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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언덕
남자아이는 미끄럼틀 받침대에 등을 기대고 있다. 받침대는 비곗살처럼 부풀어 있다. 흠집을 만들어 비집고 들어갔을 끈덕진 바람이 제법 능글맞다.
아이는 받침대에서 등을 떼고 발밑에 떨궈져 있는 튜브 공을 힘껏 찬다. 얼룩무늬 땅개가 저만치 달아난 튜브 공을 향해 숏다리로 전력 질주한다. 아이도 덩달아 뛰기 시작한다. 파란 페인트칠이 벗겨져 녹슨 청동구슬 같은 잔해를 여러 개 달고 있는 철제 구조물을 지난다. 그건 그네인 양 싶다. 그넷줄은 개구쟁이들의 등쌀에 뜯겨 나가고 양 기둥만 고대도시의 유물처럼 앙상하게 남아 있다.
탱탱한 튜브 공은 분교 교목으로 지정된 소나무 아래까지 떼굴떼굴 굴러간다. 백 년 묵은 노송의 잔가지 사이로 잔양이 희미하게 비집고 들어와 아이들이 땅따먹기 놀이를 하고 돌아간 듯한 밑땅에 명암을 대조시키고 있다. 노송의 위용에 주눅이 들었는가. 아이는 공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향해 무한정 가지를 뻗친 소나무를 한동안 올려다본다. 올여름 벼락을 맞아 까맣게 타 버린 솔가지도 있다. 그건 흡사 분교 옆에 축대처럼 보이는 언덕배기를 닮아 있다. 언덕은 놀부 심보로 살다 죽은 사람의 묘처럼 풀 한 포기 없다. 독한 수면제를 복용했는지 오래전에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나는 창 쪽에서 시선을 떼고 분교장을 힐끔 본다. 그는 아까부터 방학계획표를 열심히 짜고 있다. 나무젓가락만 한 안경테가 불편한 건지 관자놀이 쪽을 장지로 매만지고 있다. 그는 무척이나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성싶다. 두 명의 교원밖에 없지만 그래도 분교장이라고 데스크 위에 명패까지 소유한 모습이 제법 권위 있어 보인다. 지금쯤 한창 놀며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아이들에게 규칙 생활을 하라는 둥, 일기는 꼭 써야 한다는 둥, 자신도 실천하지 못할 일을 분교장은 너희들의 당연한 의무, 라고 단정하듯 분장술처럼 꾸미고 있다. 녀석들은 이 계획서가 무슨 큰 국가 간의 조약이라도 되듯 식물채집을 하고 꼬박꼬박 일기를 쓰고 그럴 테지.
상급반 학생들이 청소시간에 닦아 놓은 유리창을 점검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아마 그녀의 작은방에는 도배지가 없어 벽에 온통 신문지나 잡지 같은 것을 북어처럼 북북 찢어서 발라 놓았지?”
친구 녀석은 안부도 묻지 않고 그렇게 말을 한다. 그건 마치 사후의 세계를 경험한 신자의 몽환적인 말투 같다. 말하자면 ‘긴 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강물은 빨간색인 것 같았구요. 강변에 황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푸른 색깔 같았어요’라고 하는. 나는 잠깐 얼떨떨한 기분이 든다.
“그래, 그랬어.”
조그만 일에도 간섭하고 분개하며, 또 남의 전화 엿듣기를 즐기는 분교장을 의식한 탓일까. 나의 단정에는 기가 죽어 있다. 실은 친구의 전화가 무진장 반갑기 그지없다. 아니 수화기를 들자마자 와락 튀어나온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눈물겹도록 목이 멜 정도다. 광주에서 문화부 신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예술가처럼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지향하는 탓에 둘도 없는 친구인 내가 그쪽으로 전화를 걸지 않으면 좀처럼 그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그래, 그랬어. 그만큼 나의 짧은 단정은 친구의 질문에 대한 확신 있는 응답인 셈이고, 또 사실이 그랬다. 그나마 햇살이 정통으로 내리쬔다고 해도 골방의 창틈으로 비껴 들어오는 일몰의 잔광처럼 싸늘하게 느껴지곤 하던 그녀의 작은방 벽 윤곽이 점점 클로즈업되면서 다가오는 사물의 정체처럼 확연해 보인다.
그래 그랬어, 라는 대답이 오랜만에 전화를 건 친구에게 무성의함을 심어줬다고 해도 나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친구는 나의 무심함을 질타하지 않고 계속 그 시절을 들춰낸다.
