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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사랑안에 머물며
형제애로 피조물인
서로에게 기쁨과 감사함이 되어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01. 모임 일시 및 장소
ㅇ일시 : 2025년 1월 05일 일요일 오전 10시
ㅇ장소 : : 6호선 디지털미디어역 6번출구(안) 에서 모인후에 봉산으로 올라갑니다..
02. 코스 :!!!
디지털 미디어 시티역 ○---○ 수색성당 사거리 ○---○ 봉산들머리 ○---○ 은평둘레길 (봉수대방면) ○---○
봉산팥배나무길 ○---○ 봉산자연공원 전망대 ○---○
봉산봉수대 ○---○ 편백누리마루쉼터 ○---○ 구산역 (4시간)
※ 상황에 따라서 코스가 조정. 단축될수도 있습니다.
※ 구간 거리 ; 약 7km
※ 소요시간 ; 약 4 시간
03.준비물
- (경)등산화. 식수. 기부금 1,000원
04.난이도 : " 하 "
05.진행자 : 이재전프란치스코
010~4224~1965
06. 참가인원 (존칭은 생략입니다)
01. 김성일임마뉴엘
02. 박혜경마리아고레띠
03.최성희아녜스
04. 신오기레오폴드
05. 이은숙아녜스
06. 송한일알퐁소
07. 이재전프란치스코
디지털미디어역에서 나와 봉산가는 길에 있는 수색성당입니다.
1909년 5월 21일 약현(현 중림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행주 본당으로 승격되었어요. 1957년 성당을 이전하고
수색 본당으로 개칭되었습니다
초대 신부님으로는 김원영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 부임하였구오
수색 본당은 1909년 설립된 행주 본당으로부터 시작되며
1899년 행주 공소가 약현 본당 주임 두세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대요
이후 1년만에 신자 수가 2배가 늘어나면서 행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22년 초대 주임 신부님이 부임하면서 성당도 증축되었습니다.
한때 신부가 파견되지 않아 다시 공소로 격하되었다가 2대 주임 김성환 신부가 부임하면서 다시 본당으로 부활되었습니다.
현 성당은 1990년 5월 26일 신축되어 봉헌된 성당입니다.
성당을 지나와서 봉산입구에 들어서자
놀랍게도 바로 산같은 산이 펼쳐져서 신기하였어요
봉산 들머리로 들어온지 1분정도밖에 안되었는데요~
성당을 지나온지 불과 10여분밖에 안되었는데
나무터널을 만나게 되어 므흣하였습니다..
겨울이라서 조금은 황량한듯 느낌이지만
여릉.가을은 온전한 나무터널의 느낌을 줍니다
편백정에서..
봉산정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 사이에 있는 봉산은
서울 서쪽의 경계를 이룬 산이에요.
높이는 209m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 많아 만만히 볼 코스는 아닌 편이에요
봉산 정상에는 봉수대와 봉수정이라는 정자가 설치되어 있구요.
봉산 정상에서 한강 방향으로 강물을 붉게 물들이며 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산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는 봉산해맞이길 코스인데요.
봉산 정상에는 해맞이공원이 있어
서울 은평구의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볼 수 있어요
또한 봉산해맞이길 ! 순금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황금사원 수국사가 있습니다.
낮에 봐도 아름답게 빛나지만
노을이 지면 황금빛 하늘과 사원이 함께 어우러져
더욱 눈부신 풍경을 만날 수 있다고 해요
▷ 봉산정
봉산은 일명 봉령산으로 조선 시대에 서울 무악 봉수로 이어지는
봉수대가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해발고도는 209m정도로서 봉산의 정상이기도 하지만
서울시 은평구 구산동과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향동동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산의 이름은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마치 봉황의 날개를 펴고
평화롭게 앉아 있는 형상에서 유래하였어요
또한 이곳 봉수대 자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인근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여 횃불을 밝히고
만세 시위를 벌인 장소로 의미가 있습니다
봉산은 남북으로 늘어선 산인데 산책로 1.2.3 코스로
고양시에서 만들었어요
1코스는 빨간색 2코스는 노란색 3코스는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파란색은 능선을 따라서 남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봉산등산로이며
서울둘레길 7코스이기도 합니다..
허준은 그의 저서 **"동의보감"**에서
건강에 대한 다양한 철학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며,
균형 잡힌 삶과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했습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은
허준의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1. 움직임과 건강의 중요성
허준은 몸을 활발히 움직이는 것이 기혈 순환과 건강 유지에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규칙적인 걷기와 같은 활동은 소화 기능을 돕고, 몸 안의 에너지를 순환시켜 만성 질환을 예방한다고 강조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식을 통한 영양 섭취도 중요하지만, 움직임을 통해
체내 시스템을 활성화하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한
건강을 만든다는 철학입니다.
