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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의 비밀 7강
ד 달렡: 문, 종속되다
주님은 달렡(ד)으로 오신다. 달렡은 문 또는 종속되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완전히 종속되는 것이다. 김멜의 파워를 경험하기 시작하면 달렡이 찾아 온다. 이 알파벳 순서로 가지 않으면 누구도 신성을 경험할 수 없다. 이 순서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번호까지 매겨두셨다.
내 자유의지, 내 생각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내 판단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이것을 경험해야 한다. 성령이 내 속에 흐르는 것이다. 이것을 경험하면 성령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내 생각을 선택 할 수 있다. ‘내가 만들어낸 허상은 신성이 아니니까 선택하지 않겠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면 달렡을 주신다.
자유의지를 발달시키면 어떤 문을 발견한다. 자유의지로 문을 선택한다. 자유의지가 있어야 문을 선택하고 그 문 안에 있는 것을 얻게 된다. 주님은 무엇을 주실 때 반드시 직접 주시지 않고 문을 주신다.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대학교 안에 많은 것들이 있지만 결국 그 대학의 문으로 들어가야 그 공부를 통달할 수 있다. 달렡은 문이다. 문을 주신다. 종속되는 것이다. 어떤 문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완전히 종속되어 그 안에 있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신성을 훈련하려면 신성의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신성의 문을 선택해야만 그 신성에 계속 종속된다.
דלת 달렡: ד 문을 ל 훈련해서 ת 완성에 이르는 것
달렡은 히브리어로 דלת 달레트라고 한다. ל라메드는 제일 큰 글자이다. 지팡이 모양이다. 훈련이다. 문은 우리 주님이시다.
요한복음 10장 7절에서 내가 양의 문이다 라고 하신다. 주님이 이제는 문으로 나타나신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게 되면 마음이 열린 마음이 된다. ג 김멜이 살아나면 마음이 열린 마음이 된다. 내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열린 마음이 된다. 어떤 상황이 선택이 안 되는 상황이면 마음이 닫힌다. 그 상황이 어쩔 수 없기에 마음이 닫히게 되면 마음이 역사할 수 없게 된다.
김멜이 살아나서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을 선택 할 수 있으면 그 마음은 닫힌 마음이 되지 않는다. 어떤 우울한 일이 발생해도 내가 평화를 선택할 수 있으면 우울 속에 갇힌 닫힌 마음이 되지 않는다. 어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보통 마음이 닫히는데 김멜이 살아있는 자는 어떤 상황이 와도 절망이 아닌 것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열린 마음이다. 우리는 늘 열린 마음일 수 있다.
내 마음이 닫힌 마음이라면 김멜을 점검하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달렡이다.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을 다 문으로 보는 것이다. 무엇을 보든 문으로 보는 것이다. 그 문은 주님이시다. 그러면 세상을 다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다.
이 세상은 다 무엇을 위해서 창조되었는가? 그리스도를 위해서이다. 만물이 다 너희 것이다 라는 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존재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소유 하지 않은 채로 만물이 내 것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주님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만물은 다 주님을 위해 있어야 한다.
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우리의 생각이든 다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이는 것들을 나를 위해 창조한 것으로 착각하는 줄 모른다. 다 나를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위하지 않으면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 나를 위한 목적이 아닐 때는 전쟁을 선포한다. 전쟁을 밥 먹듯이 한다.
모든 것에는 신성한 목적이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신성한 목적이 있다. 다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다. 달렡은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다.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 문을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문이 아닌 것은 열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보여야 한다. 그것은 무슨 말인가? 앞에 있는 의자조차도 신성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존재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 속에서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하는 이 문을 열기로 작정하는 것이 다윗이다. 누구를 보든지 간에 상관없다. 그것을 통해서 나는 그리스도를 보겠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상관없다. 모든 것 속에 그리스도의 문이 있다. 누가 아무리 나를 괴롭혀도 그 속에는 그리스도의 문이 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많이 경험한다. 나 자신의 악함과 죄인 됨 때문에 괴롭다. 하지만 그 속에 그리스도의 문이 있다. 그 문을 찾는데 탁월한 전공자가 다윗이다.
