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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불변의 꿈’을 향한 ‘낱말들의 움직임’
자신의 스승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시적 전통을 계승하여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정점을 이룬 폴 발레리. 발레리만큼 시의 언어와 시 쓰기의 메커니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인이 또 어디 있을까, 발레리는 시에 대한 지나친 까다로움 때문에 하마터면 시 쓰기를 포기할 뻔했다. 그는 말라르메의 작품을 통해 상징주의 시를 배웠고 19세 때 시를 처음 발표했으나 1년 만에 중단하고 20년간 침묵을 지키며 지적 탐험을 계속했다.
그는 24세 때부터 7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 램프를 켜고 [잡기장]을 기록해 270권 분량의 책을 남겼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숨을 거뒀고 그의 시 제목처럼 ‘해변의 묘지’에 묻혔다.
그는 시작 활동을 중단하고 철학과 수학, 물리학 등을 연구하다가 앙드레 지드의 권유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해 장시 [젊은 파르크](1917)를 출간했고 청년기의 시를 모은 [구시첩](1920)을 펴냈다. 이어서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해변의 묘지]를 비롯해[나르시스 단장] 등 20편의 작품을 묶은 [매혹](1922)을 출간함으로써 프랑스 문단의 대표적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시 쓰기를 중단하고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시의 음악성에 대한 탁월한 시론을 전개했으며, ‘순수시’를 주창하여 그 특징을 규명해나가게 된다. 그는 1920년 동료 시인의 시집 머리말을 쓰다가 ‘순수시’란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1928년에 발표한 [시론]을 통해 ‘순수시론’을 정면으로 거론함으로써 프랑스 문단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쟁을 통해 그의 ‘순수시’ 이론은 다듬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순수시’는 프랑스 상징주의의 특징을 대변하는 용어가 됐다.
발레리는 시를 논할 때 ‘시적인 것’과 ‘비시적인 것’을 구분하고, 비시적인 불순물이 제거된 상태를 ‘순수시’라고 칭했다. 그는 1927년에 작성한 [시인의 수첩]을 통해 순수시를 정의했다.
발레리는 “순수한 물”과 같은 시,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시를 ‘순수시’라고 칭하면서, 여기엔 “산문에 딸린 것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게 되고” “음악적인 연속성이 절대로 중단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순수시라는 말 대신 절대적인 시라고 말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며, 단어들 사이의 공명 효과를 탐구하고자 했다.
발레리는 “이거야말로 도달할 수 없는 목표”이며, 시는 순수한 이상적인 상태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상태’란 어떤 상태인가? 그 상태는 발레리가 꿈꾸었던 ’시의 우주‘인데, 그 우주는 시에 쓰이는 언어에 의해서 구현된다. 그는 ’실용적인 언어, 논리적 형태의 언어, 습관적이고 무질서하고 무이성적인 언어‘ 때문에 ’절대시‘는 “절대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영원한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산문은 보행이요, 시는 춤이다
발레리는 1891년 말라르메가 보낸 편지글을 통해 “우주가 음절들로 뒤덮이고, 문장들로 조직한 것”이 바로 시라며, 에드거 앨런 포에 대해 각별한 존경심을 표한다. 포가 “사물들의 신비로운 울림과 은밀한 조화를 규명”해준 덕분에 시인들이 “숭고한 교향악에 대한 최고의 구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1939년 옥스퍼드대에서 행한 강연 [시와 추상적 사고]를 통해 저 유명한 “산문은 보행이요, 시는 춤이다”라는 명제를 던졌다.
