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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
일본이 함포를 앞세운 미국의 압력으로 화친조약을 맺은 뒤 1858년 처음으로 미국과 맺은 일미수호통상조약은 두 가지 점에서 불평등조약이었다. 첫째, 일본은 미국에게 치외법권을 인정해야 했다. 미국인이 일본 땅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일본은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었고 미국인 영사가 범죄자를 처리했다. 둘째, 일본은 관세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미국과 맺은 불평등조약의 내용은 그 뒤 일본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과 맺은 통상조약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단행하여 봉건 체제와 결별한 일본은 서양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근대적 산업화를 통해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도 불평등한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일본은 미국과 처음으로 불평등조약을 맺었지만 일본이 불평등조약을 개정하려고 공을 들인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다. 19세기 말 세계를 호령하던 패권국은 미국이 아니라 영국이었다. 미국이 패권국으로 슬슬 등장하는 것은 1차 대전이 끝나고 빚더미에 오른 유럽 국가들에게 채권국으로 군림하면서부터다. 19세기 말 세계 경제를 움직이던 기축 통화는 지금의 미국 달러가 아니라 영국 파운드였다.
당시는 금본위제였으므로 나라마다 금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본은 처음에는 생사 등의 원료 수출로, 다음에는 섬유제품 수출로 벌어들인 돈으로 바꾼 금과 청일전쟁에서 중국으로부터 배상금으로 받은 금을 자국 은행이 아니라 영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잉글랜드은행에 맡겼다. 영국에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일본은 1889년에 제정한 최초의 헌법에서 자국의 정식 호칭을 <대일본제국>으로 삼았다. 세계에 대제국을 건설한 영국의 길을 아시아에서는 우리 일본이 따르겠노라는 의지와 각오의 천명이었다.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영국의 계산도 있었지만 일본의 집요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1894년 일본은 영국을 설득하여 치외법권 철회에 성공했다. 패권국 영국으로부터 사법권 행사를 인정받았으니 다른 나라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 프랑스, 독일로부터도 사법권을 곧 되찾았다. 일본은 1911년에는 관세 자주권도 되찾았다. 그리고 조선을 타고앉아 본격적인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 전 <조선>이라는 이름은 이미 국호로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1897년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었다. 대영제국을 따르려는 대일본제국처럼 조선도 부국강병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천명이었다. 제국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수천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아온 부족이나 민족이나 나라도 제국의 자기확장 의지 앞에서는 길을 내주어야 한다는 호전주의가 배어든 말이다. <대일본제국>이 <조선>을 삼키는 것은 도덕적으로 규탄할 수 있지만 <대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삼키는 것을 도덕적으로 질타하기는 어렵다. <제국>이라는 말을 받아들였을 때 이미 도덕과는 무관한 약육강식의 길을 걷겠노라는 선언을 한 셈이어서다. 약자에게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 것이 문명인의 논리라면 약자에게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이 야만인의 논리고 약육강식의 논리다.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삼았을 때 고종은 조선을 야만의 세계로 끌고 들어갔다.
상해 임정 지도자들은 야만의 과거와 결별하고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지었다. 지향점을 <제국>이 아니라 <민국>에서 찾았다. <민국>은 무슨 뜻일까? <민주주의국가>의 줄임말일까? 그렇지 않다. 상해 임정은1912년혁명을 통해 청조를 무너뜨리고 중국에 들어선 <중화민국>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중화민국의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China다. 대한민국의 영어 명칭도 Republic of Korea다. 민국은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민주정도 공화정도 일인이 권력을 독점하는 왕정이나 소수가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정과는 달리 다수가 권력의 주체다. 다수가 권력의 주체라는 사실은 민주정에서도 공화정에서도 선거로 표현된다. 선거 결과는 다수결로 결정되지만 그 다수결은 개인들의 결집된 의지다. 민주정에서도 공화정에서도 개개인을 주권자로서 존중한다.
