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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부러진 기념탑이라니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 69:9)
이탈리아의 유명한 인문주의자이자 출판업자인 알두스 마누티우스(1449~1515)는 “일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죽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재림교회 개척자인 제임스 화잇(1821~81)은 후자에 속한다. ‘녹슬기보다 닳는 것이 낫다’는 좌우명으로 그는 튼튼한 몸조차 버텨 내지 못할 만큼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제임스는 44세에 뇌졸중 마비 증세를 겪었다. 그러나 회복되자마자 다시 격무에 뛰어들었다(1증언, 103).
1881년, 아내 엘렌이 배틀크리크의 부담에서 벗어나라고 설득했지만 제임스는 완고했다. “이 일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기관의 유익을 위해 사심 없이 애쓰며 옳은 편에 서서 주변에 휘둘리지 않을 만한 사람은 어디 있겠소?” 그러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는 덧붙였다. “나는 이 기관들을 세우는 일에 삶을 바쳤어요. 죽어야만 그만둘 것 같소. 이 일은 마치 자식들 같아서 관심을 끊을 수가 없어요. 이 기관들은 특별한 사업을 위한 주님의 악기와도 같소”(1증언, 106).
어느 안식일 아침, 화잇 부부는 배틀크리크 교회의 단상에 나란히 섰다. 이틀 뒤인 1881년 8월 1일, 제임스 화잇은 갑작스럽게 앓아누웠고 그 주 안식일에 배틀크리크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뒀다(1증언, 109~110). 직접적인 사인은 말라리아였지만 교회를 세우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 탓이 컸다. 자신의 사역을 “끝마치지” 못한 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제임스의 묘지에 부러진 방첨탑을 세우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엘렌은 “절대로 안 됩니다. …절대로요! 그이는 혼자서 세 사람의 몫을 해냈습니다. 그런 제임스의 무덤에 부러진 기념탑이라니요. 그건 안 될 말입니다.”라며 단호히 맞섰다(1기별, 104~105).
슬픔에 잠긴 엘렌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해 36년 동안 우리는 나란히 손을 잡고 일했다. 우리는 함께 서서 승리로 장식되는 마지막을 보고 싶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젊은 날에 내가 택했던 지킴이, 내 인생의 동반자, 나의 수고와 고통을 함께 나누던 그가 내 곁을 떠났다. 나는 이제 홀로 남아 일하며 싸워야 한다”(1증언, 105).
더 멀리 가려면 쉬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그 사실을 명심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품고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8월 2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드높이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9)
이른바 ‘긍정적인 고백’을 내세우는 이들은 우리의 말에 환경을 바꾸고 운명을 꼴 짓는 초자연적인 힘이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죄악, 질병, 아픔, 슬픔은 예수께서 지셨으므로(사 53:3~5) ‘나는 오늘 용서받고 치료받았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라고 고백하면 된다고 그들은 역설한다. 병든 몸이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단지 믿음이 부족해서라는 것이다.
어느 목사의 아내가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었다. 1982년 8월 2일, 미국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프란시스 셰퍼(1912~84)는 그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위로의 편지를 썼다.
“가끔은 주께서 곧바로 치료해 주시기도 합니다. 여러 해 동안 사역하며 저도 그런 모습을 본 바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근절되지 않는 치명적인 위험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진실하고 믿음이 넘치는 신자는 반드시 치유된다’는 그릇된 믿음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분명코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여러 지역에서도 결론적으로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 모두가 치료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믿음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이 컴퓨터가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사랑과 지혜가 무한한 인격적인 하늘 아버지임을 그들은 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누구보다 신뢰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당신의 병이 낫지 않는 이유는 영성이나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변의 말을 듣고 나서 좌절하는 모습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그 말이 맞을 때도 있지만 심각한 병을 앓는 사람에게 그것이 언제나 사실인 것처럼 말하면 불필요한 죄책감만 쌓이게 할 뿐입니다.
…병마와 싸우는 이에게 불필요한 죄책감을 들이붓는 사람들만큼 잔인한 집단도 없습니다.”
긍정 고백론은 십자가 없이 면류관을 얻게 해 주겠다는 이기적인 가르침이다(마 16:24). 그와 반대로 사도 바울은 육신의 고통을 감내하고 자신의 병을 기꺼이 받아들였다(고후 12:7~10). 베드로 역시 그리스도를 위해 고통당할 때 기뻐하라고 격려한다(벧전 4:13). 우리 삶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게 하자. 우리를 위한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하나님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나아가는 한국 교회가 되도록
8월 3일
재빠른 조치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미리엄 웰스와 존 웨슬리 테일러 5세는 버지니아 체사피크의 탠지어섬에서 아들과 멋진 주말을 보내기 위해 세심하게 계획을 짰다. 2012년 8월 3일 금요일 아침, 그들은 섬으로 갈 배를 타기 위해 정박지로 향했다. 워싱턴 D.C. 도심을 지나 4차선 고속 도로에 진입했고 미리엄은 시속 96km로 자동 정속 주행을 설정했다.
처음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설정한 속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설정은 해제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도 써 봤지만 먹히지 않았다. 존은 미리엄에게 얼른 차를 길가로 이동시킨 뒤 시동을 끄라고 말했다. 시동을 끄자 차는 점점 속력을 잃더니 멈추었다. 존은 정비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동 주행 장치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정비사는 잘못된 배선의 위치를 찾아 비활성화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자동 주행 장치 없이 그들은 제시간에 정박지에 도착했다.
살다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시동을 끄고 멈추는 일뿐인 때도 있다. 가령 도덕적인 문제에 휘말릴 때도 그렇다. 그럴 때는 재빨리 결단을 내리고 부도덕한 일을 멈춰야 한다. 그 결정은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될 수 있어도 앞날의 재앙을 막아 준다. 또 불치병을 진단받았을 때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차분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빅토르 E. 프랑클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삶이란 실로 선택의 연속이다. 결정을 내리기 쉬운 일도 있지만 훨씬 어려운 일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비는 기도>는 언제나 도움이 된다. 그 기도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상황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와 바뀌어야 할 것을 바꾸는 용기와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또 우리는 다음과 같은 누군가의 기도 역시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주님, 오늘 일어날 일 중에 우리가 함께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태영/전주은 선교사 부부(서인도네시아)
훈련원을 섬기고 있는 모든 직원과 그 가족들의 영성과 건강을 위해
8월 4일
받은 대로 전해 주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3~45)
1853년 8월 4일 자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미시간주의 재림 기별 전파에 관한 내용이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나는 방금 헤이스팅스에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다섯 차례 집회를 개최했고 주께서 성령으로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성도들은 위로받고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죄인들은 떨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회에서 두 사람이 진리를 고백했고 또 다른 두 사람이 우리 주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음을 확인한 사람은 훨씬 더 많습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침례를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셋째 천사의 기별이 신속히 떠오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큰 외침을 위한 길을 열고 계신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기사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 미시간 배틀크리크의 첫 재림교인인 데이비드 휴잇이다. 그와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852년 배틀크리크에 재림 기별을 전하려던 조지프 베이츠는 독특한 방법을 활용했다. 마을을 훤히 꿰고 있을 그 동네 우체국을 찾아가 “이 지역에서 가장 정직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본 것이다. 우체국장은 데이비드 휴잇이라고 답했고 베이츠는 휴잇의 집을 찾아가 재림 기별을 전했다. 휴잇의 가족은 이 기별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기사에서 알 수 있듯 데이비드는 헌신적인 재림교회 선교사가 되었다.
요한복음 1장 43~51절에는 예수께서 빌립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이야기에서 복음 선교의 특성이 드러난다. 전해 받은 자가 전해 주는 자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참된 제자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선교사로 태어난다. 생명수를 마시는 자는 생명의 샘이 된다. 받은 자는 주게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 영혼에 사막의 샘과 같다. 이 샘이 솟아나 모두에게 활력을 주며, 죽어 가는 이들이 생수를 마시고자 갈망하게 이끌어 준다”(소망, 195).
