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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1 : 8 - 10 영적 소돔과 애굽
계 11 : 8 영적 소돔과 애굽 -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
두 증인의 시체가 놓여질 큰 성은 적그리스도의 본거지일 것이다.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라고 불리었다.
소돔은 음란한 도시이며 애굽은 우상숭배의 나라이었다. 또 그 도시는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곳, 즉 예루살렘 성이라고 표현된다.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의 본거지는 소돔과 애굽과 예루살렘으로 표현된다. 그 도시는 뒤에 나올 음녀와 바벨론으로 묘사된 큰 도시와 동일한 도시일 것이다.
그것은 참된 종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도시를 가리킬 것이다. 역사상 로마가 바로 그런 도시이었다.
8) 두 증인의 시체 -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큰 성'은 증인들이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곳을 가리킨다.
본서에서 흔히 '바벨론'으로 지칭된다(16: 19. 17: 18. 18: 10,16,18,19,21). 두 증인이 짐승의 공격을 당하여 죽임을 당한 곳이다.
주(主)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율법 종교계로 영적으로 바벨론이라고 하였고, 두 증인이 3일 반 동안 죽임을 당한 오늘날의 기독교를 영적으로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부른다.
아브라함 때는 소돔 성이 바벨론이요, 모세 때는 애굽이 영적 바벨론이다. 두 증인이 시체가 되었다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롯과 함께 있는 두 천사를 죽이려 했던 것같이, 애굽의 바로 왕이 모세를 죽이려 했다.
율법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같이 두 증인이 예언을 하는 동안 바벨론에서 발붙일 곳도 주지 않은지라 시체가 되어 큰 성 길에 버려진다는 것을 말한다.
(1) 큰 성 길에 있다.
큰 성은 배도하는 큰 단체를 말한다.
* 계 17: 18 -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2) 영적 소돔과 애굽,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소돔 성은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과 같다. (창 13: 10) 소돔 성을 멸하려 왔던 두 천사의 존재가 심히 약하고 볼품이 없고 무가치한 자로 보였다.
당대에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애굽을 향하여 도전하고 있는 모세의 존재와 4,000년의 뿌리를 가진 율법종교계를 향하여 도전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존재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짐승 바벨론을 향하여 도전하고 있는 두 증인의 존재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하잘것없는 존재(存在)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큰 성이 무너진다고 외치므로 그 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기(氣)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겠는가?
롯이 두 천사와 함께 빠져나온 소돔 성이나 모세가 버리고 나왔던 애굽이나 예수님께서 버리고 나온 율법 종교계나 두 증인이 버리고 나오는 큰 성 바벨론은 수천 년의 뿌리를 내린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아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성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너진다고 외치면서 빠져나왔다. 그 성들을 영적으로 바벨론이라고 부른다.
'영적으로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프뉴마티코스'(*)는 '예언의 언어로'('in the language of prophecy', Knox)나 '영적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는' ('is called by those with spiritual understanding', Phillips) 이라는 의미이다.
큰 성은 두 가지로 불린다.
① 소돔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척한 도시였다. (창 19: 4-11). - 롯의 타락 시대
② 애굽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노예로 만든 도시였다. - 바로의 핍박 시대
두 도시는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여 멸망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증인들을 죽이고 핍박한 큰 성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③ 예수님의 고난 받은 시대를 상징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는 표현으로 인해서 문자적인 예루살렘을 지칭한다고 주장한다. (Ladd).
그러나 그것은 문자적인 예루살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Alford, Mounce). 왜냐하면 요한이 그 성을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본 절에 나타난 '큰 성'은 단순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시.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핍박하는 사단의 도시나 음녀의 어미들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Johnson, Morris, Beasley-Murray).
계 11 : 9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온 세상 사람들은 그 두 증인의 시체를 3일 반 동안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기뻐하며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할 것이다.
9) 두 증인의 시체 -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9절은 멸시받는 두 증인의 시체이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를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Ladd),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하고 불신앙에 사로잡힌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Hughes, Morris).
두 증인을 한국만, 이렇게 국부적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다. 전 세계에서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그 시체를 본다는 의미다. 인류의 마지막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한다.
목도란 말은 '몸소 직접 본다. 조롱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습에서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이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다.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으로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심지어 무덤에 뭍이실 때까지 조롱을 받으셨다. 그런데 두 증인을 보면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고 이제 부활하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모습과 같다.