’춤의 언어’, 즉 ‘시’가 지니는 리듬은 리듬 자체가 목적이면서 그와 동시에 독자에게 황홀한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의 언어는 결코 소멸되지 않으며 끊임없이 재생된다. 반면 산문의 언어는 의미의 목적지에 닿는 순간 소멸된다. 게다가 산문의 언어는 일상어이기 때문에 시가 추구하는 ‘관념’을 포착해낼 수 없다. 그러나 시의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표현해내는 기능을 지니는데, 이것이 곧 시의 상징이다. 시의 언어는 사물이나 감정을 지시하는 도구적 기능을 수행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춤의 율동처럼 행위 자체가 목적이다. 따라서 실용 언어는 의미 전달이 끝나면 곧바로 소멸되지만, 시의 언어는 거듭거듭 새롭게 탄생된다. 발레리가 강연 마지막으로 한 말로 “명백하게 그것(시의 언어)은 잿더미에서 재생하도록, 그리하여 종전의 자신으로 끝없이 되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를 통해 시인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발레리는 1891년 말라르메에게 보낸 편지글을 통해 그 지향점을 일찌감치 밝혀놓았다. 즉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자신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세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는 ‘우주의 화음’을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때의 ‘화음’이란 시적 주체와 이 세계의 ‘상응’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상응이야말로 상징주의 시가 추구해온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의 음악성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시의 리듬’뿐만 아니라 보들레르가 주장했던 ‘교감 이론’ 그리고 ‘시적 영감’에 대한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그러니까 시의 리듬은 삼라만상의 우주로부터 시인의 몸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우주는 온갖 리듬의 하모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여기서 현실적 사물들이 암시하는 신비롭고 아름답고 불투명한 ‘불가해의 세계’를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은 요소들이 바로 만물과 교감하는 ‘상징’이 된다. 이러한 상징은 섬세한 감각과 영감이 부여된 사람만이 직관할 수 있는데, 발레리는 시 창작의 절대적 요건으로 ‘의식의 명료성을 첫손가락에 꼽았다. 그리고 [시와 추상적 사고]에서 시적 영감을 부정하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시적 영감을 ’시인의 특권으로 믿고 거기에 의존하기보다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시의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발레리의 주장이다.
시의 첫 단어, 첫 구절
발레리는 [시와 추상적 사고]를 통해 자신의 시 창작 과정을 밝혔다. 그는 “손을 깨끗이 하고 수술을 준비하는 외과의사”처럼 머릿속을 말끔하게 비우고 그 무엇보다도 ‘첫 단어’를 주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신들은 고맙게도 어떤 시의 첫 구절을 공짜로 준다. 그것은 화음과 이룰 둘째 구절을 불러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의 단어로 시작되는 시는 “아직 말을 더듬거리기 때문에” 우발적인 단어를 빌려 쓸 수밖에 없는데, 그 단어들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하게” 또 다른 단어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렇듯 단어와 단어들이 호응하여 “음악화 되고” “화음적으로 대응하는” 공명 관계를 이룰 때, “시적 우주”가 열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레리에 있어서의 시는 ‘말의 배합과 결합 그리고 변형된 조직체’인 셈이다. 결국 시는 이 세계나 대상의 재현이 아니라 언어에 의해서 구축되고 존재하는 세계라는 얘기다.
그러나 시는 시인이 겨냥하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다. 말라르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불가능에의 꿈’이다. 그렇기 때문에 발레리는 ‘절대의 책’을 향한 ‘언어의 연금술’을 꿈꾸기보다는 ‘수공업’처럼 언어를 매만지고 두드리고 밀고 나가는 창작 행위를 중시했다. 따라서 발레리는 ‘하나의 작품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지녔다.
발레리는 언제나 아름다운 시구 하나로도 순수시가 이뤄진다고 보았다. 즉 발레리는 순수시란 ‘한 언사의 재료 중에 얽힌 순수시의 파편에 의해 성립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발레리의 주된 관심사는 ‘시의 완결성’보다 ‘시작 과정’이었다. 그는 “시를 만드는 나를 관찰하면서 시를 썼다.”고 말했는데, 시 창작의 메커니즘을 살피는 데 더 많은 기간을 보냈던 셈이다. 그의 ‘순수시론’은 현실에선 결코 실현되지 않을 ‘이상론’이었다. 따라서 발레리는 ‘불가능의 시 쓰기’를 수단으로 삼아 인간 의식의 명료성을 탐구한 학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핵심적인 과제는 우연적인 요소가 오히려 중요하게 작용하는 인간의 사고 형태, 그리한 사고가 가져다주는 흥미로운 결과를 냉철한 의식의 불빛 아래서 다시 발견해 내려는 작업이었다. 결국 그의 ‘순수시’는 영원한 가설이었고, ‘순수시’를 지향하는 그의 시 쓰기만 ‘가능성의 영역’이었던 셈이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해변의 묘지]의 부제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오 나의 영혼이여, 영원불멸을 꿈꾸지 말고, 다만 가능성의 영역을 다 소진시켜라.”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144행에 이르는 장시다.