복음을 우리에게만 감추어 두면 안 된다. 복음은 반드시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마 25:14~30). 이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현지인을 위한 성경 및 예언의 신 보급 운동이 잘 진행되도록
8월 5일
아타카마의 구조 작업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단 6:20)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산호세 탄광 뉴스에 온 세상이 관심을 기울였다. 2010년 8월 5일 오후 2시 5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두 배 규모인 섬록암 더미 70만 톤이 붕괴하면서 구리 광산의 주 진입로가 가로막힌 것이다. 다른 통로 역시 계속되는 낙석으로 진입이 어려웠다. 700m 지하에는 광부 33명이 갇혀 있었다. 대피소의 비상식량으로는 2~3일밖에 버틸 수 없었고 물과 산소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생존자를 찾을 수 있을까?
지상에서는 입구 주변에 ‘희망의 캠프’를 세웠다. 그리고 2,000명이 넘는 가족, 근로자, 취재진 등이 그곳에서 재림교회 목사 카를로스 파라디아스의 도움을 받았다. 구조 작업에는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렸다. 17일이 지나서야 구조대는 6.5인치 드릴을 사용해 입구를 뚫었다. 광부들은 드릴 날에 쪽지를 붙여 보냈다. 쪽지에는 빨간 글씨로 “우리 서른세 명은 대피소에서 잘 지내고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구조대는 구멍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공급했고 구멍을 더 넓혔다. 69일이 지난 뒤 33명 전원이 금속 캡슐을 통해 구출됐다. 광부가 한 사람씩 구출되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2,000만 달러가 투입된 이 작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고난도의 구조 작업이었다.
산호세 광산의 광부처럼 인류 역시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죄의 굴레에 갇혀 죽을 운명에 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가 하늘에 이를 수 있도록 “새로운 생명의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히 10: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 5:20)라고 바울이 말할 정도로 그 구원의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각 시대의 구원받은 모두가 하늘에 들어서며 축하받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우리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승리의 구원을 경험하는 대열에 서야만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권순범/강지희 선교사 부부(대만)
베이툰 교회가 건강한 조직 교회로 승격될 수 있도록
8월 6일
다윗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 20:29)
비평가들은 성경의 역사 기록 중 동시대의 다른 문서로 검증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 오랫동안 의구심을 품었다. 예를 들어 고고학적으로 그 존재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다윗왕은 수많은 신화적 인물 중의 하나로 취급받았다. 그런데 1993년 7월, 이스라엘 북부 텔단 지역에서 이스라엘 고고학자 아브라함 비란이 이끈 발굴로 돌비의 파편이 발견되었고 거기에는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과 “다윗 가문의 왕(유다)”에게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1993년 8월 6일 자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에서 보내온 다윗 가문의 뉴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기사에서는 성경학자들이 “경이롭다.” “충격적이다.” “깜짝 놀랄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2016년 11월, 성경고고학협회는 이 사실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석비 조각에 새겨진 내용으로…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왕이 실존 인물이었으며 성경이 후대에 의한 창작물이 아님이 입증됐다. 무엇보다 다윗의 사후 100년이 지나 이스라엘의 가장 사나운 적들이 세운 이 돌비에서 다윗을 여전히 유다 왕국의 창건자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성경의 진술보다 외부 자료를 더 신뢰해야 할까? 아니면 다른 접근이 필요할까? 성경을 한낱 고대의 종교·문화적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 역사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외부 자료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성경의 역사적 진술을 의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벧후 1:19~21; 계 22:18~19).
“인간의 자부심이나 편견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인류 역사의 기록”은 성경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이해관계, 권력, 야망의 배후와 그 상부 또 그 진행 과정 속에서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의 일꾼들이 묵묵히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실현해 가는 모습”을 마치 “커튼이 걷힌 것”처럼 볼 수 있는 곳은 성경뿐이다(교육, 173).
하나님의 말씀을 조건 없이 받아들일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삶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봉사대 활동을 통해 접촉한 구도자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 있도록
8월 7일
하나님의 사랑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뛰어난 작가와 작곡가들은 가장 웅변적인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프레데릭 M. 레만(1868~1953)이다. 1868년 8월 7일, 독일 메클렌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4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레만은 수백 곡의 노래를 지었고 다섯 권의 노래책을 엮었다. 그러면서도 그 어떤 인간의 표현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1917년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그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멋진 찬미를 지었다. 그 찬미의 후렴구에서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측량 못하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내용은 30년 앞서 엘렌 화잇이 전한 말을 떠오르게 한다.
“여러 세대를 거쳐 내려온 아버지들의 사랑을 다 합친다 해도, 사람들의 마음에서 솟아난 자비의 샘을 모두 모은다 해도, 하나님의 무한하고 다함이 없는 사랑과 비교하면 그것은 망망대해 옆의 실개천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혀로도 말할 수 없고 붓으로도 묘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그것을 명상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성경을 탐구한다 해도 또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을 깨닫기 위하여 모든 힘과 재능을 총동원한다 해도 저편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아무리 오래 연구한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세상을 위해 목숨을 버리게 하신 그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는 결코 완전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영원 자체도 그것을 결코 완전히 드러낼 수 없습니다”(5증언, 740).
하나님의 사랑을 명상하라. 그리고 그 변화의 능력을 향해 마음을 열라. 여러분의 삶은 결코 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김종숙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이스탄불 현지인 청년 교회 세우기 프로젝트를 위해
8월 8일
자만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법은 알지만 내려오는 법은 모르는 사람이 종종 있다. 앨빈 토플러(1928~2016)는 “어제의 성공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고 경고했다. 알론조 T. 존스(1850~1923)는 재림교회 복음을 받아들이고 워싱턴 월라월라에서 침례를 받았다. 1878년 8월 8일에 그는 목사 안수를 받았고 교회에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되었고 1888년 미니애폴리스 대총회 총회에서는 엘릿 J. 왜거너와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사 존 H. 켈로그와 함께하면서 그는 자만에 빠졌고 1901년 이후로는 조직에 반감을 품었다. 존은 대총회장 아서 G. 대니얼스의 지도력을 끈질기게 깎아내렸다.
일찍이 1892년 9월 19일에 엘렌 화잇은 이렇게 진술했다. “존스와 왜거너 목사는 원수의 유혹에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받은 기별이 없었다거나 그들의 업적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겸손하지 못했고 정작 자신이 수천 명에게 전했던 기별대로 살지 않았다. 결국 켈로그, 왜거너, 존스 세 사람은 모두 교회를 떠났다.
1907년, 존스는 목사 신임서를 반납하도록 요구받았고 이듬해에 교회에서 제명됐다. 그는 1909년 워싱턴 D.C.에서 개최한 대총회 총회에서 청문회를 요구했다. 청문회에서 그는 장황한 자기 합리화와 함께 비난하는 발언을 했고 교회의 핵심 지도자와 세 차례 만났다. A. G. 대니얼스 대총회장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화해를 호소한 뒤 탁자 너머로 손을 내밀며 “돌아오세요. 존스 형제, 돌아오세요.”라고 말했다. 존스는 일어서 천천히 손을 내밀다가 갑자기 뒤로 빼며 “아니요.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요.”라고 선언했다. 그는 끝내 교회로 돌아오지 않았다.
