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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들을 위한 율법 설명 An Explanation of the Law for Pastors
샬롬! 가을의 하늘은 맑고 높습니다. 공기는 상쾌하고 기후는 생활하기 딱 좋습니다. 모두가 가을의 정취를 즐기기 위해서 차를 타고 산으로 들로 갈 때 목사님들께서는 설교와 심방 그리고 성경의 공부로 바쁘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독립교단에 소속이 된 김정관 목사입니다. 인터넷으로 이렇게 복음을 전합니다. 교회도 없이 앞으로 백만 교회의 타이틀로 교회를 세우고자 합니다. 많은 준비가 되어 큰 교회가 곧 세워지게 되리라 믿습니다.
목사님들께서는 평신도와 달리 신학도 제대로 하시고 일생을 성경을 끼고 공부하고 전하니 성경의 어느 부분이든지 그렇게 생소한 부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문제에 오면 정말로 법을 잘 전공하고 이 법적 마인드를 갖고 율법을 보지 않으면 율법에 대해서 이해가 어렵고 법이기에 더욱 가까이 가는 것도 정말 쉽지가 않은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 교리의 이신칭의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신앙생활의 기준도 율법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믿음을 중심으로 하기에 이리저리 율법을 잘 배우기도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다가 평신도의 율법 공부에 대한 요구도 너무나 없기에 율법을 잘 배워서 지켜야 한다는 설교도 어려운 거입니다. 실제로 제가 유튜브에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놓고 설교를 한 예를 찾아도 오직 수서 교회 황 목사님의 설교 외에는 전무함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40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이 부분에 대한 설교를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거의 모든 목사가 이 부분에 대해서 설교도 아니하고 또 관심도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제 군산 에바다 교회에서 설교를 한 내용을 바탕으로 은혜를 같이 나누고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율법을 배움에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입었습니다. 행정고시 공부를 하기 위해서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잘되지 않고 세상에 살면서 밑바닥에서 불법이 자행이 되어도 그대로 당해야 했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면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바른 세상이 됨에 있어서 사실상 포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제게 율법을 보게 하셨습니다. 제가 율법을 보았을 때 비로소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 수가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율법대로만 세상이 믿는 이들에 의해서 되다면 이 땅에 너무나 살기 좋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가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관심을 갖고 보게 되고 율법을 찬양하고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율법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예수님께서 맡기신 말씀 사역을 제대로 할 수가 없음도 보았으니 우리가 잘 이해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마태복음 13장 52절의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개역개정으로 그 의미를 정말로 잘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 구절을 따로 설명을 하지지 않았습니다.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저는 대학원을 두 곳이나 나왔지만 이 구절을 그대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동 번역을 봅니다. 공동 번역은 저는 개역개정으로 이해가 아니 될 때 반드시 참고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신학도 성경 연구도 없이 그냥 본문의 설명이 그대로 되는 경우고 많기에 그렇습니다.
마 13: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제자 된 서기관을 하늘나라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로 풀어서 아주 쉽게 이해가 됩니다. 서기관이라 말은 사무관 다음의 행정부에서 직급입니다. 그리고 서기관은 무언가 기록을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율법학자로 쉽게 풀었고 제자 된 의미도 교육을 받음으로 쉽게 풀었습니다. 이렇게 해도 역시 무언가 답답합니다. 그럴 때 영어를 보면 또 많이 보입니다. 이제 여기서 헬라어로 가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마 13: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NIV)
이 말씀을 하실 때 우리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답답하심이 극에 달하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지금 율법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가 없는 모든 목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그때보다 비교가 되지 않게 더욱더 답답하실 것입니다. 절대로 한 명도 이에 대해서 예외가 없을 것입니다. 무려 그때보다 2000년이나 지났고 성령까지 주셨는데도 율법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고 사는 모든 목사를 바로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우리는 곧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목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영어를 제가 번역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산에 모인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모든 율법학자는 주인이 그의 창고에서 옛 보물도 꺼내고 새 보물도 꺼내는 것과 같이 된다로 되어 있습니다. 옛 것 새것이 아니라 보물입니다. 창고가 그냥 창고가 아니라 보물 창고입니다. 그런데 옛 보물은 무엇이며 새 보물을 무엇입니까? 그리고 주인은 누구입니까? 이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율법학자가 있는데 그 교육을 누가 시킵니까? 제 아내가 러시아에서 대학을 나오고 신학도 하고 살다가 저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러시아 학과를 졸업한 여자와 제 아내를 러시아어 공부나 러시아에 가서 일을 하고자 할 때 누구를 선택합니까? 한국인이 아무리 영어를 잘 해도 영어는 미국인에게 배웁니다. 당연히 제 아내가 선택을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러시아에 살아서 러시아 문화도 음식도 예절도 다 알고 말도 표준어로 능통합니다. 천국에 대한 교육은 천국을 가서 보았거나 산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왕으로 계시던 분이 바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나중에 천국에 가고 못 가고를 율법으로 심판도 하실 분이 오셨습니다. 이들이 반드시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베드로와 같은 어부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덤비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심지어 멸시까지 합니다. 미칠 수가 있는 일입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날 일입니다. 패서 죽이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 참고 사시니 얼마나 화가 나십니까? 그래서 독사의 자식들아! 위선자야 하신 것입니다. 아주 약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옛 보물을 나누고 새 보물을 나누는 것을 율법학자로 한정한 것에 대해서 이해를 또 해야 합니다. 