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Text Pslm 37,22-26
(22)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23)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1. 이번 주 수요일은 설날입니다. 빠르게는 엊그제 금요일 밤부터, 보통은 어제 토요일부터 긴 설 연휴가 시작되어 다른 어느 해의 설 명절보다 오래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명절 연휴가 너무 길어 스트레스받는 이들도 있겠지만, 매일 출근해야 하던 직장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명절이라 하겠습니다. 푹 쉬시면서 설 명절의 중요한 의미인 가족 화합, 지난 잘못에 대한 반성과 새해에의 각오 등도 잘하는 명절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12.3 계엄 사태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상태여서,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새해를 시작하게 된 것이, 안타깝지만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하루속히 탄핵당할 이는 탄핵당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서 오늘의 혼란이 잘 수습되도록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우리의 시야를 가리고 있지만 성도는 시국을 바라보고 희망을 찾지 않고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며 희망을 찾는 사람입니다. 불안 속에서 한 해를 시작하는 성도들과 함께 오늘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나누며 은혜받고자 합니다.
2. 먼저, 22절을 봅니다.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여기에서 말하는 ‘주의 복은 받은 자들’은 3절의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는 사람’이며, 4절의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이고, 5절의 ‘자기 길을 하나님께 맡겨 의지하는 사람’이며, 7절의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또한 11절의 ‘온유한 자들’이고, 17-18절의 ‘의인’, ‘온전한 자’입니다. 21절의 ‘은혜를 베풀고 주는 자’도 ‘주의 복을 받은 자들’에 포함되는 사람입니다.
또한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이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최후의 승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여곡절이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하며 많이 소유하고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악인과 비교하면 턱없이 미약한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되어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고 진정으로 강한 힘을 가진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그 사람의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하나님께서 그 팔을 붙들어주셔서 그들의 기업이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 세시 풍속은 대개 섣달그믐날부터 시작되어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데, 묵은해를 잘 보내고 새로 시작되는 해를 잘 맞이하는 풍속으로, 주로 액운을 떨쳐내고 복을 맞이하기 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섣달그믐날 밤에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밤을 새우는 제야, 빚을 갚거나 빌린 물건을 돌려주며 못했던 인사를 하는 묵은 빚 갚기, 팥죽 쑤기, 소등하지 않기 등의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한 액막이 풍속들, 풍요와 무병장수의 복을 기원하는 대청소, 떡 만들기, 복조리 사기, 설빔, 새해 세배, 연 시집보내기 등이 모두 그런 풍속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 압니다. 어떤 사람의 장래가 장밋빛이 되게 하고 그에게 닥칠 모든 액운을 막아주는 최고는 ‘하나님이 붙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자 하면 그 복을 막을 길이 없음을 우리는 성경에서 배우고 그렇게 믿습니다. 이삭은 매우 온유한 사람입니다. 창26장에 보면, 이삭이 공들여 우물을 파면 그 지역의 유력한 사람들이 그 우물을 메꾸었습니다. 한번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섹 우물, 싯나 우물, 르호봇 우물을 빼앗겼지만 이삭은 그들과 다투지 않고 옮겨갔습니다. 나중에 브엘세바로 옮겨갔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26,24) 결국 그 지역의 유력한 인사들이 먼저 이삭에게 와서 화친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요셉도 그렇습니다. 주변의 온갖 사람들이 해코지했지만, 하나님이 붙드시는 요셉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베들레헴 산골에서 양치는 목동이었던 다윗이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신실하게 신뢰하던 그는 절대 권력자 왕 사울이 지속적으로 살해하려 하였지만 사울은 점점 약해지고 다윗은 점점 강해졌으며(삼하3,1)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니(삼하8,14)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다니엘도 그렇지요. 온갖 권력자들이 시샘하여 모함을 하고 위경에 빠뜨렸지만 오히려 그 당한 일로 말미암아 다니엘은 더 크고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설 명절을 함께 지내시려고 모이신 가족 여러분, 하나님이 복 주시고자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을 받는,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앞에서 말씀드렸지요.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는 사람’(3절), ‘여호와를 기뻐하는 사람’(4절), ‘자기 길을 하나님께 맡겨 의지하는 사람’(5절),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사람’(7절), ‘온유한 자들’(11절) 등입니다.