시작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멋진 결말이다. 교만과 자만에는 값비싼 대가가 따른다. A. T. 존스가 만약 주님께서 자신에게 이루어 주신 일에 겸손히 감사했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1000명선교사 운동
61기 선교사 모집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많은 청년이 지원하도록
8월 9일
사탑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 7:26)
결과와 지속적인 영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벌일 때가 종종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그랬다. 1173년 8월 9일에 기초 공사를 시작했지만 실제로 그 탑은 200년이 지나서야 완공됐다. 7층으로 된 탑의 꼭대기에는 작은 종각이 있었고 건물 높이는 57m, 중량은 1만 4,500톤에 달한다. 탑이 세워진 곳은 무른 점토에다 간간히 모래층이 있는 불안정한 지대였다.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지반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건물도 기울어졌다. 탑이 쓰러지지 않도록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불안정한 지반에 세워 놓은 피사의 사탑처럼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지만 피상적이고 그릇된 주관적 신앙에 영적인 삶을 의지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스도는 그 유명한 산상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이 문제를 다루셨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그분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두 부류를 구분하는 경계선은 두 가지 기초에 관한 이야기인 반석의 비유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24~27절).
이 비유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에 관한 문제를 다룬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고전 3:11). 그러나 여기서 진짜 문제는 단순히 “주여 주여” 하며 그분을 인정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비유에서 초점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이다(마 7:24, 26).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종교만이 하나님께로 이끈다.”(소망, 189)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사상은 파도처럼 왔다가 가 버린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설 것이다(사 40:8).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굳센 반석 위에 삶의 기초를 두는 사람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다(단 12:3).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지역 사회 봉사 활동(발 마사지, 한국어 교실)을 통한 선교 활동이 더 활발해지도록
8월 10일
회심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32)
야곱과 에서처럼 한집에 사는 형제자매도 성격이 다르고 서로 다른 길을 갈 수 있다(창 25:21~34). 화잇 부부의 장남 헨리 니콜스는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동생 제임스 에드슨은 감정 기복이 컸고 돈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특히 영적인 생활에서도 별로 바람직하지 못했다. 엘렌은 여러 해에 걸쳐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호소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한번은 에드슨이 어머니에게 “저는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라고 편지로 고백했다. 사탄이 아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엘렌은 깨달았다. 그는 이 문제를 놓고 간절히 기도했고 장문의 호소 편지를 보냈다. “너의 신앙 과정은 흔들릴 필요 없이 굳세고 진실해야 했지만 너는 독립적이고 자기 길을 가려고 하는구나. 너는 잠깐 동안만 강했고 그다음에는 흔들렸다. 엄마는 네가 알아듣게 말해 주기로 했다. ‘너는 물결을 거스르고 있다.’” 이 호소가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1893년 8월 10일, 에드슨은 어머니에게 편지했다. “제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았고 그 어느 때보다 삶이 즐겁습니다. 해야 할 많은 일로 오랫동안 중압감에 눌려 지냈고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걸 주님께 맡겼고 짐에 눌리지 않습니다. 이전의 재미와 쾌락에는 더 이상 흥미가 안 생기고 하나님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전에 없던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며칠 뒤 에드슨은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찾았던 길은 부질없는 길로 드러났습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길을 원하며 이 길이 좋은 길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에드슨은 영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았다. 어쩌면 그대도 자기 방식대로 길을 걷다가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망설이지 말고 지금 당장 하나님께 삶을 맡기라. 돌아온 탕자처럼 필요하면 언제든 주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하나님은 그대를 품어 주시며 영원한 하늘 왕국의 시민으로 바꿔 주고 싶어 하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정태/김성진 선교사 부부(베트남)
섬기고 있는 호치민 국제교회의 부흥을 위해
8월 11일
사랑하는 아들에게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부모 혹은 자신을 길러 준 누군가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그들이 건네준 지혜로운 조언과 유익한 지도를 여전히 마음에 새기고 있는가? 그분들은 평생 어떤 가치관을 지니며 살라고 말했는가? 그들에게 받은 편지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가?
1868년 8월 11일, 엘렌 화잇은 19세 아들에게 품성 계발에 관하여 통찰력 있는 편지를 썼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네 성격의 단점을 조금씩 고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예수님의 참모습을 그대로 보게 될 사람, 그분과 같아질 사람은 바로 극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 주신 빛 가운데서 걸어가라.”고 아들에게 조언했다.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한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애정 넘치는 어머니 엘렌은 아들에게 양심을 투명하게 간직하라고 격려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행동의 척도로 삼아라. …극심한 시험을 받아도 거짓에 물들지 않고, 끈질긴 유혹에도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았던 모든 순간을 되돌아볼 때 얼마나 유쾌하고 가슴 뿌듯하겠니?”
엘렌은 금전적인 문제도 빼놓지 않았다. “사치를 부리면 돈에 급급해서 정직한 방법으로 좀처럼 돈이 안 생기면 부정을 저지르게 된다. 쾌락과 비싼 옷을 좋아하다가 감옥, 심지어 형장으로 끌려간 젊은이가 많단다. 언제나 수입의 한도 내에서 살아야 한다. 빚을 지느니 차라리 없이 사는 게 낫다. 지불할 형편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아무것도 사지 마라.”
또 엘렌은 “순종하는 법을 먼저 배운 덕분에 다스리는 법까지 터득한” 요셉의 도덕적 성실을 본보기로 삼으라고 권했다. “소중한 아들아,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단순한 삶을 얕보지 마라. 요셉과 같은 성품을 지녀라. 요셉처럼 시험에 저항하는 힘을 길러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면 너의 노력은 성공할 것이다. 예수님이 늘 곁에서 도와주신다. 예수님의 은혜가 늘 너에게 임하기를 엄마는 기도한단다.”
오늘은 부모님과 또 다른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조언을 음미하기 딱 좋은 날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이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해섭 선교사(네팔)
네팔 복음화를 위해 신실하게 일할 현지 지도자가 양성되도록
8월 12일
젊은이에게 투자하라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세상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젊은 사람의 마음을 공략하는 일의 가치와 잠재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좋은 뜻으로 그렇게 한 사람도 있지만 히틀러 유겐트(나치 청소년단)처럼 악용된 사례도 있다. 1935년 9월 14일, 뉘른베르크에서 히틀러는 소년·소녀 4만 5,000명에게 “여러분은 국가의 미래, 게르만 제국의 미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1925년 독일에서 처음 출간한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청소년은 미래 건설을 위한 재원이자 계획”이라고 진술했다. 1936년까지 독일의 공립 학교 교사 97%가 국가사회주의교사연맹에 가입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기독교의 청소년 조직은 미래 세대에게 성경의 가치에 따라 살고 복음 사명을 이루도록 독려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단체가 1844년 런던에서 설립된 YMCA(기독교청년회)이다. YMCA의 목적은 ‘신체적·정신적·영적’ 건강 증진이며 학생 자원 선교 운동을 조직하여 1886년부터 미국의 대학생을 모집, 해외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다. 수년간 재림교회 의용선교회(오늘날의 AY)는 ‘재림 기별을 이 시대 안으로 온 세상에 전파하자.’는 목적 아래 활동했다.
1999년 12월, UN 총회는 8월 12일을 국제 청소년의 날로 정했다. 이것은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온전한 양질의 사회 참여 기회를 젊은이에게 더 많이 제공”하자는 UN의 전략을 반영하고 있다. 재림 청년이 지역 교회에서 그와 같은 기회를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젊은이가 제대로 훈련받고 일꾼으로 준비된다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재림 기별은 온 세상에 신속하게 전파될 것”이라고 엘렌 화잇은 말했다(교육, 271). 모든 재림교회는 다음 세대에게 선교를 가르치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분의 교회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세담/박유진 선교사 부부(대만)
지난 2월 선교지에서 태어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8월 13일
도덕의 쇠퇴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
오늘날의 세상은 200년 전에 비해 더 좋아졌는가? 아니면 더 나빠졌는가? 관점에 따라 대답은 서로 다를 것이다. 첨단 기술의 관점으로 볼 때 분명 세상은 이전보다 발달했다. 그러나 사회적인 면과 도덕적 가치에서 보면 눈에 띄게 퇴보했다. 하지만 부도덕의 광풍이 몰아치는 이 사회에서 초연하고 견실하게 결혼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다.
