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 문화공간인 정원과 정자
부용동원림
천혜의 보길도 자연과 이를 경영한 고산 윤선도의 정원유적이 어우러진 명소로 이루어진 경관이다. 전남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595 번지 일대이다 면적은 83,532㎡이며 조성연대는 조선시대이다.
유래
조선시대 중기 유명한 시인이며 문인인 고산 윤선도(선조 20년 1587~현종12년 1671)가 1637년부터 7차례에 걸쳐 드나들면서 1671년 그가 죽을 때까지 13년간을 보길도에 살면서 어부사시사 및 많은 한시를 남긴 곳이다.윤선도는 부용동 계곡의 지형을 이용하여 아름다운 정원공간을 조성 하였는데 부용동 입구의 세연지를 비롯하여 계담 위 산자락에 있는 옥소대, 기암괴석의 경승지에 있는 동천석실, 격자봉 밑의 낙서제 곡수당 등 기발한 조원 안목과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통한 원림 조성의 높은 경지를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조경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유적이다.
소쇄원은 1992년 1월 11일 사적 368호로 지정되었다. 완도군의 지정문화재는 국가지정문화재9개소, 지방지정문화재 7개소로 인근 타 지역에 비해 적으나 천연기념은 5개소로 많은 편이다. 국가지정문화재 중 보길도 윤선도 유적,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청해진 유적이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사당, 원림, 향교, 객사 등 유교관련 유적이 5개소이고 상록수림 등 천연자연자원이 7개소 성곽 등 국방유적이 2개소 있다.
보길도는 작은 섬으로 동서 길이 12km 남북 8km로 해발 3~4백m 정도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섬 중앙에 있는 부용동은 적자봉 광대봉 망월봉에 둘러싸여 있으며 섬 전체는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남아있다. 부용동에는 보길도의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윤선도의 유적지인 낙서재와 동천석실이 있다. 낙서재는 고산의 생활공간으로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지었던 곳. 현재는 초석과 기와조각만 남아있다. 부용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안산 중턱에 지은 것이 동천석실이다. 정자모양의 건물로 글을 일고 차를 마시며 회포를 풀던곳. 동천석실 밑에는 석담 석정 석천 세 개의 연못이 있다. 이밖에도 곡수장, 월하탄, 귀암, 하한대 등 아름다운 명소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세연정
세연정은 계담과 방지방도 사이에 위치한 정방형의 정자이다. 고산연보에는 고산이 1637년 보길도에 처음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건축된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후 이 정자는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소실되었다가 근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우리나라 조경유적중 특이한 곳으로, 고산의 기발한 착상이 잘 나타나있다. 개울에 보를(판석보, 일명 굴뚝다리)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로 조성된 세연지는 산중에 은둔하는 선비의 원림으로서 화려하고 규모가 크다. 어부사시사는 주로 이곳에서 창작되었다.
세연정은 사방으로 경관을 감상하는데 용이한 구조를 가졌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으로는 세연정 사방에 편액을 달았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보길도지에 따르면 세연정 중앙에는 세연정이 남쪽에는 낙기란, 서쪽에 동하각, 동쪽에 호광루 그리고 칠암이 널려있는 동쪽에 또 다른 편액인 칠암헌을 달았다고 한다. 세연정은 중앙 방단상에 다시 3단을 축조해서 기단을 조성한 다음 그 위에 건축되었으며 기단의 높이는 약 1.8m~2m 가량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주변경관의 조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판석보(板石洑)
유일한 석조보로 세연지의 저수위 조절 시설이다. 평소에는 돌다리가 되고 우기에는 폭포가 되어 수면이 일정량을 유지하도록 했다. 판석보를 통해 형성된 계담은 세연정 앞에 만들어진 지당에 물을 대는 공급원이 되었다. 또 계담 너머 옥소대 쪽으로 연결하는 동선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판석보는 수량이 많을 경우 폭포로서의 기능까지도 담당하였으며 다양한 수경관 연출을 하였다. 판석보의 길이는 약 11m 폭 2.5m 높이 약 1m정도의 규모로 축조되었다.
