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신의 뜻을 세상에 펼치기 위해 태어난 사역자이다.
▣ 모든 현실은 시각적 착각이며,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입니다.
과연 눈에 보이는 나의 육신이 나의 전부일까요? 육신이 나의 전부라고 믿으면 시야는 지극히 짧아집니다. 인간의 몸은 100년쯤 살다가 사라지는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 물리학에서는 빛으로 가득한 공간과 물질, 이 두 가지가 함께 설 수 없으며,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 유일한 현실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디지털 에너지장 카메라(PIP scanner)로 인체 에너지장을 촬영하면 육신의 공간보다 몇십 배나 더 넓은 공간에 빛이 퍼져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공간마다 주파수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여러 겹의 공간이 층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30년 경력의 기자이자 [왓칭]의 저자 감상운은 이 여러 겹의 공간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이 빛의 공간이 겹치면서 육신이라는 환영(홀로그램)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는 것은 물질세계 뿐이지만 사람을 비롯한 우주 만물은 에너지적 존재입니다. 모든 것은 에너지로 시작해서 현실 세계에 물질로 창조됩니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 나와의 만남, [왓칭2]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 내 안의 보이지 않는 나는 누구일까?
때는 2001년 9월 11일 미국 동부 상공을 비행하던 여객기 4대가 납치되어 무고한 생명 3천여 명이 숨지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4대의 비행기에는 하나같이 평소보다 훨씬 적은 승객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미국 여객기들의 평소 좌석 점유율은 무려 70~80%이지만, 당시 4대의 여객기의 평균 좌석 점유율은 겨우 31%에 지나지 않았지요.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많은 승객들이 예약을 취소해 버렸던 것입니다.
도데체 그들은 어떻게 대형 참사를 예감했던 것일까요? 비행기만 그런 게 아닙니다. 심리학자 콕스는 큰 사고를 낸 열차 28대를 추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사고 열차는 바로 전 주의 같은 시각에 달렸던 열차보다 승객들이 훨씬 적었던 것입니다.
프린스턴대의 물리학자 라딘 박사는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동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비디오를 보기 3초 전에 자신이 어떤 비디오를 볼지 미리 예지하는 신호가 이미 뇌에 들어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내 마음속의 누군가는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두뇌는 미래를 모릅니다. 하지만, 미래를 훤히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나' 가 내 안에 숨어 있습니다.
독일의 뇌과학자인 헤인즈 박사는 대학생들에게 양손의 버튼 중 어느 버튼울 누를지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버튼을 누르도록 했고, 뇌신경이 움직임을 관찰한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생들이 버튼을 누르는 결정을 내리기 10초 전에 이미 어느 쪽 버튼을 선택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신호가 보내져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이 이 신호를 보고, 학생들이 어느 쪽 버튼을 누를지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실수를 범하기 최대 30초 전에, 뇌신경세포는 이미 실수를 감지하는 신호가 나타난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프리드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정은 이미 누군가가 해놓은 겁니다. 두뇌는 이렇게 내려진 결정을 나중에 받아들이는 역할만 할 따름이죠. 두뇌는 의사 결정에는 참여하지 않고 나중에 통보받은 것입니다."
두뇌가 컴퓨터라면 생각은 프로그램입니다. 누군가가 내 두뇌 속에 생각이라는 프로그램을 나 몰래 입력시킨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내 욱신은 입력되는 프로그램 대로 움직입니다.
99.9%의 사람들이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 인간은 빛의 존재이다.
고성능 에너지장 카메라로 사람을 촬영하면 사람을 둘러싼 빛의 공간을 볼 수 있으며, 가까이 보면 사람마디 에너지장의 색깔이 다릅니다. 만일 내가 어두운 생각을 품고 있으면, 에너지장의 색깔도 어두워지고, 밝은 생각을 품고 있으면 색깔도 밝아집니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생각도 에너지' 인 것입니다. 생각도 에너지의 물결이며, 물결엔 움직임이 있고 주파수가 있습니다. 자연히 주파수가 맞는 생각끼리는 서로 끌어당깁니다.
내 에너지장 속에 어두운 생각이 가득하면 어두운 생각을 품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따라서 어두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현실도 어두워집니다. 현실은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을 고스라니 베춰주는 거울인 것입니다.
인체를 둘러싼 에너지장을 보면 몸에서 1.5미터 정도까지의 공간엔 감정의 물결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 바깥쪽 2.7미터 정도까지의 공간엔 생각의 물결이 넘실거립니다.이른바 잠재의식의 공간인 것입니다.
이곳에 두뇌가 모르는 생각들이 이미지 형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바깥은 무슨 공간일까요? 바로 영계에서 나오는 투명한 빛이 흐르는 공간입니다. 나를 포함한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건 무한한 빛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수천 년간 투시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입니다. 다만, 과학이 이를 증명할 만큼 발전되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이처럼 나는 육신의 작은 공간에 국한된 존재가 아닙니다. 내가 밖으로 멀리 바라볼수록 나의 공간은 점점 더 넓어집니다. 미국의 생리학자인 헌트 박사는 "에너지장에 들어있는 정보를 보면 몇 년 안에 내 몸이 어떤 질병에 걸릴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고 말합니다.