빌리 그레이엄과 루스 벨은 1943년 8월 13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2007년 6월 14일 루스가 사망할 때까지 64년간 부부로 지낸 이들의 관계는 경외감을 자아낸다. 남편이 집을 너무 자주 비우지 않느냐는 질문에 루스는 “다른 남자 한 트럭보다 드문드문이라도 빌 한 사람이 더 낫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내의 임종 하루 전에 빌리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루스는 내 영혼의 단짝이자 최고의 친구입니다. 루스가 곁에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65년 전 휘튼 대학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지금 그녀를 더욱 사랑합니다.” 애석하게도 요즘 세상에는 로맨틱한 사랑을 그토록 오랫동안 나누는 부부가 많지 않다.
1970년대 중반에 내가 다니던 기숙 학교의 학생 주임은 루스 그레이엄이 남긴 유명한 말을 여러 번 언급했다. “하나님께서 미국을 벌하지 않는다면 소돔과 고모라에 사과하셔야 할 거예요.”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은 그때보다 상태가 더욱 심각하다. 당시 사회를 걱정하던 루스 그레이엄이 지금 세상을 보면 뭐라고 할까? 예를 들어 과거 사람들에게 성별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만 가리키는 용어였다. 그러나 2014년 중반 『텔레그래프』지에 소개된 기사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페이스북 성별란에서 71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홍수 이전의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는 생활 방식이 세상의 종말 직전에도 재현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 24:37~39). 이 시대의 도덕적 타락상으로 미루어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하시지 않으면 인류는 자멸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곧 오시어 악인을 멸하고 의의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계 21:8; 단 7:13~14). 주님을 찬양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경원/조효정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 삼육대학교에서 추진 중인 간호학과 설립이 잘되도록
8월 14일
나를 위해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인간의 그 어떤 희생도 갈보리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치른 무한한 희생에 비할 수는 없지만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다. 1941년 7월 말, 폴란드 남부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자 3명이 탈출했다. 나치 친위대는 또 다른 탈옥 사태를 막기 위해 탈옥수의 동료 10명을 굶겨 죽이라고 지시했다. 그 10명에 포함된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는 “내 아내! 내 아이들!” 하면서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팠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막시밀리안 콜베(1894~1941)는 그 사람 대신 자신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2주 동안 물과 음식이 끊겼고 콜베만 살아남았다.”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1941년 8월 14일에 간수는 그에게 독극물을 주사했고 콜베 신부는 47세 나이로 숨을 거뒀다. 그의 시신은 다음 날 화장됐다.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 프란치셰크 가요브니체크(1901~95)는 이후 43년을 더 살았다. 93세가 된 가요브니체크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콜베 신부님은 ‘저 사람 대신 나를 데려가시오. 저 이는 아내와 가족이 있지만 나는 혼자요. 나는 가톨릭 사제요.’라고 말씀하셨어요.”라고 설명했다. 이 이야기는 2,000년 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희생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을 구원하신 그분은 자신이 받아 마땅한 것을 우리에게 주고자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을 받으셨다. 이 땅에 오신 구원자는 자신의 신성한 영혼 위에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우리가 그분의 의를 입도록 하셨다. 아무 죄도 없는 그분이 우리를 대신하여 정죄받으셨다. 세상 구속주가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치신 것이다. 그분은 누구였나? 하늘의 왕이셨다. 그분이 죄인을 위해 공의의 제단에서 자신의 피를 쏟으셨다”(리뷰, 1893. 3. 21., 177).
그리스도는 일반적인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대신해 둘째 사망을 겪으셨다(계 20: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며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이다(요일 5:11, 한글킹).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여,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놀라운 희생으로 우리는 의를 입고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멘.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하지홍/황고은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새롭게 침례를 결심한 현지인 친구의 영성이 날로 깊어지도록
8월 15일
엄청난 꿈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왕하 20:20)
모든 나무가 같은 나이에 열매를 맺지는 않는다. 무화과나무는 2년이 지나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아보카도는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기까지 5~13년이 걸린다. 그와 같이 우리의 커다란 꿈도 생각처럼 빨리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두 가지 놀라운 수력 공학 프로젝트를 비교하여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히스기야 터널이라고도 불리는 실로암 터널이다. 산헤립왕이 이끄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였다. 히스기야는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암반을 뚫고 터널을 만들어 기혼샘과 실로암을 이으라고 지시했다. 길이 533m, 폭이 30cm에 달하는 이 터널을 뚫기 위해 두 팀이 투입되었다. 한 팀은 기혼에서, 한 팀은 실로암에서 터널을 뚫기 시작해 가운데서 만났다. 이 놀라운 프로젝트는 히스기야 재임 기간에 모두 완성되었다.
또 다른 프로젝트는 파나마 운하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물길이다. 1514년에 파나마시티를 세운 총독 페드로 아리아스 다빌라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기에 적합한 지역을 찾으라는 스페인 왕실의 임무를 받았다. 이후 수많은 주요 과정을 거쳤고 결국 1914년 8월 15일이 되어서야 77.2km에 달하는 운하가 개통되어 최초로 선박이 통과했다. 두 바다의 해수면은 동일하지만 운하 가운데 있는 가툰 호수의 수위에 맞추어 선박이 오르내리도록 파나마 운하에는 세 개의 갑문이 있다. 이 운하가 처음 계획대로 완공되기까지는 400년이 걸렸다.
말했다시피 모든 나무가 같은 시간을 거쳐 열매를 맺지는 않는다. 모든 꿈이 동일한 기간에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최상의 아이디어라 해도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이 시작하고 이끌어 간 프로젝트의 공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해도 매사에 겸손히 최선을 다하라. 무엇이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한다면(마 5:16; 고전 10:31) 그 업적으로 칭찬받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키르기스스탄 어학원 프로젝트를 돕는 후원금이 잘 준비되도록
8월 16일
비극을 피하려면
“그러나 칼이 임함을 파수꾼이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하지 아니하므로 그중의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거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려니와 그 죄는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겔 33:6)
2001년 9월 11일 아침, 공중에서 납치당한 여객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충돌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 시각에 자카리아스 무사위는 이민법 위반 혐의로 미네소타에 수감 중이었다. 2001년 2월 미국에 입국한 무사위는 큰돈을 들여 비행 학교에 들어가면서 의심을 샀다. 그는 작은 비행기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보잉 747 점보기를 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의 이상한 행동은 많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2001년 8월 16일 오후 4시, 무사위는 미네소타에서 비자 규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해외 정보기관과 공조한 FBI 미니애폴리스 현장 사무소는 무사위가 테러리스트와 연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들은 즉시 워싱턴 FBI 본부에 연락했고 무사위의 컴퓨터 기록과 소지품 조사를 비롯한 전면 수사를 허락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요청은 거부됐다. 9·11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무사위의 노트북 컴퓨터에 테러 전략이 모조리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잠깐의 방심과 생략이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기회가 있을 때 진작 해결하지 못해 영구 미제로 남은 사안도 적지 않다. 문제의 사전 방지보다는 사후 처리에 치중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다. 떡잎을 보고 나무를 내다보거나 불꽃을 보면서 대형 화재를 예측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무사위 사건의 경우, 최정예 FBI 요원들은 현장의 첩보원들이 과민 반응을 보인다고 여겼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우리는 ‘분명한 소리’를 내야 할 책임이 있다(고전 14:8). 하나님은 우리가 남들에게 경고할 뿐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경고도 돌아보기를 바라신다. 직면한 문제를 과장하거나 얕잡아 보지 않도록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적절한 때 적절한 사람에게 분명하고 솔직하게 전달한다고 해서 그 경고가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가올 큰 문제를 막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석희/전은경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 1000명선교사 운동 분원장 아바 목사를 위해
8월 17일
아자리아 체임벌린 사건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마이클과 린디 체임벌린 부부가 호주 노던 준주의 울루루(에어즈록)에 막 텐트를 쳤다. 그들은 두 아들 에이든, 레이건, 2개월 된 딸 아자리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1980년 8월 17일 일요일 밤, 아자리아는 텐트에서 사라졌고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지역 경찰에 신고한 린디는 텐트에서 호주의 들개 딩고를 목격했다고 진술했고 실제로 일주일 뒤에 한 여행객이 아자리아의 피묻은 점프 수트, 부츠, 기저귀, 내의를 발견했다. 초동 수사에서 체임벌린 가족은 아무 혐의 없이 풀려났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호주 역사상 가장 떠들썩한 재판 사건으로 이어졌다.
