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3. 16
기관투자가 본격 참여가 비트코인 6만 달러 이끌었다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잠잠하던 암호화폐 가격의 상승 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만들어줬다. 지난해 3월 17일 양적완화 정책을 재개하면서다. 지난해 3월 17일 4945달러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오르더니 올해 들어 거침없이 치솟고 있다.
상승 배경은 여러 가지가 꼽힌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 재개에 따라 급증하는 유동성 팽창 ▶탈중앙화금융(DeFi, 디파이) 열풍 ▶기관투자가의 진입 본격화 ▶자산가격 급등기에 나타나는 오버슈팅(과매수) 현상이 대표적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비트코인 반감기를 꼽을 수 있다. 이밖에 중국인민은행이 디지털 위안화를 시험 사용하는 등 각국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CBDC) 등장도 제도적인 측면에서 일조하고 있다.
미 Fed는 전후 최장의 호황기를 기록해 오던 미 경제가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둔화하기 시작하자 지난해 3월 양적완화 및 제로금리 정책을 재개했다. 연방 기금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본원통화를 3조 달러에서 5조 달러 수준으로 대폭 늘렸다. 그 결과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투자자들은 새로운 안전자산으로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또 지난해 하반기 불어닥친 탈중앙화 금융 바람으로 디파이 열풍이 암호화폐 가격 급등의 큰 배경이 됐다. 디파이란 주로 암호화폐를 담보로 걸고 일정 금액을 대출받거나, 혹은 암호화폐를 담보로 다른 암호화폐를 대출받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암호화폐 금융이다. 중앙화된 기존의 금융중개회사 없이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만 있으면 암호화폐의 예치와 대출이 가능해 탈중앙화 분산금융이라고도 한다.
2020년 하반기는 디파이 열풍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게 발전했다. 디파이 상품 예치총액이 12월 24일 기준 134억 달러(약 15조원)로 지난해 6월의 12억 달러보다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분산금융은 대출자와 대부자 간의 스마트계약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스마트계약에 최적화된 이더리움의 가격이 특히 급등했다.
기관투자가의 암호화폐 시장 진입이 본격화하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기반을 탄탄하게 해주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2017년 거래를 시작한 비트코인 선물상품이 2019년에는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회사인 인터콘티넨털 익스체인지(ICE)의 자회사 백트(Bakkt)에서도 출시해 서비스되고 있다. 페이팔(PayPal)도 올해부터 비트코인·이더리움·라이트코인·비트코인캐시를 거래에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페이스북·JP모건이 암호화폐 발행을 발표하고, 일본에서는 미쓰비시UFG·미즈호은행·SBI홀딩스 등이 엔화와 연동된 스테블코인 발행을 선언했다.
한국에서도 기관들 줄줄이 참여
한국에서도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10에 암호화폐 전자지갑을 내장했고, 국민은행·신한은행도 디지털 자산 수탁회사에 지분투자를 결정하는 등 국내외를 불문하고 기관투자가의 암호화폐 시장 진입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는 2017년 암호화폐 급등기가 주로 개인투자자들의 군집 행동 결과였던 것인데 비해 이번에는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속속 암화화폐 시장에 합류함으로써 시장의 기반을 다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렇게 되면 과거 2018년 같은 폭락 장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등 시장의 안정성이 훨씬 강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 비트코인의 반감기도 큰 변수다. 반감기란 비트코인 채굴자에게 제공하는 비트코인의 수가 일정 기간, 대략 4년마다 반씩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비트코인은 처음 설계할 때부터 과도한 공급으로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체 공급량을 2040년까지 2100만개 채굴로 제한했다. 처음으로 2009년 1월 채굴당 50비트코인을 공급했으나 2012년 11월 25비트코인, 2016년 7월 12.5비트코인, 2020년 5월 6.25비트코인씩 공급되도록 설계돼 있다. 지난해 5월 반감기가 지나가면서 공급 측면에서 가격 상승요인이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가격이 급등하자 투자자들의 과매수, 즉 오버슈팅 현상도 가세했다.