그전에 옛 보물은 무엇이며 새 보물을 무엇인지 보아야 합니다. 당연히 구약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입니다. 신약의 말씀은 이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대로 신약의 말씀이 됩니다. 보물 창고는 신 구약 말씀으로 볼 수도 있고 또 다른 의미로도 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이사야서도 언급합니다.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를 다 언급하시면서 자신이 구약에 약속이 된 메시야 임을 제자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구약에 대해서 특히 율법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예수님을 아는데 필수적입니다. 구약의 1000년의 피를 흘리는 제사 제도가 곧 자신이 겪을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언서도 수도 없이 자신의 오심과 사역과 부활에 대해서 예언을 하니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이해하고 말씀을 나중에 제자들이 성도들에게 나눌 때 반드시 구약을 잘 이해를 하고 예수님의 신약의 말씀도 잘 이해를 해야 비로소 올바른 진리를 전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증거를 할 수가 있기에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때 율법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도 제대로 이해가 어렵고 세울 수도 없기에 반드시 구약을 잘 배운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겸손히 나아와서 천국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잘 배워야 했던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듯이 구약과 신약을 공히 잘 성도에게 먹일 사람을 찾으셨고 그 자격이 율법학자와 같이 구약의 달인이 먼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천국에 대해서는 자신 외에는 당시에 가르칠 사람이 없기에 그렇게 자신에게 나와서 배우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들이 연합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셨다가 이 율법학자를 제자로 삼아서 자신과 같이 말씀을 나누게 하시니 바울 사도가 선택이 되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리고 거듭나게 되어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합니다. 이 변화에 아나니야가 큰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가 약 20년이 지났을 무렵 고린도에서 로마로 편지를 보내니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법적인 서적으로 구약의 율법과 믿음의 관계를 그리고 행위의 관계를 정밀하게 분석합니다. 절대로 법학자가 아니면 로마서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천국에 대해서 잘 배우고 구약도 신약도 잘 적재적소에 섞어서 기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을 하시듯이 우리에게 옛 보물 새 보물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모든 목사는 이렇게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직 믿음하고 율법은 아니다 하고 행위도 아닌데 하고 율법을 율법학자와 같이 배우지 않고 성경을 보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자 하면 실로 그 깊이와 넓이와 성경의 이해는 진실로 절반도 되지 않고 보물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목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어쩔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열받은 분들이 넌 뭐야 하고 덤빌 수가 있습니다. 화도 날 것입니다. 뭐가 이렇게 나와서 이런 소리를 하냐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베드로와 같이 바울과 같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를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이렇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온 세상에 전합니다. 지금은 비록 100만을 향해서 가지만 일천만이 곧 제 글을 읽고 수억 명이 읽고 이대로 따라갈 것입니다. 하고 대답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더 화가 나시는 분은 이전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덤비듯이 덤빌 것입니다. 덤비시기 바랍니다. 논리로 정연하게 덤비시고 성령을 받고 덤비시고 전도를 30년 정도 하고 덤비시고 성경을 읽고 정리를 30년쯤 하고 덤비시기 바랍니다. 하고 대답을 미리 준비를 했습니다.
더 무섭고 무서운 곳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이 아주 멉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5장 17-20절을 함께 보십니다. 무서운 말씀이 있습니다. 주로 믿는 예수님의 말씀이지 신학이 아닙니다. 그냥 이대로 되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말씀이 있습니다. 일생을 목사로서 한국에 사는 목사로서 한 번도 성도들에게 전하지 않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제가 온 세상에 전합니다.
예수와 율법(개역개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율법의 완성(공동번역)
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말씀은 설명이 필요가 없이 그대로 읽고 그대로 이해를 하면 됩니다. 즉 율법을 잘 배우고 작은 조문도 잘 지키면서 이렇게 해야 된다 하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 영원토록 큰 자로 삽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 어떤 조문은 버리고 가르치지도 않고 또 자신도 행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사람은 천국에 가기는 가는데 영원토록 지극히 작은 자로 산다고 합니다. 그냥 작은 자가 아니라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지극히 작은 자로 삽니다. 이렇게 살고 싶은 성도는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또 있습니다. 공동 번역을 그대로 옮깁니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결코 천국에 못 간다 하는 말씀은 죽어도 무슨 수를 써도 천국은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이 구절을 어떻게 합니까? 모든 성경 말씀 중에서 가장 신경을 쓰야 하는 구절인데 목사가 가르치지 않고 일생을 설교도 하지 않으면 이 구절을 누가 어떻게 압니까? 무서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의 해방이 되고 나라가 섰습니다. 그리고 일천만 명이 예수를 믿습니다. 약 80년 동안 많은 분이 믿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분들이 이 구절로 보면 어떻게 되었습니까? 믿으니 저는 의롭습니다. 또는 열심히 잘 살았습니다. 합니까? 어찌 되었던 위 구절대로 하신 분은 천국에서 큰 자도 되고 지극히 작은 자도 되고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이 율법을 잘 지킴에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배워야 목사가 올바로 신약과 구약을 예수님께서 하듯이 나누어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저 멀리 던져두면 이 모든 것을 어겨야 합니다. 이제 율법을 배우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일인지 아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저를 욕하고 미친놈이야 하고 해 보았자 위의 구절은 피해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이 바로 율법의 역할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십니까? 