“그때 얼마나 추웠었니? 지금 겨울은 그때에 비하면 겨울도 아니지. 그런데 그녀 아버지는 오치 양조장에 다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잡지류가 생겼을까?”
친구는 광주 양동시장에서 좌판에 옷가지들을 벌여놓고 ‘사요! 싸요!’나 ‘골라골라골라골라’를 일 초만에 따발총처럼 연발하며 옷을 팔던 사람이 그녀라고, 평소 그녀 이야기를 자주 했던 나에게 주지시켜주었으면 그걸로 됐지, 짐짓 방과 도배 따위의 엉뚱한 이야기만 좌판 위의 옷들처럼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어김없이 맞는 말이긴 하였다.
유년 시절은 누구나 기억하고 싶은 추억의 한 페이지듯, 나에게도 결코 예외는 될 수 없으리라. 그러자니 남다른 데가 많아 보였던 그녀의 작은방이 떠오른다. 친구가 들춰낸 기억보다 하나 많게, 나는 그 시절 작은방 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잡지를 그녀가 뒤적거리며 패션모델의 꿈을 자신만만하게 공상했었던 이미지까지 떠올린다.
“야, 몰라보게 달라졌더라. 어떻게 사람이 그런 식으로 변할 수 있는 거냐? 이건 완전 코미디야. 구경꾼이 저절로 몰려든다니까. 개그우먼 해도 되겠더라.”
소설책을 통해 인물묘사 부분을 읽어 내려가는 기분이다. 정말 코미디 같은 몸짓이었을까. 남들 일상사에 털끝만큼도 관심 없던 친구가 자신의 생활패턴까지 바꿔가며 나에게 알릴 만큼 그녀의 존재가 범속하지만 파격적인 개그였을까.
사실 친구가 나에게 호들갑까지 떨어가며 전화를 걸었던 건 그럴 만한 단서를 깔고 있기는 하다. 그녀 아버지의 건강이 염려된 나머지, 이를 어떡하면 좋겠냐고 엊그제 친구에게 연락을 취한 건 바로 나였다. 병원에 데려가는 일쯤이야 문제도 아니겠지만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뒤처리를 누가 감당할 거냐고 하면서 신문광고 구인란에 그녀 이름을 언급하면 어떻겠냐고 얘기했다. 사실 그녀만이 아버지의 보호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녀 위로 언니가 두 명 있었고, 큰오빠가 뱀에게 물려 죽었다고 해도 여전히 건재한 작은 오빠가 있었다. 죽은 큰오빠는 키가 멀대같이 커서 술 냄새 풍기던 재강을 양식처럼 먹던 시절, 동네 아이들이 <메주>라고 놀려댔다.
친구도 그랬었겠지만, 나는 한술 더 떠서 그 시절에 우리의 임무란 썩은 두엄처럼 말라빠져서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갈 적절한 명목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의 집에는 당시 흑백텔레비전만 봐서 일상생활까지 침투해 버린 어떤 유희의 권태로움마저 밀어내고 우리들의 눈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던 칼라잡지 말고도 혀끝에 군침을 돌게 만들던 재강이 양푼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막걸리를 빚고 남은 것을 그녀 아버지는 날마다 집으로 가져왔다. 우리는 그게 술찌끼라는 것도 모르고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너, 안 만날 거니? 시간 나면 광주 한번 올라와. 그러고 보니까 곧 방학이겠구나. 꼭 한번 와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서둘지는 마라. 업무차 양동시장을 자주 지나치는데, 그때마다 발작에 가까운 제스처로 옷을 팔곤 하던 그녀의 모습을 보았으니까.”