어떤 이들은 린디가 어머니인데도 별로 슬픈 기색이 없다고 비난했다. 또 체임벌린 부부가 다니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기괴한 종교 의식의 일부로 유아를 살해하는 이단이며 아자리아는 오지 사막에서 인신 공양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더군다나 마이클은 재림교회 안수 목사였다. 아자리아의 주치의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이의 이름이 ‘야생의 제물’을 뜻한다는 낭설을 익명으로 퍼뜨리기도 했다. 1982년에 린디는 1급 살인죄로 종신형을, 마이클은 공범으로 몰려 18개월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존 브라이슨은 자신의 책 『악한 천사들(Evil Angels)』에서 체임벌린 사건을 낱낱이 파헤치며 이들 내외가 누명을 썼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1988년 9월, 노던 준주 법원은 기존 판결을 뒤집고 만장일치로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두 달 뒤에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어둠 속의 외침>이 개봉됐고 2012년 6월 12일, 검시관 엘리자베스 모리스는 아자리아가 딩고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이 사건에서 보듯 인간의 정의는 잘못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결코 틀리는 법이 없다. 여러분이 부당한 판결의 희생자라면 하나님은 분명 그 혐의를 벗겨 주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신영천/김혜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캄보디아 삼육대학교의 안정적인 운영 및 유지를 위해
8월 18일
매디슨 대학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
그리스도인 교육이란 인류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양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재림교인 교사와 재림교회 교육 기관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테네시에 위치한 내슈빌 농업 사범 학교(1937년에 매디슨 대학교로 개칭)만큼 자기희생의 봉사 정신을 잘 가르친 곳도 드물다.
엘렌 화잇은 미국 남부 지역 사역에 특별한 부담을 느꼈고 1904년, 그의 조언에 따라 E. A. 서덜랜드와 퍼시 T. 메이건이 이매뉴얼 미셔너리 대학교(현 앤드루스 대학교)를 사퇴하고 내슈빌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400에이커 크기의 농장을 사들였고 자립형 교육 기관을 세웠다. 1904년 8월 18일 자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지에서 화잇은 이렇게 촉구했다. “이 형제들은 험난한 현장을 개척하기 위해 남부로 떠납니다. 내슈빌 인근에 새로운 학교가 세워지도록 교우들이 서로 도와 이들의 사업이 결실을 맺도록 합시다.”
매디슨 대학의 전체적인 교육 제도는 자기희생, 엄격하고 한결같은 절약, 한 가지의 주요 핵심 학습 계획, 자치 운영 등이며 성경 연구가 주된 특징이다. 대가족과도 같은 이 공동체에서 교사와 학생은 함께 일하고 함께 공부했다. 학교 요람 제1항에서 볼 수 있듯 이들의 주목적은 “선교 교육자 자립 훈련”이다. 학교 지도부에서는 학생들이 매디슨 대학교를 떠나 각자의 작은 매디슨을 개척하기를 바랐다. 효율적이고 영감적인 훈련 덕택에 매디슨 졸업생들이 미 남부 빈민촌에 세운 소형 자립 학교는 40여 곳에 달했다.
시대가 바뀌어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하기보다 개인의 권리와 특권만 찾는 사람이 많다. 이타적인 봉사는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원칙이다. 매디슨 대학교의 황금기를 특징지었던 검소함과 봉사의 정신을 우리가 되살린다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날까?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윤권/나영주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캠퍼스에서 함께 생활하는 학생들의 신체적·정신적·영적 건강을 위해
8월 19일
책의 백성
“혹시라도 주께 죄지을까 주님의 법 마음속에 고이 간직합니다”(시 119:11, 현대어)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스스로를 ‘책의 백성’이라고 부른다. 재림교인 중에는 1년 동안 성경 통독 계획을 실천하거나 다른 그리스도인과 교리 토론을 벌이며 성경에 대한 이해를 드러내는 사람이 많다. 또 국가적·국제적 성경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곤 한다.
1958년 8월 19일, 최초의 세계 성경 대회 결승전이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열렸다. 이스라엘 공영 방송에서 10주년을 맞아 기획한 행사였다. 결승 진출자는 15개국에서 참가한 유대계, 기독교계 신자였다. 이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브라질 출신의 39세 교사 이레네 산투스는 재림교인이었다.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두 번째 세계 성경 대회에서는 브라질 출신 교사이자 목회자 사모 욜란다 다 실바가 2위를 차지했고 나중에 금메달로 격상됐다. 그도 재림교인이었다. 같은 대회에서 5위를 차지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J. J. B. 콤브링크 역시 재림교회 목사였다. 1964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세 번째 세계 성경 대회에서는 호주 새니태리엄 건강 식품 회사의 회계사인 그레이엄 미첼이 우승을 차지했다. 1969년의 네 번째 대회에서는 볼리비아 출신 재림교인 마누엘 하라 칼데론이 4위를 차지했고 1981년 대회에서는 치코 비블리아라는 닉네임을 사용한 프란시스코 알베스 지 폰테스가 2위를 차지했다. 그는 브라질 재림교인으로 실바처럼 나중에 금메달로 순위가 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신실한 재림교인은 여전히 많으며 위 사례는 그 일부에 불과하다. 재림교인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개인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암기하는 멋진 습관을 되찾아야 한다. 그런데 단순한 성경 암기보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머리만 크고 가슴이 텅 비었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하셨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성경을 외우는 지적인 신앙도 좋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성화되어야 한다. 인간의 비판은 모두 제쳐 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기형/곽현주 선교사 부부(필리핀)
1000명선교사 부원장으로 맡은 바 사역을 잘 감당할 믿음 주시기를
8월 20일
복낙원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성경의 첫 부분에서는 본래의 낙원이 아담과 하와의 죄로 망가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창 2~3장). 성경의 끝부분에서는 그 낙원이 멋지게 회복되고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때를 묘사하고 있다(계 21~22장). 각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인류의 드라마가 지금 한창 진행 중임을 대조적인 두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영국 시인 존 밀턴(1608~74)은 이 두 장면과 관련해 가장 유명하면서도 멋진 시를 지었다. 1652년 이후 완전히 시력을 잃은 그는 필사자와 친구에게 직접 시를 읊어 주었다. 밀턴은 『실락원』을 출판하기로 계약했고 4개월 뒤인 1667년 8월 20일에 출판업자 새뮤얼 시몬스가 그 작품을 등록했다. 밀턴과 라틴어를 함께 공부한 토머스 엘우드는 그 시기 밀턴을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네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찾아낸 낙원에 대해서는 별로 한 게 없군 그래?”