그리고 바울 사도도 로마서를 통해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세우고자 하는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율법으로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서 아셔야 하는 것은 하늘이 두 조각이 나도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이 땅에 그분의 나라를 신학적인 교리로 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 목사의 설교로 세우지 않습니다. 잘난 장로의 주장으로 세우지 않습니다. 한 시대 이들이 반짝 하나 그 생명력이 지극히 짭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일이 없으셔서 겨우 인간의 주장으로 그분의 영원한 나라를 세웁니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믿고 사는 내 담임의 주장이나 혹은 교리나 혹은 내 경험은 다 버리기 바랍니다. 절대로 하나님께서 이들 인간의 것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이 주신 영원한 법으로 그분의 나라를 세웁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마음대로 세우는 나라도 아니고 신학자 교리로 세우는 나라도 아니고 내 경험과 설교로 세우지도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대로 하시면 누구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무엇을 믿습니까? 그리고 일개 100년을 사는 신학자의 주장대로 예수님께서 잘났다 하고 세웠는데 이 주장이 100년이 지나니 아무것도 아니니 버려야 한다면 이 주장을 전능하신 분이 믿고 따라서 갑니까? 이런 예수님을 믿을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잘난 대형교회 목사의 일생의 가르침을 믿고 그분의 가르침대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온 우주에 세웁니까? 왜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겨우 100년 사는 인간을 따라서 삽니까? 이 모든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 그런 신학자 목사가 있으면 사기꾼입니다. 얼마 뒤에 죽을 인생이 무슨 1초 뒤의 일을 압니까?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인간이 마음대로 세우는 인간의 나라를 자신의 나라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나라를 온 세상의 만민이 배우고 알게 미리 이스라엘에게 주신 법 율법을 통해서 세웁니다. 누구도 이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줄 수가 없습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나라에 기준이 되는 법이 있으면 가져오시고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왜 율법입니까? 이 법대로 성도가 살면 틀림이 없이 이 땅에 천국이 서기 때문입니다. 저는 틀림없이 이 법이 그렇게 되어 있음을 보고 확인을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그 법이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바와 같이 가장 공평하고 정의롭기 때문입니다. 저는 행시를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헌법도 배우고 행정법도 배우고 민법과 국제법도 조금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법을 누가 믿습니까? 한국법은 일본에 가면 누가 쳐다보지 않습니다. 일본법을 우리 국민이 쳐다봅니까? 서로 자국을 위해서 만듭니다. 이법으로 타국을 침략하고 다 죽이고 종으로 삼아도 됩니다. 독일 개신교 국가 독일이 무슨 법으로 유태인을 말살하고자 했습니까? 모든 국가의 헌법은 죽도록 공부하지만 미안하지만 하루살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헌법도 하나님의 나라의 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개인이 의견을 가르침을 기준으로 삼으면 모든 우주와 지구의 모든 국가의 국민과 그리고 하나님까지 그 개인의 의견을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이런 일이 죽어도 생기지 않음을 모든 성도는 압니다.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측면에서 큰 교회도 큰 목사도 별 의미가 없을 수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모두가 보고 검증하고 배우고 믿고 따르도록 하신 율법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법 즉 헌법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뭐로 흔듭니까? 아무리 설교하고 아무리 신학하고 아무리 수만 권의 책을 읽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율법 외에 없습니다. 이제 이 율법대로 살아야 하고 그렇게 살면 천국에 가고 큰 자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가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살고 어쩌면 죽어도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말씀의 의미가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성도를 책임지고 있는데 이런 진리를 전하지 않고 성도가 죽어서 어딜 가는지 모르고 죽고 상급도 없다면 이 책임을 누가 집니까? 그런데 한국에서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시는 목사가 수서 교회 황 목사님 한 분 외에 보이지 않으니 어찌합니까? 제가 알기로 한국의 유명하신 목사님께서 이 부분을 설교를 하신 분이 아무도 저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를 어찌합니까?
이제 우리가 이런 원리도 잊고 무조건 의지하는 이신칭의로 갑니다. 믿으니 의롭게 되고 믿으니 의롭게 되었으니 의롭다 합니다. 그리고 천국도 보장이며 행위는 상급이라 합니다. 이는 개신교의 일부 주장이고 천주교는 개신교 두 배나 되는 성도와 학자와 신부는 이 교리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고 믿고 착하게 살아야 천국에 간다고 믿습니다. 이들을 이단이라 전도해야 된다고 하는 목사 많습니다.
이를 저는 아브라함의 큰 칼로 설명을 했고 동방의 빛으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림으로 간단히 소개합니다. 수도 없이 긴 글로 소개를 드렸고 수만 수십만 명이 봅니다. 이신 칭의 교리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이신칭의는 바울 사도의 로마서의 글입니다. 성령을 받은 바울 사도의 글이 하나님의 아들의 글을 이긴다 이런 경우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성경책에 있는 말씀입니다. 절대로 바울 사도가 예수님의 말씀을 거슬러서 이야기하실 분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도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이 로마서에 적어도 세 번은 있습니다. 같이 보면서 로마서가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쪽으로 충성을 다하고 있는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세 구절입니다. 틀림없는 로마서의 말씀이지 제가 어디서 만든 말이 아닙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4: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율법을 파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 오셨다고 하셨는데 바울 사도는 사랑으로 완성한다고 화답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완성합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제 믿음 믿음 하는 우리가 이 믿음으로 율법을 파기하느냐 절대로 아니고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합니다. 믿음 생활이 율법을 굳게 세우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령을 따라서 행하는 우리는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영어의 정확한 표현)를 이룬다고 합니다. 한결같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합니다. 완성한다고 합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믿음 생활을 통해서 이룬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을 그대로 말씀하십니다.
