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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 팡틴
[밤의 방랑자]
1815년 10월 초였다. 해 지기 한 시간 전쯤 되었을까, 먼 길을 걸어온 듯 한 남자가 마을 티뉴에 들어서고 있었다. 때마침 창가에 서 있던 몇몇 사람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낯선 그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처럼 남루하고 초라한 행색을 한 사람을 본적이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나이는 어림잡아 마흔여섯에서 마흔일곱 정도 되어 보였고, 키는 중간 정도로 단단한 풍채는 힘깨나 쓸 것 같아 보였다. 햇빛과 바람에 그을린 구리 빛 얼굴은 앞으로 기울어진 가죽 모자에 반쯤 가려져 땀방울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남루한 행색의 나그네는 마을에서 가장 좋은 이 여관으로 들어갔다.
나그네가 몸을 녹이며 기다리고 있을 동안, 주인은 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 들고 종이의 한 귀퉁이를 찢어 무언가를 적었다. 그리고 그것을 심부름하는 소년에게 주며 시장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아무 곳에서나 쉴 수만 있게 해주시오. 마구간이라도 좋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죠? 말들로 꽉 차 있으니까요.
주인은 허리를 숙여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당장 나가시오!
더 이상 대꾸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말해 볼까? 당신은 장 발장이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꼭 말을 해야 알겠소? 당신이 여기 들어올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지. 그래서 시장에게 사람을 보내 당신에 대해 알아보았소. 여기 답장이 있는데 읽어보겠소?
사나이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놓아두었던 배낭을 집어 들고 그곳을 나왔다.
그곳은 샤포 거리에 있는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그는 차마 정문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살며시 뜰로 들어선 그는 잠시 멈추어 섰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누구시오? 주인이 물었다. 저녁식사와 방을 얻을까 하는데요. 좋소, 여기서 식사를 해결하고 묵어가시오. 그는 벽난로 옆으로 가서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았다. 그는 거의 죽을 만큼 피곤했다.
그런데 건너편 식탁에 앉아 있는 사나이들 중에 생선장수가 한 명 있었다. 그는 라발의 여관에 말을 묶어 두고 이리로 왔다. 그는 거기서 장 발장을 보았고 또 그날 아침에 브라 다세 근처에서 이 수상한 사나이와 마주쳤었다. 몸씨 지쳐있었던 사나이는 그에게 말을 태워줄 수 있는 지를 물었었다. 그러나 생선장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얼른 말을 몰아 그 자리를 피했었다.
생선장수가 술집주인에게 슬그머니 눈짓을 했다. 술집주인과 생선장수가 낮은 소리로 소곤거리는 동안, 나그네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술집주인은 나그네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차갑게 말했다. 여기서 나가주어야 갰소.
그가 거리로 나가자, 크루아 드 꼴바 여관에서부터 그를 뒤쫓아 다니던 아이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뒤돌아서서 무섭게 화를 내며 막대기를 휘둘러 아이들을 위협했다. 아이들은 새들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형무소 앞을 지나갔다. 초인종을 매단 쇠줄이 문에 늘어져 있었다. 그는 줄을 당겼다. 안녕하십니까, 간수님. 그는 모자를 벗고 정중히 말했다. 오늘밤만 여기서 채워주시면 안 될까요? 간수는 감옥은 여관이 아니야, 당신이 죄를 짓고 붙잡혀오면 그때 열어주지, 하고는 창살을 내려버렸다.
밤이 빠르게 찾아왔다. 차가운 알프스의 바람이 불었다. 골목은 어둑어둑 땅거미가 짙어가고 있었다. 나그네는 길옆에 있는 짚으로 된 움집을 발견했다. 그는 대담하게 나무 울타리를 치우고 뜰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움집 가까이 다가갔다. 낮고 좁은 구멍이 입구처럼 나 있었다. 도로 인부들이 잠시 쉬는 곳인 것 같았다. 그는 몸을 숙여 오두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나이는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곧 등에 매고 있는 배낭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배낭을 베개로 쓰려고 끈을 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고개를 들자 움집 입구에 커다란 개의 머리가 보였다. 그는 개집에 들어갔던 것이다!
아, 나는 개보다도 못하구나!
지칠 대로 지치고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이 불쌍한 사나이는 인소ㅓㅐ소 앞에 있는 돌 벤치에 누웠다. 그때 성당에서 노부인이 나왔다. 노부인은 어둠 속에 쓰러져 있는 사나이를 보았다. 이봐요, 거기서 뭐하는 거죠? 노부인이 물었다. 그는 거칠고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친절하시군요. 보시는 대로 자고 있지 않고! 실제로 고운 성품의 이 노부인은 R후작 부인이었다. 차가운 돌 위에서요? 노부인이 다시 물었다. 난 19년 동안 나무 매트리스에서 잤소. 그리고 오늘밤은 돌로 된 매트리스 위에서 자는 것뿐이오. 사나이가 대답했다.
[열려 있는 문]
주교는 조용히 나그네를 바라보았다. 낮선 남자가 무슨 일로 왔는지 알기위해 주교가 입을 떼려하자, 두 부인과 주교를 차례로 둘러보고 섰던 사나이가 지팡이에 몸을 기대며 주교가 묻기도 전에 큰 소리로 황급히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장 발장이라고 합니다. 감옥에서 19년 동안 징역을 살다 나왔습니다. 그리고 나흘 전에 풀려나 풍타를리에로 가려고 툴롱에서부터 나흘간을 줄 곳 걸어왔습니다. 오늘은 36마일을 걸어왔지요. 이 마을에 도착해서 여관에 갔었지만 쫓겨났습니다. 문제는 시청에 제시한 황색 통행증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여관을 찾아갔으나 그곳에서도 내쫓겼습니다. 너무 지쳐 개집에도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개 역시 저를 물어뜯고 내쫓았습니다. 개도 사람들처럼 제가 누군지 아는 것 같더군요.
마그루아르 부인, 어서 한 사람 몫의 식기를 갖다 놓도록 해요 주교가 말했다.
통행증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장 발장, 석방된 죄수, 출생지 - 이건 당신과 상관없겠지만. 도둑질로 5년을 선고 받고, 네 번의 탈옥 시도를 14년을 선고 받아 19년간 징역살이를 했음. 극히 위험한 인물. 이렇습니다. 마그루아르 부인, 손님용 침대에 이불을 깔아주세요. 주교가 말했다.
[정적]
[장 발장]
그는 브리 지방의 가난한 농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파브롤에서 나뭇가지 치는 일을 했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그의 어머니는 의사의 실수로 산후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와 마찬가지로 나뭇가지 치기가 직업이었는데 나무에서 떨어져 죽었다. 장 발장의 유일한 가족이라곤 아이가 일곱 명 딸린 누나뿐이었다. 누나가 그를 데려다 키웠다. 그녀의 남편은 맏이가 여덟 살이고, 막내가 한 살일 때 죽었다. 장 발장은 그때 막 스물다섯 살이 되었었다. 그는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자신을 길러준 누이의 가족을 뒷바라지했다.
혹독히 추운 겨울이라 일거리도 다 떨어졌다. 일곱 명의 아이들은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어느 일요일 저녁, 레그리스 빵집의 주인인 모배르 이자보는 막 잠자리에 들려다가 빵집의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깨진 유리창 사이로 팔이 쑥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팔은 빵 한 덩어리를 움켜쥐고 얼른 빠져나갔다. 가게 주인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도둑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가게 주인이 그를 쫒아가 붙잡았다. 빵은 이미 땅에 버려졌으나 도둑의 팔에서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그 도둑이 바로 장 발장이었다.
1795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 발장은 밤중에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침입하여 도둑질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소총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총을 쏘는 솜씨가 어떤 명사수 못지않았다. 또 가끔은 밀렵도 했었다. 이 사실이 그를 불리하게 만들었다. 장 발장은 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이제 장 발장이 아니라 24601호였다.
그는 1815년 10월에 풀려났다.
[또 다른 슬픔]
장 발장은 자우라는 말에 도취되어 완전히 새로운 삶이 자신 앞에 펼쳐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황색 통행증이 첨부된 자유가 어떤 것인지 그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깨닫게 되었다.
석방은 해방이 아니었다. 형무소에서 나왔다 해도 전과의 사슬에서는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잠에서 갠 사나이]
그의 머릿속에는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중에서 어떤 생각 하나가 끊임없이 되살아나 다른 생각들을 쫓아버렸다. 그 생각, 그것을 얼른 이 자리에서 밝히자. 그는 마그루아 부인이 식탁에 차렸던 여섯 벌의 은 식기와 커다란 국자 하나를 눈여겨봤던 것이다. 그것은 순은이었다. 적어도 2백 프랑은 나갈 것이다. 그것은 지난 19년 동안 번 돈의 두 배가 된다.
다시 침대로 돌아온 그는 침대 위에 놓아두었던 물건을 꽉 움켜잡았다. 그것은 짧은 쇠몽둥이 같았는데 한쪽 끝이 창처럼 뾰족해 보였다.
장 발장은 이 연장을 오른손에 꼭 쥐고, 숨을 죽인 채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우리가 이미 아는 대로 주교의 방이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주교는 문을 닫아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좀 더 힘을 실어 문을 밀었다. 그러자 갑자기 어둠 속에서 삐걱 하는 쇳소리가 났다. 문에 있는 경첩이 녹이 슬었던 모양이었다. 장 발장은 기겁을 했다. 쇳소리가 마지막 심판의 나팔소리처럼 크고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몇 분이 흘렀다. 문이 열려 있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귀를 기울였다. 집안에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녹슨 쇳소리는 누구도 깨우지 않았다. 그는 한 발을 내디뎌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멈춰 섰다. 주교의 침대는 생각보다 가깝게 있었다. 때로 자연은 놀랍도록 적절한 때에 우리의 양심을 일깨우고, 우리의 삶에 끼어들어 그 순간의 우리 행위를 바라보게 만든다. 구름은 거의 30분 전부터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장 발장이 침대 곁에서 걸음을 멈추는 순간, 구름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두 폭으로 갈라졌다. 한 줄기의 달빛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와 주교의 창백한 얼굴을 비췄다. 그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알프스 지방의 추운 밤을 짐작케 하듯 그는 겉옷을 두껍게 입은 채 자고 있었다. 긴 소매가 손목까지 덮혀 있었다. 베개 위에 머리를 반듯하게 고이고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수많은 선행과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던 그의 손이 침대 밖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만족과 희망, 그리고 평온함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미소 이상의 것으로서, 내면의 빛이 번져 나와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한편 장 발장은 숭고한 빛에 싸인 노인의 모습에 넋을 잃은 채 손에 연장을 움켜쥐고 어둠 속에서 꼼짝 않고 서있었다. 신뢰로 가득 찬 노인의 모습이 그에게 두려움을 가져다두었다. 양심의 세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 의인의 잠자는 모습을 보며 막 나쁜 일을 저지르려던 그의 양심은 불안에 싸여 떨고 있었다. 장 발장의 눈은 노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장 발장의 태도나 얼굴에서 확실하게 드러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파멸과 구원의 심연 사이를 방황하고 있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노인을 내려칠 것 같기도 했고, 또 노인의 손에 입을 맞출 것 같기도 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왼팔을 이마 쪽으로 가져가서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한 손에는 쇠몽둥이를 들고, 또 한손에는 모자를 벗어들고서 다시 노인을 응시했다. 삐죽삐죽 솟은 그의 더벅머리 때문에 그의 표정이 한층 더 험상궂어 보였다. 무시무시한 시선 바로 아래에서 주교는 여전히 깊고 평화로운 잠을 자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이 스며들어 벽난로 위쪽에 있는 십자가상을 비췄다. 한 손으로는 의인을 축복하고 한 손으로는 죄인을 용서하듯 넓게 두 팔을 펼치고 두 사람을 향해 서 있었다. 장 발장은 갑자기 모자를 눌러쓰더니 주교를 외면하고 침대 머리맡에 있는 벽장 쪽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그는 자물쇠를 부수려고 쇠뭉치를 번쩍 들었다. 그러나 이미 열쇠가 꽂혀 있었다. 그는 쇠뭉치를 내리고 벽장문을 열었다. 은 식기들이 바구니에 담겨져 있었다. 그는 바구니를 들고 이제는 조심하는 기색도 없이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자신이 잠을 잤던 방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창문가로 가서 지팡이를 집어든 다음, 은 식기를 배낭 속에 집어넣고 바구니를 던져버렸다. 그는 정원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담장을 뛰어넘어 사라졌다.
