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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 山 記 2 - 안개를 뚫고 구름을 헤치고 | 작성자: 이종철 등록일: 2013-06-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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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 山 記 2 ( 안개를 뚫고, 구름을 헤치고 )
65회 長春眞人 이 종 철
其 二 . 안개를 뚫고, 구름을 헤치고 아침에 일어나니 제법 굵은 빗빙울이 창문을 때린다. 그래도 일정은 그대로 한단다. 그래, 이깟 적은 비가 우리의 발길을 막을 순 없다. 한시간쯤 걸려서 태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태산(泰山)은 해발 1,545m로 동악(東岳), 태악(太岳)이라고도 하며 중국의 오악(五岳)중 하나로써, 오악은동악 泰山, 서악 華山, 남악 衡山, 북악 恒山, 중악 嵩山이라, 그 중 태산은 五嶽獨尊으로 불리며 중국의 5악 중 으뜸으로 삼은 靈山이다. 雲霧에 잠겨있는 태산을 보며 나는 감회에 젖었다.드디어 태산에 왔구나. 수많은 奇人 烈士가 나고 갔으며, 수많은 王朝가 明滅하였던 역사의 땅. 내가 지금 태산을 바라보며 그 땅에 서있다. 1300년 전 詩聖 杜甫 역시 여기서 저 산을 바라보며 서있었겠지. 두보의 五言律詩 望嶽을 읊으며 내 마음의 감회를 대신하였다. 岱宗夫如何 태산의 푸른 줄기 얼마나 클까 齊魯靑未了 제와 노에 걸쳐 끝없이 뻗어있네 造化鍾神秀 조화로 모아진 신묘한 위풍 陰陽割昏曉 조석을 가르는 태산의 남북 盪胸生曾雲 솟아오르는 겹구름 보고 가슴 설레이네 決眥入歸鳥 크게 눈 뜨고 산에 돌아드는 저 새를 보네 會當能絶頂 반드시 정상에 높이 올라서 一覽衆山小 주변의 작은 산 굽어보리라
우리는 태산에 첫발을 내디뎠다. 초입에 ‘東嶽 泰山 封禪 大典’ 이란 글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봉선(封禪)이란 새 황제가 등극 시에 태산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고 36배를 하는 행사이다. 이는 진시황 때부터 시작하여 한무제, 당 고종, 헌종, 송휘종, 청의 건륭제에 이르기까지 수천년간 황가에서 전승하는 행사이다. 우리나라 한단고기 (桓檀古記)를 보면, 한웅천왕의 한분이셨던 치우(蚩尤)천왕께서, 黃帝 軒轅(헌원)을 물리치고, 실제 중국을 정복하셨는데 (중국의 역사서를 기술하는 春秋筆法에 의하면 黃帝가 승리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음), 이 때 중국이 대대로 신하국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중국 황제 등극 시에 조선이 있는 동쪽에 예를 표하,고 이것을 관례로 한 것이 봉선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책에서만 보던 내용이 실제 바위에 새겨진 것을 보니 마음이 기꺼웠다.
계단, 계단, 끊임없는 돌계단. 중국의 모든 산은 이러한 돌계단이다. 태산의 소개서를 보면 7412계단이라 하였는데, 이는 가장 큰 길인 南天門을 통과하는 계단 이야기고, 우리는 가장 긴 길인 東天門을 통과하는 길을 갔기 때문에 계단이 만개 정도는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처음에는 또록또록 더위를 식힐 정도로 떨어지던 빗빙울이, 한시간 반 뒤 望天門을 통과할 때쯤에는 주룩주룩 장대비로 변하였다. 처음부터 이런 비였었다면 등산을 포기할 정도의 수준이다. 視界는 거의 제로. 보고자 했던 태산의 위용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은 비안개, 물안개, 산안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보지 않기 위해 산을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 위에서 안개가 폭포처럼 내려온다. 태산의 안개. 이는 위에서 아래로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이고, 森羅萬象을 삼키는 거대한 늪이며, 또한 바닥없는 바다이다. 나는 深沿(심연)의 한가운데 잠겨있다. 숨을 죽이고 고개를 숙여 永劫의 흐름에 몸을 맡기리니..
하얀 山神의 손길이 끊임없이 우리를 휘어감는다. 우리는 지금 태산 산신의 품속에 있다. 上天 太虛宮의 紫霞의 光輝를 온몸에 두르고 있다. 운무 속에서 홀연히 기암절벽이 솟구쳐 오른다. 위도 없고 바닥도 없는 無底의 萬丈 絶壁. 저기서 떨어져 기연을 만나면, 絶世의 무림 기인을 만나 무적의 降龍十八杖을 전수 받거나, 萬年 金蛙(금와), 人形 雪蔘 등 천고의 귀물을 얻어 삼갑자 반의 내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속세를 등지고 뛰어 내리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골짜기 저 깊은 深處에서 雲霧가 용트림하듯 솟구쳐 오른다.