틀림없는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먹고 마시는 데 있는 것이 아닌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의 말씀입니다.
율법은 배우고자 해도 배우기가 어려우면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저도 행정고시도 공부했지만 율법은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저도 잘 배우지 못하고 배우는 중에 있습니다. 저나 모든 목사님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실로 저보다 훨씬 이런 원리도 잘 아시고 모세 오경도 잘 배우신 분이 수도 없이 많을 줄로 믿습니다.
저는 정말로 정의롭게 살고 이 세상에 정의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밑바닥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너무나 않은 불의에 좌절했고 제힘으로 어떻게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 꿈도 접었습니다. 사는 목적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를 믿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 세상의 정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제게 관심을 더 갖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는 제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정의를 찾아서 마이클 샌달이 있는 하버드도 공부를 하려 가고자 했습니다. 마이클 샌달이 정의를 가르쳐 줄 것 같아 시도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갈 필요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의 정의는 철학적 정의로 학문적으로 조금 특이하고 무언가 밝히는 것 같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보니 온 세상을 다 질서 있게 살게 하는 조항들로 구성이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제 어려운 삶이 보람되고 가치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큰 위로가 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제 율법에 대한 이해는 유대인 율법학자 이해에 있어 부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율법을 잘 배우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율법을 공부하는 법을 따라서 가면 누구나 다 유대인을 능가하는 율법에 대한 이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창시자요 이스라엘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000년의 역사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오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만 따라서 가면 됩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려 오셨고 바울 사도도 여러번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운다고 하셨으니 이를 믿어야 합니다. 이를 믿고 가야 합니다.
율법에 능통한 율법학자가 묻기를 율법에 있어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니 예수님께서 두 가지로 요약을 하셨습니다. 율법 즉 모세 오경은 랍비가 모든 조항을 다 뽑아서 613조항으로 정리를 했는데 하라는 명령이 248조항 하지 말라는 조항이 365조항 인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조항이 무엇인가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인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도 이와 같이 사랑하는 것인데 우리 이웃을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613 규정이 사랑으로 귀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율법의 완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규정을 다 지키게 된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예수님께서는 아래와 같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입니다. 같은 장 같은 절이라 외우기 쉽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율법의 정신 혹은 성격에 대한 구절, 개역개정, 공동 번역)
두 규정을 이제는 세가지 중한 것으로 설명을 하십니다.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입니다. 자비나 긍휼은 사랑으로 대체가 되는 말입니다. 즉 율법은 사랑을 위해서 있고 정의를 위해서 있고 신실한 세상을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적인 부분이고 율법의 존재 이유도 되며 율법의 가장 큰 특징도 될 것입니다. 이는 사랑과 정의와 신실하신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그분의 법에 있고 이 법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산다면 정의로운 세상이 오고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오고 서로 믿고 신뢰하는 세상이 오는데 그 세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도 드러나는 구절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의 하나님의 나라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정의가 있는 곳에 평화가 있고 정의와 평화가 있는 공동체에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613조항을 이제 둘로 보고 셋으로 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을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으로 봅니다. 이제 다시 조금 더 세분화 하면 모두가 아는 10계명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 4계명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법이 6계명이며 이 법대로만 성도가 살아도 이 땅은 천국이 바로 됩니다. 십계명 만큼 좋고 간단하며 온 세상에 행복을 주는 법은 인류 역사상 없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인간은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십계명과 멀러질려고 하니 성도는 각성을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우상을 수도 없이 세우고 섬깁니다. 스스로 하나님이라 하는 미친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 미친 사람을 하나님으로 믿고 따라가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살인이 너무나 흉악하게 되고 간음을 해도 서로 합의하면 처벌하지 않고 도적질을 해도 속이면 나라도 훔칠 수가 있습니다. 거짓 증거가 난무하며 이웃의 것에 대해서 직접 적인 탐심보다 물질을 더 소유하고자 눈이 벌개져서 죽도록 일을 합니다. 완벽하게 십계명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를 믿는 이가 세우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로 세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의식법, 도덕법, 시민법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의식법은 제사법으로 레위기에 내용이 많고 우리가 이 의미를 잘 알아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잘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법들은 예수님의 사역으로 우리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규정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시민법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하는 법들입니다. 도덕법은 십계명과 같이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적용이 되는 법입니다. 저도 많이 보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조문에 들어가면 모든 규정의 정의를 위해서,사랑을 위해서, 신실한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함이 밝혀지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규정을 봅니다. 