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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증언판을 깨다 : 탈출 32,15-24
이제 모세와 하느님의 장면이 끝나고, 모세가 백성들에게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탈출 32,15 직역
모세는 돌아서서 내려왔다.
그 산으로부터
그리고 증언의 두 판들 그의 손에
쓰인 그들의 두 면들에 이쪽과 이쪽에
그들이 쓰여진
우리말로 만들기가 어렸습니다. 히브리 사람들도 뭔가를 점점 덧붙여서 만든 문장입니다.
본래의 내용은?
모세는 돌아서서 내려왔다. 그 산으로부터, 사실 이걸로 충분한 건데, 판을 들고 왔는데 그 판에는 이쪽과 이쪽에 뭔가가 쓰여있었는데 거기다 모세가 판을 들고 왔다는 것에 부연 설명하려는 의도를 히브리 말 문장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막 덧붙여 놓으니까 내용을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첫째로 신부님께서도 직역을 해 놓으셨는데 15절의 문장만으로는 두 판들의 앞뒤 양면이 다 사용된 건지 아니면 앞면만 사용된건지 또는 두 판에 똑같은 내용이 두 번 적힌 건지, 아니면 일정한 내용이 판 하나로는 부족해서 두 판까지 가 있는 건지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단지 여기서 마지막에 나온 히브리말 표현인
▶ '이쪽과 이쪽에'라는 표현으로 미루어보아 두 판의 앞 뒤 총 네 면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 시 나고 가는 그리스어로 집회라는 뜻, 성서의 표현은 유대교의 회당을 가리킴
우리는 성당에 들어가면 벽면 중앙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천주교에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계시고, 개신교 예배당에는 십자가만 있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겁니다.
유다의 시나 고가에는 우리와 같이 십자가가 있어야할 자리에 저 위에 돌판이 두개가 보입니다. 저 증거판이 유다 전통의 시나고가에는 저 자리에 잡고 있습니다.
히브리 말로 로(לא)라는 글자가 하지 마라! 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증언판을 깨다는 장면으로 들어갑니다.
탈출 32,16 직역
모세는 돌아서서 두 판을 들고 내려왔다.
그 산으로부터
탈출 32, 16 직역
그런데 그 판들은 엘로힘의 만든 것이었고
그 글은 엘로힘이 쓴 것이었다.
여기서 '엘로힘의' 또는 '엘로힘이'라는 표현을 신부님은 신적이라고 이해하신다고
▶ 엘로힘이 만든 것, 엘로힘이 쓴 것 :신적 (하느님이 만든 거룩한 것)
따라서 그 판과 그 판에 쓰인 글씨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 돌판도 하느님의 것이었고 그 글도 하느님의 것이었다.
이것을 오늘날의 우리식의 표현으로는 "그것들은 거룩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쓴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 성소,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책
이 책들은 천상에 속한 겁니다. 15절부터 16절까지 왜? 판들에 관한 이야기만 할까요? 나중에 모세가 판을 깨버립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가? 그것을 미리 얘기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 증언판을 새로 받아 옵니다만, 그 새로 받아온 증언판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쓴 증언판이 아니라 모세가 씁니다.
따라서 하느님 쓴 귀중한 증언판이 여기서 깨지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에
탈출 32,17 직역
그리고 여호수아는 들었다.
그 백성의 목소리를 그의 소음 안에서
그리고 그는 말했다. 모세에게
"목소리 전쟁 그 진영에서
탈출 24,13 모세는 일어나 자기 시종 여호수아를 데리고 하느님이 산으로 올라가면서
모세가 시나이 계약을 맺을 때 여호수아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등장합니다.
모세가 하느님 산에 있던 40일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 텍스트는 전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정보도 주지 않습니다. 단지 17절의 내용을 미루어 보아 그가 하느님 산 어딘가에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와 함께 있지는 않았습니다.
모세가 돌아서 내려오니까 여호수아가 들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백성과 모세 사이에 어디엔가 있었던 것처럼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의 소음 안에서, 따라서 이것을 우리가 그냥 알아듣는다면 하나의 소음처럼 들었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백성의 목소리를 여호수아가 들었다고 합니다.
재밌는 것은, 언어의 유희 같습니다만,
'그의 소음 안에서'라고 하면은 히브리 말로
'버라 아"
'그의 악함 안에'라고 했을 때는 '바라'
그리고 나중에 25절에 등장할 그들이 풀어져서 제멋대로 였다.라는 것은 '퍼라 아"
따라서 비슷한 발음들로 연결된 언어의 유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모세에게 목소리 전쟁 그 진영에서 - 이 부분에서 목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목소리가 있는데 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목소리 전쟁 그 진영에서
① 전쟁의 소리 ② 전쟁이라고 외치는 목소리
따라서 전쟁의 소리인지 '전쟁!!'이라고 외치는 소리인지를 이 내용만 가지고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탈출 32,18 직역
그리고 그는 말했다.