그 말을 되새기며 밀턴은 후속작 『복낙원』(1671)을 출간했다. 이 짧은 책에는 그리스도와 사탄 간의 논쟁이 등장한다.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그리스도께서는 궁극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실패를 만회하셨다. 성경의 한 구절이 이 내용을 잘 설명해 준다. “한 사람(아담)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그리스도가)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사탄을 물리치신 그리스도의 놀라운 승리로 우리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침내 새 하늘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각 시대의 대쟁투』에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을 본래 살던 곳으로 다시 데려가시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온다. 아담은 “그 동산이 분명히 옛날과 똑같은 것임을 깨닫고, 진정 회복된 에덴임을 알게 되며, 자신이 쫓겨날 때보다 더욱 아름다워졌음을 느낀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하나님의 낙원에 서 있는 구속받은 자기 가족의 큰 무리를 본다. 그때 그는 그 찬란한 면류관을 벗어 예수님의 발 앞에 던지고, 그분의 가슴에 몸을 던져 구주를 껴안는다. 그는 황금 하프를 연주한다. 그러자 승리의 노래가 하늘 공간에 울려 퍼진다. ‘합당하고 합당하고 합당하다. 죽임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난 어린양이시여!’”(쟁투, 648)
그대와 나는 그 영광의 순간에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병섭/이세주 선교사 부부(대만)
타이동 교회의 청년 선교와 청년 소그룹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도록
8월 21일
늘 보고 계신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5:3)
1911년 8월 21일,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박물관의 경비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인 <모나리자>를 훔쳐서 자신의 아파트에 2년 넘게 보관한 것이다. 16세기에 완성되어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사람이 봤고, 글과 노래로 가장 많이 다루어졌고, 가장 많이 패러디 된 작품” <모나리자>를 논할 때 이제는 도난 사건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모나리자는 1914년 1월 루브르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은 모나리자의 미소와 더불어 어느 방향에서든 그녀의 눈과 마주치는 미술 기법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재림교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아마도 엘프레드 리가 그린 <좁은 길의 그리스도>일 것이다. 본 작품은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 있는 엘렌 G. 화잇 유산관리소에 영구 전시되어 있다. 1991년 10월 22일 헌정된 이 그림은 엘렌 화잇의 첫 계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재림교회의 중요한 역사적인 순간들과 주요 지도자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림 중앙에는 그리스도께서 두 팔을 벌리고 서 계신다. <모나리자>와 마찬가지로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그분과 눈을 마주칠 수 있다. 언젠가 엘프레드 리를 만났을 때 나는 어떻게 그러한 묘사가 가능한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눈을 제대로 그리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답했다.
<모나리자>와 <좁은 길의 그리스도>의 시선 처리는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신다는 말씀을 떠오르게 한다(잠 15:3).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지 아니하시며 여호와께서 이 땅을 버리셨다”(겔 8:12)고 주장하는 자들과 여호와를 피해 숨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 139:7~10).
하나님께서 지켜보신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의식하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에게서 숨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결코 시야에서 놓치지 말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재송/장혜순 선교사 부부(필리핀)
1000명선교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사역에 성령께서 함께하시도록
8월 22일
세상의 빛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빛은 에너지의 한 형태로 파동을 타고 이동하며 우리 주변의 사물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우리는 빛에 의지해 세상을 발견하고 무한한 우주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탐구한다. 여러분이 지금 이 기도력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종이에 비치는 빛을 눈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주와 그 규모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도 우리에게 도달하는 별빛과 광속에 대한 이해 덕분이다.
17세기까지는 광속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빛은 어느 거리든 즉시 도달한다고 믿었다. 빛의 속도 측정을 처음 시도한 사람 중에는 네덜란드 과학자 이삭 베크만, 이탈리아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이 있다. 그러나 정밀한 측정은 파리 왕립 천문대에서 덴마크 천문학자 올레 뢰메르(1644~1710)가 시작했다. 행성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뢰메르는 빛의 속도가 약 초속 22만 2,000km라고 계산했다. 그리고 1676년 8월 22일, 기초적인 발견을 파리 왕립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했다. 이어진 후속 연구로 더욱 정확하게 빛의 속도를 측정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83년, 제17차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진공 상태의 광속은 초속 2억 9,979만 2,458m로 채택됐다.
놀랍게도 예수님은 자신을 “세상의 빛”(요 8:12)이라고 소개하셨다. 그에 더하여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요 12:46)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물리적으로 어둠이란 빛이 없는 상태이듯 영적인 어둠은 우리 삶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상태이다. 반대로 그분께서 우리 삶에 오시면 빛이 비치고 어둠은 사라진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을 받을 뿐 아니라 거울처럼 사람들에게 반사해야 한다. 산상 설교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16).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직접 반사해 사람들이 그 빛을 보면서 하늘에 이르는 바른길을 찾게 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한국 교회들이 북한 선교를 위해 더 많이 준비되도록
8월 23일
위그노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 24:9)
누구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자신이 처한 환경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헌신 정도에 따라 그 값은 천차만별이다.
프랑스 칼뱅주의 개신교도인 위그노만큼 큰 대가를 치른 이들도 드물다. 1572년 8월 23~24일, 위그노들을 향한 가톨릭 신자들의 집단 폭력이 파도처럼 일기 시작했다. 이른바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이다. 이 사건은 파리에서 벌어졌지만 점차 다른 도심과 교외로 번지며 몇 주간 지속됐다. 그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희생된 인원을 오늘날에는 5천~3만 명으로 다양하게 추산하고 있다.
1598년, 프랑스 국왕 헨리 4세는 낭트 칙령을 발표하면서 위그노에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1685년에 루이 14세가 칙령을 철회했다. 위그노에 대한 적개심이 다시 폭발했고 40만 명이 목숨을 지키기 위해 프랑스를 떠났다.
1730년에는 19세 위그노 소녀가 붙잡혀 프랑스 남부 에그모르트시의 콘스탄스 타워로 끌려왔다. 그의 이름은 마리 뒤랑(1711~76)이고 오빠가 개신교 목사라는 게 죄명이었다. ‘믿음을 철회하겠다’라는 한마디만 하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지만 뒤랑은 옥벽의 돌에다 ‘저항’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뒤랑은 38년간(1730~68) 옥살이를 하며 믿음을 지켰다.
여러분도 믿음을 위해 이 정도로 대가를 치르겠는가? 순교자들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다원적인 현대 교회의 고분고분한 믿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순교자들은 신앙이 허용되지 않는 시대에 살았다. 환경에 관계없이 또 정계와 교계의 승인 여부에 상관없이 그들은 진리를 고수했다.
시대가 바뀌어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유 때문에 헌신은 많이 줄었다. 정치적인 적절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주어진 자유를 누리되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며 우리의 믿음을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르도록 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MPM 직업훈련센터에 기숙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8월 24일
탈출할 시간이 없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폼페이는 이탈리아 나폴리만 인근에서 번영하던 세련된 도시였다. 수많은 부유한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고 인구가 1만 2,000명에 불과했음에도 쾌적한 로마식 극장, 세 물줄기로 구성된 수도 시스템 등을 갖추고 있었다. 셋 중 하나는 공공 식수대, 다른 하나는 공중목욕탕, 나머지 하나는 부유한 가정에 물을 공급했다. 지역 전체에 매춘과 성적 타락이 만연했다는 사실도 고고학 발굴로 밝혀졌다. 폼페이에는 공중목욕탕이 적어도 6개, 루파나레 그란데를 비롯한 사창가 여러 곳, 주점 153개가 있었다. 벽들은 성적인 그림과 낙서로 뒤덮여 있었다. 폼페이를 로마 제국의 성적 중심지로 보는 이도 있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곳이 잔혹하고 성적으로 타락한 고대 로마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서기 62년에 강한 지진이 폼페이를 뒤흔들어 큰 피해를 입혔다. 지진은 폼페이 시민을 향한 일종의 경고였고 수많은 사람이 폼페이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어 79년 8월 24일에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뜨거운 돌덩어리와 공기를 포함한 커다란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8km가량 떨어진 폼페이는 용암에 직접적 피해를 입지 않았다. 따라서 주민들은 얼마든지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고 남은 2,000명은 이튿날 아침 유독 가스가 구름처럼 퍼지면서 모두 질식사했다. 그 위로 화산재가 뒤덮이며 부도덕한 도시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성경에도 부도덕하게 살다가 하나님께 형벌받은 사람과 도시들이 등장한다. 홍수 이전의 사람들(창 6~7장), 소돔과 고모라(창 19장), 바벨론(단 5장) 등이다. 화산 폭발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신속하게 노아의 때처럼, 소돔과 고모라처럼 변해 가고 있다(마 24:37~39; 유 7장).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임박한 멸망밖에 없다.
