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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고 가지런함…첫인상 오래도록 남아 |
<위크앤팡> 제주미학기행 [김유정의 미학기행 멋과 미] - 67.나오시마 기행1 |
많은 세계인·제주인 다녀 간 곳…자국인 미의식 눈길 제주의 한·눈물 서린 땅, 오사카를 지나며 각 분야 사람들로 꾸려진 나오시마 답사단은 모두 29명. 일행은 2014년 10월 15일 이미 어둠이 내린 제주공항을 출발하여 9시를 조금 넘어 일본 서부지역 관문인 간사이공항에 도착했다. 예술의 섬 나오시마를 찾아가는 3박 4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인생에 비유되는 여정은 어쩌면 길이라는 것 이전에 인생철학이 쌓이는 삶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보는 길은 시선으로 보는 구경길의 모습도 있지만 마음으로 보는 길의 모습도 있다. 누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했던가. 멀리 무수한 반딧불처럼 오사카 불빛은 사방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마치 우주의 작은 별과도 같이 어둠 사이사이를 헤집고 있는 듯하다. 오사카. 제주인의 한과 눈물이 서린 땅. 제주사람이라면 오사카에 친척 한 명 쯤 있을 법 할 정도로 제주와 관계가 깊은 도시다. 오사카하면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에서 보여준 피눈물 나는 생존의 극한 지대이기도 했다. 어쩌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지독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상상력은 현실에 뿌리하기 때문이다. 막장 인생으로 와/더 이상 떠밀려 갈 수 없는 곳/오사카에 사랑을 묻었다./나는 나는 누구였던가/내 멈추어 선 자리/그리운 것 잡을 수 없었고 가버린 사람 소식도 모르는. 새벽에 그리는 고향/물결은 하나로 이어져도/서녘 하늘은 멀기만 하네/죽어서 슬픔의 짐 내려놓는 곳/해류 같은 인생 멈추어 선 자리/아, 반딧불에 흔들리는 오사카 항구. <오사카를 지나며> 같은 어둠이 흐르는 데 가이드는 오사카의 끝자락 고베로 진입했다고 한다. 여전히 도시의 불빛은 반딧불처럼 따라온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은 땅이라서 그런지 비상등만은 24시간 켜야 한다. 아파트와 같은 거주지에 불은 끄고 전력이 모자라도 상가 건물만큼은 24시간 불을 켜 놓는 상술(商術) 귀재의 나라. 고베 대지진을 기억하라 끔찍한 재난, 고베 대지진을 기억하라 고베는 오사카에서 서쪽으로 약 30㎞쯤 된다. 고베(神戶)는 일본 혼슈[本州] 중남부 지역의 효고 현[兵庫縣]의 현청소재지로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의 동쪽 끝에 있는 오사카만을 끼고 있다. 이 지역은 북쪽의 롯코 산맥[六甲山脈]과 남쪽의 바다 사이에 가로놓인 좁다란 사주(砂洲)로 둘러싸여 있다. 고베는 서일본 최초의 국제 무역항으로, 요코하마와함께 미항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간사이 지방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고베는 현대적이고 이국 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풍기는 곳이다. 19세기 말 일본이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여 외국인들의 정착이 허용된 이후, 현재도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고베는 야경으로 유명하다. 오쿠라 호텔에서 보는 도시의 야경은 황홀할 정도로 찬란하다. 아름답던 메모리얼 파크 주변의 야경도 밤 11시를 기해 잠이 들었다. 메모리얼 파크는1995년 1월 고베에서 발생한 대지진을 기억하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공원이다. 고베 대지진으로 적어도 5,000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했다. 고베 메모리얼 파크는 재난을 이겨낸 일본인의 인내를 배우게 한다. 햇살이 붉은 태를 벗지 않은 아침 고베 메모리얼 파크의 풍경은 한가롭다. 한 노숙자가 벤치에서 일어나 샌드위치로 식사를 하고, 바다 공기를 마시며 조깅을 하는 사람들, 공원 한 구역 개 먹이를 먹이는 곳에서는 개들이 식사를 하고 즐겁게 공놀이를 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이렇게 흘러간다.같은 시간, 공간이 다르지만 어디든 이런 일상의 모습은 비슷할 것이다. 공원 안에는 지금도 1995년 당시 항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찰랑이는 물결은 그때와 다르지 않으리라. 