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여름방학 때 속리산 경업대의 관음암에
훌륭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는 노스님이 계셨다
88세의 순진무구한 활달성과 자비로운 인품에
지나는 여행객 마다 웃고 떠들고 배낭에서 먹을거리를
스님에게 다 풀어 헤쳐놓고 지나갔다.
어떤 사람이든지 감화를 받고 밝아져서 기분좋게
가는 것을 보았다.
소문소문으로 사람들이 먼 곳에서 찾아와서
상담을 하거나 기도를 하러 오거나 나처럼
구도심에 불타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곳이었다.
나는 그 당시 4년 동안 사변적인 철학책을 붙들고
끙끙거리며 과대표를 3년 정도 해 왔기에
힘들고 영육이 오히려 피폐해진 것 같아서
늘 새롭게 충전하고 뭔가 크게 깨달아서
힘들지 않는 세계로 넘어가야 될 것 같아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허둥지둥 좋다는 곳이나
사람들을 만나러 다녀봤지만 오히려 더 방황하는
것들로 인하여 날카로워졌고 신경질적으로
남을 대한 적이 많았고 어려운 책을 읽어갈 수록
나의 교만은 높아져 갔다.
국선도를 통하여 행공을 하면서 정신집중력과
체력을 높아졌지만 능력과 힘이 증강되면
뭘 하겠는가. 사람다운 사람을 놓치고 사는데
불교연구회에 들어가서 가끔 법문과 강의와
수련과정에 참가했지만 마음 구석에서는
가톨릭의 종교출신이라는 것으로 늘 죄책감도
맴돌고 있었다.
그런데 경업대의 노스님 이 선암스님의
얼굴은 환한 달덩이처럼 원만하고 밝았으며
막힘이 없는 지혜의 말씀으로 여러 사람들과
내게 큰 감화를 주었고 같이 생활한지
일 주일이 지나자 내 안에 모든 문제가 없어져
버렸다. 질문도 없어져 버렸다. 좀 멍했다.
점점더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오히려 약간 적막해졌다.
같이 사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나는
완전히 바뀌어진다. 참 신기했다.
그렇게 복잡한 사람이 너무 무식하고 단순해졌다.
3주가 지났다. 노스님의 환한 얼굴과 친근한 풍모에
감화되어 나는 한 흐름 안에 들어갔다. 3주간 나는
새벽 3에 일어나 석간수를 주전자에 떠 와서 불상앞에
갔다 놓으면 스님의 하루일과는 시작된다.
예불문 호국발언문 금강경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스님과 나는 그 날 아침마다 떠 놓은 물을 한 잔 하고
1시간 정도 벽을 보고 참선에 들어간다.
내가 졸면 스님은 날 좀 더 누워서 자라하셨다.
그리고 아침 6시 30분이나 되면 아침공양을 한다.
오전에는 나와 이런저런 얘기들과 자신이 살아왔던
얘기 내가 살아온 얘기를 나누고 또 적절한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런생활을 3주간 하니까 내 안에
질문도 문제도 영육의 고통도 다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너무 무료하고 적막해서 나는 신선대 문장대로
뛰어다니며 놀다가 저녁 늦게 들어와 야단을 맞은
적이 많아져 갔다.
저녁 예불시간을 어기고 다녔고 내 맘대로 말씀
드리지 않고 돌아다닌 것을 나무랬던 것이다.
나는 잔머리를 굴리며 지루하고 적막하고 별로
뾰족한 나의 청사진이 나오지 않는 듯 하여
대구 집으로 돌아가려고 다음과 같은 거짓말을
스님께 고했다. "스님 대구에 홀어머님이 계시니
이제 내려 가봐야 하겠습니다. " 했다.
그 얘기를 세 번이나 3일 동안 반복해서 했다.
그러나 노스님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그래
어머님께 간다면 할 수 없지" 하셨다.
점심공양을 마치고 짐을 싸들고 인사드리고
암자밑을 내려왔다. 한 참이나 내려가는데
갑자기 위에서 "길오야 나중에 올때는 어머님을
모셔오너라" " 어머님은 왜요?" "어머님도 이 물을
마시고 오래 사셔야지" 하셨다.
나는 이 얘기들이 해를 거듭할 수록 새롭게 알아졌다.
스님의 마음은 어머님의 지혜와 자비로
가득찬 마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