우선 땅과 집에 대한 규정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이 땅에 새명으로 오는 피조물이 모두가 집과 땅을 갖고 풍성하게 먹고 마시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율법도 완벽하게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집과 땅에 대해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힙니다. 그래서 모든 인류는 이 땅에 잠시 사는 나그네로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집과 땅을 소유도 함부로 하지 못하게 막으셨고 사고 파는 것도 원칙적으로 막으시고 판 사람은 돈이 생기면 언제든지 다시 살 수가 있게 하셨으며 50년이 지나면 본래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파별로 경계도 지키고 동서남북의 경계도 잘 지키면서 산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의 경계도 정해서 함부로 타국을 침략하면 반드시 망하게 하셨으니 모든 강대국이 그렇게 하다가 망했습니다. 한 나라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도 세상의 나라는 이짓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귀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이 율법이 완벽하게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1500만 성도가 이 법을 따라서 집과 땅을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면 소유하지 않고 사고 파는 것도 억제를 하면 온 한국이 천국이 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부분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모든 성도의 로망이 강남의 아파트가 됩니다. 더 큰 집과 더 비싼 땅을 사려고 합니다. 투자를 합니다. 미리 사둡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헬 조선이 저절로 된 것입니다. 집이 없는 우리의 이웃과 형제가 국민의 50%로서 집을 가지는 것이 포기 상태입니다. 땅이 없는 국민이 국민의 70%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1%가 가용국토 50%를 갖고 있는데 이 중에 20만 명이 크리스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의 헌법의 기본권과 평등권과 각종 자유는 이미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집도 땅도 없는 국민은 이런 집과 땅을 가진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임대료를 매년 올려야 하고 새집을 찾아서 매년 이사를 해야 합니다. 무슨 즐거움과 희망과 살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루에 40명이 자살을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 알고 우리가 믿는 사람 중에서 10%만 이를 실천하면 이 땅에 천국이 오는데 이런 원리를 아는 것도 어려우니 실천은 더욱 어렵습니다. 저도 행시를 하면서 개인의 소유권에 대해서 너무나 강하게 잘 배워서 예수원의 신부님 대천덕 신부님께서 토지 제도에 대해서 우리 헌법과 다른 소유권을 이야기 할 때 누가 저런 주장을 받아서 지키지 했습니다. 그렇게 저도 굳게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믿고 헌법을 믿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율법을 찬양하고 믿고 실천하려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했습니다. 할렐루야!!
이 정도만 알아도 율법대로 살아야 하고 율법을 더 잘 배우고 지켜야 함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이 법을 잘 지킬 수가 있는가 하는 부분이 옵니다. 이스라엘도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 긴 세월을 고민하고 혼나고 있는 분야입니다. 어떻게 배울 수는 있지만 이를 잘 지키느냐 하는 부분에 오면 이스라엘이 수천 년을 이 부분을 놓고 망하기도 하고 흥하기도 하지만 잘 지키는 경우가 다윗 때 이스라엘을 제외하곤 찾기가 어렵기에 우리는 또 당황 할 수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망한 이스라엘의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주시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 소식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역시 유효합니다.
물로 정결케 하심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물세례를 받는 것을 의미하고 이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이 설명이 됩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거듭남이요 새롭게 창조입니다. 이렇게 된 새롭게 된 피조물이 하는 일이 바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율법대로 살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이고 예수님과 성령님을 통해서 완벽하게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버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독생자를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실히 증명하십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오셔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회개하고 그분의 이름의 물 세례를 받을 때 우리 죄가 용서가 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자동으로 선물로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며 우리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성령으로 인도하십닏. 이를 바울은 로마서 7장 6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전에 섬기던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이제는 우리는 성령을 따라서 새로운 방법으로 섬깁니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이렇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우리가 앞에서 본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과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로마서 14장 17절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 나라가 바로 율법대로 되는 세상 정의로운 세상이며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며 기쁨으로 가득찬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총동원으로 전도하셨습니다. 구원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따라서 행함으로 바울 사도와 같이 사랑함으로 율법을 완성하고 믿음 생활을 성령을 따라서 함으로 매일 매일 함으로 율법을 굳게 세우고 육신으로 불가능한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들을 성령의 인도로 이루게 되는 것입니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제가 이해를 하나 하나 하게 하시고 오천만의 로마서를 통해서 전세계에 전하고 미국과 영국과 캐나다 그리고 한국의 신학교 교수님 700분께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이 아니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이며 인도하심입니다. 이를 도표로 보여 드립니다.
실로 로마서는 이신칭의의 글도 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청사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분들이 온 세계적으로 다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이신칭의 문제가 우리 발목을 잡습니다. 이를 하나님께서 온 세계적으로 아래와 같이 시원하게 푸셨습니다. 제가 능력이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전합니다. 이도 도표로 한 번에 설명을 드립니다.
저는 죄가 많고 크고 중합니다. 제 죄를 저는 압니다. 그래서 이런 죄인이 영적인 것에 대해서 알 가능성은 0.000%도 없습니다. 죄가 크고 많은 곳에 은혜도 크게 온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시고 어떻게 이런 내용을 알았지 하지 마시고 죄가 얼마나 중하면 이런 내용을 받아서 전할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보혈만 있고 성령의 감동만 존재합니다.