나는 친구에게 그녀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녀의 행방에 관심 없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그녀 일로 해서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나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 아버지가 몇 년째 앓아왔던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건 열흘 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큰 독에 넣고 갓난애 장사 지내듯 야산에 가매장했다. 혼자 남은 십수 년을 그는 걸인으로 살아왔다. 가족들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막내딸인 그녀가 몰래 와서 섧게 울고 간다고 귀띔으로 들었지만 그것도 확실하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구걸을 하고 신세타령을 늘어놓아도 곱게 미쳐간다 싶더니 술에 중독이 되고 나선 아무나 붙잡고 비렁뱅이 행세를 하기 바빴다. 그러자니 닷새마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오치리 장터가 그의 활동 무대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 장날이 되면 일일찻집 비슷하게 관공서 직원들이 나와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며 여러 가지 차를 팔던 장텃가 초가를 제집 드나들 듯했다. 그곳은 우리가 재강을 양식처럼 먹던 시절에 유랑하는 서커스 단원이 들어와 외줄 타기와 사발 돌리기를 완벽하게 보여준 후에 과연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인 약을 팔기도 했었다. 서커스 공연은 시대의 조류에 밀려 퇴보했지만 주인 없던 초가는 민속 마을처럼 고스란히 보존되어 내려왔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창가로 간다. 남자아이는 보이지 않고, 꼬리를 치켜세운 땅개가 운동장에 코를 박고 무슨 냄새를 맡고 있다. 박 주사가 포수의 자루 같은 배낭을 도둑처럼 어깨에 걸치고 교문을 들어선다. 땅개는 하던 일을 포기하고 배낭 쪽으로 간다. 냄새를 맡기 위해 껑충껑충 뛰자 박 주사가 배낭을 허리춤까지 내려놓더니, 그것을 쭉 뻗어 개를 저만치 밀어낸다. 그도 나처럼 이곳이 모교인데, 자랑스럽게도 1기 졸업생이다. 비록 초등학교밖에 안 마쳤지만 그의 행동거지는 사범대학까지 다녔다는 분교장보다 훨씬 모범적이다. 그가 열 살 아래인 분교장에게 출퇴근 시 꼬박꼬박 인사하는 걸 보면 금방 안다. 그럴 때마다 분교장은 자기 제자를 다루듯 ‘어이. 그래’하고 만다.
일 년 전, 고향마을로 초등교사 발령이 난 건 우연이었고 행운이었다. 하지만 신규 임용 시 연고지와 도서벽지 학교로 교원인사를 단행한다는 교육부의 방침을 뒤늦게 알게 된 건 큰 절망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설령 이 세상이 원시시대로 회귀한다 해도 미덕 하나만 잘 준수한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는 어떤 아름다운 지식체계의 습득이 아닌,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부품 노릇을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겠냐는 공식 같은 학문이었다. 남달리 머리가 좋다는 인간들이 무슨 규칙처럼 만들어놓은 <신규 임용은 반드시 연고지로>라는 약속을 추종하는 타율적 공부만 해온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덕분에 나는 아직도 젖먹이처럼 엄마 품속에서 따뜻하게 자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겨울철이면 자주 식혜를 해주던 엄마의 정성은 아이 때나 내가 고향마을 교사로 성장했을 때나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마트에서 파는 식혜를 마실 때마다 나는 시간이 정지된 건 아닌지, 내가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닌지 오싹하게 느끼곤 한다.
검게 타 버린 언덕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의 이미지가 부유하는 먼지 입자처럼 흐늘흐늘 떠오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패션모델이 되지 못한 것을, 아니 걔는 꼬맹이 엄마를 닮아 원체 키가 작았으니까 그건 이해가 가지만, 왜 하필 시장바닥에서 광대모양 행동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녀는 키 때문에 결코 모델 같은 것이 되지 못할 터, 라는 나만의 단정이 현란한 수사로 기교를 부린 탓에 모호한 문장이 되어 버린 것처럼 그녀의 성장 과정을 한층 삐딱하게 만들어 버린 느낌이다. 차라리 그녀가 일찍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였다면 내 기분도 이렇게 잡치지는 않을 것이다.
가문 여름이다.
막사 옆뜰에 놓인 샘터의 넓적돌이 유적물처럼 하얗게 바래 있고, 샘물도 바닥이 드러나 각시탈의 속모습처럼 썰렁했다. 언덕에 매어진 소들은 먹을 물이 부족해 군청 직원들이 와서 대형 지하수를 개발하는 현장 쪽만 커다란 눈망울로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
언덕배기에는 키가 오 미터 정도 되는 관목이 한 그루 있다. 잔가지마다 손가락 한 마디 만한 연녹색 잎들이 자잘하게 매달려 있다. 그것마저 이젠 혹독한 건기에 간신히 버티는 사막의 선인장 같다.