"강함을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니고
악함을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니다.
소리치는 목소리를 나는 듣는 자."
조금 이상합니다. 여호수아가 '아 무슨 소린가 소란한 소리가 들립니다. 전쟁의 소리 같습니다.' 혹은 '전쟁하고 외치는 소리 같습니다.'라고 하니까 모세가
강함의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니고 악함을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니다.라고 말하는데,
'강함' 은 승리로 '약함' 은 패배로 의역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승리를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니고 패배를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소리친다'라는 표현이 이 동사의 어떤 형태에서는 '소리친다'가 '노래한다'라는 뜻을 갖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부님은,
그리고 그는 말했다. 네가 들은 소리는 승리를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니고 패배를 소리치는 목소리도 아니다. 따라서 전쟁의 소리가 아니다. 네가 듣는 소리는 노래하는 목소리이다. 백성이 춤을 추고 노래하고 있는 소리로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탈출 32,19 직역
그리고 그가 그 진영으로 다가왔을 때
그는 보았다. 그 수송 아지아 춤을
그리고 모세의 코는 뜨거워졌다.
지난번에는 야훼의 코가 뜨거웠는데 지금은 모세의 코가 뜨거워집니다.
탈출 32,19 직역
그리고 그는 던졌다.
그의 양손으로부터 그 판들을
그리고 그는 부쉈다.
그것들을 산 아래에
7절부터 ~ 14절에서는 모세가 야훼의 분노를 달래지만 여기서는 스스로 분노하여 판들을 던져 부숩니다. 모세가 판들을 던져 부쉈다는 것은 계약의 차원에서 해석한다면 파기를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야훼는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계약서를 찢어버린 겁니다.
▶ 모세는 : 계약의 중개인인데
중개인이 계약서를 찢어버렸으니 계약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 증거가 되는 증거 판을 부숴버리는 겁니다.
7절부터 ~14절에서 야훼를 달래던 모세가 백성의 중개인으로서 백성의 편에 쓰여있었다면 여기에서의 모세는 야훼의 편에 서 있습니다.
▶ 모세의 입장 : 백성의 편(7절 ~14절), 야훼의 편(15절~24절)
맨 끝에 위치한 산 아래에, 라는 표현은 문법적으로는 아! 모세가 산 아래에서 판들을 부쉈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 본다면 모세가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서 부쉈다는 뜻으로 알아듣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탈출 32,20 직역
그리고 그는 잡았다. 그 수송아지를
그들이 만든
그리고 그는 태웠다. 불에
그리고 그는 빻았다. 그가 가루로 만들 때까지
그리고 그는 뿌렸다. 그 물의 표면에
그리고 그는 마시게 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생각해 봅시다.
금으로 만든 수송아지를 불에 태웁니다. 탈까요? 안 탈것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불에 태우로 빻습니다. 어떻게 태웠을까? 학자들이 생각하는 첫 번째 상상은
이게 금송아지라고 했지만 전부 금이 아니라 무언가로 만들고 금으로 도금을 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는 탈출기를 쓴 저자가 정말 탈출기는 열심히 썼지만 과학적인 지식을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금도 불에 탄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쓴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상을 태우고 빻고 가루로 만들고 물에 타 가지고 사람들에게 먹게 하고 하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나오는 우상 파괴의 형식 중에 하나입니다.
20절 (주석 학자들의 해석) : 고대 우상 파괴 형식
이게 어떤 거냐면?
A라는 나라와 B라는 나라가 서로 싸웠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사이가 아주 안 좋습니다. A라는 나라가 B라는 나라를 공격해 들어가서 그곳 신전에서 신상을 꺼내다가 완전히 부숴버리고 태우고 빻고 그리고 가루로 만들어서 그것을 B라는 나라의 백성들에게 마시게 합니다.
굉장히 참혹한 겁니다. 키우던 개를 먹게 한다던지... 그러한 극악한 범죄..
패전한 나라의 신상이 그렇게 수모를 겪는 그런 어떤 것들이 여기에서 반영된 것이 아닐까? 또는 전체적으로 여기서 탈출기 저자가 얘기한 것은 그렇게 자신들이 야훼 하느님이라고 생각했던 그 우상을 완전히 빻고 그 우상 자체를 멸절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것을 먹음으로 해서 일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잘못한 죄로부터 속죄나 어떤 정화 과정을 의도한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 저자들이 이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20절 (주석 학자들의 해석) : 이스라엘 백성의 속죄 또는 정화를 의도한 것
고대 근동의 전쟁에서 진 나라가 겪는 우상 파괴의 수모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상이 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 우상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소재로 만들어지고 금으로 입혀진 그런 우상일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조선 사람들은 금을 먹습니다. 청심환을 보면 금을 계속 두드려서 얇게 만든 다음에 그걸로 쌓아가지고 보관을 하고 나중에 그것을 먹습니다. 하지만 금송아지를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겠죠?