분명히 세상은 하나님의 손에 멸망할 것이다. 죄와 그 영향력을 모두 집어삼킬 그 불은 또한 지구를 정결케 하여 하나님의 새 창조를 위해 준비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이 들어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현규/최선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섬기고 있는 선교지의 영적 부흥을 위해
8월 25일
신은 죽었다고?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 14:1)
신의 존재를 부정한 현대 철학자와 과학자가 많지만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만큼 하나님과 기독교의 가치 체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은 흔치 않다.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에 태어나 1900년 8월 25일 사망했다. 허무주의 철학자인 그는 “신은 죽었다.”는 말과 함께 ‘초인’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해졌는데 이 개념은 나치 체제에 영감을 주었다.
‘신은 죽었다’라는 개념은 니체의 글 곳곳에 스며 있다. 자신의 저서 『즐거운 학문』(1882)에서 니체는 “신들도 분해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우리가 신을 죽여 버렸다.”라고 말한다. 유명한 또 다른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2)에서는 “신은 모두 죽었다. 우리는 이제 초인이 살기를 갈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을 문자 그대로 신이 있었다가 없어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하나님은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으며 그리스도인의 절대적인 도덕 원칙과 가치는 계몽과 더불어 무너진다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니체는 삶의 고유한 의미, 목적, 가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목적이나 절대적인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약화시켰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도 여전히 깨어서 그분의 존재를 굳게 믿는 이들도 있다. 한번은 누군가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게 말했다. “빌리 목사님은 마치 하나님이 살아 있다는 듯이 말씀하는군요. 하지만 신은 죽었어요. 인간이 하는 일에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고요.” 그러자 빌리는 짤막하게 답했다. “그 말은 못 믿겠네요. 저는 오늘 아침에도 그분과 대화를 나누었거든요.”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을까? 없다. 인간에게는 그분의 존재를 입증할 능력도, 부정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그분을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다윗의 말처럼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 준다(시 19:1, 공동). 하나님께서도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고 말씀하셨다(사 40:26). 하나님은 죽지 않았다. 그분은 생생하게 살아 계시며 우리 각 사람을 보살피신다. 그분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까지도 말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영식/조효정 선교사 부부(몽골)
늘 무릎 꿇는 선교사가 되도록
8월 26일
생수의 강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요 7:38)
세상에는 큰 강들이 있지만 거대한 아마존에는 견줄 수 없다. 아마존은 가장 큰 강이다. 강가에는 이전부터 토착민이 살고 있었지만 아마존이 외부인에게 ‘발견’된 것은 1542년 2월, 스페인 탐험가이자 정복자 돈 프란시스코 데 오레야나에 의해서이다. 그의 원정대는 강을 타고 하류로 내려가 1542년 8월 26일, 대서양에 다다랐다. 그때부터 아마존강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자크 쿠스토를 포함한 수많은 탐험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지류 약 1,100개와 연결된 아마존은 매년 6,590km3에 달하는 물을 대서양으로 내보낸다. 이것은 아마존 다음으로 큰 일곱 강에서 쏟아 내는 물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다. 또 전 세계의 강에서 방류하는 양의 20%에 맞먹는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2011년 8월 17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라질 국제지리물리학 회의에서 발리야 람자와 엘리사베트 타바르스 피멘텔은 아마존강 수 킬로미터 밑에서 흐르는 지하의 강이 있다고 발표했다. 과학적인 자료에 따르면 이 지하 강의 길이는 아마존과 비슷하지만 수백 배 넓고, 느리게 흐르면서 대서양 심해에 물을 공급한다.
하지만 아마존강 역시 그보다 훨씬 커다란 물 순환의 일부일 뿐이다. 그 순환 속에서 “호수, 바다, 강, 샘물은 서로 주기 위해서 받는다”(교육, 103). 아마존강은 그저 작은 강과 개울을 비롯한 수많은 물줄기가 물을 공급해 준 덕분에 몸집이 커졌을 뿐이다. 또 제아무리 크다 한들 모든 물은 바다로 흐른다. 그런데 바닷물 역시 제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바닷물이 끊임없이 증발하고 비의 형태로 다시 땅에 떨어지면서 물의 순환은 계속된다.
우리 자신이 큰 강인지 작은 샘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도움이 되느냐이다. 우리는 “생명의 에너지를 받아 전하는 통로”(교육, 192)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구원 메시지를 받아서 전하는 통로가 된다면 세상에 놀라운 복이 임하지 않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도시 선교 감화력센터 건축과 방글라데시 선교 재정 자립을 위해
8월 27일
성경 대회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성경 진리의 최종적 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일으키신 마지막 때의 예언 운동이 다름 아닌 자신들이라고 여긴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창설자들은 1844년 10월에 밀러주의자들이 경험한 대실망의 여파로 성경을 깊이 연구한 이들이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설명했다. “성경을 일점일획까지 부지런히 연구했다.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말씀을 열심히 탐구했다. 우리는 숨은 보물을 찾듯이 진리를 탐색했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셨다. 빛이 예언을 밝혔고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2기별, 109).
1846년 말, 안식일 준수 재림주의자 핵심 지도층인 조지프 베이츠, 제임스 화잇, 엘렌 화잇은 새로 출현한 운동의 독특한 교리에 대해 이미 근본적인 이해를 같이했다. 자신들이 발견한 진리를 그들은 또 다른 이전 밀러주의자들에게 곧 전하기 시작했다. 1848년 미국 북동부의 서로 다른 곳에서 7주에 걸쳐 개최한 주말 성경 대회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중 하나가 8월 18~19일 뉴욕주 볼니에서 열린 집회이다. 견해가 서로 다른 약 35명이 집회에 참석했다. 엘렌 화잇에 따르면 그중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또 다른 중요한 대회는 뉴욕 포트깁슨에 있는 하이럼 에드슨의 헛간에서 1848년 8월 26~27일에 개최됐다. 이곳은 에드슨, O. R. L. 크로저, 프랭클린 B. 한이 성소 교리의 성경적 기초를 연구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엘렌 화잇은 형제들이 자신의 차이점을 내려놓고 성경 진리 안에서 연합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 실제로 1848년 성경 대회에서 신자들 간의 교리적 통일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교단의 선구자들에게서 견실하게 확립된 일관성 있는 교리 체제를 이어받았다. 오늘날 우리도 그와 동일한 정신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며 성경을 탐구해야 한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참된 부흥과 개혁을 위한 변함없는 조건이다. 따라서 사교적인 관계 소그룹뿐 아니라 성경을 깊이 이해하고자 애쓰는 연구 모임도 결성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사고로 허벅지 뼈가 부러졌던 훈련원 직원 선교사의 수술과 회복을 위해
8월 28일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3~14)
인종 차별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이다. 이것은 사람을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피부색과 인종적 배경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불평등이다. 인종 차별이 얼마나 위험하고 위협적인 문제인지를 인식한 수많은 사람은 반인종주의 사회·정치 운동에 참여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에는 20만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모든 인종을 평등하게 대하고 흑인에게 동일한 기회를 주자는 의미의 정치적 운동인 워싱턴 행진을 위해서였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그 유명한 연설을 하면서 행사는 절정에 달했다. 루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일어서서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자명한 진리’를 참되게 실현하는 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인종 차별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를 차별하고 미워하는 자를 똑같이 차별하면 될까? 그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일이며 더 큰 혐오감만 키울 뿐이다. 킹 목사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증오에 증오로 맞서면 갑절의 증오만 남고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더욱 짙은 어둠으로 물들일 뿐입니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증오는 증오를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증오를 지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명하였다. 녹슨 바퀴와 같은 이 세상의 윤활유는 오직 사랑뿐이다.