그러나 민주정은 엄밀한 뜻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유지되는 형식적 절차에 집중한다. 유권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내용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다. 거대 에너지회사들이 제시하는 금전적 보상에 솔깃하여 유권자들이 자손만대 지하수를 마셔야 하는 후세는 아랑곳하지 않고 독성 화학약품을 땅속에 퍼부으며 셰일 가스를 뽑아내도록 법을 만드는 정당을 지지해서 과반수를 만들어주어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서양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에 뿌리를 두었지만 자유주의는 개인주의로 흐르기 쉽다. 서양에서 자유주의가 18세기에 세력을 떨치던 시절부터 벌써 자유주의를 부르짖던 사상가들조차도 자유주의가 상업주의와 개인주의로 치닫기 쉽다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의 개인주의화를 우려하던 사람들은 공화주의에서 대안을 찾았다. 공화주의가 존중하는 개인은 사익만 챙기는 개인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나설 줄 아는 개인이다. 멸사봉공까지는 아니더라도 공동체가 어려울 때에는 공동체의 안전과 존속을 위해 손해를 무릅쓸 줄 아는 사람들을 영웅으로 대접하는 것이 공화정이다.
공동체의 안전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외세의 침공이었다. 공동체가 위험에 빠졌을 때 무기를 들고 나서는 국민군이 공화국의 기둥이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들어선 공화정이 온 유럽 왕정들의 침공을 격퇴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군이 전투의 주역으로 나서서였다. 용병이 주축을 이룬 유럽 왕정의 군대들은 공화정을 사수하려는 프랑스 국민군의 적수가 못되었다.
미국을 세운 건국의 주역들은 국방은 평상시에는 생업에 힘쓰다가 전쟁이 터지면 무기를 들고 나서는 시민이 맡아야 한다며 상비군조차 두지 않으려고 했다. 상비군을 두면 무력을 보유한 집단이 국민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었고 상비군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국민한테서 세금을 더 걷어야 했다. 그러나 분업화와 전문화가 진행되는 추세에서 초라한 국방력을 가진 신생 독립국이 상비군을 두지 않기는 불안했다. 공화정으로 출범한 미국이 독립 직후 상비군을 사실상 없앴다가 곧 되살린 이유는 영국과의 분쟁이 끊이지 않던 상황에서 최신 무기를 다루려면 평상시에도 훈련을 정규군이 필요하다는 부득이한 판단에서였다.
원래 공화정에서는 군인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공무원도 그렇고 공동체에 헌신하는 국민의 책임을 날이 갈수록 전문화하는 세상에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집단이다. 군인과 경찰의 가장 큰 책임은 납세를 통해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을 수호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는 경찰과 군대를 가진 나라만이 공화국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한국의 해경과 해군은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수백 명의 고등학생이 수심도 깊지 않은 바다에 갇혀서 설마 누군가가 구하러 오겠지 불안한 마음을 웃음과 익살로 가라앉히며 구조를 기다리다가 끝내 몰살당했다. 해경은 아직 배 안에 갇힌 학생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제대로 된 구조 작전을 벌이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듣고 생업을 중단하고 전국에서 수백 명의 민간 잠수사들이 배 안에 갇힌 학생들을 구하겠다며 현장으로 달려왔지만 해경의 벽에 막혀 적게는 초기 몇 시간 길게는 처음 이틀 동안의 황금 같은 시간을 물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급기야는 해경에게 모욕을 당한 민간 잠수사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자연재해뿐 아니라 이런 항해 사고까지도 국가 재난으로 규정하고 온갖 경우의 수를 상정하여 모두 2800종류의 두툼한 매뉴얼을 만들어두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노무현의 모든 것을 부정했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여 작성한 이 매뉴얼들은 휴지 조각이 되었다. 노무현대통령은 인명과는 무관했던 태안의 기름 유출 사건 때에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여 기름 확산을 막으라고 지시하여 기상 상황을 탓하면서 변명에 급급하던 해양경찰청장으로부터 반드시 기름 유출 확산을 막겠노라는 확답을 얻어냈다. 노무현정부 때에도 지도자는 올곧았지만 한국 경찰의 상층부는 썩어 있었다. 