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선리 산45번지에 위치한다. 성은 상리면, 하리면, 용문면이 접해 연결되는 해발 700∼800m의 야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자연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고로봉형(??峰形) 산성이다. 어림산성은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등에서 ‘상을곡성(上乙谷城)’, ‘어림성(御臨城)’ 등으로 기록된 예천 일대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산성은 동쪽의 속칭 ‘풍기성’과 서쪽의 속칭 ‘예천성’으로 구분되는데 현재 어림성이라 부르는 곳은 일반적으로 예천성을 가리킨다. 성 내부는 화산의 분화구처럼 우묵한 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1997년 예천양수발전소 상부댐 예정지역으로 결정되어 지표조사가 실시되었다. 산성은 빙성산(氷城山)의 봉우리 능선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빙성산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해발 822m)이며 800m 내외의 봉우리가 풍기성의 북쪽과 풍기성과 예천성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어림산성은 동쪽의 내성과 서쪽의 외성으로 구분되는데, 현지 주민들은 내성을 ‘풍기성’ 외성을 ‘예천성’으로 부른다. 성벽의 길이는『예천군지』『, 예천문화』등기존의기록에는풍기성이2.9㎞이고 예천성은 4.8㎞라고 하고 있으나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풍기성의 길이는 서벽이 약 1,000m이며 북벽은 400m이고 서벽은 1,050m 남벽은 175m로 총 2,625m이다. 예천성의 길이는 서벽이 705m이며 북벽은 900m이고 동벽은 595m 남벽은 1,180m로 총 3,380m이다. 풍기성 서벽 1,000m 중 595m는 예천성의 동벽과 공유되어 있다. 어림산성의 총길이는 5,410m이다. 성벽은 경사가 급한 곳은 삭토법(削土法)으로, 완만한 곳은 협축법(夾築法)으로 축조했으며, 성벽 일부에는 너비 6m의 내부회곽도(內部廻郭道)가 남아 있다. 예천성은 전체적으로 자연의 험준한 산봉우리를 이용하였다. 외부로는 거의 절벽에 가까울 정도로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고 있다. 능선의 기울기가 완만하거나 길이 있는 곳은 토축을 하여 성을 쌓았으나 대부분 능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석축을 한 부분은 남문지와 그 외 능선이 갈라지는 지점에 파괴된 석축 2곳이 있다. 성벽의 보존상태는 매우 열악하다. 이는 대부분 토축 또는 토석 혼축으로 되어 있어 무너져 내린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남문지는 뚜렷하며 능선에 일부 석축의 흔적이 있고 치성 흔적이 1개 있다. 풍기성의 가장 긴 성벽인 서벽은 예천성 북벽의 동쪽 끝인 1호치성에서 남쪽으로 뻗친 능선 상에 축조되어 있으며, 전체 약 1㎞로 풍기성의 네 성벽 중 가장 긴 부분이다. 이 중 595m는 예천성의 동벽과 공유하는 능선이며 풍기성의 서벽으로만 축성된 부분은 약 400m이다. 남문지, 서문지, 치성 3곳, 군창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된다. 어림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중기까지 산성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폐지되었다. 성내는 풍부한 수원과 분지를 형성하고 있어서 외적이 침입하였을 때 많은 주민이 입보(入保)하기 알맞은 곳이다. 예천성과 풍기성으로 구성된 어림성은 대규모의 포곡식 산성으로 토성인 예천성은 그 기원이 통일신라시대 이전까지 올라갈 수도 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수차례에 걸쳐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어림산성 중 풍기성은 비교적 잔존상태가 좋은 편이나 예천성은 목장 개발로 인해 파손 상태가 매우 심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토축 또는 석축 상태가 양호하게 남아 있다. 1981년 이후 들어선 목장으로 인해 훼손이 심하며 2004년에는 예천양수발전소 상부(上部)댐 부지로 편입 되었다. 성 안의 밭에서 삼국시대 토기편과 조선시대 기와편이 채집된다.(김약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