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와 나와 구름의 문장
김태형
며칠 전 작은 구름 하나가 지나간 곳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풀을 뜯으러 가고 있습니다
몇 방울 비가 내린 자리에 잠시
초원이 펼쳐지겠지요
이름을 가진 길이 이곳에 있을 리 없는데도
이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물어봅니다
이름이 없는 길을
한 번 더 건너다보고서야
언덕을 넘어갑니다
머리 위를 선회하다 멀찌감치 지나가는 솔개를
이곳 말로 어떻게 부르는지 또 물어봅니다
언덕 위에 잠시 앉아 있는 검독수리를
하늘과 바람과 모래를
방금 지나간 한 줄기 빗방울을
끝없이 펼쳐진 부추꽃을
밤새 지평선에서부터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별들을
그리고 또 별이 지는 저곳을
여기서는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어봅니다
어떤 말은 발음을 따라 하지 못하고
개울처럼 흘러가는 소리만을 들어도 괜찮지만
이곳에 없는 말을
내가 아는 말 중에 이곳에만 없는 말을
그런 말을 찾고 싶었습니다
먼저 떠나는 게 무엇인지
아름다움에 병든 자를 어떻게 부르는지
그런 말을 잊을 수 있는 곳으로
그런 말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뿌리까지 죄다 뜯어먹어 메마른 구름 하나가
내 뒤를 멀찍이 떨어져 따라오고 있습니다
지나온 길을 나는 이미 잊었습니다
누군가 당신인 듯 뒤에서 이름을 부른다면
암갈색 눈을 가진 염소가 언덕을 넘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김태형
서울 출생. 1992년 《현대시세계》 가을호로 시 등단.
시집 『로큰롤 헤븐』 『히말라야시다는 저의 괴로움과 마주한다』 『코끼리 주파수』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다 셀 수 없는 열 마리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