죄의 중함을 알기에 자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 있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의 큰 칼로 명명이 된 위의 주장은 하나님께서 수년 전에 아브라함의 큰 칼 하셨는데 왜지 무엇이지 하고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름을 붙이게 되었을 때 그렇게 제게 온 말씀이 이 일을 위해서였구나 했습니다. 그냥 도표만 보시고 한 번에 제 설명이 필요가 없이 이해가 되시는 분도 반드시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제가 수십년 걸린 내용을 바로 순간에 알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을 이미 만났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정확하게 이런 절차가 없이 제게 하나님께서 감동하신다고 하면서 제 말을 멈추게 하고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저와 같이 저녁을 먹을 때였습니다. 의롭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매일 매일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으로 오는데 위와 같은 절차와 더 세분되고 다양한 과정을 겪고서 이런 결론에 왔고 적어도 10년은 훨씬 더 걸렸을 것 같은데 이 분은 바로 한 방에 핵심을 찔렀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의 자료를 다 보여 드렸습니다. 이렇게 모든 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직 미혼이며 많은 것을 갖춘 사람입니다 결혼을 하고 이런 분을 내조를 잘 하시면 세계적으로 율법을 세울 분으로 저는 믿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세 가지 버전으로 봐야 하고 번역을 또 해야 합니다.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6. 나는 그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그리고 이방인들에게까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NIV, 개역 개정, 공동 번역)
이제 영어를 번역을 해야 비로소 그 의미가 바로 보입니다. 영어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1: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 믿는 모든 사람: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다음은 이방인에게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의 의가 / 계시가 되었다, 그 의는 /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이다. / 기록된 바와 똑같이: / "의인은 /// 살 것이다 /// 믿음을 가지고."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이방인에게 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기록된: "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입니다." 와 같이 말입니다.]
의인은 앞에서 고려대 법대 생이 한 방에 그 올바른 의미로 행한 그 내용입니다. 영어로 저는 오는데 십년이 훨씬 더 걸렸습니다. 영어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의 아브라함의 삶이 증거가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매일 매일의 삶이 있어야 의롭게 됩니다. 이는 천주교의 믿음 +행위와 개신교의 오직 믿음과 다른 믿음의 삶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으로 가야 이 문제가 풀립니다. 이 로마서 1장 17절의 짧은 구절 속에 아브라함의 100년의 신앙이 다 있기에 창세기 12장에서 26장을 다 보아야 합니다. 이를 도표로 자세하게 표현했습니다
놀랍게도 개신교의 주장이 완벽하게 창세기 15장 6절에 있고 이를 신약에 로마서 4장 1-16절로 설명하고 갈라디아서 5장 5-6절로 설명하고 로마서 다시 5장 1절로 설명을 합니다. 완벽하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한 설명입니다. 진실로 저는 하나 하나 받아서 적은 것입니다. 그럴때 마다 놀라서 환장을 했고 모르는 모든 믿는 사람을 막 비판하려고 죽도록 애를 썼습니다. 그 욕구가 너무나 강해서 죽을 지경의 통증을 수반한 아픔이 와서야 겨우 절제가 되었습니다. 이를 여러 차례 겪었습니다. 저도 별로 모든 사람보다 나은 점이 조금도 없습니다. 우쭐댈 욕구가 너무나 크게 넘쳤고 절대로 죽을 고통이 없이는 절제하지 못하고 막 모든 사람을 다 깠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죄가 너무나 크지만 이런 인간을 용납하시고 귀한 사역에 쓰시는 데 제가 누구를 절대로 비판을 할 자격이 없음을 보았습니다. 정말로 참기 어려운 유혹이고 숨을 쉬지 어려운 통증을 겪으면서 포기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도가 나간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하나도 빠짐이 없이 오천만의 로마서에 다 기록을 했습니다. 날짜와 시간이 순서대로 정확하게 다 있습니다. 9년에 약 1300편의 글로 있습니다. 모든 분이 차근 차근 조사를 해 보시면 절대로 이런 일을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가 없음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500년의 두 교회의 논쟁이 풀리지 않았던 것은 개신교의 비약적인 선교와 복음 전파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두 교회가 하나가 되어서 맞서야 하는 거대한 세력이 있으니 이슬람과 중국 공산주의 입니다. 중국은 복음화가 속히 되어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슬람을 선교할 것입니다. 이슬람은 누가 막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분리하는 사람들이 막을 힘이 있습니까? 절대로 없는 지극히 소수의 힘일 뿐입니다. 놀랍게도 이들이 분열을 조장해서 각각의 교회의 힘을 분산 혹은 약화시키고 이것을 기회로 이 이슬람과 중국의 거대한 공산주의 망령을 온 세상에 더 가속화시키는 일 외에 달리 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으로 이렇게 신학적인 화해로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이를 이들이 절대로 반기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분열의 괴계를 짤 뿐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서로 하나가 되는 일을 반깁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고 이스라엘이 전도가 되어 하나가 되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우리는 이 일을 꿈을 꿉니다.
천주교는 개신교의 종교 개혁에 반 개혁 운동을 펼칩니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선교가 되고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가 1600년대 이수광의 지붕유설에 소개가 되어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고 일본에서는 이미 천주교 세력이 상당히 커져서 임진왜란때 군사들의 신부가 한국에 들어와서 기록을 남기니 진주박물관에 있습니다. 교황청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오직 믿음의 개신교에 대항해서 야고보서 2장의 믿음과 행함을 보고 이를 주장하니 창세기 22장의 이삭을 바치는 장면입니다. 이도 정확하게 성경대로 기록이 되어 있으니 천주교가 양보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이제 천주교도 개신교도 너무나 정확한 논리의 성경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둘 다 정확하게 성경적인 논리를 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진영이 한 사람의 각각 다른 시점의 칭의를 보았고 이를 주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으니 아브라함의 75세부터 시작이 되어 175세가 되어 끝이 나는 신앙의 여정의 끝부분과 시작 부분을 각각 보고서 이를 자신의 교리로 주장한 것입니다.