드라마 주연 배우가 원작의 작가쯤은 꿰고 있듯, 여름이면 조건 없이 서늘한 공간을 제공한 덕에 적어도 그 나무의 이름만큼은 알아야겠다는 미진한 사명감이 들어 내가 ‘저게 무슨 나문지 너 알아?’ 물어보면, 아침마다 언덕 끝 모자이크처럼 뭉툭하게 조각해 놓은 듯한 돌담 너머 널찍한 마당에서 줄넘기와 비질을 하던 그녀는 ‘뻐꾹새 나무’라고 진짜처럼 대답했다.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뻐꾸기 같은 새는 잔가지 틈새로 보이지 않았고, 솜털 같은 녀석의 뽀송뽀송한 둥지 하나 없었다. 그래도 초여름이 되면 심심치 않게 언덕 쪽에서 뻐꾹새 우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부스스한 눈으로 새벽잠에서 깨어났을 때 뻐꾹! 뻐꾹! 하며 울던 소리가 스피어민트 껌처럼 향기롭게 들렸다. 혼곤한 의식의 정화였다면 적절한 감상을 한 건지…. 유모차에 잠든 아기의 표정 같은 순수함이 묻어나는 언덕 저쪽 세상이 잠깐잠깐 내 의식 속으로 사계 중에 한 계절이 지나가듯 들어오고 있었음을, 성인이 된 지금 나에게, 그건 아름답게 세상을 보기 위한 성장의 단계였을까?
물론 나에게만 뻐꾸기의 존재가 사랑스러웠던 건 아니다. 그녀 아버지는 나보다 한술 더 떠 봄철이면 뻐꾸기의 새 둥지를 만들어 관목의 잔가지 틈새에 위태롭게 걸쳐놓았다. 청명한 허공에서 청량감 있는 봄바람이 불던 4월이던가, 새 둥지를 보며 옹알이하는 아기처럼 저 혼자 신나 있던 그녀 큰오빠가 물오른 뱀에게 횡사한 곳도 관목 아래였다. 그녀 아버지는 극심한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양조장까지 버릴 정도의 참담함, 패배감, 절망감이 관솔처럼 뭉쳐져 그를 폭력 앞의 투항자처럼 만들어놓았다. 양조장 직원이 한번은 그의 집에 와서 ‘아무 일 안 하고 있잖아. 어쩌겠다는 거야, 자네?’하는 소리를 나는 작은방에서 그녀가 블론드 인형에 입혀준 그림 옷을 벗기면서 들었다.
계절의 순환은 지루한 가뭄과는 상관이 없는 모양이다. 가을이 되면 여름철의 몫으로 항상 남아 있던 가뭄이 끝나고 언제 비까지 내렸는지 막사 옆 샘물이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의 사기만큼 충만해 있었으니까.
“저기 좀 봐라. 산에 불이 나고 있어.”
친구가 목청껏 소리쳤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사열하듯 줄 맞추어 하교하던 중이었다. 막사 너머로 혼령처럼 보이는 그을음이 솟구쳐 올랐다. 그녀 큰오빠가 뱀에게 물린, 오 미터짜리 관목이 전봇대처럼 박혀 있던 언덕배기 쪽이었다. 우리는 가방을 내던지고 언덕으로 달려갔다. 불은 마침내 뻐꾸기가 제 이름을 부르며 노래한 적이 있던 관목까지 옮겨붙었다. 지푸라기로 엉성하게 얽어 놓은 둥지가 물속 풍경처럼 굴절돼 보였다. 불길은 삽시간에 관목 꼭대기까지 번져갔다. 빈 둥지는 한 줌의 티가 되어 허공으로 물결쳤다. 그녀 큰오빠의 영혼이 유영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가거라.”
그녀 아버지는 병고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당신 미쳤어요? 고목 아래 정화수 떠놓고 천지신명께 기도까지 올렸던 적은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런 짓을….”
그랬던가. 올챙이처럼 불룩한 배를 가진 꼬맹이 여자의 말처럼 그가 정말로 그런 걸 했던가. 나는 멍석 위에 엿기름가루를 말리고 있던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그게 사실이냐고. 아마 큰아들의 출산이 늦어지자 그랬을 거야, 라고 엄마는 과거를 자신 있게 들춰냈다. 왜 고목 밑이래요? 묻자, 태몽에 뻐꾹새가 날아와 집안을 뱅뱅 맴돌았다지 아마, 라고 했다.
박 주사가 교육청에서 가져온 공문을 결재하며 분교장이 말한다.
“최 선생은 섭섭하시겠어. 모교가 폐교된다고 하니….”