걷기는 특별한 도구나 비용 없이도 실천 가능한 가장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2. 중용의 중요성
허준은 과유불급(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음)을 경계했습니다. 좋은 음식이라도 과하면 해가 될 수 있으나, 걷기는 몸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구에게나 유익하다고 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적 시각에서의 적용
오늘날에도 걷기는 가장 좋은 운동으로 꼽히며, 심혈관 건강, 정신 건강, 체중 관리 등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허준의 철학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건강 원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철학이 허준의 직접적인 글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인하려면 "동의보감"의 관련 구절을 더 자세히 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등산리본이 다시 뜨고 있다고 해요.
코로나로 유입된 등산객들 중 일부는 개인적으로 산행을 기념하기 위해 등산리본을 제작하고 있고, 지자체나 관할 경찰서에서도
조난을 예방하기 위해 등산리본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등산리본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경관을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등산리본은 과연 흉물인가, 아니면 훌륭한 길잡이인가?
등산리본 7문 7답을 통해 알아봅니다.
1 등산리본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원로 산악인들은 대부분 등산리본의 시작을
1970년대로 말하고 있다. 처음엔 자연보호, 산불조심과 같은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설치됐다. 이후 산악회 중심의
단체산행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뒤따라오는 산악회 회원에게 길을 알려 주는 것이 주목적이 돼었다.
2 등산리본은 어떻게 변했나?
1970~1980년대 등산리본이 처음 출현했을 때에는
따로 표시가 없거나, 적혀 있더라도 목적지 방향이나 산 이름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 산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등산리본의 디자인과 문구가 본격적으로 다양해졌고, 이는 1990년대에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이 시기 등산리본에는 산악회를 홍보하기 위해
산악회 이름과 전화번호를 첨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유독 한국에서 등산리본 문화가 발달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 특유의 패거리 문화(단체 산행)와
과시 문화(등정 증명)가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인공물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경관을 망친다는 지적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안내산악회 홍보도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전단지 홍보는 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등산리본 설치에 대한 항의 전화가 오는 탓에
연락처를 밝히는 경우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3 등산리본 중 가장 많은 색깔은?
송기헌 전 청운대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수거한
891개 리본 중 노란색이 전체의 약 45.5%로 제일 많았다.
다음은 빨간색(20.7%)이고 이어서 흰색(9.7%), 주황색(9.3%) 순이었다. 기타 색도 13.4%를 차지하고 있다.
송 교수는 “노란색이 사시사철 가장 눈에 잘 띄고, 색채학에서 노란색은 명시, 주의를 나타낸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4 등산리본은 왜 흉물이 됐나?
2010년대 들어 등산리본이 흉물 취급을 받게 된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환경오염이다.
등산리본을 거는 형태에 따라 나뭇가지의 생장을 방해하기도 하고,
잘 썩지 않는 소재로 만든 경우 토양을 오염시킬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상기의 송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서 수거한
891개 리본의 소재는 65%가 헝겊이나 천, 30%가 비닐, 4%가 플라스틱이었다고 한다. 헝겊의 경우 비바람에 금방 해지고 변색돼 경관을 훼손하기 일쑤며,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유해성은
두 말할 것 없다.
두 번째는 GPS와 스마트폰의 상용화다.
종이지도와 나침반에 의존해 길을 찾아야 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스마트기기를 통해 편리하게 독도할 수 있어
길을 잃을 염려가 적다.
5 등산리본은 이젠 없어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인가?
많은 사람들이 등산리본의 폐해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용된 등산리본에 국한된 이야기다.
등산 전문가들은 여전히 등산리본이 산행길잡이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있다고 얘기한다.
들날머리를 찾기조차 힘든 지맥길이나 등산로가 눈에 쌓여
보이지 않는 동계가 대표적인 예다.
또한 스마트폰이나 GPS가 항상 잘 작동하리란 보장도 없다.
또한 등산리본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용해 조난 예방에
힘쓰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인제군 방태산이다.
6 국립공원공단은 등산리본을 어떻게 관리하나?
국립공원공단은 현재 탐방로나 안내지도, 이정표가 충분히 정비돼 있어 등산리본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한 이정표가 없더라도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등산리본은 산악회 홍보 또는 등산 기념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있어 주된 기능을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 내 산악회나 개인의 등산리본 설치는
허용되지 않는다. 등산리본을 설치하는 행위는 쓰레기 투기 및 자연생태계와 자연경관의 보전관리에 현저한 장애가 되는 행위에 해당해 과태료처분의 대상이 된다
7 등산리본은 아무 데나 걸어도 되나?
반대로, 수거해도 되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국립공원은 등산리본을 걸면 안 된다.
그러나 국립공원 외 일반산림은 애매하다.
법으로 처분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
먼저 법적인 관점에서 등산리본 설치를 보자.