중앙은행의 디지털 통화 발행이 본격화한 것도 암호화폐 산업 활성화를 촉발하면서 암호화폐 가격 상승에 일조하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말한다. 발행 주체가 민간참여자가 채굴하는 암호화폐와 달리 중앙은행이다. 암호화폐는 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는 법정화폐로 사용된다는 점도 다르다.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80% 내외의 중앙은행이 연구나 시범준비, 시범운용에 참여 중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가장 활발한 중앙은행이 중국인민은행이다. 중국인민은행은 시범운영을 마치고 지난 2월 7~8일 베이징 시민 5만명을 대상으로 1명당 200위안(약 3만4000원)씩 총 1000만 위안을 시민들의 전자지갑에 나눠주는 에어드롭 행사를 진행했다. 중국은 내년 초 동계올림픽에 상용화한다는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바야흐로 디지털 통화의 각축전이 시작된 셈이다.
비트코인 ETF 상품도 거래 시작
이러한 배경에 힘입어 급등하던 비트코인 가격이 지난 1월 9일 4만519달러를 정점으로 반락했다. 이는 4만 달러라는 심리적 저항선에 도달하자 경계매물이 출하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만 달러까지 하락하자 3월 들어 본격적으로 반등하기 시작해 지난 13일(현지시간) 처음으로 6만 달러를 돌파했다. 지금은 다시 6만 달러에서 위아래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 반등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다. 머스크는 앞으로 테슬러의 전기차를 비트코인으로 거래하겠다고 발표해 암호화폐 가격 반등에 불을 붙였다.
이어서 마스터카드와 트위터도 동참을 선언했다. 투자도 줄을 이었다. 월가에서 22억5000만 달러의 자산을 운용 중인 밀러벨류펀드는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트러스트(GBTC)에 투자하고, 모건스탠리는 산하 투자기업인 카운터포인트글로벌을 통해 비트코인 투자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뉴욕 멜론은행은 비트코인을 거래할 계획이라고 가세했다.
트위터 CEO 잭 도시는 300억원에 해당하는 비트코인 500개를 ‘Btrust’라고 이름 붙인 펀드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펀드는 아프리카·인도에서 비트코인과 관련된 개발사업을 지원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금융당국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의 상장지수펀드(ETF) 출시를 승인해 토론토증권거래소(TSE)에서 거래가 시작되었다.
오정근 /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중앙일보
미 금리 인상이 최대 변수
전망은 어떨까. 기관투자가들의 대거 참여와 암호화폐 대량 보유자인 ‘고래’들의 비트코인 보유 재개, 탈중앙화 금융(DeFi) 열풍 지속 등 수요기반이 탄탄해 과거와 같은 급락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 Fed의 양적 완화 지속 기간 중 추가 상승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상된다.
그러나 4만 달러 도달 후 하락으로 반전했던 것처럼 심리적 저항선에서 일시적 반락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변곡점을 예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미국의 통화정책과 그에 따른 달러 가치 변동이므로 하반기 이후에는 미국 금리와 유동성 동향에 유의해야 한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완전고용과 인플레이션율 2%를 목표로 하고 있다. Fed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기준금리를 논의하는 회의에서 실업률이 4% 수준에 이르고, 인플레이션율이 2%로 상승한 후 상당 기간 완만하게 2%를 상회하는 궤도에 도달할 때까지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2월 Fed의 경제전망을 보면 올해에는 실업률 5%, 물가상승률 1.8%, 내년에는 실업률 4.2%, 물가상승률 1.9%, 2023년에는 실업률 4%와 물가상승률 2.0%로 전망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기 조기 회복 전망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미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시장에서는 조기 금리 인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3, 6, 9월에 있을 Fed의 미국 경제전망과 통화정책 방향을 주시해야 한다. 시장은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