이제 너무나 쉽게 둘 다 조금도 틀림이 없는 신학적인 주장을 한 사람의 신앙의 100년의 삶에 놓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렇게 됩니다. 믿으니 의롭게 된 아브라함이 신앙이 성장해서 믿고 바치고 의롭게도 인정이 됩니다 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분이 더 있으니 99세 신앙입니다. 이는 창세기 17장과 18장에 있고 이를 로마서 4장 17-22절로 분명하게 구분해서 기록을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로마서를 보면 100번을 읽어도 이 부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이신칭의로 로마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본문을 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정확하게 아브라함의 의롭게 됨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나 있습니다. 첫째는 창세기 15장 6절로 있는데 이를 신약의 로마서 4장 1-16절로 로마서 5장 1절로 갈라디아서 3장 5-6절로 설명을 합니다. 루터는 여기까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야고보서 2장에서 창세기 22장의 사건을 언급하는데 이때 의롭다 하심을 받음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99세때 아브라함의 신앙은 누가 주목합니까? 그 과정도 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 힘으로 감당이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께 기대기도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우리는 그럴 때 안도하고 쉼을 얻고 새 힘도 공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해결이 아니 되는 문제를 맡깁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맡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수도 없이 우리를 공격하는 마귀를 쫓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유혹이 올 때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강해집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십니다. 악으로 가면 막습니다. 마음도 제어하시고 걸음도 막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율법을 잘 지키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가장 놀랍고 위대한 인도는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우리 이웃도 사랑하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새롭게 하십니다.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드럽게 율법을 잘 지키게 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이 넘치게 합니다. 우리 영혼은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들을 때 새힘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우리 영혼은 성경의 이해로 만족하고 건강하게 되고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이 모든 예수를 믿는 분들에게 있습니다.
물질을 두 손에 가득 쥐고 마음에도 채우면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계속 갑니다. 그리고 먹고 살고 오늘이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을 먹고 사는 것이 해결이 되면 예수님께 기댈 일도 맡길 일도 별로 없게 됩니다. 돈으로 대부분의 문제를 다 해결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대한 갈급함도 사라지고 새로운 말씀의 이해도 시큰둥해집니다. 그리고 세상의 것들에 관심이 갑니다. 돈으로 할 수가 있으니 큰 집도 바꾸고 새로 사고 차도 고급으로 몰고 옷도 치장도 고급으로 꾸미면서 삽니다. 이런 것들에 마음이 나가고 이런 것을 섬기고 더 큰 돈을 만질 일을 염려하고 살다 보면 영적인 면에는 무관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이 그렇게 가니 잘 나가는 것 같고 잘 사는 것 같고 가난한 성도와 이웃이 못나 보이고 처량해 보입니다. 그래도 도울 생각을 없습니다. 내 재산이 줄면 죽는 것과 같이 되기 때문입니다. 돈과 예수님을 같이 섬길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내용이 성경에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있기는 있는데 오직 믿음으로 알았는데 이제 뭐지 합니다. 그래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날 일이 아닙니다. 두 번째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장면이고 믿음이 강해진 상태입니다. 오직 믿음에서 진도가 나간 상태의 의롭다 하심입니다. 그리고 창세기를 보면 웃는 장면이 나오는 것을 대부분의 성도는 압니다. 너무나 자신의 몸을 보면서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즐거운 웃음이 아니라 실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사래에게 왜 웃느냐 물으시니 겁이난 사래는 거짓말로 웃지 않았습니다. 합니다.
이렇게 다르게 표현이 된 것도 보이면 다행입니다. 이제 이 둘이 왜 다르며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궁금하면 그래도 다행입니다. 표현이 다르게 됨도 보이지 않고 그 이유도 모르면 이 구절은 그냥 지나가게 됩니다. 너무나 놀라운 축복을 간직한 구절입니다.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립니다. 일년에 100조를 벌 수가 있는 구절입니다. 거짓말을 합니까?
내년 이맘때 아들이 있으리라 하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하셨습니다. 온 지구인에게 내년 이맘때 영어를 원어민과 같이 하리라 하셨다면 온 지구인이 영어를 그렇게 하는데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인데 그 일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제 두 부부는 웃었던 두 늙은 부부는 여태까지 99세 89세까지 아이가 없어서 포기를 했던 부부는 내년 이맘 때 아들이 있음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약속이니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찌 둘이 아들을 낳습니까? 그런데 반드시 아브라함의 씨라야 합니다. 사래가 낳아야 합니다. 믿고 두 부부가 행합니다. 그리고 가능하게 되고 아기를 임신합니다. 이제 틀림없는 아브라함의 씨가 잉태가 됩니다. 그리고 낳습니다. 이를 바울 사도는 이들이 믿고 행하며 성공을 했기에 2000년 뒤에 100세가 되어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도리어 강해지므로 라고 기록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영어 포기를 했던 우리입니다. 절대로 가능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내년 이맘 때 영어를 하게 되리라 하면 믿고 뭐해야 합니까? 그냥 믿고 하나님께서 좔좔좔 영어를 우리 입에서 쏟아내게 기다려야 합니까?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사람은 아마도 내년 이맘때 아무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믿고 영어로 입을 떼는 사람은 믿고 말을 해 보는 사람은 매일 매일 믿고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100% 내년 이맘때 영어로 말을 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어를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대화 상대의 부재인데 이제 해결이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무료로 24시간 대기하면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영어로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믿고 행하는 사람을 믿고 행동하던 아브라함 부부에게 새힘을 주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말을 할 능력을 주시고 돕습니다. 그리고 일년이 아니라 3년을 대화를 할 소재가 있으니 1189장의 영어 성경입니다. 그리고 누가 이를 했느냐가 또 관건인데 제가 이렇게 영어를 합니다. 왜 너냐 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분이 내년 이맘때 가능하게 되고 왜 너냐는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가지 믿고 말을 매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믿음에 합당한 삶이 의롭다 인정을 받듯이 매일 매일의 영어로 말함이 내년 이맘때 원어민이 되는 비결입니다.