[비앵브뉘 주교]
주교는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고개를 들고 마스루아르 부인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 은 그릇은 우리 것이 아니었소.
마그루아르 부인, 우리가 오랫동안 그 은그릇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잘못된 일이었소. 그건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오. 그리고 그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소.
문이 열렸다. 낯선 사람들이 문간에 나타났다. 세 사람이 한 사람의 멱살을 움켜쥐고 있었다. 세 사람은 헌병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장 발장이었다.
대주교 각하. 이 말이 떨어지자 축 늘어져 있던 장 발장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대주교라고? 그럼, 신부님이 아니고? 그가 중얼거렸다. 닥쳐라! 대주교 각하시다. 멱살을 쥔 한 헌병이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 비앵부뉘 주교는 그들을 향해 급히 다가가며 장 발장을 향해 외쳤다. 오, 당신이구려, 다시 보게 돼서 다행이오. 어떻게 된 거요? 내가 은그릇들과 촛대를 함께 줬는데 촛대는 왜 가져오지 않았소? 그것도 다른 그릇들처럼 은으로 되었으니 족히 2백 프랑은 받을 수 있었을 텐 대. 장 발장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표정으로 주교를 바라보았다.
장 발장은 그 자리에서 쓰러질 듯이 서 있었다. 주교는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잊지 마시오. 이 은그릇을 정직한 사람이 되는 데 쓰겠다고 했던 그 약속을 말이오. 장 발장은 그가 한 적이 없는 약속을 들으며 혼란에 빠졌다. 주교는 한 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엄숙한 어조로 덧붙였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이제 당신은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값을 치른 것은 당신의 영혼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잘못된 생각과 어둠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쁘띠 제르베]
장 발장은 커다란 바위위에 기진하여 쓰러졌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으며 부르짖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놈인가! 그는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으로 울기 시작했다. 19년 동안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두 어머니의 만남]
19세기 초 파리 근교의 몽페르메유라는 곳에 지금은 없어진 싸구려 여관 하나가 있었다. 블랑제 거리에 있는 이 여관은 테나르디에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어린 소녀 두 명이 마치 그네를 타듯이 그 늘어진 쇠사슬에 걸터앉아 놀고 있었다. 한 아이는 이제 막 두 살쯤 된 듯 어려 보였고, 그보다 두 살쯤 더 들어 보이는 소녀가 작은 아이를 무릎 위에 안고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 역시 아이가 있었다. 아니는 세 살쯤 되어 보였다.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여쁘게 차려입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에 대해 말하자면 가난하고 초라했다. 옛날의 시골생활을 그리워하는 공장 노동자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팡틴이었다.
테나르디에 부인이 말했다. 아이들은, 금방 저렇게 친해져요. 마치 세 자매 같군요. 이 말이야말로 다른 한 어머니가 고대하던 한 줄기 빛이었다. 그녀는 테나르디에 부인의 손을 덥석 쥐며 말했다. 제 아이를 좀 맡아주시겠어요? 테나르디에 부인은 거절도 승인도 아닌, 그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코제트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딸을 고향으로 데려갈 수가 없는 처지예요. 일을 할 수 없게 되니까요. 애가 딸려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요.
매달 6프랑씩 지불하겠어요. 이때 여관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7프랑 이하는 안 돼. 그리고 반 년 치는 미리 지불해야 해.
전부 합해서 57프랑. 테나르디에 부인이 말했다. 그렇게 드리겠어요. 코제트의 어머니가 말을 받았다.
[종달새]
코제트는 식탁 밑에서 개와 고양이와 함께 나무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었다.
1년 지나고, 또 다시 1년이 지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야. 넉넉지도 않은 형편에 버려진 아이를 저렇게 돌보고 있으니 말이야.
아직 어렸을 때에는 다른 두 아이의 놀림감이었고 조금 자라서는(그렇다고 해도 다섯 살도 채 되기 전이었지만) 코제트는 이 집의 하녀가 되어 버렸다. ~~~ 그 고장 사람들은 그녀를 종달새라고 불렀다.
[흑옥 제조법]
어린 코제트를 테나르디에의 여관에 맡겨둔 후, 그녀는 걷고 또 걸어서 몽트뢰유에 도착했다. 1818년의 일이었다. 팡틴은 고향을 떠나있는 12년 동안몽트뢰유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팡틴이 비참한 생활로 빠져 들어가는 사이에 그녀의 고향은 번창해져 갔던 것이다.
1815년이 끝나갈 무렵 어떤 타지방 사람이 이 도시에 들어와 서 구술 제조법을 새로 고안해냈던 것이다. 구술을 만들 때 기존의 수지보다 훨씬 점성이 강한 수지를 사용했고, 특히 팔찌를 만들 때 둥근 쇠를 납땜하는 대신 작은 고리를 사용했다.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그 새로운 제조법의 발명자는 부자가 되었다.
[마들렌 씨]
1820년에 라피드 은행에 그의 이름으로 63만 프랑이 예금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나 그 63만 프랑을 예금하기 전에, 그는 이미 시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100만 프랑 이상을 썼다.
1820년 그가 몽트뢰유에 온지 5년째 되던 해에, 그가 이 지방에 이룩한 공적은 실로 눈부시고 또 시만 전체가 한 결같이 원했으므로 국왕은 다시 그를 시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이번에도 사퇴를 했다. ~~~~ 마들렌 씨가 이제 시장이 되었다.
[상복 입은 마들렌 씨]
1821년 초에 신문은 디뉴의 대주교, 비앵브뉘 대주교의 죽음을 보도했다.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성자처럼 살다가 영면했다고 전했다. 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가 몽트뢰유 지방신문에도 실렸다. 마들렌 씨는 그 이튿날부터 상복을 입고 모자에 상장을 달았다.
자베르는 끊임없이 마들렌 씨를 감시하고 있는 하나의 눈 같았다. 그 눈은 의혹과 억측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포슐르방 영감]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마들렌 씨는 몽트뢰유의 포장이 되지 않은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쪽에 가보니 포슐르방이라는 노인이 짐수레 밑에 깔려 있었다.
마들렌 씨 나가시오! 난 어차피 죽을 목숨이오. 이러다 당신까지 죽겠소!
이튿날 아침 노인은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천 프랑 짜리 지폐 한 장과 마들렌 씨의 쪽지를 보았다. 제가 당신의 짐마차와 말을 사겠습니다. 포슐르방은 건강은 되찾았으나 다리를 절게 되었다. 마들렌 씨는 수녀들과 주임 사제에게 추천을 부탁하여 이 노인이 파리에 있는 어느 수녀원에서 정원지기로 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마들렌 씨는 시장으로 임명되었다. 자베르는 시장의 직권을 드러내는 현장을 어깨에 두른 마들렌 씨의 모습을 보며 마치 주인의 옷을 입은 늑대를 보는 듯 한 전율을 느꼈다.
이것이 팡틴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마주 한 상황이었다.
마들렌 씨의 공장이 친구처럼 그녀를 맞아주었다. 그녀는 그 공장의 여자 작업장에 채용되었다.
[가여운 팡틴]
팡틴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 무척 기뻤다.
사람들은 팡틴이 가끔 작업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고,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같은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것도 눈치 챘다. 결국에는 수취인 이름까지 알아내고 말았다. 그들은 틀림없이 창녀 비슷한 짓을 했었을 거야 라며 그녀를 조롱했다.
결국 팡틴이 공장에서 근무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작업장의 여 감독은 시장님이 주시는 것이라며 팡틴에게 50프랑을 건제주고는 더 이상 작업장에 나오지 말라고 했고 덧붙여 시장님의 분부이니 이 고장에서 떠나라고 말했다.
코제트는 요즘 이곳에 유행중인 병에 걸렸소. ~~~ 일주일 내로 4-프랑을 보내지 않으면 아이는 죽어버릴 것이요.
거기 웃고 계신 아가씨, 참 고운 이를 가지고 계시는 군요. 만약 당신이 전치 두 개를 빼주면, 하나에 금화 한 닢을 드리겠소.
큰돈이네, 어디서 난 거야? 제가 벌었어요. 팡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촛불에 그녀의 얼굴이 비춰졌다. 그녀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입속에는 시커먼 구멍이 나 있었다. 그녀는 40프랑을 몽페르메유로 보냈다.
불행한 이 여자는 매춘부가 되었다.
1823년 1월 초, 눈이 내린 어느 날 저녁때였다. 한 여인이 머리에 꽃을 꽂고서 장교들이 드나드는 카페의 유리창문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 청년이 그녀가 잎을 지날 때마다 담배 연기를 “후” 하고 내뿜고는 농을 던졌다.
여지는 기겁을 해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며 달려들었다.
가엾은 여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6개월! 감옥에서 6개월. 하고 그녀가 외쳤다.
잠깐 기다리게! 자베르가 눈을 들어보니 마들렌 씨였다. 자베르는 모자를 벗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아, 바로 당신이었군요. 시장이라는 작자가! 그러고는 갑자기 크게 웃더니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마들렌 씨는 얼굴에 묻은 침을 닦으며 말했다. 자베르 형사, 이 여자를 석방해 주시오. 자베르는 놀란 나머지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다.
사실은 저 시장 놈 때문에 제가 이 꼴이 된 거예요. 저 못된 시장 놈이 저를 쫓아냈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소. 나는 당신이 말한 그런 일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소. 왜 내게 말하지 않았소? 어쨌든 이렇게 하기로 합시다. 내가 당신의 빚을 갚아드리겠소. 아이도 데려오도록 할 테고, 아니면 당신 아이가 있는 데로 가도 좋소. 아이와 당신의 생활은 내가 책임지겠소.
[머릿속의 폭풍우]
주교가 그렇게 변화되기를 바란, 바로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변화 이상의 것, 완전한 변모였다. 그는 용케 옛날의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에, 잠 못 이루는 밤에도 그가 언제나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자기의 이름이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듣는 일이었다.
이건 뭐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뭘까?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제 나는 안전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해서 된 것이 아니다. 모두 주님의 뜻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열망했던 일, 매일 밤 꿈꾸었던 일, 하늘에 기도하던 그 일, 새로운 삶을 얻은 것이다. 이미 결정지어졌다. 이제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된다.
한 가엽은 사나이를 정신적으로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형무소라는 죽음을 주려고 하는 것이다. 안 된다! 나는 자수를 해서 희생양이 된 그 불쌍한 사나이를 구하고 나의 이름을 밝히고, 다시 죄수 장발장이 되어 그야말로 참된 부활을 이루어야 한다. 외면상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이 진짜 지옥에서 벗어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셈이 된다. 나의 인생은 모두 무용한 것이 되고, 나의 회개도 헛된 것이 된다.
[특별 입장]
[샹 마티외가 풀려나다]
배심원 여러분, 그리고 재판장님, 피고를 석방하고 저를 체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찾고 있는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접니다. 제가 장 발장입니다.
나는 이름을 바꿔 정체를 숨긴 후에 부자가 되고 시장이 되었습니다. 나는 정직한 사람으로 되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주교 관저에서 물건을 훔친 것은 사실입니다. 쁘띠 제르베의 돈을 훔친 것도 맞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장 발장은 악독한 놈이라고 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감옥으로 끌려가기 전에 나는 무식한 농부였습니다. 그런데 감옥이 나를 변하게 했습니다.
나의 집 벽난로의 재속에는 7년 전 쁘티 제르베에게서 훔친 40수짜리 은화가 있습니다.
검사님, 저는 언제든지 당신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배심원들은 샹 마티외라는 자에 대한 일체의 기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다.
[팡틴의 병실]
[행복한 팡틴]
[되찾은 권위]
장 발장은 자베르 쪽으로 몸을 숙이고 재빨리 말했다. 사흘만 여유를 주시오! 이 가엾은 여자의 아이를 데려올 수 있게 사흘만 여유를 주시오. 당신이 같이 가도 좋소. 비용은 내가 내겠소.
팡틴이 죽었다. 장 발장은 자기의 멱살을 잡고 있는 자베르의 손을 잡아, 마치 어린애의 손을 떼어내듯 그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 당신이 이 여자를 죽였소.
