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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아름다운 詩의 향기 스크랩 서정시인 박계희님
용천 추천 0 조회 65 12.07.13 17:06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통도사-1

 

 

 

가을날 - 박계희

 

 

갈대 수풀 앙상한 언덕을 돌아
뉘라 머리 풀고


어롱진 눈물 흩뿌리며 달려오는가

 

터질 듯 터질 듯
알곡으로 찬 설움을


뉘라 불안한 영혼의 입술로 노래하려 하는가

가도 가도 새하얀 저 길 끝 위에서


뉘라 벌거벗은 나신으로
밤새 죽어가고 있는가

 

 

봄날 - 박계희

 

 

 

깊은 산 속 오백여 리를 헤치고
나 여기 왔네


햇빛은 수면 위
작은 송사리 떼처럼 속살거리고


시올 시올 바람조차
서글한 노승의 장삼자락으로 부는 날


두 연인의 가슴마다
끝내 이름을 얻지 못한


먼 해후의
그리움이


쏴 쏴
솔가지를 스치며
목이 마르데

 

 

 

고백 - 박계희

 

 

 

여러분
제가 솔직이 여러분 앞에 고백을 하지요


저는 요즘 배가 고픕니다
저는 요즘 군것질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도 군것질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요즘들어 특히나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그 이유를 생각해 봤더니
아마도 제가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봅니다


사랑할 땐 쉬이 배가 고파지지요
그좋은 예로, 사랑하는 연인끼리 만나면


그들은 거의 함께 식사를 한다든가
차를 마신다든가, 아니면 간단한 군것질을 하는 것이지요


저는 배가 고픕니다
배가 고파요


이제 배가 더 고파질 겝니다
그리고 마침내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공복감에

빠져버릴 겝니다
빠져버릴 겝니다

 

 

 

생리 - 박계희

 

 

 

금오산 기슭의
골짜기 골짜기를 연해


어깨를 들썩이며
노를 저어 깊어가는


오후의 한나절
들녘 가득


해 떨어지는 소리
펄럭 산그늘로 잠기고


서산 마루의
길게 목을 외로 빼어 울음 우는
외짝 기러기 한 마리


차운 꽁지를 곧추세우고
저 홀로 붉어 서러운 노을 따라


푸르른 실날
그늘 그늘 타오르다


아릿아릿한 슬픔으로 감아도는
처녀의 아름다운 피가 흐르는 강


열여섯 살 누이의 수줍은 얼굴이 보인다
일제히 꽃향기를 뿜으며


물빛으로 번져나는 주홍띠의
벌겋게 꽃물이 밴
알몸이 탄다

 

 

 

귀로 - 박계희

 

 

 

나의 사랑은 언제나 산이면서 메아리여요
산 굽이굽이 돌다


채 삭히어지지 못한 먼 외침은
어느 누구의 문턱에도 머물지 못하고

빈 하늘에 파문만 일으키고 있어요
하여 돌아와 보면


어느새 그대는 마른 가랑잎으로
내 심장 맨 나아중 자리에서

서걱이고 있네요

 

 

 

진달래 - 박계희

 

 

 

순이 볼 언저리
매양 돌던


배고픈 짝사랑을

이 산에서


저 산까지 다 먹어도
겨우내 주린 배는


부르지 않으리

척박한 땅의 맨살에


뿌랭이와 뿌랭이로 얽히어
육신을 부풀리는

 

살아 단 한번
양달진 가슴 쬐어 보지 못했던 이들의


새붉은 노여움을

이 마을에서


저 마을까지 다 헤매도록
한세월 앓아온 내 사랑은


먹어도 먹어도 배 고프리

 

 

 

 

 

찔레꽃 - 박계희

 

 

 

여기
풀섶을 돌고 돌아


그리로만 피어나던 슬픔이
점점이 선을 그으며


개구리 울음보다
더욱 붉게 벗기어 놓은


달빛을
절름거리며 절름거리며
베어먹는 예감으로


있네
서 있네

 

 

 

 

 

너를 위하여 - 박계희

 

 

 

너를 위해 남겨둔
빈 자리


그 적막한 순간을 아느냐
여름날 빛나는 꽃잎 속에
아무도 모르게 누운
어둠의 자리


때로 바람이 불고
물보라가 쳐도
끝내 잠들 수 없는
그 캄캄한 그리움의 심연


갈수록 내 것이 아니던 그대 사랑의
그 숨막히는 불꽃 더위
한갓되이


저승의 뒤안 뜰팡,
고웁고 질긴 명주실로나


이어져 내릴까
이어져 내릴까

 

너를 위해 밝혀둔
램프 하나,
밤새 기다리다


새벽이면 저 혼자
툇마루 흥건히 피를 토한다

 

 

 

 

 

오필리아의 노래 - 박계희

 

 

 

아침이면
늘상 깨어나


머리맡에 놓아둔
거울을 본다


오늘도
나의 죄는 길다


머리를 빗으며
간밤에 자란 죄의 길이를
가늠이라도 하듯


머리를 빗으며

장독이 터진다는 한겨울


사과씨의 캄캄한 어둠 저 건너편
밤마다 가슴에 불을 지르고

영혼을 사르며
시를 버려도


최후까지 버티는 일은
끝내 머리를 기르는 일

나의 형기는 언제쯤일까

머리를 빗으며


아침이면
늘상 깨어나 거울을 보며


오늘도

나의 죄는 길다

 

 

 

 

 

 

 

바다는 - 박계희

 

 

 

바다는 사랑의 가장 끄트머리
마지막 침실이다


젊은 날
그 계곡의 무수한 물줄기를 지나


뒤돌아보아도 뒤돌아보아도
몇 줌의 뼛가루처럼

분분한 안개만 흐르고
만경 들판의


키 큰 고목 하나로 서 있는
미이라


불러도 다만 소리할 수 없어라
불러도 다만 소리할 수 없어라 

 

 

 

 

 

 

 새벽 강가에서  박계희

 

 

길고운 머리카락

실하게 한 움큼 땋아내리어

 

거기 잃어진 꿈속의

낡은 그네를 타고

 

펄럭 문을 여는

샛별의

 

타오르는듯

빈 강울음이여 !