דוד 다비드: 다윗 – 종속되고 또 종속된 자
이 문을 찾고 또 찾는 자이다. 그리스도의 문을 찾는 자이다. 이름에 달렡이 두 개이다. 주님은 항상 내 앞에 두 개의 상황을 두신다.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다. 김멜을 가진 자는 항상 어느 한쪽만의 상황에 처하지 않는다. 성령과 동행하는 자가 누리는 축복이 바로 어떤 상황도 어느 한쪽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늘 밸런스가 맞춰진 축복이 있는 것이다. 한쪽만 오는 경우는 구속되지 않은 상태이다.
김멜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한쪽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그런 자 앞에 문이 열린다. 김멜은 반드시 천국의 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선택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문이라고 하신다. 자신을 문으로 주신다. 김멜로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 속에서 신성한 목적을 발견하라는 것이다.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작은 자에게 물 준 것을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이 작은 소자에게 계셨다는 것이다. 왜 이게 주님인가? 주님은 모든 것 속에 계신다. 모든 것은 주님을 위해 존재하고 모든 것 속에 있는 신성한 목적을 발견할 때 그것이 그분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ד달렡이다.
דרש 다라쉬: 추구하다, 찾다
문을 찾는 작업으로 인생이 바뀐다. 히브리 말로 מדרש ‘미드라쉬’ 라는 단어가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예배드리는 공간(회당)이 있고 מדרש בית 베이트 미드라쉬가 있다. 토라를 공부하는 곳으로 번역하면 미드라쉬의 집인데 항상 회당에서 예배 드리고 나면 여기로 온다. 거기서 미드라쉬한다.
유대인들은 계속 다라쉬 한다. 이것은 달렡, 문을 찾는 작업이다. 신성한 문, 그리스도를 찾는 작업이다. 모든 것 속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히브리어를 배우는 것은 토라 속의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붉은 암송아지의 이야기에 대해 나오는데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줄 알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붉은 것은 어느 정도 붉어야 할까? 붉음이 무엇인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문이 있다. 이것에 신성한 목적이 있고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리스도가 나타나신다.
예를 들어, 붉음이 무엇이냐? 이걸 찾는 것이 미드라쉬이다. 붉음은 히브리어로 무엇인가? 히브리어를 모르면 문을 발견하기가 매우 힘들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항상 히브리어를 가르친다. 성경을 배우는 것은 히브리어로 배워야 한다.
사람은 개념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데 신성에 대해서 배우려면 신성에 속한 언어가 먼저 있어야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어려서 사람의 언어를 배우게 하신다. 또한 주님이 우리를 신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으면 우리는 신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어떤 교리를 가르치든지 간에 내 언어, 인간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내 개념으로 해석한다. 똑같은 십자가 이야기를 해도 어떤 사람은 ‘이건 저 사람이 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생각 한다. 내 위주로 해석하기에 아무리 신성에 대해서 배워도 삶이 변화가 안 되는 것이다. 인성을 강화시킬 뿐이다. 신성에 대해서 배울수록 더 판단한다.
내가 영적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면, 영적인 것을 배울 때 다른 사람이 생각나고 다른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 사람이 가장 육적인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영적인 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 가장 육적인 것이다.
절대적으로 주의해야 한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오직 나 한 사람에게 집중하신다. 신성을 배우려면 반드시 언어를 배워야 한다. 신성에 속한 개념을 배우라는 것이다.
דשא 데쉐: 싹이 나다
창세기의 셋째날에 데쉐라는 단어가 있다. “싹이 나다“라는 의미다. 마른 땅에서 싹이 나기 시작한다. 데쉐는 문이 발견된 것이다. 주님이 우리를 어디에 눕히시는가? 푸른 초장에 눕히신다. 시편 23편에 푸른 초장이라는 단어에 데쉐가 들어간다. 문을 발견하면 푸른 초장이 된다.