[어울리는 무덤]
자베르는 장 발장을 시의 형무소에 집어넣었다.
감옥에 있는 줄 알았단 말이지요. 하고 말을 이었다. 사실 거기에 있었소. 창살을 부수고 지붕에서 뛰어내려 이렇게 온 거예요.
이것은 내가 중죄 재판소에서 말한, 쁘티 제르베에게서 훔친 40수짜리 은화입니다.
수녀님 이것을 주임신부님께 전해 주세요.
나는 지금 쫓기고 있소. 그 방에서 잡히면 그 영혼에 결례가 될 것입니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단 아래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자베르의 목소리였다.
문이 열리자 자베르가 들어왔다. 몇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와 문지기 여자가 대드는 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수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자베르는 생플리스 수녀를 보고 당황하여 멈칫하고 섰다.
수녀님, 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이 방에는 수녀님 혼자뿐이십니까? 두려운 순간이었다. 가엾은 문지기 노파는 기절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수녀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한 시간 후에, 한 사나이가 어두컴컴한 나무들 사이를 지나 안개를 헤치고 파리 쪽을 향해 급한 걸음으로 몽트뤼유를 떠나가고 있었다. 장 발장 그이었다.
■ 코제트
[번호 24601에서 9430으로]
장 발장은 다시 붙잡히고 말았다.
국왕은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 그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해 주었다.
[끊어진 쇠사슬]
죄수는 물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1823년 11월 17일- 어제 오리옹 호에서 노역 중이던 한 죄수가 수부를 구조하고 돌아오다가 바다에 떨어져 익사했다.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나이의 수감번호는 9430호이며. 이름은 장 발장이라고 한다.
[워털루 중사의 여관]
[소녀 혼자서]
예야, 이건 네가 들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 같구나. 코제트가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네, 그래요. 이리 주렴, 아저씨가 들어다줄게. 아이가 물통을 놓았다. 이렇게 무거운 걸 혼자 들다니. 사나이가 중얼거렸다. 넌 몇 살이니? 여덟살이예요. 이 무거운 걸 들고 어디서 오는거지? 숲속 샘에서 길어오는 거예요.
이름이 뭐지? 코제트예요. 순간 사나이는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주춤거렸다. 잠시 후 그가 다시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살고 있니? 몽페르메유요.
[누런 프록코트의 사나이]
테나르디에의 아내는 채찍을 손에 쥐었다. 그 모습을 본 사나이가 끼어들며 말했다. 잠깐만요, 아주머니. 아까 이 아이의 호주머니에서 무언가 떨어져 굴러가는 것을 보았는데, 이거 아닙니까? 그가 몸을 숙여 찾는 시늉을 하며 은전 하나를 내밀었다. 네 바로 이거예요. 그러나 사실은 20수짜리였다. 그러나 테나르디에의 아내는 가만히 돈을 받는 편이 이득이라 생각해 코제트를 쏘아보며 말했다. 두 번 다시는 어림없다. 알았어?
선생님 사실 저는 그 아이를 무척 귀여워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자식을 나그네에게 그냥 줘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1천 5백 프랑은 받아야겠습니다. 사나이는 낡은 가죽지갑을 꺼내어 지폐 석장을 뽀ᅟᅥᆸ아 탁자 위에 놓았다. 그리고 그 지폐를 커다란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며 여관주인에게 말했다. 코제트를 데려오시오잠시 후시후 코제트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사나이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봉투를 내밀며 코제트에게 말했다. 자, 예야 얼른 이것으로 갈아입고 오너라.
해가 뜰 무렵, 문을 열기 시작한 몽페르메유의 사람들은 남루한 옷차림을 한 낯선 사내가 커다란 장밋빛 인형을 품에 안은 상복차림의 한 소녀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셋집 주인이 본 것]
장 발장은 무척 조심스러워 낮에는 결코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어두컴컴해질 무렵이 되면 한두 시간씩 산책을 나갔다. 혼자 나갈 때도 있었으나 대개의 경우 코제트를 데리고 갔는데, 가장 인적이 드문 길을 골라서 걸었고, 어둠이 짙어지면 성당에 들르곤 했다.
장 발장은 여전히 누런 프록코트와 검은 바지를 입고 낡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거리에서 자주 거지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때때로 친절한 부인들이 1수짜리 동전을 던져 주었다. 그러면 장 발장은 그 돈을 받아 쥐고 공손히 인사했다. 가끔은 동냥을 청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누가 있는지 뒤를 돌아본 다음에 살그머니 그 불쌍한 사람에게 다가서 손에 든 돈을, 대개는 은화를 넣어주고는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를 곤경에 빠뜨리는 일이 되었다. 그는 동냥을 주는 거지라는 별명으로 그 일대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셋집주인 노파는 인상이 별로 좋지 않은 여자로 이웃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곤 했는데, 장 발장에 대해서도 눈치 채지 못하게 이것저것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노파는 코제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으나 몽페르메유에서 왔다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는 코제트는 아무것도 말해 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침 노파는 장 발장이 무언가 수상한 태도로 아무도 없는 빈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를 뒤따라가, 그의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숨기고는 그의 거동을 엿보았다. 장 발장은 더욱 조심하기 위해서였는지 문 쪽으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는 가위를 꺼내 프록코트 안쪽의 실밥을 뜯어내고는 그 속에서 누르스름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폈다. 노파는 그것이 1천 프랑짜리 지폐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노파는 평생 살면서 1천 프랑짜리 지폐를 두세 번밖에 보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나 놀라서 그곳을 얼른 빠져나왔다. 잠시 후 장 발장은 그녀에게로 와서, 어제 받은 반 년 치의 연금이라고 하면서 1천프랑짜리 지폐를 잔돈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어디서 난 것일까? 저 사람은 엊저녁 6시경에 외출했었고, 그 시간에는 은행 문이 닫혀있었을 텐데, 노파는 지폐를 바꾸러가면서 이리저리 추측해보았다. 그 후 어느 날, 장 발장은 조끼차림으로 장작을 톱질하고 있었다. 노파는 방 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코제트는 장 발장이 하는 일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노파는 그 틈을 타 못에 걸려 있는 프록코트를 뒤져보았다. 옷 안은 다시 전처럼 꿰매져 있었다. 노파는 조심스럽게 그곳을 만져보았다. 그러자 옷자락과 소매의 중간 부분에서 두꺼운 종이뭉치가 만져졌다. 1천 프랑 짜리 지폐가 가득 들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불안으로 잠 못 들다]
생 메다르 성당 옆에 거지가 한 사람 있었다. 장 발장은 자주 그에게 동냥을 주었다.
장 발장은 그에게로 가서 평소처럼 그의 손에 돈을 놓아 주었다. 그러자 거지는 별안간 고개를 들고 장 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 동작이 번개처럼 빨랐다. 장 발장은 소름이 끼쳤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으로 언뜻 본 것은 늙은 거지의 얼굴이 아니라, 어딘가 낯이 익은 무시무시한 얼굴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화석처럼 굳어져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그 자리에서 거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거지는 평소 때와 같은 체격에 같은 누더기를 걸치고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장 발장은 생각했다. 내가 미쳤나! 꿈을 꾼 거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는 몹시 불안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언뜻 본 그 얼굴은 바로 자베르의 얼굴이었다.
아침 7시에 노파가 방을 치우러 왔다. 노파의 태도는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청소를 하면서 그녀가 물었다. 선생님 간밤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나요? 글쎄요, 들은 것 같기도 하네요.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연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누구였습니까? 이번에 새로 세든 사람이에요. 노파가 말했다. 뭐하는 사람인가요, 그 사람은? 연금을 받는 사람이래요, 선생님처럼.
해질 무렵 장 발장은 집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방으로 올라가 코제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짖지 않는 사냥개]
어떤 뚜렷한 생각도, 계획도, 복안도 없었다. 그자가 자베르였는지 조차 확실치 않았으며, 또 그것이 자베르였다 하더라도 자기가 장 발장이라는 것을 자베르가 알아챘는지 어떤지도 확실치 않았다. 자기는 변장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자기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며칠 전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는 고르보 저택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보금자리에서 쫓겨난 짐승처럼 새로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때까지 우선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생테티엔 성당의 시계가 11시를 알릴 무렵, 그는 풍투아즈 거리의 14번지에 있는 경찰서 앞을 지나갔다. 그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세 명의 사나이 모습이 경찰서 외등에 비쳐 보였다. 그들은 꽤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따라오고 있었다.
이제 가능한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장 발장은 두 개의 배낭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배낭 속에는 성자의 생각이 들어 있고, 다른 하나의 배낭에는 죄수로서의 재주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때에 따라 필요한 배낭을 뒤지는 것이다. 장 발장은 여러 번의 탈출로 기어오르는 것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사다리도 밧줄도 없이 군데군데 나 있는 돌의 돌기를 이용하여 근육의 힘만으로 몸을 떠받치고, 때에 따라서는 7층 높이까지도 기어오를 수 있었다.
장 발장은 순찰대와 자베르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다급한 순간이어서 몹시 초조했을 텐데도 실수 없이 정확하게 행동했다. 그는 자신의 넥타이를 끌러 코제트의 겨드랑이 밑으로 단단히 잡아맸다. 줄의 한쪽 끝을 넥타이에 매고 한쪽 끝을 입에 문 뒤, 구두의 양말을 벗어 담 너머로 던지고 담에 붙어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어느새 담 위로 올라가 무릎을 걸치고 앉았다.
장 발장은 코제트를 등에 업고 담에 바짝 엎드려서 기어갔다. 그가 짐작했던 대로 집이 한 채 있었고, 그 지붕은 보리수 옆으로 꽤 완만하게 경사져 있었다. 그가 막 지붕의 경사면에 이르러 담 꼭대기에서 손을 떼려는 순간, 왁자지껄한 순찰대의 도착소리가 들려왔다. 자베르가 벼락 치듯 소리를 질렀다. 막다른 골목을 뒤져봐! 모든 골목을 지키도록 해! 이 골목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장 발장은 코제트를 안은 채 지붕을 미끄러져 내려와 보리수를 붙잡고 땅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무서워서 그랬는지 용기가 있어서 그랬는지, 코제트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소녀의 손이 조금 긁혀 있었다.
[수수께끼의 시작]
그가 숨어든 곳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해서 조금 전까지 들렸던 무시무시한 소음도 이곳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했다. 이곳의 담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귀머거리 돌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깊은 정적 속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들려오는 천사의 소리와도 같은 경건하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소리였다. 그것은 어둡고 무서운 밤의 고요를 뚫고 나오는 거룩한 기도이며 찬미가였다. 여자들의 목소리, 동정녀의 맑은 음조와 소녀들의 순진무구한 음조가 한 테 어울린 목소리, 지상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 노랫소리는 정원에 우뚝 솟아있는 어두컴컴한 건물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장 발장과 코제트는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또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둘 다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방울을 흔드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정원 쪽에서 나고 있었다. 작기는 했으나 뚜렷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장 발장은 그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니 정원에 누군가가 있는 것이 보였다. 한 남자가 멜론밭의 덮개 사이를 몸을 구부렸다 일으켰다하며 걷고 있었다. 절름발이인 것 같았다.
코제트!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죽은 것일까? ~~~코제트는 얼굴이 새파래서 땅바닥에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해줄 수 있을까? ~~~ 그는 급히 헛간 밖으로 뛰쳐나갔다.
[방울을 단 사나이]
장 발장은 정원에 있는 사나이에게로 곧장 걸어갔다. 그는 조끼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돈뭉치를 손에 쥐었다.
장 발장은 그 사나이 바로 곁으로 가서 큰 소리로 말했다. 백 프랑이오! 사나이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백 프랑을 드리겠소. 장발장이 말을 이었다. 오늘 밤 나를 재워주신다면 말이오! 달빛이 장 발장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아니, 마들렌 씨 아니오! 사나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은 모자를 벗어 쥐고 외쳤다. 세상에! 어떻게 이곳에 오셨습니까, 마들렌 씨? 대체 어디로 들어오신 겁니까? 하늘에서라도 떨어지셨나요?
당신은 누구시오? 그리고 또 이 집은 뭐하는 곳입니까? 장 발장이 물었다. 너무하십니다. 전 당신이 구해준 사람이고, 이 집은 당신이 저를 있게 해준 곳입니다. 정말 저를 몰라보시는 겁니까? 노인이 소리쳤다. 모르겠소. 당신은 어떻게 나를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제 목숨을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그 사니아가 약간 몸을 돌리자 달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그제야 장 발장은 그 노인이 포슐르방 영감임을 알아보았다.