반쯤 올라왔을까? 조그만 정자 안에서 후배 몇몇이서 비에 떨며 옹기종기 모여있다. 비를 피한다고 오래 서있으면 체온을 잃을 텐데.. 나는 頂上酒로 비장하고 있던 소주 세팩을 꺼낸다. 또한 고향까지 가지고 가려했던 게튀김을 안주로 꺼낸다. 자고로 사내놈들이란 술이 있어야 기운이 나는 법. 비 맞은 병아리의 모습을 벗고 순식간에 왁자지껄해 진다. 그리고 그제서야 주섬주섬 자신들의 비장품을 꺼낸다. 술이 들어가니 선후배를 알아본다. 빗 속에서 처음으로 ‘형’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빗 속을 뚫고 운무를 헤치고 땀을 쏟으며 태산의 정상에 섰다. 춘추전국 시대에는 태산 서쪽으로는 노나라이고 동쪽은 제나라이다(泰山 劃分 齊魯) 그만큼 거대한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태산이 높다하되 역시 하늘아래 뫼이다. 우리는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정상에 섰다. 정상에 玉皇上帝를 모시는 道觀이 있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 天帝께 기원을 드리기 최적의 장소라 생각했으리라. 도관 마당의 금줄에 열쇠 없는 자물쇠의 끝없는 행렬. 옥황상제께 이 열리지 않는 자물쇠로 자신의 소망을 封印했겠지. 하늘과 가장 가까이 있는, 그리고 옥황상제의 마당에 들어와 있는 이 기회를 나도 놓칠 수 없다. 옆에 있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여보 우리도 당신과 나의 사랑을 재확인합시다. 그리고 來生에도 다시 만나 부부로 살도록 기원합시다” 옆에 있던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못들은 척 저 앞으로 걸어간다. “여보. 여보” 불러도 못 들은 척 그냥 간다. “쳇, 저 여자 來生에는 못 만나겠군…” 혼자 궁시렁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영원이가 내 불행을 즐기는 듯 ‘낄낄낄’ 웃는다. 잠시 후 그 친구는, 핸드 폰을 떨어뜨려 이틀간이나 애인과 통화를 하지 못하는 무서운 일을 겪게된다. 옥황상제의 震怒로구나
정상 바로 밑의 식당에서 부페 비슷한 것으로 식사를 하였는데, 거기서 그 유명한 가짜 계란을 처음으로 보았다. 생김새는 계란과 똑같은데, 마치 소금물에 불린 휴지를 씹는 맛이었다. 우웩, 인간이 먹을 바가 못된다. 이 식당이 다른건 다 시원치 않은데, 식사 중 마음껏 먹으라고 내놓은 술은 일품이었다. 긴 플라스크 같은 병에 담겨 꼭지를 눌러 따라먹게 되있었는데 맛을 보니 이곳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을 술맛이 아니었다. 중국 명주 少昊道善이나 劍南椿에 살짝 물을 탄 듯한 향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게 무어냐? 태산의 안개로 빚은 玉露酒냐? 孫悟空의 喉兒酒냐? 아니면 楊貴妃의 거시기로 빚은 女兒 千日醉냐? 짬뽕 먹다가 진주를 발견한 심정이로구나. 원래 술탐이 있는 빈도는 큰 잔으로 석잔을 大飮하였다. 그리고 밤에 합환주로 쓸 요량으로 소주병 1/3분량을 몰래 챙겼다.
자 이제 내려가는 일이 남았다. 아내의 발이 점점 더 나빠지는가 보다. 올라오는 내내 조마조마 하였었고, 빨리 정상에 올라 케이블카로 내려가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올라 왔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들려오는 늬우스. 오늘 폭풍으로 케이블카가 운행되지 않아 관광팀도 올라오지 못했단다. 가슴이 덜컥하였다. 무릎이 안좋은 사람에게 산은 내려갈 때가 더 큰 고역인데, 큰일났다. 비바람은 더 거세어졌다. 중국산 계단 길에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하여, 마침 스틱도 무릎 보호대도 준비하지 않은 상황. 정말 큰일났다. 둘이서 손을 잡고 기다시피 내려오며, 스틱이라도 빌릴 요량으로 계속 주위를 살폈다. 스틱은 갖고 있으나, 필요없는 사람은 없겠는가 하고.. 그러나 모두 열심히 짚고 내려가는 모습에 차마 구린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후배 덕우가 스틱을 짚는둥 마는둥 하며 기세 좋게 내려오고 있었다. ‘옳다꾸나. 저 친구에게…’ 덕우는 평소에도 얼굴에 ‘나 좋은 사람이오’라고 써있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이 친구가 기대대로 흔쾌히 허락을 한다. 사정을 듣더니 자신의 무릎 보호대마저 우리에게 양보한다. 덕우야, 고맙다. 끝없이 내리꽂는 계단을 내려오고 또 내려오고, 두시간 가량을 지나 셔틀버스 주차장이 보였다. 드디어 인간세상. 무사히 내려왔구나. 다시 한번 태산을 오려다 보았다. 장엄한 구름과 안개에 쌓인 그 산은 자신의 진면목을 끝내 감추고 있었다.
