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두차례(유투브)로 나눠 올린 30년전 교회 역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4년에 있은, ECT 문서에 서명한 복음주의자 그룹과
서명을 반대한 복음주의자 그룹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앞의 내용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입니다.
30년전 교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유익, 분명 유익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차근차근 이 내용을 나누고 싶습니다.
자 시작해보겠습니다. 복음주의라는 용어로부터 시작합니다.
신학적 역사적으로 "복음주의"란 단어는
(로마가톨릭교회) 사제주의와 대비되는 것으로,
종교개혁은 또 무엇입니까? 중세 영적 암흑시기를 선도했던, 교회란 이름을 가진 기관,
로마가톨릭교회 시스템으로부터,
하나님의 생명, 영적 생명, 즉 영생과 구원이 걸린 문제를 두고,
초대 교부시대, 어거스틴으로 돌아가고,
무엇보다도 믿음과 실천의 절대 표준이라 할 수 있는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특히 신약성경, 사도 바울이 쓴 서신서에서 명백하게,
그리고 요한복음을 비롯한 사복음서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복음, 구원얻는 믿음의 가르침을 재발견, 재확인한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개혁된 교회를 말할 것 같으면, 무슨 교회로부터의 개혁이냐를 논하게 되며,
따라서, 개혁신앙이란 로마가톨릭신앙과 대조되는 명칭입니다.
앞서, 복음주의는 로마가톨릭전통의 사제주의와 상반된 명칭이라 하였습니다.
개혁주의는 로마가톨릭주의로부터 성경을 따라 성경에 입각해 개혁된 신앙이라 하였습니다.
결국, 본 연구의 주장은, 복음주의란 말은 개혁주의와 호환가능한 용어요,
서로 일맥상통한다는 것입니다
16세기 개혁시대 이후, 교회 역사를 보면, 개신교 안에 있으면서, 새로운 교파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오순절(순복음) 등,
그래서 복음주의 evangelical을 말하면, 어느 / 어떤 복음주의를 지칭하느냐? 이차 질문이 자연 따라옵니다. 혹자는 복음주의 오순절 혹자는 복음주의 개혁교회 혹은 복음주의 성공회 등등.
하지만, 본 연구는.. 복음주의는 사제주의로부터 발생하였다.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반드시 사제나 교회나 마리아 등의 중간 매개체를 필요로하는 로마가톨릭시스템 내지 전통에 반대하여,
성경을 따라, 누구든지 믿는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 유일한 중보자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권세와 지위를 지니는 바(삼위일체 둘째 위격되시는 그리스도처럼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님, 그분은 하나님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상속자가 되었음을 성경을 따라 믿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죄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 죽음과 함께 그값이 지불되었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인하여, 그것이 믿는 나에게 그대로 전가(Imputed, Imputation)되어서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늘 재판장 하나님께서 신자를 보실 때에, 너는 의롭다 칭하시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거듭, 하나님께 사랑받는 아들들로 신자들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집니다.
다시 복음주의는 믿는 자 한사람 한사람은 택한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라는 놀라운 특권, 그리스도안에서 얻게된 새로운 신분을 가진 신자, 이들 모두는 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을 힘입어,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존전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된 사실입니다.
본 비디오는 이점을 추적합니다. 500여년이 지난,
우리 시대, 종교개혁 신앙을 고수하는 복음주의 이벤젤리칼 리폼드 또는 리폼드 이벤젤리칼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를..
그리고 모든 것이 다 뒤섞이고, 진리의 절대성이 약화가 되며, 뭐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게 진리, 뭐든 내게 유익한 것 나를 행복케하는 것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는 우리 시대에,
지난 16세기 (1517년도)에 일어난 성경적 개혁신앙이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 바로 이 점을 둘째로 묻습니다.
첫째 질문은 1936년 미북장로교 그레샴 메이첸,
1966년, 영국의 마틴 로이드존스 그리고 비교적 최근, 지금으로부터 30년전인, 1994년도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성경적 기독교신앙의 유산인, 종교개혁 신앙은 유지해왔다.
그리고, 오늘 2024년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바로 이점을 밝힙니다.
방금 전 1994년도를 언급하였는데,
이때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인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지도자들 중에서,
둘로 나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이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대답에,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그것은 비극이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후회할 일이다. 즉 불필요한 분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주로 영국 국교회, 즉 성공회 안에 있는 복음주의자들로부터 일어난 것입니다.
이 목소리는 지난 세기 중반에 대단히 환영과 호응을 얻었던 교회 연합 운동,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영국국교회의 지지를 보여준 정책의 산물입니다.
성공회 내에서 복음주의자 대변인 역할을 하였던 존 스토트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에큐메니칼 운동은 우리가 왜 복음주의자로 존재하는가 하는 명분과 정체성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좌로는 신학적 자유주의, 우로는 로마가톨리시즘과 아무런 구분 없이, 섞이는 결과를 내놓는다 라고, 반대 진영에 서서 개혁자들의 신앙, 영국 개혁신앙을 지닌 청교도들, 존 낙스와 함께한 스코틀랜드 장로교, 그리고 언약파 내지 언약도들, 18세기 복음주의 부흥시대의 휫필드나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로울랜드즈 하웰해리스 윌리암 윌리엄스 19세기 영국의 존 라일 찰스 스펄전 으로 이어져 온 성경적 역사적 신앙의 계승에 선 것입니다.