거기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해방 직후 미 군정이 시작되었을 때 일본인 경찰의 출근율은 90퍼센트였는데 조선인 경찰의 출근율은 20퍼센트에 불과했다. 일제 강점기에 동족을 고문하고 죽인 악질 조선인 경찰이 폭행당하는 사례가 많아서 조선인 경찰들이 출근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소련의 영향력을 제거한다는 세계 정책 구도의 연장선상에 있었지 조선의 독립은 부차적 목표였다. 미국은 친일파들이 일제를 위해 충성을 다한 것처럼 미국을 위해서도 충성을 다하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친일파를 보호하고 육성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경찰과 군대는 지배자가 국민을 억눌러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동원된 역사가 있다. 1819년 투표권을 요구하며 모인 수만 명의 맨체스터 시민을 영국의 기병대는 폭력을 휘둘러 수십 명이 죽고 수백 명이 다쳤다. 그러나 영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경찰과 군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의 범죄 집단과 외국 군대로부터 자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무장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선진국일수록 국민이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는 이유다.
한국 공권력은 자국민을 섬기며 자국민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라 타국민을 섬기면서 자국민을 해치던 사람들에게 뿌리를 두고 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 현재 한국 경찰 간부 1153명 중 945명이 일제 경찰 출신으로 전체의 82퍼센트였다. 1946년 말 현재 전국 140여명의 경찰서장 중 110명이 일제 경찰 출신이었다. 군대도 사정은 비슷했다. 경찰과 함께 미 군정의 주요 물리력이었던 조선경비대의 고위 간부 26명 중 23명이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이었다.
경찰과 군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미 군정 때 법원장으로 임용된 13명 중 12명, 판사로 임용된 250명 중 140명이 일제 때 사법 관료 출신이거나 친일 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었다. 검사장으로 임명된 17명 중 14명, 검사로 임명된 160여명 중 절반이 일제 때 판검사를 지내거나 서기 같은 하위 관리 출신이었다.
교통 질서부터 양보와 타협에 익숙한 문화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선진국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특성들은 사실은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을 공동체가 합심하여 겪으면서 얻은 경우가 많다. 독일에서 재계와 노동계가 무한 갈등의 악순환을 끊고 협약주의를 통한 공생의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은 1차 대전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였다. 영국의 도로에서는 구급차 사이렌 소리만 나면 달리던 차들이 일제히 길가로 바짝 붙어 멈춰서 구급차에게 길을 열어주는데 이것은 2차대전 당시 폭격을 당하던 시절에 부상차를 빨리 병원으로 실어날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생겨난 문화다. 상류층만 즐겼던 정원 가꾸기에 영국 국민 모두가 빠져든 계기도 전시의 식량난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이 모든 위기 극복 노력의 중심에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조직하고 배분하여 자국민을 지키려고 애쓴 정부들이 있었다. 상징적 역할이었지언정 영국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2차대전 때 구급요원으로 활동했다.
6.25전쟁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서울을 끝까지 지키겠노라고 거짓 방송을 하면서 한강 다리를 몰래 건넌 뒤 다리를 폭파시켜 피난 가던 수많은 자국민을 몰살시켰다. 또 모자란 병력을 충원한다며 50만명의 장정을 의용병으로 끌어다놓고는 군 간부들이 군수물자를 착복하고 횡령하는 바람에 한겨울에 행진하다가 무려 10만명이 얼어죽고 굶어죽게 만들었다.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신동엽이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것은 국민방위대원 시절 굶주림을 못 이겨 게를 먹었다가 간디스토마에 걸린 후유증 탓이었다. 자국 군대를 채울 의용병들도 저렇게 방치했는데 하물며 일반 국민이랴.