서울 소재 법무법인 A변호사는 “등산리본 설치를 굳이 처벌한다면 경범죄처벌법 3조 15항의 자연훼손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등산리본에 관한 법규가 명확하지 않은 현재로선 법리적으로 붙이는 것도, 떼는 것도 처벌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는 대로 등산리본을 다 떼고 다니라는 것은 아니다. 등산의 관점에서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이상적인 것은 등산리본 부착을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곳에 붙은 등산리본은 해당 코스를
잘 아는 지역산악회나 해당 지자체 산림과가 주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사실 가장 등산리본 설치가 왕성하던 1990년대, 이미 선배 산꾼들은 어떻게 등산리본을 관리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다음은 1992년 3월호 월간<山>에 실린 이충호씨의 글이다.
‘이기심과 명예욕에 사로잡힌 주인이 단 등산리본은 아름다운 문구에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뒤따르는 등산객에게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주인이 단 리본은 반가움은 물론 용기까지 불러일으켜 준다. 무분별하게 단 등산리본은 다른 사람의 산행을 단조롭게 하고, 산을 더럽히므로 사라져야 한다.
저 머메리가 야단치기 전에.’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4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은평구 봉산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산으로,
주민들과 등산객들에게 사랑받는 산책 및 등산 코스입니다.
봉산은 비교적 낮은 산이어서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좋으며,
정상에서는 서울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이 특징입니다.
봉산 주변에는 한옥마을이나 북한산과 같은 관광명소도 가까워서 방문 후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편백나무는 일본과 한국에 자생하는 상록 침엽수로,
뛰어난 항균성과 자연 치유 효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은은한 향과 함께 피톤치드를 방출해 심신을 안정시키고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가 있어 인기가 높습니다.
편백나무의 주요 특징:
1. 피톤치드 방출
스트레스 해소와 면역력 강화에 도움을 줍니다.
편백나무 숲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항균성
편백나무로 만든 제품은 곰팡이나 세균 번식을 억제해 실내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해 줍니다.
3. 활용 분야
건축재: 방, 사우나, 가구 등에 사용.
건강 제품: 편백나무 베개, 칩, 오일 등이 인기.
4. 주요 서식지
편백나무 숲은 전라남도 장흥과 경남 함양 등지에
널리 조성되어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인공 조성된 숲이나 자연 환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눈이 쌓인 이정표들..
전망대앞 쉼터..
눈에 덮인 나무들
사쥔을 좀잘받으시는듯한 마리아고레띠님
봉산정
▷ 봉수대
봉산의 봉수대로 올라가는 길은 전망이 정말 좋습니다
봉산은 봉령산(鳳嶺山)이라고도 하였는데
산의 정상에서 좌우로 산줄기가 봉화의 날개처럼 뻗어 나가
붙여진 별칭이라고 해요..
이 봉수대 자리에서 3·1운동 당시 마을 주민들이 모여
횃불을 밝히고 만세시위를 벌였습니다..
봉수대에서의 남과 여.
눈꽃들이 매돨린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독수리5형제..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 여기 위치는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하고 있지만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서 서울시 은평구와의
경게선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 관계로 봉산에서 내려다 보는 view 가
서울의 산이라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서 봉산으로 불리우고 있는데요
높이는 비록 좀낮아도 코스를 어디로 택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짧게 또는 멀리 오래 걸을수 있는곳이 봉산입니다..
수국사(守國寺)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절이예요
원래 평범한 절이었으나 1992년 재건축 이후 사찰 전체가 금박으로 씌워진 황금사찰이기도합니다
수국사는 세조대왕의 큰 아들인 의경세자(懿敬世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덕종으로 추존하고 넋을 위로하고자 1459년(세조 5)에
그의 능 근처에 정인사(正因寺)를 창건하였습니다.
이후에 사찰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 짓고 수국사(守國寺)로 개명하여
왕실을 안녕과 수복을 축원하는 원찰(願刹)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해요
※ 수국사는 사실 계획도 있었기도 하고 가볼까도 하였지만 시간관계상(?) 가지를 못하고 다음에 기회가 있을때 가보는 걸루요~^^
산행을 끝냐후에 맞나는 늦은 점심시간입니다..
오늘 봉산 설경 산행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
함께 할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좋았습니다..
눈오는 날에 조~금은 힘들었을텐데
댁에 잘들어가셔서 푹 쉬시기를 기원합니다 ~^^
눈. 비 소식이 있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고
눈만 오전에 와서 설경을 이룬 나무들과 산을 보며
즐거운 마음이고 행복하였습니다...
첫댓글 덕분에 새해 눈 길 산행 좋았습니다. 동네 뒷 동산 같은 봉산 오솔길, 반겨 주는 눈 꽃 💐 추억으로.
다가오는 2월에도 걷기를 할 예정입니다.
한탄강으로 가자는 의견이 있구요
다른 의견 없으시면 그렇게 될듯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