그는 제법 언짢아하며 관자놀이에 붙어 있는 안경테를 어루만진다. 그러나 그건 위장술인 것 같다. 버스가 두 시간마다 들어오는 이곳 산골에서 나가려고 얼마나 안달했던가. 그건 차라리 절규에 가까워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민망할 정도였다.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견하고 신통했다. 그는 작년까지 하급반 애들을 2년 연속 가르쳤다. 상급반을 담당했던 교사가 올해 초 전근 가고 신규인 내가 들어오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상급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왜냐하면 신규직은 될 수 있으면 고학년을 맡지 말라는 교육부의 방침이 제도화되기까지 했으니까. 그의 수업은 너무 성의가 없었다. 한번은 분필이 없어서 상급반 교실 문을 똑똑! 노크하고 블라인드 유리창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니까 그는 교탁에 엎드려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다. 침까지 흘리며 곤히 자는 그의 모습에서 분교장이라는 하나의 무책임한 직책을 나는 보았다. 따지고 보면 그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위가 탐이 나고 권위를 추종하는 교사들은 도서벽지 학교 분교장으로 자원해서 가는 경우가 많았다. 교장이나 장학사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교감이나 분교장의 경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경력의 한계 연수를 3년이라고 봤을 때 그는 올해로 그 기간을 전부 채운 셈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진장 기쁠 것이었다. 나는 별 반응 없이 교육청에 보낼 공문을 작성하는 그와, 히터를 손질하며 다가올 한파 준비에 부산한 박 주사에게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왔다.
정문 앞에 군내버스가 정차해 경적을 울리고 있다. 네 바퀴는 황토로 범벅이 되어 있다. 면 소재지에서 이곳까지 2킬로 흙길을 툴툴거리며 달려왔을 바퀴가 제법 측은하고 대견스럽다. 승객은 한 명도 없고, 곧 출발하겠다는 듯 기사의 손이 핸들에 가 있다.
나는 집을 향해 걷다가 검은 언덕에 시선을 던진다. 그녀 아버지가 언덕에 불을 질러 손해 봤던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른 나이에 애를 낳고 평범한 주부로 남았더라면 또 모르겠다. 좌판에 늘어놓은 옷을 팔기 위해 골라골라골라골라,를 일 초만에 내뱉곤 한다면 그녀의 행동거지는 안 봐도 훤했다. 그녀는 이 시간에도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양동시장 한 모퉁이에서 옷을 팔고 있을지 모른다. 그게 식충이처럼 밥을 빌어먹기 위한 구차한 수단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꿩 대신 닭이라고, 큰아들 다음으로 기대를 모았던 막내딸인 그녀의 무한한 꿈마저도 그때 한 줌의 티끌이 되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 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녀는 잡지책을 뒤지는 일 말고도, 당시 문방구에서 팔았던 블론드 인형에 디자이너처럼 그림 옷을 번갈아 입혀주며 키워온 제 꿈을 무산시켰고,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혀준 까닭에 캔디처럼 아름답게 변신한 모델도 되지 못했으니까.
친구와 통화할 때면 느닷없이 그녀 얘기를 하는 것도 생명을 상실해 버린 언덕배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는 연구하는 것조차 편두통이 일 것 같은 아득한 옛날,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의 지층처럼 굳어 버린 언덕이지만 이십 년 전 그곳에 그녀의 꿈이, 패션모델의 화려함이 동공처럼 콱 박혀 있었는지 모른다.