한국은 식민지 경험과 분단 지속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국민의 노력과 희생 덕분에 한강의 기적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형적으로는 커졌지만 그 성장은 부평초 같은 성장이다. 중심이 썩어서다. 공조직이 썩어서다. 국민을 지키고 공공성을 수호해야 할 군대도 경찰도 검찰도 사법부도 언론도 선관위도 한국은 하나같이 썩었다.
한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내 자식과 내 나라의 안전을 지켜달라며 국민이 힘들게 번 돈으로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아먹고 퇴직 후에는 다시 국민이 세금으로 적자를 메꿔주는 덕분에 연금까지 넉넉하게 받을 공무원들이 국민을 속이고 짓밟고 내몰고 가두고 때리는 나라는 공화국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한국은 아직 독립국조차 아니다. 무슨 이유인지 천안함 때도 그렇고 세월호도 그렇고 한국 바다에서는 큰 배가 가라앉아도 자국 군대와 경찰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선뜻 바다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한국은 전시작전권이 없는 나라다. 노무현 대통령이 돌려받기로 한 작전권을 한국의 후임 대통령은 제발 되가져달라고 애걸했다. 전시에도 평화시 훈련에도 한국 군대의 지휘권은 타국 사령관에게 있다. 천안함 침몰 때도 세월호 침몰 때도 서해 바다에서는 대규모 군사 훈련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한국 아이들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 군대와 경찰의 총검에 찔려 죽은 조선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와 함께 수장된 아이들도 일본 군경에게 학살당한 아이들도 독립한 공화국에서 태어나지 못한 죄로 죽었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승객을 구한 주역은 해경과 해군이 아니라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어민들이었다. 침몰하던 세월호에서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목숨을 잃은 것은 해경과 해군이 아니라 대학에 다니다가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는 홀어머니를 도우려고 휴학을 하고 세월호 승무원으로 취직한 스물두 살의 박지영 씨였고 역시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친구들은 학원에 다닐 때 저녁 시간을 꼬박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해온 열일곱 살의 양온유 양이었다. 박지영씨는 당황하는 학생들을 다독이면서 자기 구명 조끼를 벗어주었고 양온유 양은 갑판까지 나와서 살 수 있었는데도 친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선실 쪽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국민이 세금을 낸다면 그것은 박지영 씨와 양온유 양처럼 공동체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적어도 몇 명은 나서줄 공직자가 있으리라는 최소한의 믿음이 있어서다. 그런 공직자들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세금을 낼 돈이 있다면 세월호 동승자들의 안전을 위해 한 몸을 던졌고 나중에 한국호라는 공동체 동승자들의 안정을 위해 진정한 공직자로서 큰일을 할 수도 있었을 박지영 씨와 양온유 양 같은 의인들의 가족에게 고마움의 뜻으로 전하는 것이 낫다. 세월호를 구한 공직자는 한국의 해군과 해경이 아니라 박지영 씨와 양온유 양이었다.
박지영 씨는 다니던 대학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2012년에 휴학하고 청해진해운에 승무원으로 입사했다가 변을 당했다. 세월호 주방에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젊은이 중에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생으로 나섰다가 희생되었다. 집안이 넉넉한 젊은이들은 방학이면 끼리끼리 해외 여행을 다니며 언어도 배우고 견문을 넓히지만 집안이 어려운 젊은이들은 방학 때면 쥐꼬리 같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일하느라 놀러갈 엄두를 못 내고 학기중에도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 성적이 안 좋으면 취업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가난은 대물림된다.
한국의 젊은이는 여느 선진국과는 달리 공동체를 위해 병역의 의무를 지는데도 살인적인 대학 등록금에 시달린다. 선진국은 국공립 대학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미국 대학은 등록금이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미국도 등록금이 훨씬 낮은 국공립 대학의 비중이 70퍼센트를 넘는다. 반면 한국은 국공립 대학의 비중이 18퍼센트에 불과하다. 한국 사립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800만원에 육박한다.
