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호조의 돈을 빌려 평양으로 장삿길에 나선다. 평양에서 춘풍은 기생 추월의 계획적 유혹에 빠져 돈을 다 털리고 급기야는 그녀의 집 하인이 된다. 김씨가 이 소식에 분노하던 중, 평양 감사 부임설이 있는 참판 댁의 대부인을 사귀어 신망을 얻고 마침내 평양 감사로 가는 참판댁에 부탁하여 비장 벼슬을 얻게 되고 남장을 하여 평양으로 이춘풍을 찾으러 간다. 평양에서 김씨는 회계 비장을 맡아 교묘한 상술로 많은 돈을 벌어 감사와 반분하여 신임을 얻는다. 어느 날, 김씨는 남장을 하고 추월의 집을 찾아가 남루한 남편의 행색을 보고 추월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복수를 하기로 한다. 추월은 미색의 회계 비장을 유혹하려고 환대하지만, 비장은 춘풍과 추월을 잡아들여 형벌로 다스리고 추월에게 춘풍에게서 빼앗은 돈을 돌려주도록 한 뒤 상경하여 춘풍의 귀향을 기다린다. 춘풍은 장사에서 돈을 번 듯이 의기양양하게 집에 돌아와 영접하는 아내 앞에 거드름을 피운다. 저녁 때 김씨는 회계 비장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춘풍을 불러, 그의 평양에서의 행적을 폭로한다. 비장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니, 춘풍은 부끄러워하면서 지난 일을 뉘우친다.
[핵심 정리]
● 연대 : 미상(19세기 이후) ● 종류 : 판소리계 소설, 세태소설, 풍자소설 ● 표현 : 판소리 사설의 문체 ● 성격 : 풍자적 ● 주제 : 기생에게 매혹된 양반 풍자 / 진취적 여성상의 제시 / 새로운 인간형의 추구 ● 출전 : 필사본<이춘풍전>
[이해와 감상]
● <이춘풍전>은 정확한 창작 연대와 작자를 알 수 없는 세태 소설 (世態小說, 그 사회의 풍속·인심·유행 등을 묘사한 소설)이다. 조선 시대 말기, 즉 19세기의 작품으로 추측되며, 세태 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갈래에서 볼 수 있듯이 그 당시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서민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판소리로 가창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 이춘풍전>과 같은 세태 소설이 창작될 당시, 사회는 이미 곪을 대로 곪아 버린 여러 가지 모순에 심한 몸살을 겪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당파 논쟁의 혼란이 극에 달해 소수 양반 가문만이 모든 관직을 독점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그리하여 결국 많은 몰락 양반이 발생했고, 더 나아가 관직을 사고파는 일까지 생겨났다. 또한 농촌에 널리 퍼진 광작 (廣作- 넓은 면적의 토지를 혼자서 경작함) 현상은 영세 농민을 농촌에서 몰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현실은 농촌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시에서는 도고(都賈- 한 가지 물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독점적 도매상) 상인들이 상공업을 지배하고 부를 축적하여 영세업자들을 몰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어지러워진 사회 속에서 문학 특히 소설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중국을 배경으로 과장된 인물과 허황된 사건을 소재로 하던 기존 소설 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배비장전>이나 <삼선기(三仙記)>처럼 무대를 국내로 하고, 잘난 척해도 별수 없는 인물을 등장시켜,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작품이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특히 사회에 대한 불신을 그 내용으로 하여 그 당시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주로 기생에게 매혹된 양반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이 작품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평범한 서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계 소설과 같은 평민문학이다. 가정이 무능하고 방탕한 남편 때문에 몰락하고, 슬기롭고 유능한 아내의 활약으로 재건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허위에 찬 남성 중심의 사회를 비판하고 여성의 능력이나 기능을 부각시키려 한 의식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을 가정적인 차원에서 문제 삼고 있으며, 허위스럽고 방탕한 삶을 공격하고 근면과 슬기와 성실한 삶을 교훈적 주제로 찾을 수 있다. 또한, 조선조 후기의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이기도 하다. 돈으로 벼슬을 사려다가 패가한 상인 박득만과 최참판 사이에서 대리청탁으로 돈이나 뜯어 쓰려는 이춘풍의 행위는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사회상의 풍자이며, 호조의 돈을 빌려온 이춘풍을 갖은 수법으로 털어 내고는 돈이 떨어지자 하인으로 구박하는 추월의 모습에서 신의와 인정이 메마른 각박한 사회를 공격한 점도 엿볼 수 있다. 한 여성의 활약으로 방탕한 남성을 개과천선하게 하고 몰락한 가정을 다시 이룩하였다는 점에서 여성의 주인의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의의가 있다.
● <이춘풍전>의 인물에 나타난 사회상 <이춘풍전> 역시 기생에게 매혹된 양반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세태 소설로 다락골에 사는 이춘풍이라는 양반 건달이 공연히 뽐내다가 기생에게 매혹되어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을 아내가 구출해 주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전형적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이춘풍은 헌칠한 풍채, 멀끔하고 미끈한 차림으로 기생 몇 명쯤은 문제가 아니다. 그리하여 부모가 물려준 돈은 물론 아내가 바느질을 하여 번 돈까지 모두 술과 여자와 노름으로 날려 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결국 호조(戶曹)에서 빌린 많은 돈을 기생과 어울리며 다 써버리고 만다. 이러한 춘풍에게는 선비가 지켜야 할 도리나 윤리 의식이라고는 없다. 다만 위선과 허세에 가득 찬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리고 춘풍을 홀리는 기생 추월은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춘풍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을 때는 온갖 교태를 부리며 홀리다가 수천 냥 돈을 탕진하고 나자 “청루 물정 몰랐던가. 평양 기생 추월 소문 못 들었던가. 자네가 가져온 돈냥 혼자 먹었던가.”라고 말하며 문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 이들과 반대로 춘풍의 아내는 모범적인 여인의 전형이다. 그러면서도 조선 시대 여인들은 실제로 하지 못하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일을 하는 여중호걸이다. 소극적이며 순종적인 여인이 아니라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새로운 시대의 여인상인 것이다. 조선 시대의 여성은 유교 윤리에 의한 구속 때문에 다른 시대보다 더욱 불리한 처지에 있었다. 생업을 위한 경우가 아니면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고,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혼인을 하고, 정해진 도리에 따라서 시부모를 섬기며 남편을 따라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서의 남존여비(男尊女卑)의 규범이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그대로의 모습일 수는 없었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부당한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성들은 다행히 <이춘풍전> 같은 소설이 있어서, 규범에서의 탈출과 남녀의 지위 역전을 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같은 간접적 경험으로 여성들은 자신에 대해 새로운 깨우침을 얻기도 했다. 그리하여 더 나아가 여성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경제적·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데 잠재적 토대가 되기도 했 다. 이처럼 춘풍, 추월 그리고 춘풍의 아내는 모두 그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양반의 허세와 위선이 가득하고 돈이면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 그리고 여성들이 억압받는 사회 현실을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 나가고 있다. 따라서 <이춘풍전>은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 당시 사회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비판한 서민 문학으로 그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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