낙서재(樂書齋)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터로 동천석실의 석실과 마주 보이는 곳이 격자봉 밑의 낙서재이다. 초가로 집을 지었다가 나라에서 송금령(松禁令)으로 소나무를 못베게 하자 잡목은 베어 세간집을 지었다. 고산 당대에는 초가였던 것을 후손이 기와집으로 개축하였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는데 고산은 이곳에 거처하면서 시를 짓던 창작의 산실이다. 낙서재 남쪽에 잠을 자는 무민당(無悶當)이라는 집을 지음.무민당 옆에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으며, 낙서재와 무민당 사이에 동와(東窩)와 서와(西窩)의 각한칸집을 지었고 소은병(小隱屛)이라는 바위가 남아있다.
곡수당
낙서재에서 건너다 보이는 계곡가에 이유적이 있다. 고산 윤선도의 자제 학관이 기거했던 곳이다. 지금은 논밭으로 변해버려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곳은 작은 개울을 중심으로 고산의 아들이 조성한 초당, 석정, 석가산, 연지, 화계, 다리 등의 다채로운 조원이 조성되어 있다. 세연정보다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정자였다. 고산은 경승의 바위나 산봉우리마다 상징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는데 격자봉 서쪽 깊은 계곡에는 유상곡수를 즐기고 목욕을 하던 암반이 있었으며 이곳을 낭음계라 하였다. 현재 낭음계는 저수지로 변하였다.
동천석실
동천이라는 뜻은 산천이 두루 경치 좋은 곳이란 의미도 되고, 신선이 사는 곳도 되며, 하늘로 통한다는 뜻도 된다. 석실은 석조로 된 거실임은 물론이지만 산중에 은거하는 방이나 책을 잘 보존해 둔 곳이란 뜻도 된다. 세연정에서 2km쯤 떨어진 골짝을 타고 오르면 기암괴석의 경승인 산자락에 이 유적이 있다. 험한 단애위에 한칸짜리 방형정자를 짓고 석실이라 하였으며 석실밑의 암벽사이에 석간수가 솟아나는 석천이 있고 이 물을 막아 작은 석담을 만들고 수련을 심었다.
동천석실에 오르는 곳에 자연석을 세워 석문을 만들고 한사람이 벼랑을 오를수 있을 정도의 석계를 파고 다리를 놓았다.
1000여평되는 공간에 석제(石悌)와 석문(石門), 석담(石潭), 석천(石泉), 석폭(石瀑), 석대(石臺) 및 희황교(羲皇僑)유적이 있다. 고산 윤선도는 부용동 제일의 절승이라 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또한 해 저물녘에 차를 끊이는 연기가 선경 처럼 보였다하여 석실모연(石室募烟)이라하고, 부용동 8경이라 했다고 하며. 현재는 정자가 복원되어 있다.
보길도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북동․남서 양쪽 방향으로 트여 있고 북서․남동 방향은 산맥에 의해 막혀있다. 조망이 양호한 위치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몇몇의 장소와 자연 암반이 노출된 곳이다. 전망대 기능을 겸한 시야확보 장소는 산청, 옥소대, 동천석실 이며 옥소대에서는 전남대 연습림. 낭음개울, 세연지, 부황리, 황원포, 장사도가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동천석실의 조망은 낙서재, 곡수당, 미산, 조산, 격자봉, 부용리 입구 까지 조망이 확보 되며 부용마을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보길도의 특성상 산맥 중턱의 돌출된 자연암반에서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며 격자봉에 오르면 부황리와 부용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동천석실과 낙서재 곡수당을 잇는 영역권은 내외부의 조망지점이 잘 확보되어 있고 보길도 내의 절경을 전체적으로 이어놓은 경관미가 뛰어난 지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때로는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