'너희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 복음을 받는 자는 조롱도 받고 비웃음도 받고 갖가지 고통을 당한다.
예수님이 침 뱉음을 받으시고 손가락질을 당하셨다. 우리도 그것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정상이다. 두 증인이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예수님도 무덤을 막아버리고 로마 병정들이 무덤을 지켰다. 시편 79편 3절에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같이 흘렀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죽이는 것으로 부족하여 그 시체들을 매장도 못하게 했다. 이것이 배경이다. 처참하다. 이때는 그럴 것이다. 진리는 사라지고 무슨 놈의 예수냐? 무슨 놈의 재림이냐? 이렇게 비웃을 것이다.
(3)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백성들이란 영적 바벨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오늘날 종교계에서 믿는다는 신앙인들을 말하며, 족속은 직분, 방언은 언어가 서로 다른 교회들을, 나라들은 교파나 종파들을 말한다. 즉 모든 종교계가 사흘 반 동안 두 증인의 시체를 보고도 모른 체하고 바라만 볼 뿐이다.
시체를 장사지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당시 최대의 모욕과 수치였다. 짐승은 전 세계적으로 두 증인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함으로 자신들의 승리를 과시하였다.
* 왕상 21: 24 -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 렘 8: 1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 렘 14: 16 -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4) 목도하며 -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조롱하며 직접 확인 함.
이것은 짐승이 증인들의 시체를 모독하고 멸시하는 기간을 나타낸다.
즉 두 증인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의 기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두 증인들이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증언한 기간과는 달리 매우 짧은 기간이다(Ladd, Mounce, Hendriksen).
(5) 장사하지 못하게 한다.
최대의 가혹함과 잔인함을 상징하고 있다.
짐승은 두 증인의 시체를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멸시하고 자신의 승리를 과시하였다. (Morris, Mounce).
그러나 본문에서 사흘 반 동안이라고 기록한 것은 두 증인의 시체가 버려지는 기간이 매우 짧은 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시고자 하는 표현 방법이다.
* 시 79: 3 -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 같이 흘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 렘 8: 1-2 –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2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계 11 : 10 땅에 사는 자들의 예물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
두 증인의 설교는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치 않고 그들의 죄를 회개치 않고 구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심한 고통이 되었다.
10) 조롱 받는 이유 -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두 증인 순교의 모습은 두 증인 시체가 조롱받는 일이다.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하였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열왕기상 18장 17절에 배경이 나온다.
오바댜가 엘리야를 볼 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그러면 엘리야가 육적으로 괴롭게 했나? '네가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것이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진리를 선포했던 것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었다.
따라서 두 증인이 조롱과 아픔을 당하는 것이 그들이 선포하는 진리가 강력하기 때문에 반항도 크게 나타났다. 아무리 봐도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내일 인류 종말이 올 수 있다.
썬 마이크로 창업자 빌 조이란 분이 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 물 때문에 종말이 온다. 무엇을 읽어보던지 모든 면에서 종말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 기술의 발전이 현재처럼 급속하게 이루어질 경우 두 세대 안에 인류의 종말 같은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더욱이 이 같은 비관론이 정보화 시대의 개막을 개척한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썬 마이크로 시스템의 공동창업자 빌 조이에게서 나왔다는 점이 충격적이다.'고 미국 워싱턴 퍼스트지가 보도했다.
빌 조이는 "인터넷 잡지 와이워드에 발표할 '24초짜리 건물에서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는 유나바모의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2030년에는 컴퓨터의 성능이 현재보다 1백만 배 이상 강해진다.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어 스스로 복제할 능력까지 갖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대로 가면 60년 이후에 컴퓨터에 의한 지구의 종말이 올 수 있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초대교회 성도들과 종들이 조롱받고 거기서 죽었다. 많은 사람들은 황제가 '죽여라!'는 손가락 동작 하나에 맹수들을 풀어 놓아 물려 뜯기는 참혹상을 바라보면서 관중들은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서로 환호성을 지르면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설마 이런 일이 있을까?
성경을 들추어 보면 이스라엘이 독립한다는 예언이 있다. 그러나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독립하기전의 주석은 칼뱅뿐만 아니라 모든 주석가들이 이스라엘이 성경대로 독립할 것이라고 쓴 주석은 하나도 없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면 2000여 년 전에 전 세계에 흩어져서 그 씨족이 말린 상황이었다. 그 땅은 터키가 지배했으며, PLO가 살았다. 그러면 다 없어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흩어진 사람들도 쫓겨 다니거나 600만 명이 히틀러에게 몰살당하는 현실이므로 이스라엘이 독립한다는 것을 감히 주장할 수 없었다.