겨울철 방문을 열면, 대도시의 상가건물 하나 건너 피시방과 미용실이 있듯 하루걸러 거기 언덕에 퍼내도 퍼내도 솟아 나오는 우물물처럼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온종일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누비면서 때론 뒹굴기도 하고 때론 싸우기도 하면서 자란 개구쟁이를 둔 탓에 고목의 매미처럼 천장에 달라붙은 삼십 촉짜리 희미한 백열전구 불빛에 의지하며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 스웨터 단추와 호주머니 안쪽이 미어진 점퍼를 꿰매는 엄마의 정성을 천장에서 아늑하게 쏟아져 내리는 불빛의 부드러운 감촉으로 느끼고 부스스 눈을 떴다. 엄마가 식혜를 만들기 위해 전날 밤 엿기름가루로 우린 물을 되직한 이밥이나 찰밥에 부어서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전기밥통에 담가놓더니 찰밥 덩어리가 제법 물 위로 둥둥 뜨는 시각이었다. 설탕을 쳐서 한 그릇 후룩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으나 뒤끝은 생맥주를 마신 것처럼 한 시간도 못 돼 분수처럼 분출할 것만 같은 소변의 증상으로 나타났다. 동틀 무렵 방문을 열면 거기 눈밭에서 그녀가 비료 포대에 엉덩이를 깔고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오줌을 누고 옷을 두껍게 껴입고 비료 포대를 찾아서 그곳으로 가보면 그녀의 집을 향해 찍혀 있는 눈 발자국이 저 언덕, 저 하늘 끝까지 뻗어 나갈 것 같은 철도 레일처럼 아득하게 보이곤 했다. 그녀는 언덕에서 미끄럼 타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한번은 그녀의 언니와 같이 타다 가속도가 붙어 급정거를 못하고 언덕 밑에 있는 막사 뒤뜰로 두 몸들이 처박혀 들어갔다. 막사에는 고독이 밴 듯한 어둠 때문에 긴 겨울밤 내내 시름에 빠져 있다가 새벽이 돼서야 잠이 든 중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말뚝에 매어진 끈을 풀고 막사 밖으로 뛰쳐나갈 만큼 쿵! 하며 처박힌 소리가 충격적이었다. 다시는 언덕에 가지 마라,는 충고를 꼬맹이 엄마에게서 들었을 법도 한데, 단전 호흡과 함께 최면에 빠져들어 망아의 경지에 접어든 사람처럼 그녀는 모든 것을 잊고 눈 내리는 아침이면 잣껍질처럼 거기 완강하게 서 있었다.
내가 그동안 그 집 식구들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작은 오빠는 그래도 남자라고 서울 큰아버지네로 옮겨가 열심히 공부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두 딸은 꼬맹이 엄마와 광주 송정리에서 살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하지만 그녀만이 숨바꼭질하듯 종적을 감춰 내 앞에 나타나질 않았다. 혹시 그녀가 모델이 되지 않았을까? 나는 생각해보았다. 밤무대 가수처럼 매스컴을 탈 수 없어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과 얼굴을 가진 모델도 얼마나 많을 것인가. 모델로 데뷔했다는 자부심에 도취하여 후속인기야 어찌 됐건 그걸 성공이라 여기고 지난날들이 이유 없이 부끄러워 그 시절의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발버둥 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친구의 전화를 받고 나서 나의 우려는 하루아침에 깨어지고 만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 재고품을 싼값으로 가져와 광대처럼 옷을 파는 모습 또한 그녀의 차지가 될 수 없다. 어쩌면 작은방에 앉아 현란한 잡지를 가위로 오려 벽에 붙이고, 대설원을 달리는 스키광처럼 흰 눈 위에서 뛰어놀던 그 모습이 뻐꾹새 우는 소리처럼 순수하다고 해도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추억의 한 페이지로 접어둘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인지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일들을 하면서 살았을 테고, 또 추억은 추억으로 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죄수처럼 그녀의 작은방에 갇혀 지내던 그 시절의 겨울방학보다 십 일이나 방학 기간은 짧다. 이제 하루걸러 눈 오는 날의 그런 추위는 없을 거라고 사십 일간의 겨울방학이 시사라도 하는 듯싶다. 하얀 눈과 개구쟁이들의 웃음이 묻어나던 순수함은 땅속 깊숙이 가라앉아 버리고 겨우내 검은 언덕에는 잿빛 하늘을 날고 있는 방패연처럼 멍석이 놓여 있다. 엄마는 소쿠리를 들고 가서 멍석 위에 널어져 있는 엿기름가루를 걷고 있다. 오늘 밤에도 다 큰 아들에게 식혜를 해줄 모양인가 보다. 엄마가 엿기름가루를 챙겨 소쿠리에 담아가자 나는 멍석을 둘둘 말아 덕쇠처럼 어깨에 메고 엄마를 뒤따랐다. 다음 날 아침, 엄마가 가스레인지 불꽃에 데운 식혜를 보온 물통에 가득 담아 광주행 버스를 탔다.
