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지혜'라는 나침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의 소리는 은은해서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외부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특히 그렇습니다.
우리 정신을 쉬게 하고 내부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렵지만,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행복은 외부 요인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젊었을 때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조차 그런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이 바깥에서 온다고 믿고 싶은 본능은 그만큼 강력합니다.
가령 화려한 경력을 쌓아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면 한동안 꽤 우쭐할 수 있지요. 하지만 누구나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깨닫게 됩니다. 그 삶은 마치 달콤한 디저트만 먹으면서 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이죠.
디저트는 눈에 아름답고 입에 달콤하지요. 하지만 생명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하진 못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순간의 지성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내면에는 정교하게 연마된 자기만의 조용한 나침반이 있어요.
그러나 그 지혜는 요란스러운 자아와 달리 은은해서 일부러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아가 던지는 질문과 요구는 그보다 몇 배나 시끄러워 지혜의 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따금 주파수를 바꾸는 것은 그래서 더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틈을 내어 멈추고 고요를 느끼는 겁니다. 정적의 순간을 찾는 것이지요.
어떤 삶을 살든 자기 안의 평화를 발견하려면 우리에게 내재한 소중한 능력을 돌보고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의 관심은 언제 어디서나 가장 요란한 소리에 쏠릴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삶이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립니다. 갈등에 끌리고 불안과 불행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하고 집중하게 됩니다. 항시 현실과 투쟁하게 되지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성에 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이성 또한 깃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내면의 목소리란 완전히 새로운 생각과 개념이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은 오랜 시간 심사숙고한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제가 그 멋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정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 생각이 이미 긴 시간 동안 제 안에 있었지만 다른 소음에 눌려 미처 들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다들 알다시피 오랜 시간과 열정을 바쳤던 일에 의문을 품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직업이든 인간관계든 생활 방식이든 누가 봐도 멋지고 좋아 보이는 것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 동안 억눌렸던 생각이 좀 더 자유롭게 흐르게 하자, 진심이 운 신할 여지가 생겼던 겁니다. 내면의 더 현명한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기 시작하니. 드디어 결심을 단행할 만큼의 확신이 찾아온 것이지요.
저는 이런 식으로 혹은 저런 식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이성적으로 따져보지 않았습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 하다 최종 결론에 이르지도 않았지요. 저 자신의 좀 더 큰 부분에 접근한 바로 그 정적의 순간 갑자기 분명해졌을 뿐입니다.
현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예전에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성적인 마음은 하인이다. 반면에 직관적인 마음은 신성한 선물이다. 우리가 창조한 사회는 하인을 섬기느라 선물을 잊어버렸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저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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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라는 나침반
계성지기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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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29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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