다시 5시간을 버스를 타야 청도에 갈 수 있다. 태안에서 두시간 거리의 曲阜에 공자묘가 있다. 몇줄이나마 聖賢의 글을 읽은 사람으로써 들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버스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한다. 온몸이 젖고 발까지 젖어 그 축축함과 끈적거림에 쉬이 잠도 들지 못한다. 후배 정규가( 이 친구는 등치만큼 제 몫을 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발군이다) 소화제라며 슬그머니 내 손에 무엇을 쥐어주고 간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부부 동반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 같았다. 그 때 뇌리를 치는 번개 같은 깨달음. 슬며시 손바닥을 벌려본다.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 색의 보석. “허억, 이것이 무엇이냐?” 그 전설상의 非我神丹(비아신단)? 늙은이를 返老還童하게 하고, 그 뭐시냐, 採陰補陽? 험험, 아니 이건 무림 公敵인, 採花陰賊이나 쓰는 것이고.. 몸의 특정 부위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태산도 뚫을 수 있게 만드는 그 貴物? 소림사의 大丸丹과 무당파의 玉淸丹을 능가하는 약효. 한알에 일갑자의 내공을 증가시키고, 세알을 먹으면 羽化登仙한다는 그 전설의 팔팔비아신단이란 말인가? 으음,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구했을꼬? 貧道가 오늘 밤 閨房에서 力拔山 氣蓋世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겠고나. 좋은 후배로고.. 나는 神丹을 소중히 품 속에 간직하였다.
비가 오는 관계로 저녁은 청도 시내 삼겹살 부페로 하였다. 대부분 동기끼리 모여 식사를 했는데, 65회는 영원, 승일, 나 셋밖에 없다. 특히 승일이는 노산에 바위하러 간다고 첫날 헤어진 이후 지금 처음으로 우리와 합류한 것이다. 비가 와서 바위는 커녕, 노산 근처도 못가고 술집을 전전하였단다. 이틀 동안의 그의 일정을 깊이 알면 다칠 것 같아, 자세한 질문은 삼가하였다. 술은 휴게소에서 산 56도짜리 배갈 720ml를 나누어 마셨다. 60회 선배들이 발렌타인 2병을 희사하여 모두 환호하였다. 푸짐한 고기, 끝없이 잔에 채워지는 술. 그리고 무사히 끝난 태산 등정. 행복하구나, 이 단란한 시간.
호텔에 도착하여 젖은 옷을 갈아 입으니 살 것 같다. 영원과 승일이 시내로한잔 더 하러 가자는 전화가 왔지만, 오늘의 거사를 위하여 정중히 거절하였다.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에 들어오면 그 끝은 뻔할 것이기에.. 좋은 시간을 골라 천지신명께 절하고 신단을 복용하였다. 그리고 약효가 빠르게 퍼지기를 기원하며 샤워실에서 30분간 운기조식하였다. 神丹의 기운이 혈도를 타고 氣海 丹田에서 石門穴과 關元穴을 거쳐 曲骨로 퍼지는 것을 확인하고, 운기를 마치고 욕실문을 열었다. “여보, 여보” 몇번을 흔들어도 마누라는 또 죽은 척을 한다. 이번에는 약이 아까워서라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계속 집적대고 있는데, “태산을 너무 힘들게 올라서 몹시 피곤하며, 또 어제 다친 무릎이 부어올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그냥 주무시라”고 조목 조목 조리있게 나를 설득한다. 몇 년만에 돌아와서, 이런 기회에 응그슬쩍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가려는 남편이란 작자가 밉살머리스러웠나보다. 그간 믿거니 하고 술이나 마시고,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며 어영부영 살아온 세월이 다 내 業報가 되어 돌아왔구나. 다 貧道의 德이 부족해서이지 누구를 탓하겠는가. 天網恢恢이나 疎而不漏라 (하늘의 망은 성긴 것 같으나, 어느 것 하나도 빠져나갈 수 없다) 옛글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구나. 아까 태산 정상에서 쌔벼온 합환주를 혼자 마시고, 몇번 더 보채다가 혼나고 그냥 잤다. 神丹의 약효가 몸의 일정 부위에 계속 집결하는 것을 느끼면서… 이보게, 후배. 나중에 한알 더 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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