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관광(전적지 관광)은 인솔자를 따라 각 개인의 차량으로 비무장지대 이남 민통선 지역을 탐방하며 허용된 구역에서만 하차를 할 수 있다. 고석정 - 양지리 군초소 – 평화전망대 – 월정리역 – 두루미전망대 - 관전리 군초소 코스이다. 제2 땅굴은 코로나 이후엔 개방하지 않고 있다. 노동당사, 도피안사, 백마고지 전적비는 민통선 밖에 있다.
민통선 안의 철원평야에 농지(임대농)를 가진 농민은 낮에만 영농작업이 가능하다. 민통선 밖에서 거주하면서 민통선 안에서 영농을 하는 농민은 출입증을 제시하고 아침에 들어가고 오후에는 나온다. 민통선 안에 있는 대성동 마을은 농민이 거주하면서 영농생활을 하고 있다.
남방한계선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경원선의 간이역이다. 진짜 월정역은 비무장지대에 있어서 현재의 위치에 월정역을 복원하였으며, 전시물은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기차 잔해이다.
1946년 초 철원이 북한 치하일 때 철원군 노동당에서 주민들로부터 강제모금과 노동력 동원으로 건설한 3층 건물이다. 6.25 전쟁 참화로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다.
철원군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 시대인 865년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과 같은 곳에 이르렀다’라는 뜻으로 하여 도피안사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1898년 화재로 소실하였으나 재건하였고, 1941년 개수하였다. 8·15광복 후 공산 치하에 들어갔다가 6 ·25전쟁 때 전화로 폐허가 된 것을 1957년 육군 제15사단에서 복원 후 관리하다 민간 관리로 넘겼다.
백마고지는 철원읍 북서쪽 12㎞ 지점에 있는 해발 395m의 군사요충지 고지로서 395고지라고도 한다. 1952.10.6. 중공군과 김종오 소장이 지휘하는 9사단과 미군이 10일간 24차례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치른 끝에 아군이 승리하였다. 심한 포격으로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백마가 누운 듯한 형상이라 '백마고지'라 부른다.(앞에 보이는 산이 백마고지)
(국가의 책무) 미국은 비행기를 탈 때 참전 군인을 제일 먼저 태우고, 비행기 조종사가 ‘이 비행기에 참전 용사가 타고 있다’라는 기내 방송을 한다. 참전 용사 유해가 귀국을 하면 꼭두새벽이나 한밤중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공항에 나가서 맞이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한다. 미국 대부분의 운동 경기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돌아오지 못한 장병을 위한 좌석’ 팻말이 붙은 빈 의자가 있다. 아무리 만원이어도 그 자리는 비워 둔다. 전쟁포로나 실종된 장병을 위한 빈 의자는, 돌아와서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라는 뜻이다. 빈 의자 옆에는 ROTC 생도 한 명이 정복을 입고 부동자세로 서 있고, 비가 오면 관중이 다가가 우산을 씌워주는 광경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한 라이언 4형제 중 3형제가 전사했다. 절망한 어머니에게 미군 수뇌부는 마지막 남은 아들이라도 구하려고 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임무에 선발된 병사들은 의아해한다. “왜 1명을 구하러 8명이 갑니까.” 지휘관 대위가 답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내용이다. 영화에선 라이언 일병을 데려오기 위해 결국 대위를 포함해 6명이 전사한다. 6·25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 한 중대가 10배나 많은 중공군에게 5일간 포위 공격을 당했다. 미군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대대 병력을 파견하며 발표했다. “중대를 구하려다 대대가 전멸할 수 있다. 그러나 중대의 희생을 지켜보는 것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