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10: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행 10: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행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행 10: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행 10: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행 10:22)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행 10: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도르가 사건과 고넬료 사건의 사이에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재력을 가진 부자 과부였고 고넬료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 군대의 장교였다. 고넬료 역시 노예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돈이 많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행 9: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베드로는 욥바에서 도르가라는 돈 많은 부자 과부를 살려냈다. 상식적으로 보면 그는 돈많은 과부의 정성을 받으면서 도르가 집에서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당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더럽다고 피하는 가난한 무두장이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무두장이의 집에 있었다는 말을 원어로 보면 무두장이의 곁에 있었다는 뜻도 된다.
무두장이가 무엇일까? 무두질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속이 몹시 쓰라리게 아프거나 몹시 배가 고파서 속이 요동치면 무두질을 당한다고 표현한다. 무두질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그 가죽의 체모를 뽑아내고 가죽에 붙은 피부와 기름을 긁어내는 일을 말한다.
짐승의 가죽이 도착하면 무두장이는 가죽을 물로 깨끗이 씻고, 가죽에 붙은 살점을 긁어내고, 소변을 받은 통에 그것을 넣거나, 닭똥이나 개똥을 물에 섞은 통에 그것을 넣어서 발로 치대어 털을 제거하고 가죽을 부드럽게 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이 얼마나 냄새가 나고 지저분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무두장이들을 전염성이 있는 피부병자나 똥을 푸는 사람 취급했다.
유대인들의 정결법에 의하면 무두장이와 결혼한 여자는 언제든 남편이 불결하다는 것을 구실로 이혼을 요구할 수 있었다.
“결혼을 할 때는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견디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몸을 씻어도 그 냄새가 피부에서 벗어지지 않는 것이다.
욥바 같은 가나안 해변 지역에서 무두장이들은 도시의 동쪽에 거주해야 했다. 그 지역은 주로 서쪽 지중해에서 동쪽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이었다. 만약 서쪽에 무두장이들이 있다면 그 냄새가 도시로 다 날라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증평도 증평 주변에 소나 돼지를 키우는 곳에서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가축 똥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에는 양돈장, 양계장 같은 것을 할 수 없다.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에 하나가 무두장이이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무두질을 하는 사람은 온갖 화학약품을 온 몸에 묻혀야 하고, 피부도 까지고, 호흡기 병도 걸린다. 왜 그런 일을 계속하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어쩌다 보니 계속하게 되었다'는 대답을 할 뿐이다. 사람이 어떤 일을 하다보면 그 일을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베드로가 부자 도르가의 섬김을 받으며 그녀의 집에 있지 않고 그 동네 사람들이 가장 무시천대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른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베드로의 겸손과 청빈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이 함께 있어 주어야 할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할 수도 있다.
레위기 11:39을 보면 “짐승이 죽은 때에 그 주검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에 비춰보면, 죽은 짐승과 그 털과 가죽을 만지는 무두장이는 불결하고, 부정한 직업으로 여겼다. 유대인이나 유대인 아닌 사람들은 모두 무두장이를 기피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그들의 믿음에 의하여 결코 무두장이와 접촉할 수 없었다.
무두장이는 베드로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시몬이었다. 그 무두장이의 집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베드로가 와서 함께 있어 주었고, 욥바로부터 약 50킬로 떨어진 가이사랴 항구도시에서 베드로를 모시러 온 이방인 로마 장교, 이방인 노예 둘, 유대인 사도였던 베드로, 유대인 천민이었던 시몬이 한 자리에 모여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베드로가 자신을 데리러 온 사람 세 명을 무두장이의 집으로 들어와 하룻밤 묵게 한 것은 그들이 먼 길을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초라한 집,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집, 멸시와 천대를 당하던 무두장이의 집에 다양한 신분의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모여 하룻 밤을 묵게 된 것이다. 사람이 어떤 사람과 하룻밤을 함께 지낸다는 것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무두장이의 집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 그 모습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유대인의 법에 의하면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식사를 하거나 교제를 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었고 다른 민족 사람들은 개처럼 취급했다. 또한 거기에 온 로마 장교는 힘있는 권력자였고, 천대 받고 냄새나는 천민의 집에서 그들과 하룻밤을 지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데 어우러져서 불편하다면 불편한 하룻밤을 지냈다.
오늘날 화려한 예배당이 많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든 권력과 신분을 내려 놓고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부자 교회는 부자들만 모이고 가난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만 모이고, 한 교회가 권력 때문에 분열되고, 신분 때문에 갈라선다. 한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사람들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무두장이의 집 처럼 되어야 한다.
증평 지역에 있는 37사단 교회에 가보았더니 삼성 장군이 교회에 와도 젊은 대위인 군목에게 고개를 숙이고 목사님이라는 존경의 호칭을 쓴다. 교회에 들어오면 장군이든 이등병이든 한 형제가 되는 것이다.
그날부터 무두장이의 집은 전 세계 교회의 시작점이었다. 그 안에는 유대인도 있었고 비유대인도 있었다. 그 안에는 권력자들도 있었고 권력이 없는 자들도 있었다. 그 안에는 사도도 있었고 평신도도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하룻밤 함께 먹고 마시고 자고 대화하며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