탈출 32,21 직역
그리고 모세는 말했다.
아론에게
"이 백성이 무엇을 너에게 하였는가?
너는 그의 위로 오게 했다. 큰 죄가"
아론에게 추궁하는 겁니다. 수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이 아론임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아론의 죄를 고발하지 않고 아론으로 인해 백성이 지은 큰 죄에 대해서만 따집니다.
따라서 모세는 아론에게 지도자로서의 책임만을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는 백성의 어떤 위협적인 요청 때문에 아론이 어쩔 수 없이 수송아지를 만들었다고 보는 그와 같은 관점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백성과 아론을 한데 묶지 않고 아론에게는 조금 다른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자, 아론이 말합니다.
탈출 32,22 직역
'내 주인의 코가 뜨거워지지 않기를"
모세가 야훼 하느님을 달랬듯이 아론이 모세를 달랩니다.
탈출 32,22 직역
"당신은 압니다. 그 백성을
그가 악함에 있다는 것을"
모세는 야훼를 달래면서 가상적인 이집트인들의 조롱을 예상하게 하고 또 야훼가 성조들에게 한 맹세를 기억시킴으로써 야훼를 달랬다면 아론은 이미 모세가 알고 있는 사실 즉, 백성의 악함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를 달랩니다.
그들은 악하다.
창세 8,21-22 노아의 홍수를 전후한 대목에서,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땅이 있는 한 씨 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노아의 제물을 받으시면서 하느님께서 생각한 대목입니다. 성경을 읽어나가면서 하느님의 자비에 관해서 묵상해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 안에 내면에서 생기는 악한 마음들, 유혹들로부터 나에 영혼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관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체험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탈출 32,23 직역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를 위해 만드시오. 엘로힘을
우리 앞에 걸어갈
이 모세 우리를 올라가게 한 그 남자
이집트 땅으로부터 우리는 알지 못한다.
무엇이 그에게 있었는지'
따라서 여기서 아론은 모세가 추궁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아론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앞에서 한 내용
자, 이것만 빼고는 문자 그대로 일치를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아담이 하와가 죄를 미루는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미루는 아론입니다.
탈출 32,24 직역
그러고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누구에게 금이 있는가?'
그리고 나서 접속사 없이 다음 문장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던졌다. 불로
그리고 이 수송아지가 나왔다.
이 대목이 조금 번역에 애매함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금이 있는가? 그다음에 그들은 떼었다.라고 나오는 히브리말 동사를 보면?
'누구에게 금이 있는가?' (주석 학자들의 해석)
① 그들은 떼었다. ② 너희들은 떼어라
두 개다 가능성을 열어 놓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형태가 아론의 변명에 더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아론은 누구에게 금이 있는가?라고 질문만 했는데 그들이 떼어가지고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론에게 그것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불로 던졌다. 그랬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왔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읽기에는 황당하지만 주석가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봅니다.
주석가들은 불로 던졌다. 수송아지가 나왔다.라는 것이 던지고 나오고 하는 동사들이 단순하게 이해해서는 안 되고 히브리어 안에서는 무언가를 불로 던졌다. 그것이 나왔다. 라는 것이 일종의 제련의 과정을 표현하는 동사일 수 있다.라고 합니다.
던져서 나왔다 (주석 학자들의 해석)
① 제련의 과정을 표현한 동사 : 대장장이가 쇠를 불로 던졌더니 칼이 나왔다.
이와 같은 표현들이 히브리 말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고,
② 우상이 스스로 만들어진 것을 묘사 : 고대 근동에서 신화적인 그림입니다. 우상이 인간의 손으로 가 아니라 스스로 생성되는 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에서 어디 땅에다가 나무 같은 것을 묻어놓고 열흘 있다 가서 파 보았더니 우상 하나가 나왔더라.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고대 근동에서 있는 겁니다.
따라서 아론의 표현도 그런 고대 근동에서 우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문학적으로 사용되던 그런 어떤 표현이 이 안에 담겨있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이 전체적인 문맥 안에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증언, 증인, 그리고 증언의 개념입니다. 조금 단어를 구별해서 말씀드린다면
증거는 에다, עדה
증인은 앝
증언은 에둩, עדות
따라서 앗뜨, 라는 그와 같은 어간과 다 관련이 돼있습니다. 증인, 증거, 증언은 모두 법정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는 그 법정의 개념이 약간 신학적으로 해석되면서 그것이 우리가 흔히 증인이 될 수 있고 증거가 될 수 있는, 뭐 이런 것들이 다 대상이 되는 경우가 발견이 됩니다.