맨 바깥의 영혼의 공간엔 내 인생 전체의 설계도가 들어 있습니다. 그 설계도에 따라 내 두뇌에 끊임없이 생각이 입력됩니다. 나는 입력되는 생각에 따라 행동을 선택하게 되고, 선택한 행동에 따라 영적 성장에 필요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지구는 영혼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가는 학습장인 셈입니다. 영혼은 학습을 위해 지구환경에 필요한 옷인 육신을 잠시 걸치는 것입니다. 학교에도 교과과정이 있는데 하물며 영혼이 아무 설계도도 없이 지구에 내려올 리는 만무합니다.
아인슈타인은 "곤충에서 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 식믈, 우주먼지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연주자가 멀리서 보내주는 신비한 선율에 맞추어 춤을 춘다" 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반드시 정해진 운명속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말일까요? 아인슈타인은 "물질과 에너지는 모습만 다를 뿐 똑같은 하나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얼음에 열을 가하면 물이 되고, 거기에 열을 더 가하면 수증기가 되어 퍼져나갑니다. 모습은 다르지만 얼음과 수증기는 똑같은 하나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물질인 동시에 에너지입니다. 헌트 박사가 개발한 오라미터(Auramrter)로 촬영한 사진을 보면 깊은 사랑을 느끼고 마음이 열릴수록 빛이 한없이 퍼져나감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랑이 넘치는 사람과 같은 방에 가만히 있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부처나 예수와 함께했던 사람들도 그런 경험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들은 착각속에 갖혀 있습니다.
육신이 나의 것인 줄 알고, 육신이라는 좁은 공간 속에다 시야를 스스로 국한시켜 놓고 있습니다. 육신과 두뇌만으로 살아가면 스스로의 운명은 한계를 정해 놓고 그 속에 갖혀 버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인생을 마칩니다.
▣ 지능은 머릿속에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는 두뇌 안에 저장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도 정보가 두뇌의 어느 부분에 저장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영국의 생물학자 셀드레이크 교수는 「두뇌는 정보의 송수신 장치일 뿐이다」라고 밀합니다.
마치 TV처럼 텅빈 공간에 저장된 정보를 송수신한다는 것입니다.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온다고 해서 라디오 속에 소리가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라디오는 공중에 떠 있는 소리 신호를 수신하는 기능만 하는 것입니다.
두뇌가 수신하는 모든 정보가 텅빈 공간에 저장돼어 있습니다. 그래서 두뇌의 절반을 잘라내도 반드시 지능도 절반으로 줄어들지는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두뇌는 절반 이상이 잘려 나갔으니 지능이 떨어질거야' 라고 믿으면 당연히 지능이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지능의 공간을 두뇌로 국한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능은 텅빈 공간에서 무한히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현대인들은 만성적으로 시야가 좁아져 머릿속엔 늘 생각이 가득합니다. 육신의 나는 육안으로 보이지만 빛으로 된 나는 마음의 눈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마음의 눈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안구 바로 뒤의 두개골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제 3의 눈이라고 불리는 송과선(松果腺)에 있습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영혼의 자리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욱신의 세계와 영적 세계를 이어주는 곳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일대의 러너 박사팀은 송과선을 정밀히 분석해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완벽히 깜깜한 곳에 박혀 있는데도 광수용체 세포 다발들이 무수히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포들은 빛을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후 과학자들은 송과선에 지르코늄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라디오의 전파를 송신하는 트랜스미터 역할을 하는 물질입니다.
또 새들의 경우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더리도 길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GPS 역할도 합니다. 과학자들은 눈이 없는 멕시코 장님 물고기가 송과선을 사용하여 외부 세계를 보는 것을 발견했으며, 사람의 육안은 초점을 맞추고 빛을 모으는 카메라 렌즈와 같은 작용을 할 뿐이고, 송과선이 필름과 같이 빛에 감응하여 이미지를 형성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능은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필만 보는 것보다 책상 전체를 볼 때 시야가 넓어지고 세계지도를 보는 것보다 우주 전체를 볼 때 시야가 더 넓어집니다.
만일 지능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라면 시야를 넓힌다고 해서 지능도 높아질 리는 없습니다. 심리학자 리버만 교수는 "지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힐수록 무한히 늘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천장이 높은 방에서 시험치면 성적이 평균 25%나 오르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코넬대의 심리학자 웰스는 창밖에 나무들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한 어린이일수록 주의력 시험 성적이 가장 극적으로 높아졌다고 했으며, 생활공간이 비좁은 곳에 사는 청소년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가정 폭력의 희생자가 될 위험성도 크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방 안에서 보다 방 밖에서 시험 문제가 평균 20%나 더 잘 풀린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러시 대학병원의 제임스 박사는 도시에 사는 노인 1,300명의 생활 습관을 조사했는데 치매에 많이 걸린 노인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활 공간은 집과 집 주변으로 한정된 사람들 이었습니다. 생활 공간이 좁아지면 마음의 공간도 좁아집니다. 그들은 생활 공간이 넓은 사람들보다 치매에 걸릴 확률이 무려 두배나 더 높았습니다.