 

오늘은

넘치게 차오르는

 

은빛 잔으로

멀리

 

회한의 소맷자락 한끝 나풀거리는

세상의 어디쯤일까

 

삼경을 깨고 일어나

물안개를 헤살지며

 

홀로서는 그리움

까마득한 천공의 하늘에

 

이어질 듯

이어질 듯

 

학처럼 외론 모가지로

천년을 섰네

 

 

 

 

어디로 간 걸까   박계희

 

 

어디로 간 걸까  나의 시는

 

볕에 그을린

시커먼 얼굴을 하고

 

누렇게 바랜

몇 장의 가을 잎새귀 같은 몸매로

 

저녁 숨결 아슴아슴 젖어드는 산마루

긴 그림자 꼬리를 드리우고

 

어디로 간 걸까

 

어린 아이의 반짝이는 검은 머리칼과

그들의 새끼 발가락 가상이서

 

햇살과 까불대며  조잘대던 입

돌아가야 한다

 

그들의 진한 살냄새 담고

밭갈고 돌아오는 농부의

 

어지러운 진흙 발자욱 소리로

아버지의 아름다운 피가 흐르는 강으로

 

마냥 기쁘게 손뼉치며 달리는

어린 아이의 순한 눈매로

 

단순함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詩가 , 글쎄 사랑이   박계희

 

 

시가 잘씌어지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대상을 구하지 못했다거나

 

문제 의식이 없다거나 그런것도 아닌데

엿가락 늘어지듯 말만 헤프고

 

혹은 뱀이 또아리 틀듯

가슴에 옹골차게 맺히어

 

어느 한 가닥 풀어져 나오지 못하고

 한 순간의 번뜩이는 예지나 풍자도 없이

 

새끼 잃은 어미새 모양

진종일 피멍들게 헤매다녀도

 

詩가 , 글쎄 사랑이.........

 

 

 

 

 

눈 오시는날에    박계희

 

 

그리운 사람아

눈 오시는 날에 말없이 죽자

 

그대 고운 입술이 죄가 되고

따스한 가슴이 그대로 아픔이되는

 

젊은 날의 고된 걸음을 쉬게 하자

눈 보다 투명한 목소리로

 

자락자락 피어나는 얼음꽃으로

날선 비수의 정직함으로

 

그리운 사람아

눈 오시는 날에

 

눈 보다 투명한 얼굴로 말없이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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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2.07.13 17:12

    첫댓글 국화꽃님
    댓글 달아놓으신것
    홀라당 날려 버렷습니다
    오타가 저의 평범한 실력인데
    웽캉 까탈 시러운 스님 눈에 똑 부러지듯 걸리고 맙니다
    덤벙대는 저의 독수리 타법도 스님 눈엔 ....
    말캉말캉하고 이 보드라운 남자는
    가시고기인 스님의 눈을 피하기 쉽지 않을터라 ...

  • 12.07.13 18:13

    맞아요. 그게 스님의 관심이자 사랑입니다.
    많은 사랑 받고 있음에 행복하시옵소서.....

  • 12.07.13 21:21

    황공무지로소이다....
    평소에는 덤벙대기 일쑤이고 실수 투성이인데~~
    이럴 때만 까탈을 부리는 성질을 저도 잘 모르겠어요...ㅋㅋ~
    (인터넷에 오자 투성이의 시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을 저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었어요.
    그래도 뭐라 할 수가 없어서... 용천님한테만 큰 소리~~죄송함다)
    더운데 무척이나 수고가 많으셨어요...
    다음부턴 애시당초 이런 수고꺼리를 안맡으시면 좋을 듯~~
    그냥 혼자 느끼고 즐겨도 괜찮으실텐데 말이죠...

  • 12.07.13 19:57

    이런글 세번째 보는 듯 합니다.

  • 작성자 12.07.14 06:00

    ㅎㅎ
    미안합니다
    원본이 없는 관계로 인하여 그리
    되었습니다

  • 12.07.13 21:01

    또 달깨요.웬지모르게" 詩가.글쎄 사랑이.".......이편에 자꾸만 마음이 가요...
    용천님 수고하시니까 잘보고 갑니다.~~~

  • 작성자 12.07.14 06:03


    내캉 느낌은 비슷합니다
    사랑의 목마름을 노래하는 시가
    아마도 이 시기에 밥보다 술에 흔들리면서
    지내온 아픔의 길이 ㅠ ㅠ

  • 작성자 12.07.14 11:59

    희야 하는 시인이 원고지를 들고
    하얀길을 휘청거리고 있을때
    사랑은 내동댕이쳐지고
    삶은 척박한 가시 길로 향하고
    해도 달도 없는 어둠속으로 달려 간다
    이렇게 뭉클한 글을 남겨주심에 감사
    합니다 백중 기도 입제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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