그럼 이 집은 뭐하는 집인가요? 마들렌씨께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저를 이 집의 정원지기로 소개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여기가 어딥니까? 여긴 쁘티 픽프스 수녀원입니다.
[묘지는 주는 것을 받아들인다]
장 발장과 포슐르방 노인은 코제트를 침대에 눕히고 장작불을 쬐면서 포도주와 치즈를 먹었다.
장 발장은 규칙에 따라 정식으로 수녀원에 채용되었고 월팀 포슐르방으로 불리게 되었다.
[수녀원에서]
장 발장에게 있어 수녀원은 깊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인생에서 두 번의 위기를 맞았었고 두 개의 집이 그를 맞아들여 주었다. 첫 번째 집은 모든 문들이 닫히고 인간사회로부터 거부를 당했을 때 그를 맞아주었고, 두 번째 집은 인간사회로부터 또다시 추적을 당하고 감옥이 다시 입을 벌렸을 때 자기를 맞아주었다. 첫 번째 집이 없었다면 그는 다시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렸을 것이고 두 번째 집이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졌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 찼고 그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몇 해가 흘러갔다. 코제트는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다.
■ 마리우스
[외조부와 손자]
부슈라 거리나 노르망디 거리에는 아직도 질노르망이라는 노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 남아 있다. 그들이 젊었을 때 그 노인은 이미 고령이었다.
1831년 당시 보기 드믄 고령자였던 질오르망 씨는 특이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었다.
질 노르망씨는 언제나 딸과 외손자(마리우스)를 데리고 다녔다. 딸은 당시 사십 세가 조금 넘었으나 오십은 되어 보이는 노 처녀였고, 아이는 일곱 살의 미소년으로서 살결이 희고 홍조를 띤 모습에 건강하고 자신에 찬 밝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1827년 마리우스는 열일곱 살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자 외할아버지는 한 통의 편지를 손에 들고 있었다. 마리우스야, 내일 베르농에 가도록 해라. 질노르망씨가 말했다. 왜요? 마리우스가 물었다. 네 애비를 만나 보거라.
병이 난 모양이다. 너를 찾는다는구나. 위독하다고 하니 내일 아침에 떠나거라.
나의 아들에게 황제는 워털루 전장에서 나를 남작에 봉하셨다. 왕정복고 정부는 피 흘려 얻은 이 작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의 아들은 그것을 인정하고 이 칭호에 걸맞은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 뒤에 대령은 이렇게 덧붙여놓았다.
바로 이 워털루 전투에서 한 중사가 나의 생명을 구해주셨다. 그분의 성함은 테나르디에고라고 한다. 지금은 아마도 피리 근교의 몽페르메유라는 마을에서 조그만 여관을 경영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네가 테나르디에를 만나게 되거든 그에게 최대한 호의를 베풀기 바란다.
[아버지를 이해하다]
마리우스는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인 습관에 젖어 있었다.
미사가 막 시작되고 난 후 한 노인이 와서 마리우스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여긴 내 자리요. 마리우스가 당황해서 얼른 옆자리로 옮겼고 노인은 자기 의자에 앉았다. 미사가 끝난 후에도 마리우스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아까는 실례했소. 그런데 또 이렇게 방해를 해서 미안하오. 분명히 귀찮은 노인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소. 괜찮습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리우스가 말했다. 노인이 말을 이었다. 아니오!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소. 나는 저 자리를 아주 좋아하오. 같은 미사를 드려도 저 자리에서 드리면 한층 더 은혜로운 것 같아요. 왜냐고요? 나는 몇 년 동안 두서너 달에 한 번씩 한 훌륭하고 가엾은 아버지가 저 자리에서 미사에 참례하는 것을 보아왔소. 그 사람이 자기 아들을 보기 위해서 그것밖에 다른 기회도, 방법도 없었던 거요. 왜냐하면 집안 사정상 아이를 만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던 게요.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 아들이 미사를 드리러 오는 시간에 맞춰서 왔던 게요. 아이는 자기 아버지가 여기에 와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소. 아버지는 들키지 않으려고 저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자기 아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곤 했소. 그는 자기 아들을 무척 사랑했소. 그때부터 저 자리는 내게 특별한 장소가 되었고 그 후에 저기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소. 그리고 그 불쌍한 분의 내력도 조금은 알게 되었지요. 그에게는 아이와 돈 많은 장인과 아이의 이모, 그리고 잘은 모르겠으나 친척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들은 아버지가 만약 아이를 만난다면 아이의 상속권을 박탈하겠노라고 위협을 했소. 그래서 그분은 뒷날 아들이 부자가 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자기를 희생했던 게지요. 정치상 의견이 달라서 배척을 당했던 거요.
퐁페르시가 아닙니까? 마리우스는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물었다. 맞아요! 퐁패르시였소. 당신도 알고 계시오? 네 그분은 저의 부친이었습니다. 하고 마리우스가 말했다.
아버지가 남긴 유언에 따라 몽페르메유에 가서 옛날 워털루 전투 떼에 중사였던 여관주인 테나르디에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테나르디에는 파산하여 여관 문을 닫아버렸고,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화강암과 대리석]
공화국이라는 말에 그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마리우스가 내뱉는 한 마다 한 마디는 이 늙은 왕당파 노인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그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마침내 불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마리우스! 이 못된 놈 같으니라고! 네 애비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또 알고 싶지도 않고! 아무것도 모른다! 얼굴조차도 몰라! 다만 내가 알고 있는 건, 그놈들이 모두 악당이었다는 것뿐이다.
당장 나가! 마리우스는 집을 나왔다.
[무일푼의 마리우스]
질 노르망 이모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60피스톨을 보내왔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끝끝내 그것을 돌려보냈다.
이런 어려운 생활고에서 그는 마침내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마리우스는 외조부에게 형식적이긴 하지만 예의를 잃지 않은 편지를 보내 그것을 알렸다. 질 노르망 씨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빈곤 역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다. 끝까지 참으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가난도 그 나름의 질서와 형식을 갖춘다. 마리우스는 가장 험난한 고개를 넘어섰다. 여전히 길은 험난했으나 전보다는 다소 평탄해져 있었다. 고생을 참고 끈기 있게 의지를 관철한 결과 그는 1년에 7백 프랑을 자기 힘으로 벌 수 있게 되었다.
마리우스는 마음속에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또 하나의 이름을 새겨두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테나르디에라는 이름이었다.
[두 별의 만남]
오래전부터 마리우스는 뤽상부르 공원의 인적 드문 오솔길에서 한 나이든 남자와 소녀가 거의 언제나 같은 시간에 한적한 오솔길 끝에 있는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아왔다.
소녀는 아름다운 여자가 되어 있었다. 마리우스를 만나지 못한 지난 6개월 동안 아름다움을 활짝 피웠던 것이다. 그녀에게 여자로서의 봄이 왔던 것이다.
[봄의 힘]
[사로잡힌 몸이 되다]
[일식]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르블랑 씨도 그 딸도 다시는 뤽상부르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파렴치한 가난]
마리우스는 여전히 고르보 저택에 살고 있었다. 그 무렵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은 마리우스와 종트레트 가족뿐이었다. 마리우스는 언젠가 종드레트 가족의 방세를 대신 치러준 일이 있었지만 한 번도 그 부모나 딸들과 이야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반쯤 열린 문 앞에 젊은 처녀가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비쩍 말라 뼈만 앙상했고 입고 있는 것이라고는 셔츠와 치마뿐으로 무척 추운 듯 덜덜 떨고 있었다.
편지를 가지고 왔어요, 마리우스 씨. 소녀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절한 이웃 청년께, 6개월 전에 우리 가족의 방세를 대신 지불해 주셨다는 것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소. 내 딸아이가 사정 예기를 하겠지만 우리 네 식구는 이틀 전부터 빵 한 조각 못 먹고 아내마저 병들어 누워 있소.......
그녀는 갑자기 읽기를 멈췄다. 아, 워털루! 나도 알아요, 옛날에 있었던 전쟁이죠. 우리 아버지도 참전했어요. 우리 아버지는 군인이었거든요.
마리우스는 호주머니를 전부 뒤져 5프랑 16수의 돈을 모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전부였다. 이거면 오늘 저녁식사 값은 될 테고, 내일은 또 어떻게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서 그는 16수만 남기고 5프랑을 그녀에게 주었다.
[구멍으로 엿본 것]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버림받은 사람들과 한 겹의 벽만을 사이에 두고 있지 않았던가! 자기는 그들이 손을 뻗칠 수 있는 인류의 마지막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형제가 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는 그들의 불행을 한층 부채질한 결과가 되었다. 만약 그들의 이웃이 자기 같은 몽상가가 아니고 좀 더 주의 깊은 사람이었더라면 그들의 가난을 알아차리고 오래 전부터 그들을 도와주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은 너무나 타락하고 부패하고 비열하지만, 궁핍한 생활 속에서는 인간은 품위를 잃게 된다. 불쌍한 사람 과 파렴치한. 이 두 가지는 서로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레 미제라블( 이 말에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의미 외에 파렴치한이라는 의미도 있다)이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들이 구렁텅이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더 큰 자비의 손길이 베풀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마리우스는 이렇게 자신을 질책하면서 종드레트 씨네 방과 자기 방 사이에 놓인 벽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무의식적으로 그 벽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는 느닷없이 벌떡 일어섰다. 천장 가까운 곳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찬장 위로 올라가서 보면 종드레트 씨네 방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행에서 구원해 내기 위해서 몰래 훔쳐보는 것이라면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마리우스는 너저분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문이 홱 열리면서 큰딸이 문에 나타났다. 그녀는 진흙투성이가 된 커다란 남자 구두를 신고 다 떨어진 낡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 망토는 한 시간 전에 마리우스를 찾아왔을 때는 입지 않았던 것으로, 아마 될 수 있으면 더 가련하게 보이기 위해 문 뒤에 벗어놓았다가 나가면서 다시 입은 듯했다. 그녀는 기쁜 표정으로 소리쳤다. 와요! 그 사람 말 이예요.
내가 성당에 들어가 보니까 그 할아버지는 항상 앉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인사를 하고 편지를 줬어요. 그 할아버지는 편지를 읽어보고는, 집이 어디요? 하고 물어봐서 제가 모시고 갈게요, 하고 대답했죠.
남자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이봐, 들었지?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자선가가 온대, 어서 불을 꺼.
어서 침대에서 내려와, 게으름뱅이야! 계속 그렇게 아무것도 dsk하고 있을 테냐! 어서 유리창을 한 장 깨도록 해! 소녀가 떨면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유리창을 깨란 말이야! 아버지가 다시 고함을 질렀다.
작은 딸이 피투성이가 된 손을 내밀었다. ~~~~ 오히려 잘 됐어, 그렇게 되라고 시킨 거야. 사나이가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입고 잇던 셔츠를 북 찢어서 딸의 손을 싸매주었다. ~~~자, 이제 자선가를 맞을 준비가 다 되었군.
[어둠에 비친 광경]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동정심 많으신 어르신 나리님. 그리고 어여쁘신 아가씨께서도 어서.
마리우스는 여전히 그 구멍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순간 그가 느낀 것은 도저히 인간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본 것은 바로 그녀 이었다.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그녀 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눈부신 의미를 잘 알고 잇을 것이다.
수많은 날들을 그토록 찾아 헤매다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그는 잃었던 자기의 영혼을 다시 찾은 듯 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같이 온 사람은 르블랑 씨였다. 그녀는 전과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다만 안색이 좀 더 창백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종드레트는 아까부터 이 자선가를 이상한 눈초리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는 말을 하면서도 줄곧 뭔가를 애써 생각해 내려는 듯 상대방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손님들이 작은딸에게 다가가 이것저것 묻고 있는 틈을 타서 멍하니 침대 위에 누워있는 아내 옆으로 다가가 재빨리 말했다. 저 남자를 잘 봐! 그리고 다시 르블랑 씨에게로 돌아서서 온갖 한탄을 늘어놓았다.