로이드존스가 복음주의연맹 2차 회의에서 연설로 영국 복음주의자 내에 분열이 있었을 때, 젊은 제임스 패커는 어느 시점에서 존 스토트 편에 섭니다. 이점에 대해서 보다 상세한 설명을 주실 수 있는 분들을 구합니다. 아마도, 성공회 소속 사역자였던 제임스 패커는, 교단 전체의 움직임에 함께 편승하는 쪽으로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성공회측 복음주의자 알리스터 맥그라스도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임스 패커는 이후, 캐나다로 떠납니다.
그리고 리젠트신학교에서 신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을 쌓아갑니다. 그는 존경받는 성공회 소속 개혁신앙 전파자 학자였습니다.
그는 북미에서 개혁신앙을 받드는 복음주의자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는데,
1994년, 복음주의자와 로마가톨릭이 함께 대의를 위해서 협력한다는 프로젝트를 두고 복음주의자가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ECT로 알려진 선언문 서명 사건입니다.
서명을 한 그룹의 대표적 인물, 제임스 패커 그리고
서명을 반대한 그룹의 대표적 인물에는 알씨 스프로울, 존 맥아더 등입니다.
이 서명 사건으로 인해 관계가 매우 어색해지게 된 복음주의자들은, 서로의 우정 내지 친목을 회복하고, 간격을 많이 줄이기 위해서, 서명한 측에서 회합을 주선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골은 모임을 통해 그렇게 매워지는 것이 못됩니다.
패커에게도 그가 제시하는 단서가 있습니다. 무턱대고, 종교개혁은 무의미했다고 그가 주장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가 한정지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현재 로마가톨릭교회 시스템 안에 있지만, 참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따라서, 그들까지 우리가 배제할 필요는 없다, 도리어 그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식문서는 그런 낭만적인 내용을 골자로 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복음주의자 이야기만 하였는데, ECT에서 로마가톨릭을 대변하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에게 한정을 짓고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아닌 점입니다. 그 때문에 방금전 패커의 생각이 "낭만적이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스프로울과 맥아더는 제임스 케네디가 시무하는 교회당에서, 제임스 케네디와 더불어, ECT사건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사회자가 진행을 하고, 이에 대해 이들 복음주의자들이 답변하는 식의 공개방송을 하였습니다. 전국에 방영되었습니다.
제임스 케네디는 2007년도에 소천하였고, 알씨 스프로울은 2017년도에 소천하였습니다. 이 둘은 이 신앙 그대로 간직하며 소천했습니다. 존 맥아더는 현존합니다. 이 신앙을 여전히 붙들며 굳게 서있습니다. 이외에도 이안 머리,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스티븐 제이 로쓴, 로버트 갓프리, 리건 던컨, 조엘 비키 등의 복음주의자들은 1517년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핵심 메세지를 복구한 사건, 종교개혁 신앙을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신앙으로 여겨, 귀하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종교개혁은 포스트 모더니즘을 맞은 우리 시대에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1994년을 기점으로, 종교개혁적 신앙을 여전히 부르짖고 선포하는 사역자들이 많이 있는 점입니다. 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대한민국에 선교사들을 통해 은혜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사람에게 구원을 주는 복음, 영적 사망자에게 영적 생명을 주는 이 은혜의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귀하게 여겨, 지금 우리가 선 땅에서, 힘차게 열정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호주장로교회 소속 사역자입니다. 어릴 적 전주 지역,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1989년도 서울에 진출?했습니다. 그때 만난 교단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순장입니다. ‘우리만 순수하다’ 하여 순(장)이 아니라, 교리적윤리적 순결 purity을 의미하는 순, 영어로는 pure 장로회입니다. 여기서 2010년도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제가 합동측과 순장측 두 장로교파 교단 이름을 거론한 이유는, 둘의 헌법책에 기재된 공통점 때문입니다. 즉, 외국선교사 파송 파트, 서약 내용을 보시면, 이 두 교단은 에큐메니칼 운동식 교회 연합, 선교를 반대한다는 점을 매우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점입니다. <사진 참조>
제가 있는 호주장로교회 역사를 보면, 1977년도에 신학적 자유주의를 가진 교인들이 대거, 장로교를 떠나, 감리교 회중파 그리고 이렇게 나온 장로교인들이 연합을 하여, 연합교회 교단에 속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호주 장로교 목사가 되기 위한 면접에서는 칭의에 대해 서술하라는 물음이 반드시 포함돼 있습니다. 칭의를 중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무언지 아시지요? 칭의 교리는 개혁교회의 핵심 마크입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의의 주입, 영어로 infusion을 가르치는 반면, 성경을 따라 개혁된 교회는 의의 전가, Imputation에 그 핵심적 차이가 있습니다.
본 연구 결론, 종교개혁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이 신앙, 간직하는 복음주의자들 있다! 많다. 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 유일한 중보자, 하나님이 친히 정하신 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심령을 축복합니다 아멘!
(헌법 code book, 각각 순장, 합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