영국도 금융 위기로 국가 재정이 타격을 받으면서 대학 등록금을 하루 아침에 3배로 올려서 지금은 웬만한 대학은 연간 9천파운드를 등록금으로 받는다. 한국 돈으로 1500만원이 넘으니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 대학생은 초저금리로 등록금을 대출받을 수 있고 웬만한 중산층 자녀도 이런저런 장학금을 받기가 쉽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장학금 혜택이 더 많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취업 유무에 관계 없이 당장 융자금을 갚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연간 수입이 2만1천파운드(약 3600만원)이 넘어야 그때부터 초과분의 9퍼센트씩 갚아나간다. 30년 동안 기준선 이상의 벌이를 못한 사람은 융자금이 탕감된다.
한국의 대학생은 취업 유무와는 상관 없이 융자금을 갚아야 한다. 금리도 결코 낮지 않다. 융자금을 제때 못 갚으면 졸업하기 전부터 이미 신용불량자가 된다. 어떤 기업이 신용불량자를 채용하려고 할까. 천안함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 중에도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 돼서 일단 군대에 가기로 한 대학생이 있었을지 모른다. 한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공화국이라면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목숨이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병역의 의무를 지는 젊은이를 이렇게 착취할 수가 없다.
천안함 침몰 때 전원 생존한 한국 해군의 장교들은 제대한 뒤에도 안락한 노후 생활을 보장받을 것이다. 군인들이 현역으로 복무하는 동안 낸 불입금만으로는 안전한 노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군인 연금은 이미 1973년부터 바닥이 나서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유지되고 있다. 작년 한 해 군인 연금의 정부 보조금은 1조3천억원에 달했다.
세월호 침몰 때 무능과 무사안일의 정수를 보여준 해경도 퇴직하면 공무원 연금을 받으며 걱정 없이 살 것이다. 공무원 연금도 정부가 적자를 메꿔준다. 작년 한 해의 공무원 연금 정부 보조금은 2조원에 달했다. 올해에는 군인 연금과 공무원 연금의 적자를 정부가 4조원을 들여 메꿔주어야 한다. 4조원이라는 돈은 대학의 반값 등록금을 거의 실현할 수 있는 규모의 거액이다.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었다면 박지영 씨는 휴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지 않고 지금쯤 더 큰 꿈을 키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해경과 해군을 포함하여 한국의 공직자들은 박지영씨처럼 가정 형편이 어려운 젊은이에게 돌아갔어야 했을 자원을 독차지하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헌신짝처럼 내던졌다. 국민의 세금을 무책임한 공무원과 군인의 노후 생활 지원에 더 이상 쏟아부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특혜를 누릴 자격이 없다. 군인과 공무원에 대한 적자 보전금 지원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국가로부터 특별 연금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무책임하고 무능한 군인과 공무원이 아니라 박지영 씨와 양온유 양의 가족이다. 공동체 성원들의 안전을 위해 나섰다가 희생된 의인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나라는 공화국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로 자녀를 잃고 슬픔에 잠긴 유가족의 가슴을 더욱 찢어놓은 것은 언론이었다. 천안함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주류 언론은 항적 기록과 교신 상황 등 사고 당시의 정황을 드러내줄 기록을 숨기는 당국을 비호하면서 선장과 선사의 과실 탓으로만 책임을 몰아가면서 사고 초반 구출 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는데도 수백 척의 배와 수백 명의 잠수부가 밤낮 없이 구조 활동을 벌이는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전원 구조되었다며 어처구니없는 오보도 내보냈다.