우리 주석가들도 성경을 믿고 쓰지 못했다.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해석했다. 무천년을 주장하는 주석가들은 '재림의 확실성이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 32절을 '재림이 확실히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확실성이 아니라 재림의 역사성이다.
'무화과나무가 싹이 나면 그 무화과나무를 보아라.' 그 무화과나무는 무엇인가? 마태복음 21장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시면서 길가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저주하자 곧 말라죽었다. 마태복음 24장 32절에서 '무화과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죽었다 살아나면', '독립하면' 그러면 '내가 문밖에 곧 가까이 이른 줄 알라.' 이것도 이스라엘이 독립함으로 확 드러나고 있다. 믿습니까?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왜냐하면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가서 늘 백성의 유익을 구했다. 백성을 위해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 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았다.
교황을 보라. 가는 곳마다 축복하고, 평안을 빌고, 교황청의 문만 지나가면 죄가 다 없어져버린다고 하니 얼마나 인기가 하늘을 치솟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변했다.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성도들(백성) 앞에 나가서 하나님의 유익을 구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마지막 때 활동하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다. 선지자다. 그래서 죄를 책망하고, 회개시키고, 주일 성수를 강조하고, 새벽마다 기도하라고 외치며 세상의 모든 것에 회개하라고 한다. 철통같이 하나님 편에 서서 선포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대 환난 때는 제사장적 종이 아니라 선지자적 종이다. 제사장적 종은 부담이 없다고, 기쁘다고 한다. 그러나 선지자적으로 말하면 고난과 아픔이 따른다.
갈라디아서 1장 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예레미야 6장 14절을 보면 '거짓선지자는 사람에게 아첨한다.'고 말하고 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선지자이기 때문에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 편에 서서 심판을 경고했다.
지금도 제사장적 목회자는 인기가 많다. 사람이 좋다느니, 부담이 없다느니, 얼마나 인기가 많은 줄 모른다.
선지자적 종은 독재한다느니, 강하다느니, 별소리를 다 듣는다. 두 증인이 오늘 이렇게 조롱받고 마지막 역사 속에 순교의 재물로 사라진다.
(1)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했다.
두 선지자란 두 증인을 말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짐승에게 속한 자들을 말한다.
두 증인은 물이 피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니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심히 괴로운 일이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처럼 땅에 거하는 자들이 알지 못하는 진리를 말하고 물이 피가 되게 하면서 새 언약을 증거하니 그들에게는 고문이요 고통이 되었던 것이다. 말씀과 진리로 회개를 촉구했다.
* 왕상 18: 17 -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 마 23: 33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성과 동일한 의미이다. (3: 10. 6: 10. 8: 13. 13: 8,14. 17: 8. Mounce, Morris).
이들은 두 증인들이 소멸하는 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할 때 양심이 괴로워 증인들을 미워하였다. 믿는 자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이 항상 듣는 자들의 양심을 채찍질 했다. 그런대 두 증인이 죽음으로 질책할 종들이 없으므로 믿는 자들은 가책에서 놓임을 받은 것이다.
(3) 서로 예물을 보냈다.
두 증인의 죽음을 보고 잔치를 벌였다.
* 삿 16: 23-24 –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 느 8: 10-12 –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 시 89: 42 - 주께서 그의 대적들의 오른손을 높이시고 그들의 모든 원수들은 기쁘게 하셨으나
그러기에 증인들의 죽음과 시체가 거리에 장사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한다.
이렇게 선물을 교환하는 것은 당시의 관습으로 그들이 증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여 축제를 벌이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 즉 극히 짧은 기간으로 끝나게 되며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떨게 될 것이다.
바로 왕은 모세를 미워하여 죽이고자 했으며, 아합 왕과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도 엘리야를 죽이고자 했고, 헤롯 왕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성 바벨론도 두 증인이 시체가 되어 길거리에 버려지는 것을 기뻐하며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서로 선물(은사)들을 교환하면서 두 증인의 죽음을 기뻐하는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과 축제는 삼일 반이니 극히 짧은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신들이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임을 인식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결국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지만 그때까지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계 18: 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