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마을이야기
마을기자단 조은희
성평등주간은 모든 사람이 성별로 인한 차별 없이 성평등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법으로 지정된 기간입니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 여성인권선언문 ‘여권통문(女權通文)’이 발표된 9월 1일을 기념하여 9월 1일부터 7일까지 약 일주일간 성평등주간이 진행됩니다.
마을TED : 장성숙 <아픈 몸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다> 돌봄, 인정, 회복
치매 엄마를 7년째 모시고 망우동에서 살고 있는 장성숙 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는 남편과 반려동물들과 함께 치매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다. 그녀가 엄마를 모시면서 겪었던 수많은 부딪힘과 어려움, 그리고 화해와 치유를 담담히 밝혔다. 그런 그녀의 ‘답’ 없는 동거는 사투를 벌이던 일상생활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답’ 있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다.
돌봄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도움 없이 계속 간다면 균열이 생기고 점점 지쳐간다. 하지만 돌봄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긍정의 상호작용을 하게 되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위태로운 상황이 아닌 균형을 맞춰가는 챙김의 돌봄이 된다.
그녀의 선택은 엄마와의 상생이었다. 치매. 끝날 것 같지 않은 홀로의 돌봄을 기관과 나눔이었다. 믿지 못하면 맡길 수 없다. ‘더 이상 내가 죽어가는 돌봄은 엄마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린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도움을 받고 내가 숨을 쉬고 체력 보충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녀는 서로 살아 나갈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녀는 위로 언니 둘과 오빠 둘이 있다. 처음엔 둘째 오빠와 생활해온 엄마. 자신은 자신의 삶을 살기에 너무도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다. 엄마가 병들고 시들어가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꿈에 닿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냈다. 나이 차가 나는 형제들. 그들에게는 엄마 외에도 신경 써야 할 주변인들이 있다. 그녀는 엄마가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뿐 아프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신들의 삶이 버거운 상태에서 엄마의 아픔은 시련만 줄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안조차 해줄 수 없었다.
- 치매 엄마를 모시면서 오는 현실과의 충돌
치매 그 이름은 하나지만 증상은 하나가 아니다. 수많은 증상이 나타난다. 이쁜 치매는 보살핌을 하는 사람도 크게 와닿지 않는 조심성을 보이지만, 나쁜 치매는 보살피는 사람을 고달프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는 건 치매 당사자가 아닌 치매를 겪는 사람을 보살피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하는 편협된 얘기다.
"네가 모신다고 했잖아. 이제 와서 힘들다 그러면 어떡하라고. 그럴거면 요양원에 모시든지" 모시겠다고 한 그녀의 말이 당연한 듯 엄마에게 받은 힘듦을 형제들에게 잠시라도 풀어대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그들에게서 으레 돌아오는 답변은 위로가 아니라 씁쓸한 현실이었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알게 됐다. 엄마가 그냥 인지 정도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데이케어센터에서의 발작이 요양원에서의 난동이 자신이 기거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낯선 공간이어서 더욱 불안했다는 사실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는 그저 자신이 살았던 익숙한 공간이 그리웠던 것이다. 불안에 떠는 자신을 다독여 줄 사람이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루살이에 얽매인 자식들은 점점 자신을 버거워하고 언제고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서 실수를 연발했다. 막내딸의 진심 어린 보살핌이 보일 때쯤 엄마도 막내딸에게 농담 어린 진심을 이야기해줄 만큼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경찰서에서 찾게 해 미안하다. 발악하고 욕해서 미안하다. 힘들게 해서 미안했다’.
- 살기 위해 선택한 시소 돌봄 : 마을을 만나고 돌봄 기관을 만나다
엄마와 살아가기 위해 그녀는 제도에 손을 내밀었다. 집으로 오는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독박 돌봄이 아닌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는 동반자 역할의 제도적 도움을 받고 있다. 돌봄을 받는 사람도 안정이 되어야만 돌봄을 하는 사람도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져야 불안하지 않은 돌봄을 할 수 있다. 하루 중 주어지는 3시간의 여유는 그녀에겐 단맛 같은 시간이다. 엄마에게 매달렸던 시간에 잠시 휴식이 주어지는 시간을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바꾸었다. 마을을 알아가고 마을에서 함께하는 활동에도 참여한다. 그렇게 그녀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으로 한 발 더 내딛고 숨을 쉬며 살아간다.
치매와 7년의 동거는 그냥 지나간 시간이 아니다. 하루 24시간 송곳 같은 시간도 칼날 같은 시간도 전쟁 같은 아슬했던 시간도 함께한다. 마냥 한결같은 부양을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그 시간과 돌봄에 함부로 입을 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