르블랑 씨는 주머니에서 5프랑을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종드레트는 그 틈을 타서 큰 땅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망할 늙은이 같으니, 그 따위 5프랑으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의자하고 유리 값도 안 되잖아. 그동안 르블랑 씨는 입고 있던 갈색 외투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았다. 파방투 씨 르블랑 씨가 말했다. 지금 갖고 있는 게 5프랑밖에 안 되오. 딸을 집에 데려다주고 저녁에 다시 오겠소. 오늘밤에 꼭 치러야 한다구요? 네, 어르신 8시까지는 집주인에게 갖다 줘야 합니다. 그럼 60프랑을 가지고 6시에 다시 오겠소.
할아버지 외투를 잊으셨어요. 르블랑 씨가 돌아보며 대답했다. 잊은 게 아니라 놓고 가는 거요.
사실 르블랑 씨가 저녁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으므로, 그때 다시 그 뒤를 밟으면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던 것이다.
[5프랑의 용도]
정말이에요? 확실해요? 그렇다니까, 벌써 8년이 됐지만, 그자가 분명해. 남편은 이리저리 방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아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또 한가지 말해줄까? 뭔데요? 이제 한 밑천 잡을 수 있게 됐어. 그게 무슨 뜻이예요? 들어봐! 쉿 목소리가 너무 커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런 악독한 놈들을 짓밟아버리지 않으면 안 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위협당하고 있는 그 두 사람에게 알려줘야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사는지 모르지 않는가? 마리우스는 생 마르소 쪽으로 걸어가다가 눈에 띈 어느 가게에 들어가 경찰서가 어디냐고 물었다. 마리우스는 신에게 감사했다. 만약 아침에 마지막 남은 5프랑을 종드레트의 딸에게 주지 않았다면 자기는 르블랑 씨를 따라갔을 것이고, 그러면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고 종드레트 일가의 계획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사환은 그를 서장실로 안내했다. ~~~ 이 사나이는 침착하면서도 민첩했기 때문에 상대를 두렵게 하는 동시에 안심을 시키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마리우스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이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방에 숨어 있으시오. 아무도 없는 줄 말이오. 둘 다 두 발씩 장전되어 있소. 그들의 동정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때라고 생각되는 순간에 그들이 꼼짝 못하게 한 발 쏘시오.
마리우스가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경위가 소리쳤다. 그리고 만일 무슨 일이 생기면, 이리로 직접 오든지 아니면 사람을 보내시오. 경위 자베르를 찾으면 됩니다.
[두 개의 의자]
6시를 알리는 생 메다르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종드레트는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이따금 멈춰 서서 복도 쪽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르블랑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침착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성스럽게까지 보였다. 그는 탁자위에 금화 네 닢을 꺼내놓으며 말했다. 파방투 씨, 우선 이것으로 방세와 생활비에 보태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의 일은 또 의논하기로 합시다. 종드레트는 재빨리 아내에게 가서 속삭였다. 마차를 돌려보내. 아내는 남편이 인사말을 늘어놓는 동안 살짝 방에서 빠져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남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보냈어요.
마리우스는 혐오감으로 온몸이 떨렸지만 겁은 나지 않았다. 그는 권총을 힘껏 움켜쥐고 저 비열한 악당을 꼭 잡고야 말테다. 하고 생각했다. 그 근처 어딘가에 경찰들이 잠복하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종드레트가 교활하게 지껄이고 있는 동안,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사나이의 모습이 마리우스의 눈에 들어왔다. 그 사나이는 문소리가 나지 않게 살며시 들왔던 것이다. 등 뒤의 시선을 알게 하는 일종의 자석 같은 본능으로 르블랑 씨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르블랑 씨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굽니까? 저 사람요? 이웃집 사람입니다.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두 번째 사나이가 들어와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이 사나이도 글자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방으로 들어왔으나 르블랑 씨는 곧 눈치를 챘다.
거기에는 벌써 네 명의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커먼 얼굴을 하고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모두 제 친구들이죠. 바로 옆에 살고 있습니다. ~~~ 이 그림이나 사 주십시오. 비싸게 부르지 않겠습니다. 얼마면 사시겠습니까? 르블랑 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술집 간판 같군요. 한 3프랑쯤 나갈 것 같습니다만.
만약 나리가 이 그림을 사주시지 않는다면 이제 강물에라도 뛰어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시무시한 눈빛을 내뿜으며 르블랑 씨를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며 고함을 질렀다. 그래, 내가 누군지 아직도 못 알아보겠나?
그때 방문이 갑자기 열리면서 푸른 작업복에 검은 종이로 복면을 한 사나이 세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나이들은 각자 긴 쇠몽둥이와 도살용 도끼 그리고 커다란 열쇠를 쥐고 있었다. 종드레트는 그들 세 사나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내 이름은 파방투도 아니고, 종드레트도 아닌 테나르디에야. 몽페르메유의 여관주인 테나르디에, 자, 이제 알겠나? 르블랑 씨의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지나갔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혀 모르겠소. 마리우스는 르블랑 씨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종드레트가 내 이름은 테나르디에라고 말하는 순간, 마리우스는 마치 얼음장 같은 칼날에 심장을 찔린 듯 온 몸을 떨며 벽에 기댔던 것이다. 그리고 신호탄을 쏘려던 오른팔이 서서히 내려갔다.
마리우스는 4년 동안 줄곧 아버지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갈망해왔다. 그런데 이 악한을 경찰이 체포하게 하려는 순간 운명은 그를 향해 저 남자가 테나르디에다라고 외쳤던 것이다.
테나르디는 한숨 돌리고 나서 핏발선 눈으로 르블랑 씨를 쏘아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제부터 맛을 좀 보여주지. 그전에 할 말은 없나?
르블랑씨는 재빨리 의자를 걷어차고 테나르디에가 돌아설 겨를도 없이 가볍게 몸을 날려 창문을 열고 창틀에 올라가 뛰어내리려 했다. 그의 몸이 반쯤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우악스런 손이 그를 낚아채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세 명의 난로 인부들이었다. 마리우스는 그 광경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님,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더듬었다. 그리고 막 쏘려는 순간 테나르디에의 고한소리가 들렸다. 해치지는 마! 우선 저 놈의 몸을 뒤져봐. 테나르디에가 말했다. 르블랑 씨는 저항하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네 놈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가난한 사람에게 20만 프랑쯤 적선한다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닐 거야. 지금 수중에 그만한 돈이 없다고 하겠지만, 나도 그렇게 억지만 부리는 놈은 아니야. 지금 당장 내라는 게 아니야. 지금부터 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쓰기만 하면 되는 거야.
곧 오너라.……. 네가 꼭 와야만 하겠다. 이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 너를 나에게 데려다 줄 것이다. 기다리고 있겠다. 안심하고 오너라.
수신인의 이름을 써, 파브르 양이라고. 그리고 주소를 적어.
당신 딸을 해치지는 않겠어, 그냥 마차에 태워 두었다가 당신이 20만 프랑을 가져오면 곧바로 돌려보내겠어. 하지만 만약 네가 경찰에 알리거나 하면, 그땐 내 친구가 즉시 종달새를 목 졸라 죽이게 돼 있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테나르디에의 마누라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 그녀가 소리쳤다. 주소가 틀려요.
뭐 속였어? 대체 무슨 속셈으로 그런 거야? 시간을 끌기 위해서지! 포로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그는 몸에 감고 잇던 밧줄을 털어버렸다. 밧줄은 이미 끊겨 있었다. 한쪽 다리만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일곱 사나이가 정신을 차려서 덤벼들기도 전에 그는 벽난로 앞으로 몸을 구부려 화로로 손을 뻗쳐 시뻘겋게 달아오른 쇠를 집어 들었다. 훗날, 이 사건에 대한 재판소의 조사에 의하면, 경찰이 현장 검증을 할 때 이 다락방에서 특수 세공을 한 한 1수짜리 동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죄수들이 탈옥할 때 쓰는 도구였다.
에포닌의 글씨야, 빌어먹을! 빨리 사다리를 가져와! 도망가야겠어.
내 모자에 하는 게 어때? 어떤 목소리가 갑자기 문 쪽에서 들려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문 쪽을 돌아보았다. 자베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자베르가 소리쳤다. 경찰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한당들의 포로였던 르블랑 씨는, 아니 위브랭 파브르 씨는, 위르쉴의 아버지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밧줄이 풀리자 어수선한 틈을 타서 창문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창문 아래로 밧줄이 흔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자베르가 중얼거렸다. 제일 중요한 놈을 놓쳤군.
■ 를뤼메 거리의 목가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종달새라는 이름의 들판] 자베르가 악당들을 세 대의 마차에 나누어 싣고 그 집을 떠난 뒤, 마리우스는 밖으로 나왔다. 마리우스는 쿠르페라크에게 갔다. 마리우스는 쿠르페라크에게 여기서 좀 지내야겠어. 하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마리우스는 고르보 저택으로 돌아와 방세를 치르고, 책과 침대와 책상을 손수레에 싣고서 주소를 알려주지 않고 그 집을 떠났다.
자베르는 마리우스를 찾으려고 사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여러 달이 흘렀다. 마리우스는 사람을 시켜서 감옥에 있는 테나르디에 앞으로 월요일마다 5프랑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돈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매번 쿠르페라크에게 꿔서 보냈다.
그리고 또 그 노인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 경찰의 눈을 피해서 사는 사람일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이 마리우스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니, 이게 그녀의 들판이라니! 그렇다면 여기 어디쯤에 그녀가 살고 있지 않을까?
그는 그녀를 꿈꾸고 있었다. 문득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여기 있었네요! 고개를 들어보니, 테나르디에의 큰딸 에포닌이었다. 그녀는 그때보다 훨씬 남루해졌지만 조금은 예뻐져 있었다.
겨우 찾았어요!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몰라요! 그동안 큰일이 있었어요. 아세요? 나 유치장에 들어가 있었어요. 2주일 동안요. 무슨 증거가 있어야죠. 나이도 어리니까요. 계속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셨더군요.
당신은 나를 만난 게 기쁘지 않은 모양이군요. 마리우스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제 말을 들으시면 당신도 곧 기뻐하실 거예요. 무슨 뜻이지?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마음속에서 무슨 갈등이라도 하는 듯 망설이는 눈치였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주소를 알아냈어요. 순간 마리우스의 얼굴빛이 파랗게 변했다. 온몸의 피가 역류 하는 것 같았다. 주소라니, 무슨 주소? 당신이 찾고 있는 아가씨의. 마리우스가 그녀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뭐, 뭐라고? 어서 말해줘! 대체 거기가 어디야? 절 따라오세요.
[플뤼메 거리에 있는 집]
18세기 중엽 파리의 고등법원의 어느 판사가 생 제르맹 거리를 지나 지금은 플뤼메 길이라고 불리는 곳에 비밀통로가 달린 집을 한 채 지었다. 1829년 10월(편집자 주: 장 발장은 1815년 10월 출옥했으므로, 모든 사건이 지난 후 14년이 지난 시점. 프랑스 7월 혁명은 1830년에 일어났으므로 그 직전이다), 꽤 나이든 남자가 그 집 전체를 셋집으로 얻었다. 그는 어린 처녀 하나와 나이든 하녀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이사를 한 다기 보다는 남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오듯이 살그머니 옮겨왔다. 그러나 이웃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웃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이사해 온 사람이 장 발장이었고, 어린 처녀는 코제트였다. 하녀는 투생이라는 노처녀로, 장 발장이 가난으로부터 구해준 시골여자로 말더듬이었다. 장 발장은 연금 소유자 윌팀 포슐르방이라는 이름으로 그 집을 얻었다. 장 발장은 왜 프티 픽퓌스 수녀원에서 나왔을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장 발장은 수녀원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불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매일 코제트를 만날 수 있었고 그의 사랑은 더욱 더 커져갔다. 이 아이는 내 아이다. 이 아이만은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 없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있으리라. 아이는 여기서 교육을 받고 앞으로 훌륭한 수녀가 될 것이다. 내가 여기서 늙어가는 동안 이 아이는 여기서 자라고, 또 아이가 늙어 가면 나는 여기서 죽게 되리라.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주 곤욕스러운 생각에 빠졌다.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이 행복이 정말 내 것일까? 혹시 남의 행복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닐까? 이 아이의 행복을 늙은 내가 가로채서 내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도둑질이 아닌가? 이 아이는 인생을 포기하기 전에 먼저 그것에 대해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본인의 의견도 듣지 않고 속세의 고통에서 구해 낸다는 명분으로 이 아이에게서 기쁨을 빼앗는다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인위적인 신앙심을 품게 해 한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왜곡하는 것은 오히려 신을 모독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중에 그 모든 것을 알고 수녀가 된 것을 후회하게 된다면 코제트는 나를 원망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수녀원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5년 동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종적을 감추고 살았으니 이제 세상으로 나가도 될 것이다. 그는 이미 늙었고 세상도 변했다. 누가 자기를 알아보겠는가?