증인 증언 증거
창세기에서는 ( 돌무더기 -증인)
신명기에서는 노래가 증인이 됩니다..(노래 -증인)
여 호수 아기에서 몇몇 지파들이 요르단 강가에다가 제단을 세우니까 여호수아와 나머지 지파들이 그것을 좋지 않게 봅니다. 그리고 그곳에 싸우러 가니까 몇몇 지파들이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 제단은 제사를 지내려고 만든 제단이 아닙니다. 이 제단은 단지 제단에 모형일 뿐이고....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인의 역할만 하는 그와 같은 제단입니다. 몇몇 지파들이 거기다 제단을 세우고 그렇게 자기들의 제단에서 자가들의 신에게 지낸다면 그들과 여호수아를 따르는 지파들 사이는 사실은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격하게 반응하고 그들은 깜짝 놀라서 변명을 하는 겁니다. (제단- 증인)
한 가지 재밌는 것은?
▶에다, 라는 단어는 증거를 뜻하기도 하고 또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도 히브리 말로 바꾸면 에다입니다.
▶그 "에다"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증거하고 증언하기 위해서
오늘날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 사건을 증언하고 증거 하기 위해서, 그렇게 교회 안에서, 교회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증거의 삶을 산 사람들을 우리는 1차적인 단어로 순교자라고 부릅니다.
라틴어로는 (Martyrium, 마르티 리움)이라고 하는데, 그 순교에 본래의 의미는 증거자, 라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사건에 대한 하나의 증거의 삶을 살았다.
모세가 그런 판들을 부숴버리는 장면을 통해서 계약의 파기가 상징되듯이,
즈카 11장에서는
즈카 11,10
나는 '호의' 라는 지팡이를 집어 들고 부러뜨려,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맺은 계약을 깨 버렸다.
나는 '일치'라는 둘째 지파이를 부러뜨려,
유다와 이스라엘의 형제 관계를 깨버렸다.
예언자가 지팡이 두 개를 부러뜨리는 겁니다. 하나의 지팡이는 호의, 다른 하나는 일치, 라는 지팡이였습니다. 모세가 판들을 부숴버리듯이,
신명 7,25은 신상은 불에 태우고 그것들 위에 입혀진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수송아지도 도금이다.라는 것에 근거가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신명 7,25
º 너희는 그들의 신상들을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그리고 너희는 그것들 위에 입혀진 은이나 금을 탐내어 너희 것으로 삼지 마라. 그러면 너희가 덫에 걸릴 것이다. 정녕 그런 짓은 주 너희 하느님께 역겨운 짓이다.
신명 9,21은 우리가 지금 읽은 대목을 얘기하면서 조금은 다르게 묘사합니다.
신명 9,21
º 그리고 나는 너희가 만든 죄악, 곧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에 태우고 그것을 부순 다음, 먼지 같은 가루가 될 때까지 잘게 갈아, 산에서 내려오는 시내에 내버렸다.
신명기가 전하는 내용과 탈출기의 내용이 약간 충돌합니다.
민수 5,11-31 간통 혐의를 받는 여자,
사제가 부정하다고 의심받는 여인에게 저주를 부르는 쓴 물을 마시는 의식을 언급합니다. 그 여인이 저주를 부르는 쓴 물을 먹고 만약에 그 여인이 부정하다면 그 여인은 죽게 됩니다. 반면에 괜찮다면 괜찮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를 부르는 쓴 물이라는 게 먹고 안 아프길 좀 어려울 것입니다. 옛날에 중세 때 마녀 사냥을 하면, 마녀를 밝히는 의식 중에 마녀의 다리에다가 아주 무거운 돌을 묶어서 연못에 던집니다. 그래서 떠오르면 마녀고 안 떠오르면 마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차피 죽습니다. 마녀 사냥의 얘기가 나오면은 가톨릭 교회나 개신교회가 다 관련이 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전체적으로 역사 안에서 굉장히 반성해야 될 부분입니다.
레위 14,1-32 : 악성 피부병 환자의 정결례, 또는 신명 21,1-9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에 대한 속죄 의식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민수 19,1-22 정화의 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이것은, 고대의 제의적인 전통을 갖고 있는 것을 구약 성경에서 다시금 발견할 수 있게 되는 내용입니다.
▶ 구약의 속죄 의식 공통점은 : 고대의 제의적인 전통
예레 8,14 에서도 독이 든 물을 마시게 하는 야훼에 대해서 언급하고 예언자는 이를 야훼의 심판으로 알아듣는 그와 같은 내용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선 내용에서 모세가 아론을 꾸짖으면서 '큰 죄를 백성의 위로 오게 했다.'라고 꾸짖는데 똑같은 내용을 창세 20,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야단치면서 똑같은 내용을 얘기합니다.
감사합니다. 💓🙏
첫댓글 아멘~!! 고맙습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