거처를 옮긴다고 해서 경쟁적이고 자기 찬양적인 우리 본능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인간의 노력과 성취로는 죄로 물든 우리 본성을 바꿀 수 없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을 무시하고픈 타고난 성향과 이기심을 극복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습으로 더 완전하게 변해 가는 것이다. 바울이 빌립보서 3장 13~14절에서 말했듯 과거의 실패를 잊고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이상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회심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에게 사심 없고 사랑 가득한 새 마음을 가져다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BMW KOREA
에티오피아 나사렛 직업훈련학교의 건축이 잘 진행되도록
8월 29일
아첨하는 친구
“이웃에게 아첨하는 것은 그의 발 앞에 그물을 치는 것이니라”(잠 29:5)
천성적으로 우리는 자신에게 박수 쳐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피한다. 원수는 당연히 우리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삶을 곤경에 빠뜨린다. 이른바 ‘저주 시편’에서 다윗이 진술한 그대로다(예, 시 35, 58, 69, 109편). 때로는 가장 친한 친구가 가장 못된 원수가 되기도 한다. 원수는 우리의 약점과 잘못을 지적한다. 한편 친구는 칭찬만 하고 실수를 눈감아 버리는 수도 있다.
1899년 8월 29일, 호주에서 엘렌 화잇이 존 하비 켈로그에게 경고의 편지를 보냈다. 갈수록 오만 방자해지는 켈로그에게 화잇은 이렇게 전했다. “내가 왜 이렇게 자주 당신에게 글을 보냈을까요? 당신이 누구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조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저에게 제시되었습니다. 의과 대학과 요양원에 있는 당신의 형제와 동료들은 당신에게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당신이 안하무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관계된 사람들이 숨김없이 진실을 말한다면 당신은 지금껏 듣지 못했던 권고를 그들에게 듣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눈에 띄게 빗나간 두 왕이 있는데 둘 다 아첨쟁이 친구들의 말만 들었다. 그중 르호보암왕(왕상 12:1~24)은 원로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이들의 제안을 따랐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전체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쪼개지고 말았다. 또 다른 왕 아합(대하 18장)은 자기를 두둔하는 아첨꾼 선지자 400명을 주위에 거느리고, 자기를 책망하는 미가야는 미워했다. 무모한 태도 때문에 결국 그는 목숨을 잃었다.
어느 경구처럼 ‘아첨으로 얻는 유익은 하나도 없다.’ 아첨은 아첨하는 당사자에게 해롭다.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고 친구에게 부정직하기 때문이다. 아첨을 듣는 사람 역시 거짓된 확신에 속아 넘어간다. 그리스도인은 가혹한 비난 대신 진실한 조언, 거짓된 아첨 대신 정직한 평가를 전하는 사람이다. 충고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괜한 충고’를 삼가야 한다. 적절한 말은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때, 적절한 곳에서 전달해야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선교를 위해 준비 중인 모마일 카페를 건축할 예산이 잘 준비되도록
8월 30일
조촐한 결혼식
“혼자보다는 둘이 더 낫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한 사람이 자기의 동무를 일으켜 줄 수 있다”(전 4:9~10, 새번역)
결혼식은 신부가 꿈의 드레스를 차려입고 공주가 되는 순간이다. 어느 전문가는 “웨딩드레스를 고르는 일은 단순히 잘 어울리는 옷을 입어 보는 것이 아니라…추억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커플이 화려한 예식을 거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846년 8월 30일 일요일, 제임스 스프링어 화잇 목사와 엘렌 굴드 하먼은 메인주 포틀랜드 치안 판사 찰스 하딩 앞에서 결혼했다. 결혼 예식은 없었고 엘렌은 특별한 웨딩드레스를 입지도 않았다.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제임스는 한동안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받지 못하며 철도에서 돌 나르는 일을 했다. 나중에는 이른 아침부터 어두울 때까지 장작을 패며 하루에 50센트를 벌었다. 1848년 중반에 제임스와 두 친구는 에이커당 87.5센트를 받고 100에이커 부지의 잔디를 깎았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쓸 몇 달러를 여기서 벌면 좋겠습니다.”라며 기뻐했다(자서, 109).
엘렌은 1852년 뉴욕주 로체스터에 정착한 뒤 새로운 집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낡은 집 한 채를 연 임대료 175달러에 구했습니다. 집 안에는 인쇄기를 갖다 놓았습니다. …이곳에 와서 우리의 가구를 둘러보면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헌 침대 두 개는 25센트씩 주었고 남편은 낡은 의자 여섯 개를 1달러에 구입했는데 모양이 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나중에는 62센트를 주고 깔판이 없는 낡은 의자 네 개를 더 사 왔습니다. 의자의 뼈대가 튼튼해서 저는 구멍을 뚫어 깔판을 달았습니다. 버터는 너무 비싸 구입하지 못했고 감자도 살 수 없었습니다. 버터 대신 소스를 사용하고 감자 대신 순무를 먹습니다. 첫 식사는 빈 밀가루 통 두 개에 벽난로 덮개를 얹어 놓고 그 위에다 차렸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계속해 나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가난을 기꺼이 참고 견딜 것입니다”(자서, 142).
재림교회 초기의 선구자들은 이와 같은 자기희생과 헌신의 정신으로 세 천사의 기별을 전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와 같은 정신으로 사업을 지속하고 끝마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함영식/김지은 선교사 부부(오만)
섬기고 있는 선교지에 교회 건축이 가능하도록
8월 31일
기회 창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유명 인사들 역시 자기만의 감정이 있고 영적인 필요를 느끼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상투적인 전도법이 늘 통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존재의 위기를 겪을 때 세심하게 보살피는 것이다.
웨일스의 공작부인 다이애나는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시킨 언론에 크게 시달렸다. 1994년 10월, 다이애나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제2의 엄마’인 주미 브라질 대사의 부인 루시아 마르팅스 플레카 지 리마와 함께 주말을 보내러 워싱턴 D.C.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엘렌 화잇의 『시대의 소망』 한 권을 편지와 함께 다이애나에게 선물로 보냈다. 한 달 뒤 웨일스 공의 서기 모린 A. 스티븐스가 우리의 편지와 동봉물에 대한 공작부인의 고마움과 축복을 표현한 짧은 편지를 보내왔다.
1997년 8월 31일 오전 2시경 프랑스 파리에서 다이애나가 끔찍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우리가 보내 주었던 책을 그가 읽어 봤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인정과 배려의 표현에 선뜻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낮이 계속되는 동안” 일해야 한다. “아무도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요 9:4, 쉬운).
실제로 “해마다 수백만 인간 영혼이 경고도 구원도 받지 못한 채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다. 변화무쌍한 삶 속에서 영혼들을 만나 구원할 기회가 매시간 우리에게 열려 있다. 이 기회들이 끊임없이 왔다가 지나가고 있다. 하나님은 이 기회들을 우리가 최대한 활용하기를 바라신다. 하루, 한 주, 한 달이 지날 때마다 우리가 일할 시간은 하루, 한 주, 한 달씩 줄어든다”(실물, 373).
영원한 복음을 선포할 때 우리는 이미 있는 기회를 이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여 우리 믿음을 전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로마 황제에게 설교할 기회까지 요청했다(행 25:1~12). 그와 같이 우리도 이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을섭/이옥진 선교사 부부(일본)
선교지에서의 자녀 교육과 가족의 건강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