일단 마음을 결정하고 그는 기회를 기다렸다. 기회는 곧 찾아왔다. 포슐르방 영감이 죽었던 것이다. 장 발장은 수녀원장에게 면회를 청하여, 형님이 돌아가셔서 유산을 어느 정도 물려받아 이제는 일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으니 수녀원 일을 그만 두고 딸과 함께 나가고 싶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코제트가 수녀로 서원을 하지 않게 되면 무료로 교육을 받은 셈이 되고, 그것은 부당한 일이므로 코제트가 여기서 보낸 5년간의 교육비로 5천 프랑의 돈을 수녀원에 기부할 생각이니 허락해 달라고 덧붙여 말했다. 이렇게 장 발장은 수녀원을 나왔다.
그러나 장 발장은 다시 자유의 공기를 마시면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플뤼메 거리의 그 집을 발견하여 그 속에 깊숙이 몸을 숨겼다. 그때부터 윌팀 포슐르방이라는 이름을 썼다. 동시에 그는 파리 시내의 다른 두 곳에 방을 얻어놓았다.
[시민병 장 발장]
코제트는 하녀와 함께 본채에서 생활했다.
한편 장 발장은 정원에 있는 문지기 집에서 기거했다.
그는 코제트를 데리고 가난한 사람이나 병자를 찾아다니기를 즐겼다. 연금 소유자 포슐르방 씨는 시민 병이 되어 있었다. 그는 1831년에 시행된 징병검사를 받았다. 그때 파리 시에서 행한 조사는 그가 프티 픽퓌스 수녀원에 있었던 것을 확인하고, 시 당국은 보통 속인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그 신성한 곳에 있다 나온 그를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 시 경비병으로 세웠다. 장 발장은 1년에 서버 번씩 군복을 입고 경비를 서러 나갔다. 그는 그것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했다. 세금을 내는 시민의 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의 소원이었던 것이다. 그는 내면적으로는 천사를, 외면적으로는 시민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다.
[변화]
코제트는 아직 어렸을 때, 그러니까 막 열네 살을 넘기고 아직은 성숙하지 않은 나이에 수녀원에서 나왔다.
장 발장은 모든 일에 세심한 신경과 애정을 쏟아 주었으나, 소녀의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늙은이였다.
코제트는 어린 시절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했다. 테나르디에 부부에 관한 일은 꿈속에서 보았던 두 개의 무서운 얼굴처럼 그녀의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 지옥 같은 생활에서 장 발장이 구해준 것도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녀는 장 발장이 자기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다.
장발장은 걷잡을 수 없는 깊은 실의에 잠겼다. 그는 코제트가 점점 아름답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무슨 무서운 것이라도 보듯 지켜보고 있었다.
제발 코제트가 계속해서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이 아이의 마음이 언제까지나 자기 옆에 있고 자기에게 머무는 것을 하나님이 막지 말아주시기를! 코제트의 사랑은 그에게 있어서 위로이며, 평화이며, 만족이며, 보상이었다.
마침내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치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 최초의 울렁이는 마음을 말없는 시선 속에 교환하던 날에도 코제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하나의 슬픔]
[처음과 다른 끝]
두 사람은 몸을 떨며 어둠 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모두 끝냈을 때, 더 이상 할 예기가 없게 되었을 때 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 마리우스입니다, 당신은 요? 코제트예요.
[코제트에게 주소를 알려주다]
[생각에 잠긴 장 발장]
[마리우스]
[기다리는 동안]
밀정이지? 그 계통의 사람이다. 이름은? 자베르. 앙졸라는 네 사나이들에게 신호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자베르는 목덜미를 잡힌 채 묶여서 몸수색을 당했다.
앙졸라가 말했다. 그리고 자베르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바리케이트가 점령되기 10분 전에 너를 총살하겠다.
[생 드니 구역으로]
[장엄한 절망, 군기]
앙졸라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프랑스 혁명군이다! 쏴라!
[가브로슈]
그러나 그 총검은 가브로슈의 몸을 찌르기 전에 병사의 손에서 떨어졌다. 총알 하나가 날아와서 그의 이마 한복판을 관통하여 나자빠지게 한 것이다. 또 한 방의 탄환은 쿠르페라크를 공격한 다른 병사의 가슴 한복판에 명중하여 그를 포석 위에 쓰러뜨렸다. 마리우스가 바리케이드 안으로 뛰어들면서 한 일이었다.
[화약통]
[삶의 고통 위에 죽음의 고통]
당신은 저를 못생긴 여자라고 생각하셨겠지요?
에포닌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녀가 영원히 잠들었다고 마리우스가 생각한 바로 그 순간 그녀가 눈을 뜨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거리 측량에 능한 가브로슈]
마리우스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땀방울이 맺혀있는 차디찬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코제트를 배신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행한 영혼에게 보내는 다정하고도 경건한 이별의 인사였다.
[쪽지]
사랑하는 당신께! 큰일 났어요, 아버지께서 당장에 출발하자고 하셨어요. 오늘 밤은 롬 아르메 거리 7번지에 있을 거예요. 일주일 후에는 런던에 가 있을 거예요. 6월 4일 코제트 올림.
장 발장은 비틀거리며 손에서 수첩을 떨어뜨리고 찬장 옆에 있는 낡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는 힘없이 떨어지고, 눈동자는 흐려졌으며, 정신은 몽롱해졌다.
물론 장 발장은 코제트를 딸로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부성애 속에는 모든 종류의 사랑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코제트를 친 딸처럼 사랑했고 어머니처럼 사랑했으며, 누이처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애인이라든가 아내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으므로 모든 감정 중에 가장 강한 어떤 감정이 다른 감정 속에 섞여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무지하고도 순수한 감정이었으며, 하나의 감정이라기보다는 본능이며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끌어당기는 끌림이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향해 있고 그녀가 사랑하는 이는 따로 있으며 나는 그저 아버지에 불과할 뿐 , 이제 나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를 보았을 때, 그녀가 내 손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떠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장 발장이 느낀 고통은 실로 견딜 수 없는 엄청난 것이었다. ~~~장 발장은 기계적으로 일어나 한길로 나왔다.
[등불을 싫어하는 부랑아]
가브로슈가 롬 아르메 거리에 막 도착했던 것이다. 가브로슈는 위를 쳐다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그는 장 발장을 보고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가브로슈는 다른 쪽 호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그런 뒤에 거수경례를 했다. 귀중한 서신에 대해서 경례!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임시정부로부터 온 것이에요. 여기 있어요. 그리고는 장 발장에게 편지를 건넸다. 빨리 전해 드리도록 하세요, 아저씨, 그 여자 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장 발장은 마리우스의 편지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장 발장의 눈에는 다음의 몇 구절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죽소.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무렵이면 나의 영혼이 그대 옆에서 미소 짓고 있을 것이오.
그는 속으로 환성을 질렀다. 이제 만사는 끝이 났다. 결말은 뜻밖에 빨리 와주었다. 자신의 운명을 막고 있던 사나이는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그 사나이 스스로 자진해서 없어지려 하고 있다.
밤 열한 시와 열두시 사이에 두 번 총성이 울리고 그 후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한 시간쯤 후 장 발장은 시민 병 복장으로 갈아입고 무기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문지기가 필요한 것들을 구해다 주었다. 그는 탄환을 잰 총과 탄약이 들어 있는 탄창을 들고 중앙시장 쪽으로 걸어갔다.
■ 장 발장
[다섯 명이 줄고 한 명이 늘다]
장 발장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다섯 명의 시민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다.
[밖으로 나간 가브로슈]
앙졸라는 배치를 끝내고 자베르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네놈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탁자 위에 권총 하나를 놓고 덧붙였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나가는 사람이 이 밀정의 머리통을 쏘기로 합시다. 여기서? 하고 어떤 목소리가 물었다. 안 돼요, 이놈의 시체를 우리 시체와 섞이게 해선 안 돼요. 작은 바리케이드로 데리고 가서 처치하기로 합시다. 그때 장 발장이 앞으로 나서며 앙졸라에게 물었다. 당신이 지휘자요? 그렇소. 아까 내게 고맙다고 했었지요? 그렇소. 공화국의 이름으로. 내가 그 보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시오? 물론이오. 그렇다면 한 가지 부탁을 하리다. 무엇이오? 저 사나이를 내 손으로 쏘게 해주시오. 자베르는 고개를 들어 장 발장을 보았다. 그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야겠지.
장 발장은 탁자 끝에 묶여 있는 지베르를 붙잡고 권총을 집어 들었다. 거의 동시에 나팔소리가 들렸다. 습격이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마리우스가 소리쳤다.
[복수]
장 발장은 자베르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장 발장은 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바리케이드의 네모진 빈터를 지나갔다. 묶여 있는 자베르는 간신히 방벽을 넘었다. 골목길에는 그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베르는 장 발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장 발장은 권총을 들고 자베르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은 자베르, 바로 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자베르가 말했다. 자, 이제 복수해라. 장 발장은 안주머니에서 나이프를 꺼내어 그것을 폈다. 단도로군! 하긴 너한테는 그게 더 어울릴지도 모르지. 자베르가 말했다. 장 발장은 자베르의 몸을 묶은 밧줄을 끊고 다음으로 손을 묶었던 밧줄을 끊었다. 그리고는 자베르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이제 자유요. 자베르는 그리 쉽게 놀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너무 놀라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장 발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소. 그러나 다행히 내가 여기서 빠져나간다면, 나는 포슐르방이라는 이름으로 롬 아르메 7번지에 살고 있으니 그리로 찾아오시오. 조심하시오. 자, 이제 가시오.
자베르는 대여섯 걸음 가더니 뒤돌아서서 장 발장에게 소리쳤다. 당신은 나를 괴롭히고 있군. 차라리 나를 죽여주시오!
자베르가 보이지 않게 되자, 장 발장은 하늘을 향해 총을 한방 쏘았다. 그리고 그는 바리케이드로 돌아와서 말했다. 해치웠소.
[용감한 전사들]
마리우스는 아직도 싸우고 있었으나 온몸에 부상을 당하고, 특히 머리를 심하게 다쳐서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마치 붉은 수건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리우스는 밖에 남겨졌다. 어깨에 총을 맞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듯 흔들렸다. 그의 눈은 이미 감겨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억센 손이 자기를 붙잡는 것을 느꼈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면서도 고케트를 마지막으로 떠올리며 생각했다. 나는 포로가 된 거다. 총살을 당할 것이다. 앙졸라가 술집 안으로 피한 사람들 속에 마리우스가 없는 것을 보고 역시 똑같은 생각을 했다. 병사들이 총의 개머리판과 도끼로 문을 부수고 있었다.
[포로]
마리우스는 사실상 포로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적의 포로가 아니라 장 발장의 포로였다. 그가 쓰러지는 순간 뒤에서 그를 움켜쥔 손, 그것은 장 발장의 손이었다.
[수렁, 그리고 영혼]
장 발장이 들어간 곳은 파리의 하수구였다.
6월 6일 아침, 하수도 수색명령이 내려졌다. 혹시 패잔병들이 그곳으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십자가를 지다]
장 발장의 걸음은 점점 힘겨워져 갔다.
어쩌면 숨이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마리우스는 생명이 없는 육체처럼 그의 지친 어깨를 내리눌렀다.
장 발장은 마리우스의 옷을 헤치다가 그의 주머니에서 두 가지 물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전날 밤에 넣어두고서 먹는 걸 잊었던 빵 한조각과 마리우스의 수첩이었다.
나의 이름은 마리우스 퐁메르시입니다. 나의 시체는 마레의 피유 뒤 칼베르 거리 16번지에 사시는 내 조부 질노르망 씨에게 보내주기 바랍니다.
물은 겨드랑이까지 차올랐다. 그는 몸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는 깊은 절망 속에서 코제트를 생각했다.
