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주의 진노로 나를 짓눌렀으며,
주님의 파도로 나를 압도하셨습니다.
[시편 88:7]
시편 88편은 '가장 어두운 시편'이라고 불린다.
기도가 '오직 어둠만이 나의 친구입니다.'로 끝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삶이
고난에 휩싸였으며 스올의 문턱에 다다른듯 하다(3)
무덤에 내려가는 것 같고(4),죽은 자들 가운데서도 버림 받은 것과 같은(5),
주님의 손에서 끊어진 것과도 같은(5) 삶을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고 한탄한다.
시인은 이런 일을 한 주체를 하나님을 본다.
진노로 자신을 짓누르고(8),
칠흙 같이 어두운 곳에 자신을 던져버리시고(7),
주님의 파도로 자신을 압도한다(8)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기도한다.
기도하지만, 시인은 절망한다.
시편 88편을 묵상하면서 '왜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라는 쿠쉬너의 책을 떠올렸다.
쿠쉬너는 자신의 삶에 닥친 온갖 나쁜 일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냥 생긴 것일 뿐이라고 본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고난에 빠진 이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이 일어서고자 할 때 돕는 것이다.
고통은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기 때문에 지불해야만 하는 대가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고통을 의미있게 만들지만,
어떤 사람은 고통때문에 철저하게 파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통이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그 결과는 누구의 책임일까?
'곤고함 속에서 주님께 호소하는 것'도 믿음이다.
호소하면서도 절망하지만, 시인은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한다.
임계점에서 하나님을 떠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하면,
여전히 시인은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의 사람도 실패할 수 있고, 절망할 수 있다.
왜, 믿음의 사람들은 실패하면 안 되고, 절망하면 안 되는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의 한 구절이다.
'외적인 결과는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지만, 노력은 언제나 뜻대로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