공화국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는 목숨을 걸고 공화국을 수호하겠다는 의지로 단련된 군대가 아니다. 군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위협 앞에서도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각오로 임하는 언론이다. 진실이 있는 그대로 언론을 통해 전달되어야만 공화국 국민은 누가 책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고 선거에서 그 사람을 지도자로 뽑을 수 있다. 아무리 강한 군대가 있어도 지도자가 무능하면 군대는 무능해진다. 군사반란을 일으킨다면 모를까 군대는 통수권자의 지시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세월호의 아이들을 죽인 것은 금권 세력의 돈벌이에 유리하도록 법을 개정하여 선박의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늘려서 세월호 같은 낡은 배가 국내로 대거 유입되게 만든 지난 정부의 우두머리다. 선관위의 주도로 저질러진 부정 선거로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앉은 지금 정부의 우두머리는 규제 철폐가 선진화인 것처럼 떠들면서 부유한 장사꾼의 돈벌이는 더 안전해지고 가난한 서민의 삶은 더 위험해지는 나라로 한국을 몰아갔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같은 일제의 충복은 말할 것도 없고 KBS, MBC, SBS, YTN 같은 방송은 사익에 눈이 먼 세력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할 인간들이 마치 유능한 지도자인 것처럼 포장하는 데에 앞장섰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죽인 것은 이가도 아니고 박가도 아니고 <기레기>로 불리는 기자 쓰레기들의 집결체인 한국 언론이다.
사악하고 무능한 인간들이 군림하는 사회로 세월호의 아이들을 내팽개친 죄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은 이런 방송을 아예 보지 않는 것이다. 뉴스만 보지 않는다고 능사가 아니다. 드라마도 다큐멘터리도 토크쇼도 코메디도 보지 말아야 한다. 시청률을 떨어뜨려서 광고가 떨어져나가게 만들어야 한다. 기레기들의 밥그릇을 빼앗아야 한다. 기레기들이 주류 언론으로서 건재하는 한 세월호의 침몰은 반복된다.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려고 불철주야 현장을 지킨 것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주류 언론이 아니라 고발뉴스, 팩트티비, 뉴스타파 같은 독립 언론이었다. 공동체의 건강을 위해 진실을 수호하는 공영 방송의 자격이 있는 것은 이런 대안 언론들이다. KBS에 낼 수신료가 있거든 이런 진정한 공영 언론들을 후원해야 한다.
세월호의 아이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끝까지 자기들보다 밖으로 나갔던 아이들을 더 걱정했다. 밖보다 안이 그나마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선내 방송을 타고 나오는 동요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의 말을 믿어서였다. 불이 꺼지고 물이 차오르던 마지막 순간에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었는데, 그래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의 말을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어른의 말을 믿었던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을 것이다.
한국은 95년 전 상해에서 공화국을 지향점으로 삼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지면서 시작되었지만 한국의 어른들은 그토록 투표할 기회가 많았건만 아직도 아이들이 안심하고 자랄 수 있는 공화국을 만들지 못했다. 95년 동안 공화국을 만들지 못한 어른들이 앞으로 무슨 힘으로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화국을 만들 수 있을까. 투표 연령을 적어도 고등학교 1학년생이면 투표권을 가질 수 있도록 16세로 낮춰야 한다. 오스트리아는 실제로 16세부터 투표를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처럼 안전한 나라도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는데 하물며 한국 같은 위험한 나라임에랴.
선거권을 19세 이상의 국민에게만 주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뿐이다. 대일본제국을 따라 대한제국으로 갈아탄 뒤 일본에게 먹혔고 그 뒤로 자국민이 아니라 타국민을 섬기면서 자국민을 짓밟은 부끄러운 지배 세력을 몰아내고 아이들이 안전한 공화국을 만드는 첫걸음은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다. 청소년은 판단력이 미숙해서 투표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흐린 판단력으로 부패한 인간을 대를 이어 지도자로 뽑는 바람에 세월호와 함께 아이들을 바다 속에 가라앉힌 한국의 어른들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망발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죽인 것은 이명박도 아니고 박근혜도 아니고 조중동도 아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을 죽인 것은 역사의 시간을 살다가 고초를 겪은 소수의 의인들을 방치하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세월의 시간을 살아온 우리 모두다. 박근혜 퇴진은 시작일 뿐이다. 어른들은 다시는 세월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한국이 대한민국으로 바로설 때까지 역사의 시간을 살아가겠다. 정말 미안하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