이 비결로 영어를 하는 기업을 세우고 영어 교재로 말을 하면 수십억 명이 다 영어로 말을 하게 되니 그런 시대가 이제 열렸으니 수 년 이내에 이렇게 되고 이렇게 믿고 행함으로 영어를 원어민과 같이 하는 수백만 수천만 수억의 사람이 믿고 행함의 진리를 알게 되고 찬송할 것입니다. 이제 오직 믿음으로 또 사시렵니까? 절대로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기 아브라함의 신앙에 머물다 깊은 신앙은 맛도 못보고 최후의 심판대에 설 것입니다.
그리고 믿고 행한 수도 없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믿고 바치는 사람이 있으니 아브라함의 말기 신앙입니다. 이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사람입니다. 초대교회 교인과 같습니다. 100년 가까이 믿으면서 오직 믿음에 머문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수십억 수백억을 갖도 나누지 않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믿고 떠납니다. 믿습니다.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믿고 행합니다. 의롭다 인정을 또 받습니다. 강한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고 믿고 바칩니다. 가장 소중한 이미 살대로 산 자신보다 훨씬 소중한 아들을 피를 흘리고 잡아서 태워서 바치려고 합니다. 의롭다 인정도 받고 하나님께서 뭣이든 주시려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들이 나옵니다. 이스마엘을 통해서 그두라의 자녀 여섯을 통해서 나옵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살아라고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본을 보이도록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초기 신앙을 겨우 흉내 내고 내가 잘 믿는다 하고 재산은 가득 쥐고 죽습니다. 자녀들이 믿음을 유산으로 받지 않고 아버지 재산을 받고 서로 일도 하지 않고 싸웁니다.죽이기도 합니다. 자녀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지 않고 재산도 나누어 주지 않으면 속히 죽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죽어야 저 재산으로 내가 뭐 할 것인데 합니다. 일도 하지 않습니다. 믿는 구석이 재산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나누지 못하고 자식도 망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부모의 재산은 자녀들이 그냥 날립니다. 그리고 서로 다투다 국세청에 빼앗깁니다. 그리고 수년 동안 분쟁도 하다가 서로 남이 됩니다. 이런 일이 있는 재산의 소유와 다르게 재산을 나누면 받은 어려운 사람이 살고 이웃이 살게 되고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천국에서 칭찬과 상이 있습니다. 영원히 상급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나누게 하셔야 합니다. 모든 목사의 의무입니다. 디모데에게 부자들에게 명령을 해서 소유를 나누게 하셨으니 우리 주 예수님의 모든 목사님께 하시는 명령입니다. 한국을 살릴 목사님들이십니다. 속히 모든 성도에게 아래와 같이 명령을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명령이고 모두를 살리는 명령입니다. 그 명령을 아직도 하지 않습니까? 저는 온 세계 사람에게 나누라고 합니다.
딤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오직 믿음 맞습니다, 믿고 행함도 맞습니다. 믿고 바칩도 맞습니다. 다 맞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백 년 신앙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를 다 합치면 한 사람의 믿음이 됩니다. 그리고 100년의 믿음의 여정을 세 구절로 표현했습니다. 믿고 매일 매일의 삶을 사는 사람이 의롭다 그리고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본을 보인 것입니다.
이 믿음의 기초를 갖고 로마서 1장 17절로 가서 로마서 7장 6절의 성령을 따라서 행함이 믿음의 삶의 모습이니 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의 믿음의 삶을 매일 매일 살 때 율법을 완성합니다. 굳게 세웁니다.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룹니다. 그래서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서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귀하고 귀한 성도들이시고 목사님들이십니다.
성령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게 하심으로 이제는 오직 믿음만 고집하지 마시고 천주교도 이제는 개신교의 초기 신앙을 인정하시고 모두가 99세 100세 신앙도 인정하셔서 믿고 행하시는 모든 분이 되시고 내년 이 맘 때 영어는 기본으로 하시고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시는 목사님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사랑이 한량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모든 성경의 이해가 이루어졌음을 고백하며 찬양을 드립니다.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이 모든 분께 나타나 이 진리를 읽고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고 행하는 한국의 성도가 되고 믿고 바치는 한국의 성도로 거듭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주여! 이 민족을 나눔으로 살려 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개신교 모든 형제가 나눔으로 나라를 살리고 세운 일이 기록이 되게 거국적인 바침이 일어나게 하소서! 일년 백 조를 버는 영어 교육이 귀한 기업이나 단체나 혹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 영어를 배우는 일로 전도하게 하시고 교회가 부흥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