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행복 하여라
권 순 경
이른 아침에 활짝 핀 꽃들이 날아든다. 친구들의 단체 카톡방에 수시로 꽃을 선물하는 부지런하고 힘이 넘치는 이경이가 오늘도 제라늄의 활짝 핀 꽃을 가득 보냈다. 여섯 명이 수다를 떠는 단톡방에 아직도 현직에 있는 친구는 이경이가 유일하다.
베란다 꽃들이 꽃잎을 열었다거나, 아침햇살이 눈부셔 살맛이 난다는 행복한 소식, 출근길에 잠시 들른 공원에서 하늘을 향해 커가는 나무들의 희망까지 우리들 방에다 잔뜩 들여놓는다.
이경이가 대문을 열고 분주히 오가면 그제야 우리는 부스스 늦은 아침잠을 털고 일어난다. 늘 펄펄 솟아나는 힘으로 유쾌한 기운을 퍼 날라주는 친구다. 그런데 그저께부터 맥없이 무너지는 소리를 낸다. 큰일 났다고 우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는 친구에게 별것 아닐 것이라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위로를 건넸다.
등이 아파서 내과 검진을 받고 미덥지 않은 결과에 첨단 의료기로 몸 구석구석을 살폈는데 무서운 의사 선생님이 심상찮은 소리를 한 모양이다. 소견으로는 별 이상이 없다며 나이 들어 몸에 탈이 난다면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혈관 질환 아니면 암(癌) 아니겠냐고 쓸데없는 부언을 하여 불안증을 슬쩍 얹어 놓았다.
그 날부터 이경이는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밤마다 가슴에 유언을 쓰면서 하소연을 해댔다. 숨막히는 일주일을 보내더니 기어이 종합병원 전문의를 수소문해서 진료를 받았다. 첨부한 의뢰서와 진단서들을 훑어본 전문의는 어이없다는 듯 ‘왜 왔느냐’고 되물었고 이경이는 ‘찝찝하고 무서워서’라고 얼버무렸다. 의사는 다시 올 필요가 없다고 단호하게 짚어주고 친구는 갑자기 죽다가 살아난 것처럼 어이없어하면서도 ‘살았구나’ 생각하는 순간 세상이 달라 보였더라는 것이다.
이경이는 요즈음 하얀 제라늄 꽃을 방안 가득 던져놓는다. 삽목을 해서 키웠다고 신통방통해하며 살가워서 늘 들여다본다며 사진으로나마 친구들에게 나누어 준다. 나도 가끔 꽃나무의 작은 가지 하나를 잘라내 심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뿌리내리기를 기다린다. 혹여 하며 걱정을 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지 공을 들인다. 때로는 말라가거나 물이 너무 많아서 무름병을 앓기도 한다. 미물이지만 살아있는 것이기에 마음이 언짢아지고 ‘좀 잘 자라지’ 지청구도 하며 혀를 찬다. 그러다가 겨우 떡잎 두 장을 달고도 튼실하게 커가는 꽃기린이나 다육이를 보면 반가워서 눈 맞춤을 한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 하라’는 법정스님의 잠언이 마법처럼 들린다. 살아보려 애를 쓰는 것에 마음이 간다. 사는 것에 정성을 쏟으며 진심을 다하는 내가, 혹은 내 이웃이 대견하기도 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는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원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루어진다고 또 다 행복한 것만도 아니다. 행복은 절로 오는 것이다.
화분에서 자라는 꽃과 아침마다 우리들을 깨우는 이경이와 늦잠에서 허우적대는 게으름뱅이들도 살아 있는 동안은 다 행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