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론보다 중요한 ‘감각의 합의’
학교의 회의 문화는 종종 효율과 속도를 중시한다. 안건을 빠르게 처리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행정적 필요가 중심이 되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회의는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자리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느끼는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퀘이커 전통의 “Sense of the Meeting”은 바로 그 과정을 대표한다. 회의의 목표는 논리적 설득이나 다수결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침묵하고 경청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옳은 방향은 무엇인가”를 느끼는 것이다. 이때의 sense는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몸과 마음 전체로 느껴지는 인식의 감각이다.
학교에서 이를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 소시오크라시(Sociocracy)의 서클 운영 구조이다. 서클은 위계적 명령 체계를 대신해 자율성과 책임이 공존하는 구조이며, 각 서클은 ‘이의 없음(consent)’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 이 두 전통 ― 퀘이커의 “Sense of the Meeting”과 소시오크라시의 서클 구조 ― 가 결합될 때, 학교의 회의는 단순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공동의 성찰과 배움의 장이 된다.
2. Sense의 철학적 의미 ― 머리로 판단하지 않고 몸으로 느끼기
회의에서 “This is the sense of the meeting.”이라고 선언할 때, 그 말은 ‘모두 찬성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구성원 모두가 지금 이 방향이 우리에게 적절하다는 내적 확신에 도달했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때의 “sense”는 감정적인 동조가 아니라, 공동체의 깊은 차원에서 일어나는 통합된 인식의 감각이다.
이 감각은 침묵 속에서 자라난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앉아 잠시 침묵하며 마음을 고요히 하면, 생각보다 먼저 몸의 감각이 공동의 분위기를 읽는다. 그 감각은 ‘논리적 설득’을 넘어서는, 존재적 공명(共鳴)의 순간이다.
소시오크라시의 회의 구조는 이러한 감각의 흐름을 돕는다. 각 서클은 주제와 목적(Driver)을 명료히 하고, 라운드별로 모든 참여자가 발언할 기회를 갖는다. 발언은 설득이 아니라 공유와 경청의 과정이며, 퍼실리테이터는 흐름을 요약하며 “지금 이 방 안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를 느낀다. 바로 이 순간이 Sense of the Meeting이 드러나는 자리이다.
3. 공동체의 ‘Felt Shift’ ― 유진 젠들린의 통찰과의 연결
유진 젠들린의 “Felt Sense”와 “Felt Shift” 개념은 회의에서 일어나는 이 감각적 전환을 잘 설명한다. 젠들린은 인간이 어떤 주제에 대해 막연한 모호함을 느낄 때, 그 감각을 주의 깊게 느끼면 새로운 이해가 ‘몸에서부터’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막연함이 명료한 깨달음으로 변하는 순간을 “Felt Shift”라 불렀다.
학교의 회의에서도 이러한 전환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교사서클에서 ‘스마트폰 사용 규칙’을 논의할 때, 처음에는 찬반이 뚜렷하게 갈린다. 그러나 각자가 경험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우려와 희망을 듣는 과정에서 방 안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이 정도라면 학생의 자율성과 학습 집중이 모두 가능하겠다”는 공통의 감각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차원의 Felt Shift, 즉 “Sense of the Meeting”이 형성된 순간이다.
4. 소시오크라시 서클운영회의 ― 살아 있는 의사결정의 현장
소시오크라시의 서클운영회의는 Sense of the Meeting을 학교 현실 속에 구현하기 위한 구조적 틀을 제공한다. 이 회의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따른다.
침묵으로 시작한다.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번 회의의 목적이 ‘공동선’을 위한 것임을 되새긴다.
Driver(주제와 필요)를 명료히 한다. “왜 이 문제를 다루는가?”를 분명히 하고, 문제의 본질을 정의한다.
라운드 1: 경청 —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발언하고, 누구도 끼어들지 않는다.
라운드 2: 반영 — 서로의 말에서 인상 깊은 점을 되짚으며, 공통의 감각을 형성한다.
라운드 3: 제안과 이의 제기 — 퍼실리테이터가 흐름을 종합하여 제안을 정리하고, “이 제안에 중대한 이의가 있습니까?”를 묻는다.
결정 명료화 — 이의 없음(consent) 상태가 되면, “This is the sense of the meeting.”으로 회의를 마친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다수결의 승리나 패배가 아닌 공동의 일치감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학급회의에서 축제 주제를 정할 때 학생들이 각자 의견을 내고, 서로의 생각을 공감하면서 “우리 반답다”는 방향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교사는 “지금 이게 바로 우리 반의 Sense of the Meeting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다.
5. 서클정책회의 ― 학교 거버넌스의 새로운 가능성
서클정책회의는 학교의 주요 정책과 제도를 다루는 자리이지만, 전통적 회의 방식과는 다르다. 정책결정의 목적은 단순히 규칙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배워 가는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자치회에서 ‘복장 자율화’를 제안했을 때, 교사서클과 학생서클이 함께 정책서클로 연결되어 논의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는 학생의 표현의 자유, 교사의 교육적 책임, 학교의 문화적 정체성 등이 함께 다뤄진다. 침묵으로 시작해 각자의 입장을 말하고, 공감과 반영을 거쳐 하나의 제안이 떠오르면 “이 제안에 중대한 이의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다수가 아닌 공동체 전체가 “지금은 이 방향이 옳다”고 느낄 때, 퍼실리테이터가 말한다.
“This is the sense of the meeting.”
그 순간 학교는 더 이상 행정조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배움의 공동체가 된다.
6. 교육적 의미 ― 학교에서 배우는 민주적 감각
Sense of the Meeting과 소시오크라시 회의의 결합은 학교에 깊은 교육적 함의를 가진다.
첫째, 학생과 교사가 함께 결정의 주체가 되며,
말보다 경청의 힘을 배우게 된다.
둘째, 회의가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성찰의 과정이 된다.
셋째, 의견의 충돌을 ‘갈등’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이해가 태어나는 움직임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회의는 민주주의를 ‘투표로 표현되는 권리’가 아니라 ‘함께 느끼는 책임’으로 체험하게 한다. 침묵, 경청, 공감, 이의 없음의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관계적 사고와 윤리적 감수성을 함께 키워 간다.
7. 결론 ― 학교, 살아 있는 회의의 공동체
결국 “Sense of the Meeting”은 결론이 아니라 공동체의 내적 변화의 순간을 가리킨다. 그것은 머리로 만들어진 합의가 아니라, 관계의 장에서 솟아나는 인식의 전환이다. 젠들린의 “Felt Shift”가 개인의 몸에서 일어나는 깨달음이라면, Sense of the Meeting은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집단적 깨달음이다.
학교가 소시오크라시의 서클운영회의와 정책회의를 통해 이 과정을 실천할 때, 회의는 행정 절차를 넘어 교육의 본질이 된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침묵하고, 서로의 생각을 경청하며, “지금 이 방향이 우리에게 옳다”고 느끼는 순간, 학교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장이 된다.
그때 말해지는 한 문장,
“This is the sense of the meeting.”
이 말은 결론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배워낸 진리의 감각이 언어로 드러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