[찢긴 옷자락]
그렇게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어떤 손 하나가 그의 어깨 위에 얹히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우리 둘이서 나눠먹기로 하지.
테나르디에가 먼저 침묵을 깼다. 당신은 여기서 어떻게 나갈 작정이지?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도와주겠다는 거야. 장 발장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테나르디에는 그를 살인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테나르디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자네 저 사내의 주머니에 얼마가 있는지도 모르고 죽인 건 아니겠지? 내게 절반만 내놔. 그럼 문을 열어주지.
테나르디에는 마리우스의 옷을 뒤지면서 민첩한 솝씨로 장발장이 눈치 채지 못하게 마리우스의 찢어진 옷자락을 한 조각 뜯어서 자기 작업복 안에 넣었다. 그는 헝겊조각이 죽은 사나이와 죽인 사나이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장 발장은 밖으로 나왔다! 장 발장은 마리우스를 둑 위에 내려놓았다.
마리우스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나 반쯤 벌어져 있는 그의 입은 숨을 쉬고 있었다.
장 발장이 또다시 강물에 손을 넣으려고 했을 때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누군가 등 뒤에 서 있는 듯 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장 발장은 뒤를 돌아 보았다. ~~~~ 장 발장은 그가 제베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제베르는 남몰래 테나르디에를 미행하고 있었다. 테나르디에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 뿐더러 일부러 친절한 척하며 장 발장에게 철책을 열어주는 술책을 꾸몄다.
누구냐? 나요. 나가 누구냐? 장 발장이오.
나를 체포하시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내가 당신에게 부탁하려는 것이 바로 이 사나이의 일이오. 내 몸은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소. 하지만 우선 이 사나이를 그의 집으로 데려다주는 걸 도와줬으면 하오.
바리케이드에 있던 사나이로군. 자베르가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베르가 마리우스의 손을 잡고 맥을 짚었다. 죽었군. 장 발장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니, 아직 죽지 않았소.
잠시 후 한 대의 마차가 마리우스와 자베르와 장 발장을 태우고 빠른 속도로 바스티유 쪽으로 향했다.
[귀가]
[동요]
좋소, 들어가 보시오. 그리고 묘한 표정으로, 마치 말하기 힘든 것을 억지로 이야기하듯 덧붙여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소. 장 발장은 놀라서 자베르를 쳐다보았다. 이런 일은 자베르에게 결코 기대할 수 없었던 자비로운 태도였다.
장 발장은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리우스, 마리우스! 내 자식! 내 귀여운 자식! 눈을 떴구나. 나를 보고 있구나, 살았구나!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노인이 외쳤다. 그러더니 조부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
자베르는 천천히 롬 아르메 거리를 떠났다. 생전 처음으로 고개를 숙여서 걷고, 생전 처음으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자베르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 앞에 놓인 두 갈래 길을 보았다. 지금까지 직선으로 뻗은 단 하나의 길밖에는 모르고 있던 자베르는 두려움을 느꼈다. 더구나 그 두 길은 서로 ㅂ나대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 것이 참다운 길일까? 범죄자가 그의 목숨을 구해줬고 그는 부채를 인정하여 그것을 갚기 위해 범죄자를 놓아주었다. 사적인 이유로 공적인 임무를 저버렸다. 자기의 양심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사회를 배신하게 되는 현실의 부조리와 맞닥뜨린 것이다. 자베르를 놀라게 한 것은 장 발장이 그를 용서한 일이었으며, 그를 당황하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이 장 발장을 용서한 일이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장발장을 넘길까? 그것은 나쁜 일이었다. 그렇다면 장 발장을 자유롭게 놓아줄 것인가? 그것도 나쁜 일이었다.
그는 선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전과자이지만 선의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신도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조금 전에 친절한 행위를 했다. 자베르는 변한 것이다. 어찌된 일인가! 그동안 확신해 왔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다니!
[조부와 손자]
드디어 9월 7일, 마리우스가 다 죽게 된 상태로 조부의 집에 운반되어왔던 그 가슴 아픈 밤으로부터 넉 달이 지났다. 의사는 이제 위험한 고비는 넘겼으니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코제트가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질 노르망 씨는 신문기사에서 국민의회에 대하여 언급하고는 왕당파다운 경멸적인 표현을 내뱉었다. 그러자 93년에 일한 사람들은 모두 큰 인물들이었습니다. 하고 마리우스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노인은 입을 다물어버렸고, 그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리우스의 공격]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뭐냐? 결혼하고 싶습니다. 알고 있다. 조부가 말했다. 그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마리우스가 깜짝 놀라 눈이 둥그레져서 소리쳤다. 뭐라고요? 알고 계셨다구요? 그래, 그 아가씨를 데려오너라. 마리우스는 어안이 벙벙해서 현기증을 느끼며 몸을 비틀거렸다. 질 노르망 씨가 말을 이었다. 그래, 그 귀여운 아가씨를 데려오너라. 그 아가씨가 날마다 노인을 보내서 네 병세를 알아보게 하고 있단다. ~~~~롬 아르메 거리 7번지에 살고 있지? 할아버지 하고 마리우스가 감격에 찬 목소리를 냈다. ~~~둘은 같이 울기 시작했다.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다시 만났다.
트랑슐르방 씨, 나의 손자 마리우스 퐁메르시 남작이 댁의 따님에게 청혼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트랑슐르방 씨는 가볍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마리우스의 청혼에 승낙을 표시했다.
그때 포슐르방의 엄숙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외프라지 포슐르방 양은 60만 프랑의 지참금이 있소. 외프라지 양이 누구지? 저예요. 코제트가 대답했다.
[돈은 숲속에 맡겨두라]
장 발장은 자신이 자베르의 손에서 해방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떠돌고 있는 소문을 들었고, 다시 모니퇴르 지에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 그 기사에 따르면 고위 경찰관이 풍코샹즈 다리와 풍외르 다리 사이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행복에 뒤섞인 환상]
그건 당신의 것이오. 장 발장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렇다면 마리우스가 말을 이었다. 그 분을 찾아내는 데 그 돈을 모두 쓰고 싶습니다. 장 발장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잠 못 이루는 밤]
1833년 2월 16일 밤은 축복받은 밤이었다.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결혼식을 올린 날이었기 때문이다.
장 발장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촛불을 켜 들고 계단을 올라갔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지금 만약 누군가 계단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한 남자가 처절하도록 슬프게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고통의 잔 그 마지막 한 모금]
사실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소. 난 전과자요. 장 발장이 말을 받았다. 난 전과자요. 하는 말이 포슐르방 씨의 입에서 나와 분명히 마리우스의 귀에 들어가는 했지만. 그 소리는 귀로 알아들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마리우스는 무슨 말인가 듣기는 했는데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당신들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오. 어떻게 해서든 불참하려고 했었소. 내가 손가락을 다쳤다고 한 것은 위증을 하지 않기 위해서, 결혼계약서가 무효가 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서명하지 않고 끝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소. 마리우스는 말을 더듬거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다시 말해서 감옥살이를 했던 사람이란 말이오. 장 발장은 대답했다. 그럴 리가! 마리우스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했다.
모든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모두 다!
코제트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소. 안심하시오. 마리우스가 중얼거렸다. 누가 그럼 증명합니까? 나요. 마리우스가 비통한 표정의 그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무덤과도 같은 차가움 속에 진실이 느껴졌다. 당신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마리우스가 말했다. 장 발장은 안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고아였소.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는 내가 필요했소.
그런데 도대체 왜? 당신은 제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꼭 그런 말씀을 하셔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그대로 비밀로 간직하고 계실 수도 있잖습니까?
이유는 간단하오. 정직해지고 싶어서요. 내 마음 속에 한 가닥 매듭이 나를 꽁꽁 묶고 있소.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이 실은 점점 더 질겨졌소. 그 매듭을 자를 수 있다면, 그래서 내가 멀리 떠날 수 있다면 나는 구원받게 될 수 있을 거요. 당신들은 행복을 즐길 수 있고. 나는 떠나버리면 되는 것이오. 나는 그 줄을 끊어 보려고 했소. 잡아당겨서 끊어버리려고 애썼지만 도리어 내 마음이 뽑혀버릴 지경이었소. 그래서 나는 생각했소. 나는 이곳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하고 말이오. 하기야 당신 말도 옳소. 그저 이대로 잠자코 있으면 안 되었을까? 당신은 이 댁에 방까지 마련해 놓고 나를 오라고 하는데, 모두들 함께 살며 한 지붕 밑에서, 한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여름엔 함께 산책을 하고 참으로 즐거운 일이오.
모두를 속이고 종전대로 살 수도 있었소. 그것이 그녀를 위한 것이라면 거짓말도 할 수도 있었소. 하지만 이제 나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거요. 난 거짓말을 할 수 없었소. 무슨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나의 양심 때문이오. 밤새껏 나는 나 자신과 싸움을 벌였소.
왜 고백을 하느냐고 물었소? 고발을 당한 것도 추적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소? 그렇지 않소. 나는 고발당했소! 그렇고 말고! 나는 추적 당하고 있소. 누구에게? 바로 나 자신에게,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오.
살기 위해서 예전에 빵 한 조각을 훔쳤었소. 지금은 살기 위해서 하나의 이름을 훔치고 싶지 않은 것이오. 자, 부디 행복하시고, 천국에서 천사를 지키는 천사장이 되어주시오. 지옥에 빠진 한 가련한 사나이가 갓므을 헤치고 의무를 다한 이런 행동에 신경 쓰지 마시오.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한 가련한 인간일 뿐이오. 마리우스가 침착하게 말했다. 제 조부님께선 여러 방면에 친구들이 있으십니다. 당신께서 사면을 받도록 해보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비밀은 제 가슴 속 깊이 묻어두겠습니다. 마리우스가 말했다.
9년 동안 나는 그 아이의 아버지였고, 그 아이는 내 딸이었소.
의문이 이어졌다. 이 사나이는 바리케이드에 왜 왔었을까? 그는 분명 바리케이드에 있었다. 그러나 싸우지는 않았다.
이러한 의문 앞에 한 유령이 나타나서 대답했다. 자베르였다. 그제야 마리우스는 묶여 있는 자베르를 바리케이드 밖으로 끌고 나가던 장 발장의 음산한 뒷모습을 생각해 냈다. 그리고 그때의 총소리를 기억해 냈다. 틀림없이 그 밀정과 이 죄수는 서로 증오하는 사이였을 것이다. 장 발장은 복수하기 위해서 바리케이드에 왔을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베르가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왔을 것이다. 장 발장은 자베르를 죽였다. 적어도 이 점만은 확실한 것이리라.
[황혼]
이제부터는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예? 장 씨라고 부르세요. 아니면 그저 장이라고 하든지.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바보 같은 말씀이에요? 아버지는 저를 속상하게 하시는군요.
제가 행복해지는 것이 싫으세요? 천진난만함이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정곡을 찌르는 수가 있다. 그것은 코제트로서는 아무 생각 없이 불쑥 내던진 말이었으나, 장 발장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장 발장은 새파랗게 질려서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이윽고 형용할 수 없는 어조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코제트 너의 행복, 그것이 내 평생의 목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이제 사라질 것을 명령하시는구나. 코제트. 너는 행복해졌다. 그러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난 거다.
장 발장은 그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도 장 발장은 오지 않았다.
[마지막 어둠 마지막 새벽]
행복하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그것에 안주하고 있는 것일까? 인생에서 행복을 소유함으로써 인생의 진정한 목적인 의무를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마리우스는 얼떨결에 약속을 해버린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조금씩 장 발장을 자기 집에서 멀리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코제트의 머릿속에서 그를 지우게 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는 언제나 코제트와 장 발장 사이에 자기를 놓음으로써 장 발장이 그녀에게 보이지도 않고 생각나지도 않게 하려고 애썼다.
주교의 촛대는 난로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서랍에서 초를 두 자루 꺼내 촛대에 꽂았다. 가구에 의지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그는 결국 주저 않고 말았다.
[잉크병]
그 청년은 바로 나였어! 여기에 그 윗도리가 있어! 마리우스가 외쳤다. 그리고 피투성이의 낡은 검정 옷을 마룻바닥 위로 내던졌다. 그런 뒤에 그는 데나르디에의 손에서 넝마조각을 낚아채어 찢어진 옷자락에 맞춰보았다.