친구의 집은 양동시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도심의 고층 건물과 뒤섞여 있는 오피스텔이 친구의 주거 공간이다. 그곳은 사무실과 아파트를 교묘하게 조합해 놓은 건물 같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오피스텔의 용도를 잘 몰랐다. 서재와 침대와 사무용 집기류와 식탁이 별로 넓지 않은 공간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숙식과 일 처리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그곳에서 현대인의 단순한 생활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양동시장의 위치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광천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탄 후 “××오피스텔까지 갑시다!” 기사에게 말한 후 십오 분쯤 지났을까, 빙판길을 운행하는 것처럼 도로는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차는 정체 현상을 빚었고, 도로 옆으로 행상인이 파는 과일의 수만큼이나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사과 귤 유자 참외 수박 파인애플 멜론까지. 지금이 어느 계절인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과일이 진열되어 있었다. 버스는 봇물 터지듯 이곳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시장통 입구에 <양동시장>이라고 표기된 채 걸린 반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광주의 시내버스 노선이 도청을 경유한다고 들었지만 그 법칙이 이곳이라고 해서 예외는 될 수 없음을 주위에 산재한 차들이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거기가 분명 양동시장이었다면 왜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까, 라는 궁금증은 친구가 사는 오피스텔에 도착해서야 떠올랐다. 물론 나는 딴생각에 정신이 팔렸었고, 길가에 진열된 파인애플이나 멜론 같은 과일을 먹음직스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언뜻 보기에 좌판에 옷을 벌여놓고 소리치는 여자의 부박한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던 것 같다.
“오 일에 한 번씩 그래. 맨날 그랬다간 목소리 남아나질 않겠네.”
친구의 말을 듣고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행여 다른 곳으로 옮겨갔거나 좌판을 접었으면 어쩐담, 그런 조바심이 실크로 만든 침대 시트처럼 마음속에서 가볍게 일렁였으니까. 만약 그랬다면 골라골라골라골라,를 일 초만에 연발했다던 그녀의 어릿광대 같은 따발총 소리를 들을 수 없을 테니까.
친구의 방 벽에는 잡지에서 오려낸 듯한 외국 배우들의 사진이 상당수 붙어 있다. 나이트클럽이나 스탠드바에 출입하는 것을 귀찮아하는 샌님처럼 나도 외화 같은 것을 볼 때면 제목이나 배우들 알기를 귀찮아해서 그 모델의 이름이 누구인지 복부에 자신들이 해놓은 사인을 보고야 알게 되었다. 나는 갑자기 그녀의 작은방이 떠올라 친구에게 물어본다.
“너도 모델을 꿈꾸고 있는 거냐, 아니면 배우를?”
“너도, 라니? 그럼 넌 진짜 꿈꾸고 있어?”
친구 녀석은 그녀의 어릴 적 꿈 얘기를 들먹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겠지.
“넌 아직도 신세대구나. 결혼은 언제 할 거냐?”
결혼, 이라는 말에 친구는 픽 웃고 만다.
“기자라는 직업이 얼마나 힘들고 바쁜 건지 알고 한 소리냐? 쉬는 날 없이 취재 나가야 하고, 여자 사귈 시간은 고사하고 중매에 응할 시간조차 없다고. 난 아무 여자나 좋으니까 결혼식이나 신혼여행 건너뛰고 여기 들어와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친구의 말을 듣고 왜 그가 오피스텔에서 생활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기자 생활의 분주함은 친구의 의식마저 무중력 상태로 짓눌러 버렸을 테니까.
“너야말로 왜 장가 안 가냐? 넌 장남이잖아. 부모님도 늙었고…. 혹시 딴 뜻이 있어 그런 거 아냐?”
친구의 보조개가 약간 패이며 얘기한 딴 뜻이란, 잘은 몰라도 그녀 때문이 아니냐는 말인 것 같다. 올해 들어 부쩍 친구가 근무하는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그녀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고 있으니 가족 아무에게 연락을 취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던 건 나였다. 그리고 말이 가족 아무나이지 실상은 그녀만이 아버지 곁에 있어야 할 사람처럼 말했다. 하지만 친구가 얘기한 딴 뜻의 의미는 그것 때문만이 아닌 것 같았다. 놀랍게도 그 시절을 친구는 들춰내고 있었다. 내가 그랬던가? 재강을 더 먹으려고 그녀에게 아부까지 했더란다. 백 미터 남짓한 언덕길을 세발자전거로 왔다 갔다 하던 그녀를 등 뒤에서 밀어주었다느니, 막사 옆뜰에 있는 샘에서 양동이로 물을 퍼담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뭐라고 속삭인 후 물이 찬 양동이를 그녀의 집까지 들어 주었다느니 하는, 내 입장에서는 머리를 쥐어짜고 상상해도 떠오르지 않는 얘기를 친구는 덤덤하게 하고 있었다.