주님은 다비드이시다. 주님은 양의 문이시다. 양들이 푸른 초장으로 가면 거기서 풀을 먹는다. 형상의 문을 먹는다.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해 존재한다는 시각을 잃지 않는다. 모든 것 안에 신성한 목적이 있고 주님을 발견할 수 있는 문이 있다라는 것이다.
아무리 원수라도 그 속에 주님을 발견 할 수 있는 문이 있다.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 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찬스가 왔을 때 다윗의 군대장관들은 달렡의 삶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름이 쌍 달렡이다. 문을 발견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고백한다. 기름부음 받은 자는 그리스도이다. 사울에게서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다. 사울을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다. 자기 원수를 그리스도로 보는 것이다.
주님은 다윗을 언제나 푸른 초장, 데쉐로 인도하셨다. 항상 그 문으로 인도하신다. 모든 것에서는 싹이 틀 수 있다. 내 눈에는 지금 마른 땅이어도 거기서 싹이 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편 팔로 구속했다는 것이 그 말이다. 팔은 씨라는 말과 같은데, 씨가 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씨에서 싹이 날 수 있다는 말이다.
만물 속에 있는 그분의 목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싹이 실현된다는 것이다. 다윗이 존재하면 모든 것 속에서 그분의 목적이 나오게 된다. 다윗 한 사람을 얻으면 모든 것 속에서 그리스도의 싹이 나게 된다. 다윗이 그 문을 발견하자 그 문에서 싹이 난다.
그리스도는 또한 다윗으로 이 땅에 오셔서 나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문을 발견하신다. 이 문을 발견하고야 만다. 그러면 문이 열리고 거기에서 싹이 나온다. 주님은 다 달렡 사역을 하신 것이다. 우리에게서 항상 문을 발견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누구에게서든지 그 문을 발견해야 한다. 누구에게서든지, 무엇에든지 그 문을 발견하는 자가 되었을 때 달렡 사역이 완성되는 것이다.
דעת 다아트: 지식
다아트는 지식이라는 말이다. 지식이라는 것은 문을 보는 것이다. 문을 보아서 목적에 다다르는 것이다. 주님이 선악의 지식나무로부터 먹지 말라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의 지식 나무를 별로 안 좋게 생각하지만 성경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잠언에 보면 늘 이 지식을 얻으라고 한다.
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 것이 창세기 3장이다. 문을 봄으로 완성에 다다르는 것을 지식이라고 한다. 문에 관한 지식이다. 사람에게는 어떤 것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문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골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함을 입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인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모든 것을 바라볼 때 열린 마음으로 문을 찾아라. 이것이 지식에까지 새로워진 것이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로 보라. 모든 것 속에서 문을 보라. 모든 것 속에 그리스도의 신성한 목적이 있다. 이게 지식에 까지 새로워진 자이다. 이런 자들을 새사람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달렡 까지만 와도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뀐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달렡에 오면 일단락 된다.
דם 담: 피- ד 달렡에 대한 ם 진리
내가 피가 끓는 이유는 이 문을 발견하고 싶어서이다. 담은 피라는 말이다. 피가 안 끓는 이유는 문 찾기를 중단해서이다. 그냥 내가 보는 대로 보고, 나이가 들면 모든 것에 대한 판단기준이 다 생겨서 더 이상 문을 찾을 필요가 없고 현상 유지만 하고자 한다. 이렇게 되면 피가 식기 시작한다. 피를 주신 것은 문에 관한 진리를 끊임없이 찾으라는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 속에서 신성을 찾으려고 하면 피가 끓는 것이다.
דמת 드무트: 모양
모든 존재하는 것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자 하면 그 진리가 실제 완성에 까지 간다. 드무트 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서 모양이라는 말이다. ד달렡은 숫자값 4이고 מ멤은 숫자값 40이고 ת타브는 400이다. 드무트의 숫자값은 444이다.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것은 달렡에 대한 진리로 문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과 같다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하게 한다. 우리가 모든 것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달렡의 중요한 원리들이다.
나는 다윗의 제자가 되어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보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달렡의 삶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발생되어도 그리스도의 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믿음으로 사는 것을 하나님의 모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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