모이신 가족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붙들어주시는 사람으로 이 한 해를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3. 다음, 23-24절 말씀을 봅니다. “(23)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여기에서 ‘정하셨다’는 단어는 ‘기뻐하다’, ‘원하다’, ‘선택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사람의 걸음에서 ‘걸음’이라는 단어는 ‘발걸음’(steps)을 뜻합니다. 즉, 사람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선택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넘어지다’는 단어는 ‘떨어지다’, ‘실패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 완전히 망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는 하나님의 능력, 권위, 보호로 의로운 자를 ‘붙잡고 지탱하며, 보호하시고 지지하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의 걸음걸음이 기뻐하시는 길이기 때문에 혹 그 사람이 넘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능력과 권위와 보호로 붙잡고 지탱하며 지지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에도 여전히 그분의 손길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우리의 걸음을 기뻐하시며, 그분의 계획에 따라 우리를 지키십니다. 신앙생활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넘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넘어져도 절대 끝내지 않으시고,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놓지 않으시며, 항상 우리를 붙잡고 지탱하며 지지하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늘 변화무쌍하고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언제나, 어디서든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의지할 때, 주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평안과 힘을 주십니다. 주님의 임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함께하시며,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분과 동행하는 것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최후에 남긴 말씀 마28,20은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41,10절에서 주님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하였고, 출3,5에서 모세는 내가 어디에 있든지, 주님께서 내게 임하시면 그곳은 거룩한 곳이라 하였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목표와 결심을 세웁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주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매일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365일 동안 주님께 붙들려 주님의 권능으로 지탱하고 보호하여 주시며 지지를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늘 경험하는 중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매일매일 나에게 선택되어야 하고 그런 결단이 내려져야 합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찾아와 농부들은 땅이 메마르고 작물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며 낙담했습니다. 하지만 한 믿음의 농부는 동요하지 않고 매일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 농장을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적절한 때에 비를 내려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루는 비가 올 기미가 전혀 없는 하늘 아래서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있는 모습을 본 이웃이 물었습니다.
“비도 안 올 텐데, 왜 씨를 뿌리고 있습니까? 어차피 소용없을 텐데요.” 믿음이 좋은 농부는 웃으며 대답했답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든, 안 주시든 저는 제 일을 할 것입니다. 제 몫은 하나님이 제게 맡기신 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니까요.” 얼마 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기도로 하루하루를 주님과 동행하며 준비했던 이 농부의 밭에서는 풍성한 열매가 맺혔다고 합니다.
여러분, 넘어졌습니까? 떨어졌습니까? 혹 실패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아주 엎드러지지 않습니다. 넘어졌다 하더라도 일어나지 못하거나 완전히 망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권위, 보호로 주님의 뜻을 따라 주님의 길을 선택한 사람을 붙잡고 지탱하며, 보호하시고 지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내일이고 여러분의 장래입니다. 최소한 여러분이 주님의 사람으로서 주님과 동행하며 살기만 한다면 이 해의 앞에 어떤 일이 놓여 있다 하더라도 우리 성도들은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는 해가 될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4. 끝으로, 25-26절을 봅니다 “(25)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26)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던 그때,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던 시절,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던 때, 액막이를 하고 복을 받겠다고 조상에게 빌고 자연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신발을 뒤집어 놓고, 온 방을 밤새도록 불로 밝히며, 윷놀이 토정비결 등으로 운수를 점치고, 대문과 기둥에 복조리를 걸어두는 등등의 풍속을 행하였지만, 복은 고사하고 5천 년 긴긴 역사 동안 삼시 세끼 제대로 먹은 적 없고 백성의 8-90%가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무식에다 식민지 국가에서 노예처럼 살아야 했었습니다.
그런 흑암의 때, 순교를 당하고 멸시를 당하며 질병으로 순직한 선교사들의 복음 전파로 이 땅에 복음의 빛이 비치므로 불과 백년도 되지 않아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류’라는 이름의 ‘K culture’로 한국은 세계 도처에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5절은 말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법도를 따르는 사람이나 민족이나 국가가 버림을 당하거나 걸식하는 걸 본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복음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2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원조를 받던 나라가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고, 남의 나라 군대와 군수물자가 없으면 내 나라를 지킬 수 없어서 이 땅에서 남의 나라 군대끼리 전쟁을 벌여 애꿎게 우리 민족이 폐해를 입었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 생산한 무기들을 서로 사겠다고 경쟁을 하고 세계 최강국이라 자처하는 미국도 우리나라의 군함을 사겠다고 얘기가 오가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정이 복을 받고 대대손손 그 복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조상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 섬긴다고 복을 받을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가래떡 길게 뽑아 먹어서 무병장수의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묘를 잘 쓰고 성묘를 한다고 가문이 번창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바닥에 임금 왕(王) 글자를 써서 대통령이 된들 그것은 수치와 부끄러움의 원인밖에 되지 않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과 잘 섬기는 가정과 잘 섬기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설 명절은 이런 사실을 가족 모두가 인지하고 마음에 깊이 새기며 주님 말씀 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높은 뜻을 기리며 격려하는 명절이 되셔야 합니다. 이 은혜가 우리 성도들 가정에 충만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