지진의 피해가 난 다른 곳은 모두 복원했지만 당시의 끔찍했던 것을 기억하고자, 한 곳 만은 당시 모습대로 그냥 두었다. 항구에 설치됐던 세 개의 가로등이 비스듬하게 기울었고, 바닥은 요동쳐 갈라진 모습이다. 너무나 빨리 잊어버리는 인간의 기억을 되돌려 후대에 이런 재난이 다시 일어나도 그것에 의연하게 대처하라는 가르침이 냉혹할 정도다. 이것은 재난에 대한 끊임없는 경고의 메시지다. 슬픔을 가져다 준 재난을 쉽게 묵인할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의 근원을 더욱 처절하게 인식하는 것,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건 빨리 기억을 지워버리고 애써 무마하려는 우리네 국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공원 안으로 더 들어가면 평화의 종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기울어진 원뿔 모양에 겉은 타일로 아름답게 꾸미고 원뿔 세 군데에 세 개씩 구멍을 뚫어 만방에 종이 울려 퍼지도록 설계됐다. 고베 대지진 때 이 종은 하루에 네 번씩 울렸다고 한다. 재난의 슬픔도 나누면 덜 하다. 여기서 우리와 다른 일본인의 얼굴을 보게 된다. 16일 9시를 넘겨 다시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도시는 깨끗한 양복을 입은 모습이다. 고가도로 사이 정갈한 빌딩들이 푸른 빛 하늘을 배경으로 빛을 낸다. 도시, 인류가 씨족으로 시작한 이래 도구의 발달이 가져다 준 문명의 최고 거인이 아닌가. 이 거대한 시스템이 다시 사람을 소외시키고, 가족을 분해시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서늘해진다. 24층의 고베 시청은 전망대로 활용된다. 누군가 뒤에서 소리친다. "제주시 칼 호텔도 전망을 위해 개방하라"고. 맞는 말이다. 돈을 번 자는 돈을 잘 써야 한다. 풍경, 예술, 주거 등을 오로지 자신 만의 소유로 두어서는 안 된다. 안도 다다오의 외할머니 말처럼 "돈은 쌓아두는 게 아니다. 제 몸을 위해 잘 써야 가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돈은 자신을 위해서든, 사회를 위해서는 잘 써야 진짜 돈인 것이다. 고베 시청을 떠 올리면 두 가지 인상적인 것이 있다. 하나는 로뎅의 유명한 작품 <청동시대>와 고베시의 슬로건이다. 로뎅의 <청동시대>는 프랑스 정부가 에디션 작품으로 제작한 것으로 진품과 다름없다. 로뎅은 근대 예술을 연 선구자다. 릴케와 매우 친했는데 릴케가 쓴「로댕론」은 로뎅 연구의 입문서이기도 하다. 로뎅은 당시 조각들과 달리 고전주의 이상적 미를 추구하는 대신 인체의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한 거장이다. 다른 하나는 매우 낯익은 슬로건이다. '고베는 세계로, 세계는 고베로, 실현하자. 2016년 고베 서미트'라고 쓴 플래카드를 보는 순간 문득 제주가 내건 상징적인 문구가 떠오른다.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 세계와 지역이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지구촌이 꿈꾸는 소망인가 보다. '맹지바당'의 나오시마로 만두 찌는 향기로 넘치는 고베의 리틀 차이나타운 '니친 마치'와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한 모자이크 거리 쇼핑 몰 거리를 뒤로 하고 이와지시마 유메부다이를 향했다. 아카시(명(明石) 대교를 지나는데 바람도 없다. 호수 같은 바다, 제주어로 말하면 '멩지바당(명주같은 바다)'이다. 수많은 섬과 섬 사이를 이은 다리를 보노라면 각 산지에서 생산되는 유통 경제를 위해서, 그리고 관광자원의 활성화를 위해서라는 생각이 번쩍 든다. 일본의 농촌 경관마저 가는 곳마다 정갈하고 단순하게 느껴지는 것은 일본인들의 미의식 때문일 것이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 몇을 둘러볼 즈음 해는 저물었다. 가까운 곳도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튿날 미나미 이와지 호텔 직원들의 흔드는 손을 뒤로 하고 다시 1시간 30분가량 이동하여 다카마츠(高松) 항에 도착했다. 이곳은 나오시마로 가는 페리호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나오시마 까지는 약 50분, 반대편 우노항보다는 30분이다 길다. 11시에 나오시마 항에 도착하니 항구 오른 편으로 쿠사마 야요이의 붉은 호박이 나그네를 반긴다. 벌써 많은 세계인, 제주인이 다녀 간 곳, 나오시마의 인상이 새롭다. 잘 정돈 된 섬이라는 것이 나오시마에 대한 첫인상이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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