또한 넓은 창밖이 내다보이는 병실에서 생활한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퇴원 속도가 빨랐으며, 합병증도 적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나는 몸속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시야를 넓히기만 하면 끝없이 퍼져나가는 무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넓히면 내가 바라보는 공간도 넓어집니다. 공간이 넓어지는 만큼, 공간 속의 모든 것들이 내 의도대로 놀라운 마법이 일어납니다.
▣ 우주는 홀로그램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도 전자현미경으로 쪼개고 확대해 보면, 죄다 텅텅 비어 있습니다. 우리가 철석같이 현실로 믿고 사는 물질 우주가 사실은 일정한 범위의 시야 내에서만 현실로 보이는 환영(幻影)인 것입니다.
우리는 왜 환영(幻影) 속에 살고 있을까요? 육안의 시야가 짧고 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일부만 보는 것이며, 무한한 전체를 모든 방향에서 본다면 우주는 텅 비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도 '현실은 시각적 착각' 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겉으로 우주는 고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근원적으로는 환영(幻影), 즉 거대하고 기발하게 정교한 홀로그램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두뇌는 만물을 단단한 고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뇌의 생각이 없다면 우주 만물은 텅 빈 공(空)일 분입니다. 우주가 이렇게 텅 비어 있으니, 내가 시야를 넓히는 대로 빛으로 된 나 또한 거침없이 퍼져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능, 창의력, 운, 건강 등 나의 모든 것도 끝없이 흘러나옵니다. 인생의 지나간 모든 추억들은 동영상으로만 존재하고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살아 움직이는 내 몸도, 한 시간 후에는 동영상으로만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의 나는 동영상이 아닐까요? 시간상으로는 동영상임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실시간으로 내 몸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간상으로도 알아차리기 힙듭니다. 왜냐하면 '나'가 바로 내 몸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상으로 혹은 공간상으로 거리를 두면 현실세계가 동영상임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현실세계는 고통의 바다입니다.
나 스스로 시공간상으로 시야를 좁혀 육신의 공간 속에 나를 가둬놓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공간은 감정과 생각의 공간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자연히 나는 감정과 생각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지만 내가 시야를 멀찌감치 넓히면 나는 육신의 공간은 물론, 감정도 생각의 공간에서도 벗어납니다.
그래서 모든 상황을 동영상처럼 몇 발짝 밖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상대가 아무리 거친 말을 퍼붓더라도 그건 한낱 동영상에서 나오는 소리일 뿐입니다.
지금 싱황이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그것 역시 잠시 스쳐가는 동양상일 뿐입니다. 직장 상사의 잔소리가 견디기 힘든 건 나 스스로 시야를 좁혀 그 잔소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넓혀 무한한 공간의 고요에 귀를 게울이면 잔소리는 공간 속으로 사라집니다. 소리 자체는 시끄럽지 않습니다. 두뇌의 생각이 공기의 진동을 시끄러운 것으로 해석하여 증폭시키는 것일 쁜입니다. 시야를 넓히면 모든 시끄러움이 텅 빈 공간 속으로 사라집니다.
▣ 육신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
텅 빈 우주가 빛으로 가득하듯 내 안에도 빛으로 가득한 영체가 들어 있습니다. 영체(靈體)는 빛덩어리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열면 열수록 무한히 퍼져 나갑니다. 그러면서 무한한 공간과 하나가 됩니다.
원래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체는 무한한 빛의 세계에 살던 영혼입니다.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지구에 내려오면 육신 속에 갇힙니다.
왜 육신 속애 갇혀 있을까요? 지구에서 온갖 경험을 겪으면서 성장해 가기 위해서 입니다. 영혼은 육신을 사용하여 물질 차원의 현실을 경험합니다. 육신이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육신을 빌려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선택하기 10초 전에 두뇌에 이미 신호가 들어오는 것도, 영혼이 두뇌를 이끄는 것입니다. 런던 대학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은 "크게 보면 우주는 하나의 마음이다." 라고 하였으며 프린스턴 대학의 물리학자 휠러 박사도 "우리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우주의 작은 마음 조각들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람이 곧 나입니다. 각자의 마음 조각들이 모여, 무한한 하나의 마음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공무원 6,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인생은 불공평하다' 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심장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55%나 더 높았습니다.
그들은 나만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인생은 불공평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 으로 느낍니다.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우리는 이 놀라운 이면에 의식적이고 지능적인 존재가 있음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마음이 모든 물질의 모태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시야를 무한히 넓히면 나는 무한한 마음과 하나가 됩니다. 우주 만물이 내 마음속의 환영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나는 비로소 우주 만물을 움직이는 진정한 창조자가 됩니다.
우리는 영혼으로서 지구별에 육신을 빌려 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내려왔습니다. 우리는 신의 뜻을 펼치는 대행자이며 사명자들 입니다. 우리 모두 신의 뜻을 세상레 펼치기 위해 마음과 뜻을 넓히는 공부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께 신의 사랑과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