비둘기들이 걷고 있는 이 고요한 지붕은
펄럭인다 소나무 사이에서 무덤 사이에서,
엄정한 자, 정오는 거기 불로써 빚어낸다
바다를, 언제고 새로 시작해 있는 바다를!
오 생각 하나에 따른 보상이여,
신들의 평온을 오래 관조하는 시선이여!
(중략)
아름다운 하늘이여, 진실된 하늘이여, 변화하는 나를 보라!
그토록 대단한 자존 끝에, 이상하나 힘에 찬,
그토록 대단한 무위의 끝에,
나는 이 빛나는 공간에 나를 맡긴다.
(중략)
오 나만을 위하여, 나 자신에게 감, 나 자신 속에서,
마음 곁에서, 시의 원천에서,
공허와 순수 사건 사이에서,
나는 나의 내면의 위대함이 메아리치기를 기다린다.
항상 앞날에 다가오는 공동이 영혼 속에 울리게 하는,
쓰라리고 어둡고 울리는 저수조여!
(중략)
아니다, 아니다!-----일어서라! 계속되는 시대 속에!
부숴라, 육체여, 생각에 잠긴 이 틀을!
마셔라, 가슴이여, 바람의 탄생을!
바다에서 뿜어 나오는 서늘함이
내게 나의 혼을 돌려준다-----오 짜디짠 힘이여!
파도로 달려가, 거기서 생생하게 솟아오르자!
(중략)
바람이 인다!-----살아보아야 한다!
광막한 대기는 나의 책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파도는 가루로 부서져 바위 위에 용솟음치려 하네!
눈부시게 하얘진 책장들이여 날아가라!
부숴라 파도여! 기쁨을 되찾은 물로써 부숴버려라
비둘기들이 모이 쪼던 그 고요한 지붕을!
-폴 발레리, 김경란 옮김, [해변의 묘지] 부분
이 시는 “아름다운 하늘” “진실된 하늘”로 표현되는 영구불변에 매혹되었다가 스스로 “변화하는 나”를 그려내고 있다. 시의 화자는 “공허와 순수” 사이에서 스스로의 내면이 메아리치기를 기다리지만, 자신의 내면이 “공동의 영혼”을 울리는 “저수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시의 후반 부에 이르자 “바다에서 뿜어 나오는 서늘함”이 “나의 혼을” 되돌려주고, 시의 화자는 다시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그러곤 “나의 책”과 “책장들”이 “광막한 대기“ 속으로 흘러가서 대기의 일부가 되는 것으로 시는 마감된다.
그런데 발레리는 이 작품의 창작 과정을 술회하면서, 어떤 리듬에 의해 작품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발레리는 ”어떤 착상”도 갖지 않았고 “떠도는 단어들”이 주제를 만들어나갔다는 것이다. 이처럼 발레리는 낱말들의 공명, 시어의 음향 효과 그리고 리듬에 의한 시 쓰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는 시의 리듬을 “사물들의 신비로운 울림과 은밀한 조화를 규명하는” 도구로 여겼다.
발레리는 시의 리듬과 이미지, 상징과 비유 등 말의 모든 힘을 구사하여 ‘언어 공학’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시인은 ‘언어 공학’의 ‘기하학자’ ‘건축가’ ‘지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적 영감보다는 명료한 의식과 각고의 노력으로 ‘불가능의 꿈’을 찾아가야 한다는 그의 ‘인공 시학’은 “나는 무아 상태에서 번갯불을 기다리느니보다 맑은 정신, 의식적인 의지를 가지고 나의 마음대로 반짝거리는 불꽃을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말로 정리될 수 있다.
발레리는 말라르메의 뒤를 이어 프랑스 상징주의 시를 활짝 꽃피웠으며, 주지주의의 입장에서 지적 예술의 우위를 주장한 20세기 최대 산문가의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