마리우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벌떡 일어섰다. 그는 호주머니를 뒤져 5백 프랑과 1천 프랑 짜리 지폐를 움켜쥐고 테나르디에에게 내밀었다. 네 놈은 파렴치한이야! 거짓말쟁이에다 중상모략자이고 악당이야. 네놈은 그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다가 오히려 그분의 무죄를 증명했어. 그분을 파멸시키려다가 오히려 명예를 되찾아 준 꼴이 되었어. 네 놈이야말로 도둑놈이야! 살인자는 바로 네놈이야! 나는 마음만 먹으면 네놈을 감옥으로, 아니 그보다 더한 데로도 보낼 수 있는 범죄사실을 알고 있어. 자, 악당인 네놈에게 1천 프랑을 주겠어! 그렇게 말하고 그는 1천 프랑짜리 지폐 한 장을 테나르디에에게 던졌다. 비열한 종드레드 테나르디에! 이 5백 프랑짜리 지폐도 갖고 이 집에서 꺼져버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워털루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둬. 워털루라고? 테나르디에는 1천 프랑과 5백 프랑을 주머니에 허겁지겁 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거기서 한 대령을 구해 주었었지. 장군이었지요. 테나르디에가 말했다. 대령이었어. 당신은 죄란 죄는 모두 저질렀어. 어서 꺼져버려! 3천 프랑 더 주겠어. 이것도 받아가. 내일이라도 당장 네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 네가 정말로 떠나는지 내 눈으로 지켜보겠다. 그리고 그때 네 부탁대로 2만 프랑을 줄 테니 어디로든 가서 뒈져버려! 남작님, 테나르디에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하면서 말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코제트! 코제트! 어서 이리와요! 빨리 오시오. 어서 갑시다. 바스크, 마차를 불러와! 코제트, 어서 갑시다! 아, 이럴 수가! 내 목숨을 구해준 분은 바로 그분이었어! 한시가 급해요, 어서 숄을 둘러요. 그가 외쳤다.
당신의 아버지요, 코제트! 이제야말로 정말 당신의 아버지요. 코제트, 이젠 알았어. 가브로슈를 시켜서 보낸 내 편지를 당신은 못 받았다고 했었지. 그건 그분에게 전해졌던 거요. 그래서 그분은 나를 구하기 위해 바리케이드에 오셨던 거요.
우리 그분을 모셔옵시다. 그분이 뭐라 하시든 이제 두 번 다시 헤어지지 맙시다. 우리 집에 와서 계시기만 하면, 만나 뵙기만 하면 나는 일생 그분을 존경하며 지내겠소.
[밤이 지나면 낮이]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장 발장은 문을 열러갈 힘이 없었다. 들어오시오. 장 발장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그녀가 울먹이는 소리로 외쳤다.
너로구나! 네가 와 주었구나! 아, 나를 용서해 준단 말이지! 마리우스는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내리뜨고, 복받치는 울음을 참 기 위해 입술을 실룩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버님! 그럼, 당신도 나를 용서해 주는 거요? 장 발장이 물었다. 마리우스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장 발장이 덧붙였다. 고맙소.
하나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소. 너는 사람들이 너를 저버렸다고 생각하는가? 어리석은 인간이여! 그렇지 않다.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나는 정말이지 이따금씩 아주 잠깐 동안만이라도 코제트를 만나고 싶었었소.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소. 나는 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소. 너는 그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존재야. 너는 네가 있어야 할 구석자리에 틀어박혀 있어야 해.
아닙니다. 진실이란 모든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아버님께선 모든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마들렌 씨가 바로 아버님 자신이라는 것은 왜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자베르를 구해주셨으면서 왜 그 사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제 생명을 구해주시고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까?
만약 그 하수도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당신은 나를 붙들지 않을 수 없었을 거요. 그래서 아무 말도 안했던 거요, 만약 내가 말해 버렸다면 당신은 정말 난처하게 되었을 거요.
난 이제 죽게 될 거야.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돌아가시다니요? 마리우스가 외쳤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장 발장이 숨을 깊이 쉬며 말했다. 코제트가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아버지! 아버지는 사셔야 해요. 오래 사셔야 해요. 제겐 아버지가 필요해요. 아시겠어요?
장 발장이 말했다.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오. 장 발장은 다시 코제트를 바라보았다.
의사는 장 발장의 맥을 짚어보았다. 아, 이분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당신들이었군요! 하고 의사가 말했다. 그리고는 마리우스의 귓가에 입을 대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이미 늦었습니다.
비석에는 이름을 새기지 말도록 해라. 만약 네가 이따금 와준다면 그것으로 나는 기쁘겠다.
벽장 속에 5백 프랑짜리 지폐가 한 장 들어 있소. 나는 그것을 쓰지 않고 두었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오.
코제트야, 이제 네 어머니의 이름을 말해 줄때가 된 것 같구나. 네 어머니 이름은 팡틴이다. 이 이름을 잊지 않도록 해라.
자, 이제 나는 가야겠다. 너희들은 언제까지나 서로 사랑 하거라. 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한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단다.
코제트와 마리우스는 눈물에 젖어 장 발장의 손을 잡으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의 성스러운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반듯이 누워있었다. 두 촛대의 어슴푸레한 불빛이 그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의 흰 얼굴은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의 두 손은 코제트와 마리우스가 입을 맞추는 대로 맡겨져 있었다. 그는 죽었다. 그날 밤은 별도 없고 아주 캄캄했다. 아마도 그 어둠 속에서 어떤 위대한 천사가 날개를 펴고 한 영혼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풀잎에 묻히고 빗물에 지워지고]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가까이 쓸쓸한 한구석에 메꽃 덩굴이 올라간 나무 아래로 돌이 하나 놓여 있다. 다른 돌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작용으로 곰팡이와 이기가 돌을 뒤덮여 있다. 오솔길조차 없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쉽게 발이 젖기 때문에 아무도 지나지 않는 곳. 주위에는 야생 귀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봄이면 휘파람새가 주목나무에서 지저귄다. 이 돌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다. 또 아무런 이름도 새겨져 있지 않다. - 끝
[Review]
고작 빵 한 덩이 훔친 죄로 5년 형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장발장은 어린 조카들이 굶주리는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거리의 진열장 유리를 깨고 빵 한 조각을 훔쳤다. 굶어 죽는 것보다 더 다급한 일은 없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양심의 가책은 그에게 사치였고, 스스로 죄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세 번에 걸친 탈옥 시도로 형기가 연장되어 총 19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리고 자유의 몸이 되어 세상으로 나왔을 때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전과자라는 낙인뿐이었다. 사회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여관에서는 돈을 준다고 해도 그를 내쫓았다. 잘 곳이 없어서 거리의 오두막에 들어갔다가 개에게 물려 쫓겨났다. 냉담한 현실 앞에서 그의 마음은 죄의 뉘우침보다 분노만 더했다. 아, 나는 개보다도 못하구나! 그가 외친 말이다.
가까스레 성당 신부의 도움으로 그는 사랑을 알게 되었고 잠자던 양심은 깨어났다. 그러나 타락한 양심은 그를 다시 옛날로 돌아가게 하였다. 낮에 본 여섯 벌의 은 식기와 은촛대를 훔치며 그는 갈등했지만, 선악의 싸움에서 다시 패했다.
장 발장은 숭고한 빛에 싸인 노인의 모습에 넋을 잃은 채 손에 연장을 움켜쥐고 어둠 속에서 꼼짝 않고 서있었다. 신뢰로 가득 찬 노인의 모습이 그에게 두려움을 가져다두었다. 양심의 세계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 의인의 잠자는 모습을 보며 막 나쁜 일을 저지르려던 그의 양심은 불안에 싸여 떨고 있었다.<본문>
그가 다시 붙잡혔을 때 신부는 그를 또 용서했다.
장 발장, 나의 형제여, 이제 당신은 악이 아니라 선에 속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값을 치른 것은 당신의 영혼입니다. 당신의 영혼을 잘못된 생각과 어둠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본문>
이 사건은 장발장에게 참다운 회개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장 발장은 커다란 바위위에 기진하여 쓰러졌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으며 부르짖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놈인가! 그는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으로 울기 시작했다. 19년 동안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본문>
그로부터 3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장 발장은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이제 불행 한자들을 도우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았다. 그의 어두운 과거는 완전히 감추어졌고 사회의 인정을 받아 시장직에도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겉모습뿐이었다. 그는 지난날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괴로워하며,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과거가 알려진다는 두려움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러한 장발장에게 형사 ‘자베르’는 법을 집행하는 자로서 그림자처럼 장발장의 뒤를 쫓았다. 그는 장 발장을 두 번에 걸쳐 다시 감옥으로 보냈고, 장발장은 그때마다 그 위기를 벗어났다. 그러나 자신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음에도 살려준 장 발장에게 양심의 빚을 지고 갈등했다.
“어느 것이 참다운 길일까? 범죄자가 그의 목숨을 구해줬고 그는 부채를 인정하여 그것을 갚기 위해 범죄자를 놓아주었다. 사적인 이유로 공적인 임무를 저버렸다. 자기의 양심을 배반하지 않기 위해 사회를 배신하게 되는 현실의 부조리와 맞닥뜨린 것이다.”<본문>
‘데나르디에’는 장발장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의 약점을 이용해서 얼마의 돈을 갈취하려는 파렴치한이었다. 그는 가난한 여인 팡린의 딸 코제트를 돌 바 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고, 결국 팡린은 그에 대한 부담으로 파멸을 겪고 죽어갔다. 장발장은 그러한 사정을 알고 가여운 소녀 코제트를 구하고 돌보게 되었다. 코제트는 그의 유일한 행복이자 희망이었다. 그녀의 성숙해가는 모습은 그의 상처투성이 속에 새롭게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부성애와 또 다른 것으로 혼합된 모호한 것이었다.
소설의 후반부, 시민혁명의 배경에 등장하는 귀족 출신의 청년 마리우스는 장발장에게 있어서 마지막 양심의 고백을 들어주고 용서해주는 구세주와 같다. 마리우스는 ‘코제트’와의 사랑이 빠졌고, 장발장은 혁명군에 가담하여 싸우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마리우스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자신을 그토록 끈질기게 괴롭히던 자베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리우스는 파렴치한 테나르디에게 얼마의 돈을 주어 그동안 자기 아버지에 대한 빚을 갚는 동시에 장 발장에게서 멀리 떠나가도록 하였다. 코제트를 기꺼이 마리우스 에게 보내줌으로 그녀에게 향한 모호한 사랑의 감정은 정리되었다. 장발장은 승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날 실패자의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유언에 따라 이름 없는 묘비에 자신을 남기고 사라졌다.
살기 위해서 예전에 빵 한 조각을 훔쳤었소. 지금은 살기 위해서 하나의 이름을 훔치고 싶지 않은 것이오.<본문>
가난은 인간을 비굴하고 파렴치하게 하며 자신을 합리화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변화는 감옥에 가두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며 사랑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인 것 같다. 저자는 이제 막 자유를 쟁취한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이 획득한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누려야 하는가를 ‘장 발장’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조명하고 있다. 책의 제목을 레미제라블이라고 붙인 이유가 그런 뜻이라 생각된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버림받은 사람들과 한 겹의 벽만을 사이에 두고 있지 않았던가! 자기는 그들이 손을 뻗칠 수 있는 인류의 마지막 연결고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에게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형제가 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는 그들의 불행을 한층 부채질한 결과가 되었다. 만약 그들의 이웃이 자기 같은 몽상가가 아니고 좀 더 주의 깊은 사람이었더라면 그들의 가난을 알아차리고 오래 전부터 그들을 도와주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은 너무나 타락하고 부패하고 비열하지만, 궁핍한 생활 속에서는 인간은 품위를 잃게 된다. 불쌍한 사람 과 파렴치한. 이 두 가지는 서로 구별할 수 없게 되어 레미제라블( 이 말에는 불쌍한 사람이라는 의미 외에 파렴치한이라는 의미도 있다)이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들이 구렁텅이에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더 큰 자비의 손길이 베풀어져야 하지 않겠는가?<본문>
프랑스 격동기 시대에 왕당파 집안의 어머니와 나폴레옹 군대의 장군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위고는 부모의 정치적 갈등을 보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리우스를 자신의 처지와 같게 묘사했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Go Mybook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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