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긴 손가락이
정수자
신전의 부조들을 아다지오로 쓸다 말고
하늘을 훅 그으니 별들이 쏟아졌다
나일강 만파를 고르듯
파피루스 잎을 타듯
피아노를 타고 놀던 파리한 손가락이
별 사이를 촉진하자 은파랑이 튀었다
콤옴보 신화를 토할 듯
열주들이 울렁였다
불러 봐 너의 별을, 은파 만파 지휘하듯
반달 깃든 손톱이 뱃전을 두드릴 때
누천년 사막 능선 켜온
달도 뺨을 붉혔다
윤슬농현
정수자
보았는가, 저 꼼질은 틀림없는 물이렸다
다가서면 스러지는 모래 노래 아니라
사막 속 윤슬을 켜는 신의 미소 같은 것
무현無絃의 농현弄絃처럼 사물대는 물비늘들
가히 홀린 눈썹을 술대 삼는 신기루에
다저녁 물때를 놓치듯 버스도 지나칠 뻔!
잡아보려 다가서면 고만큼씩 멀어지던
시라는 술래 같은 아지랑이 멀미 속에
줄 없는 거문고 타듯 물의 율을 탐했네
심장을 켜는 말
정수자
새끼 낳고 늘어져서 외면하는 어미낙타
마두금 들려주면 젖을 내어 물리니
멀리서 슴벅거리던 지평선도 훅 붉어져
묵지근한 발굽께로 어린 풀들 숙어들고
뽀얀 뱃구레에 불룩하니 숨이 돌자
게르 위 햇솜 구름도 몸을 추켜 떠난다
그런 현의 그을음을 문향 모양 그렸건만
헛짚은 금선이여 메마른 행간이여
초원의 심장을 켜는 말 없는 말에 삭는다
- 정수자 시조집 『인칭이 점점 두려워질 무렵』 2024. 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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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시조집
소년의 긴 손가락이 / 윤슬농현 / 심장을 켜는 말 / 정수자
김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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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1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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