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
떠나보내는 일은 두렵고도 서러운 일이었다. 폐와 신장이 망가져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기나긴 고통의 여정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이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숨을 놓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생과 사의 경계와 죽음 그리고 생이라는 이미지를 파노라마처럼 본 것 같았다.
배에서 쉬어지는 숨은 흉부로 올라왔다. 3일째부터 흉부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졌다. 그 둔함은 눈으로 보이는 느림이기도 했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죽음을 느껴는 일이었다. 눈보다 더 정확한 직감, 오래 바라보는 눈과 마음으로 오는 예감이었다. 다시 이틀이 지나자 아버지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의사는 가족들을 불렀다.
직계 가족이라 불리는 그러니까 아버지와 피와 정으로 직계를 이루는 가족들이 모여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라는 의미였다. 제주도에서 큰형이 황급하게 올라왔다.
모여든 직계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아버지는 다시 힘을 얻으셨는지 죽음의 고비를 넘어 안정을 찾으셨다.
의사는 이 상태가 일주일을 갈 수도 있고 한 달을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의 시간을 붙잡고 있는 죽음이 언제 올지 몰랐으므로,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동안 참아왔던 허기를 서둘러 채웠다.
산 사람이 먼저 지치면 임종의 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본능에 가까운 허기는 삶 그 자체이기도 했다. 번갈아 가면서 직계들이 병실을 지키고 들락거렸고 직계들은 완화 병동 간호사에게 간간이 아버지의 상태를 물어보는 일로 소임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 나에게 혹은 직계들에게는 특별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를 성찰해 보는 시간, 나는 아버지에게 어떤 아들이었을까. 아버지는 나에게 어떤 아버지였을까. 우리는 어떤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고 있고 무엇을 떠나보내야 하는가, 소소한 일상에 깃든 추억마저도 소환되는 시간, 그 시간이 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앉아 있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에 내가 만난 아버지는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엄한 아버지. 형들처럼 크게 맞아본 적은 없었으나 집안을 억누르는 분위기에 나는 주눅이 들었다. 아버지는 그 엄함이 자식을 바르게 하는 교육으로 아셨다. 비뚤어지지 말라고 엄한 채찍을 드셨겠지만, 나에게는 그 엄함이 아버지께 다가가기 힘든 벽이었다.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마음도 더 약해졌다. 생의 자신감을 잃었다고 할까. 그저 살아내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몇 번의 성적표로 나의 존재가 확인시켰지만 돌아오는 것은 격려나 다독임이 아니았다. 아버지는 내 성적에 대해 달리 말이 없었고 대신 형의 성적표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한숨이 이미지처럼 떠오를 뿐이었다.
형들이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갔더라면 나의 탈선은 조금 더 일찍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천에서 용이 나기를 바랐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로또와도 같은 운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꿈이 컸기에 실망도 컸던 것일까. 나는 집안에 드리운 무거운 공기에 밖으로 탈출하고 싶었다. 가까운 산을 걷거나 거리를 쏘다녔다.
두 번째로 의사가 직계들을 호출했다. 다시 피와 정의 직계들이 피곤한 얼굴로 몰려왔다. 산소포화도를 확인하고 혈압의 수치를 바라보며 남은 아버지의 시간을 가늠했다. 아버지의 숨은 흉부에서 쇄골로 올라왔다. 가장 아래까지 내려갔던 숨이 점점 코와 입으로 올라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리가 부었다가 가라앉고 다시 손이 부었다. 직계들은 아버지께 이제 고생을 다 하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천국에 드시라고 귀에 대고 울먹이며 말했다. 귀는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기관이라고 했던가. 아버지가 직계들의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어떤지를 가늠할 수 없는 순간,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형광 불빛에 반짝이는 눈물이 아버지의 언어였고 아버지가 내보이신 답이었다.
집을 누르던 무거운 시간이 지나간 것은 큰형의 대학 진학과 입대 그리고, 결혼이었다. 다행이면 다행이랄까. 큰형에게 집중된, 햇볕을 모으던 돋보기와도 같은 뜨거움이 꺾이자 점자 숨 쉴 여유가 찾아왔다. 내가 결혼을 할 무렵에 아버지는 독기가 풀어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혼할 여자를 데려왔을 때 세상 물정 모르는 책상 도령 같은 내게 잘 살 수 있겠냐는 말로 악도 깡도 생활력도 없을 것 같은 내 생을 염려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했다. 나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 잘 살 수 있어요, 성실함으로 나의 시간을 채워갈 겁니다. 이게 무언으로 이루어진 나의 답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가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아이들 병원비와 학비를 주셨고, 필요할 때마다 손을 넣으셨다. 그 손이 염려였고 사랑이었으나 나는 그 손이 엄함보다 더 낯설었다.
아버지의 숨이 목으로 올라왔다, 목으로 숨을 쉬는 모습을 처음 본 나는 눈물이 올라왔다. 꼴깍거린다는 표현의 깊이를, 생의 바동이 목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목에서 올라오는 숨. 그것이 목숨이었다는 것을 나는 묵도했다. 목은 마지막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생을 퍼 올리는 목의 힘이 소진으로 나아갔다. 샘에서 펌프질을 하던 손이 축 늘어진 느낌이었다.
손자들을 보고 큰 손자가 다시 애를 낳자 아버지의 독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매운 독기가 사라진 자리에 앉아 있는 아버지는 홍시처럼 보였으며 심지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온화한 물빛이 되었다. 아들의 출판기념회에 오셔서 손뼉 치시며 웃으시는 모습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얼굴이셨다. 저 천진한 물빛이 엄한 벽이었다니…….
아버지의 목에서 올라오는 펌프 소리가 잦아들었다. 속불이 꺼져가듯 서서히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멈춤을 위해 나아가는 듯 보였다. 여진이 남았다는 듯… 한두 번 더 입을 까딱이시다가…한번 더 쉬었다가… 목을… 목울대를… 위로… 올리시더니… 아아… 하는 한탄도 없이… 끝맺음도 없이… 닦아드릴 눈물 한 방울도… 더 이상의 움직임이… 없었다… 무서운 적막이 일시에 찾아오자…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직계들의 울음이 한순간에 일어섰다.
아버지!
어린아이에서 아기가 되신 아버지의 영혼은 어디로 훨훨 날아가신 것일까, 독기라는 날개도 지상에 어디로 가셨을까. 죽음이 닥치자 정신줄을 놓았던 직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장례식장에 연락하고 미리 준비한 아버지의 옷과 사진을 준비했다. 산 자들은 산 자들이 법을 따라야 한다는 듯이.
아버지는 마침내 생에서 죽음으로 넘어가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다시 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죽음은 잊히는 일도 아니고 지워지는 일도 아니고 기억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기는 모두 사라졌으나 그 독기가 자식들을 길러냈으니, 어쩌면 독이 삶의 생기였을지 누가 알겠는가.
죽음은 모든 생을 생답게 길러내는 힘일 것이다. 한 생이 밀알처럼 썩어야 그 자리에서 수많은 밀알이 올라오듯이 죽음이 없다면 지상은 생기를 잃어버릴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남아 장례식장에서 오는 차를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장례를 치르듯이 나는 경건해진다. 시린 별 하나가 가슴에 눈물이 되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