문화부 신문기자의 기억력과 상상력은 남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세상살이의 이치를 달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늙은 화가는 칩거하기를 좋아하지만, 그 속에서 풍경화나 산수화를 화폭에 담아낸다기보다 순전히 현실 도피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런다거나, 요즘 신세대 작가는 단순히 자기과시 때문에 문학에 심취한다는 얘기를 당연하게 하고 있다. 그들과 상대하는 일은 참으로 벅차다고 말하며 친구는 냉장고에서 맥주와 마른안주를 꺼내 먹기 시작한다. 집기류가 흐트러져 있는 사무용 데스크 위에 노트북과 팩시밀리가 단아하게 놓여 있다. 시간에 쫓기면서 경황없이 취재한 기사를 노트북에 옮긴 다음 팩시밀리에 넣어 신문사로 보내는 모양이다. 문득 친구가 걸어온 삶의 애증과 천착이 그 속에 집결된 느낌이다. 절망 직전에 허우적거리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처럼 친구의 최후 수단이 그것 같기도 하다.
양동시장의 교통체증은 여전했다.
이제는 대도시와 중소도시, 낮과 밤을 안 가리고 차들은 저 심심하면 교통 혼잡을 빚었다. 오늘까지 두 번 보는 거지만 양동시장은 대도시의 시장 같지 않고 시골의 장터를 보는 것처럼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행상인의 촌티 풍기는 옷차림들, 좌판에 올라와 있는 추억 어린 물건들, 시장을 따라 형성된 실개천 같은 하천…. 모든 게 농촌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일장의 모습 같다. 나주에서 물건을 팔러오는 사람이 많은지 나주발 160번 버스가 이곳 정류장에 멈춰 서자 상당수의 행상인이 하차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이기지도 못할 짐들을 두어 개씩 떠맡고 버스에서 내린다. 좌판에 진열된 가지각색의 과일은 언제 봐도 먹음직스럽다. 잠깐 그녀를 찾는 일은 뒷전이고 나는 양동시장의 인도를 걷고 있다.
“저기야!”
친구가 가리키는 곳은 시장통 안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던, 과일이 진열된 인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시장통 안의 조명은 의외로 밝다. 그곳이라면 엊그제 내가 택시 안에서 두 눈 부릅뜨고 그녀의 모습을 찾아봤다고 해도 허사였을 것이다.
“골라골라….”
시장통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니 따발총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 청각만으로는 그 음성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나는 웃음이 나와 피식 웃고 만다. 다음 순간 음성의 주인공이 눈에 잡히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만다. 모종을 하듯 투명한 비닐을 바닥에 길게 깔아놓고 그 위에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피리 부는 사나이 앞에서 몸뚱이를 자유자재로 수축했다 팽창했다 하는 인도산 코브라 같다.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내 귀에 들려오지 않는다. 춤추는 여승 같기도 하고, 각설이 타령에 연연한 몸짓 같기도 한 그녀의 모습이 말짱한 내 청각을 마비시켜 버린다.
나는 그녀의 행동이 꿈속 말고 현실에서 본 듯한 누구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개그맨 누구였더라? 그런 생각이 드는가 싶더니 공포에 질릴 만큼 뚜렷한 하나의 실루엣이 떠오른다. 허공을 향해 팔매질하듯 뻗어 올린 팔과 쉴 새 없이 뭐라고 중얼거리던 입술이 그녀를 닮았다. 그녀 아버지의 모습이, 뻐꾸기가 날아와 제 이름을 불러대던 관목 한 그루가 전봇대처럼 박혀 있던 언덕에 불을 지른 후 병고처럼 신음하던 이십 년 전 모습이 말이다. 그날 이후 그녀의 성장은 멈춰 버렸는가.
아! 나는 짧게 탄식하고 만다. 내가 그녀를 보고 그러하듯, 엉뚱하게도 친구는 내 모습을 넋 나간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다. 이럴 때는 친구가 뭔가 싶다.
“가서 얘기 걸어볼까? 우리 모습 보면 얼마나 놀랄까?”
친구가 내 소맷자락을 잡아끌고 있다.
“어쩌면 저렇게 하나도 안 변했지? 정말로 그때 모습 그대로야.”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눈 쌓인 언덕에서 비료 포대로 미끄럼을 타고, 잡지를 가위로 오리던 어릴 적 그녀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어쩌면 그건 검은 언덕 때문인지 모른다. 모델이 되었다면 저런 순수한 모습도 보지 못했을 거고, 무엇보다 지금의 올바른 ‘내’가 있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그 시절의 추억마저 떠올릴 수 없었을 테지.
“골라골라….”
나는 따발총처럼 내지르는 그녀 곁으로 천천히 다가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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