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년도 2016년
*수상횟수 제35회
*수 상 자 강현순
*대표작
‘퓰리처상 사진전’에서
강현순
보도사진 부문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퓰리처상 사진전’이 2010년에 이어 올해 2015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포토저널리즘의 고전으로 꼽히는 230여 점의 수상작 앞에 서니 어떤 설득력 있는 말보다도, 어떤 진솔한 글보다도 더 믿음이 가는 것은 바로 한 장의 사진이라는 것을 알았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 실종되었던 미국전쟁포로들이 풀려났을 때이다. 포로였던 공군중령 로버트 스텀이 가족과 상봉하는 장면은, 바라보는 사람의 가슴조차 벅차게 하였다. 6년동안 생사를 몰랐던 남편과 아버지를 향해 날으듯 달려가는 아내와 두 딸 두 아들의 표정은 터져나오는 기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탓에 웃는지 우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사진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였다.
1948년 6월 13일, 뉴욕 양키스의 홈 구장.
1, 2, 3층의 관중석은 환호하는 수많은 야구팬들로 만원이었다. 사진의 정중앙에는 영구 결번이 될 등번호 ‘3’을 단 은퇴 야구선수 한 명이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그날은 야구경기가 목적이 아니라 질병과 슬럼프에 빠져있던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격려하기 위한 자리라고 사진기자는 설명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에 자신의 팬들에게서 이토록 엄청난 기쁨과 보람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의 팬들이 대단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현재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크나큰 희망과 자극제가 될 것이다. 과거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림자처럼 항상 자신과 함께한다는 교훈을 안겨주어 가슴이 뭉클하였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대통령의 선거 시절이었다. 통찰과 지성, 날카로운 유머로 많은 사람들한테 존경 받는 일리노이 주 지사 아들라이 스티븐슨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후보가 되어 선거유세를 하게 되었다. 스티븐슨이 의자에 앉아서 유세원고를 살펴보다가 다리를 꼬는 모습을 무심코 쳐다본 기자 갤러거가 그의 신발 밑창에 난 제법 큰 구멍을 보고 카메라를 갖다 댄 것이다. 그는 비록 아이젠하워한테 졌지만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게 된 기자에게 “홀인원으로 우승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라는 내용으로 전보를 보내는 센스를 발휘하였다고 한다.
구멍난 신발 바닥을 쳐다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이었다. 유머감각이 뛰어난 검소한 주지사의 얼굴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만난 적은 없지만 그가 멋져보였다.
화산폭발로 인해 진흙더미와 화산재 속에 묻혀서 얼굴만 내놓고 있는 열세 살 소녀, 주택가에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 6층건물에서 떨어지고 있는 한 여인과 어린아이의 처참한 모습들을 어떻게 순간포착할 수 있었을까. 소름돋도록 아찔한 순간의 사진들은 나의 가슴을 마구 뒤흔들었다. 사진가는 사진을 찍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았다. 사진가의 사진기는 그의 몸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또다른 사진 앞에 섰을 때, 나는 그만 얼음이 되어버렸다. 전봇대에서 일하던 기사가 전기에 감전되어 정신을 잃은 채 안전밸트에 의해 거꾸로 매달려있자 동료기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인공호흡을 하는 장면이었다. 사진을 보는 내내 내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정말이지 이보다 사람냄새가 물씬나는 작품이 또 어디 있을까.
전시된 작품들은 크나큰 기쁨과 흐뭇함을 안겨주기도, 안타깝기도 했다. 그 중에서 가장 가슴이 크게 요동치는 작품이 있다면 그건 ‘전쟁사진’이었다.
1979년, 이란의 시아파 종교지도자 호메이니는 자신의 혁명을 반대하는 쿠르드족을 수천 명이나 학살하였다.
처형장에선 옆으로 줄을 세워서 눈을 가려 총을 쏘았는데 그 당시 처형장에 있던 한 사진기자가 순식간에 ‘생명이 스러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란의 UPI통신은 사진을 세계에 알렸다. 후환이 두려워 ‘이름없는 사진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 27년 후인 2006년에야 월스트리트 지에 이름을 밝혔다고 한다.
여러 참혹한 전쟁사진 중에서 유독 내 가슴을 아프게 한 사진이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기자 케빈카터는 동아프리카의 무자비한 기근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수단 아요드의 한 식량배급소 앞에서 굶주림에 지쳐 구호소로 갈 힘조차 없는, 뼈만 앙상한 예닐곱 살쯤의 작은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문 1면을 장식할 장면을 잡아내기 위하여, 남들이 잡아내지 못하는 장면을 찍어야 하기에 카메라를 들었다. 근처에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사진기자도, 독수리도 그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난 뒤 기자는 소리내어 울었다고 한다.
이 사진이 세계주요신문들에 실렸다. 수상자 케빈카터는 이 사진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여 구호물자를 이끌어냈지만 “왜 그 아이를 돌보지 않았느냐?”며 분노에 찬 전화와 편지를 받아야 했다. 그러다 “아이를 안아주지 못해 너무나, 너무나 미안하다.”며 결국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33세의 젊디젊은 나이에….
그들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단 한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총검이 난무하는 전쟁터에도, 대학살과 테러가 있는 곳에도 어김없이 있었다.
누군가가, 전쟁은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고 했지만 전쟁이 끝나면 이긴쪽도 진쪽도 후유증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인명을 잃게 되고 곳곳은 폐허가 되며 남편과 아들을 잃고 우는 여인들이 있다. 전쟁의 후유증은 차마 말로 다 못한다.
퓰리처상 수상작은 거대한 역사의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삶 속 의 가슴 훈훈한 따뜻한 이야기도 있었다.
내 안에서 잠잠하다가 일제히 기립하던 희로애락의 감정이 다시 예전처럼 되기까진 아마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수상소감
수상 통보를 받았을 때, 놀람과 설렘이 뒤엉켜 정신이 얼떨떨하면서 정초에 꾸었던 꿈 내용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몰려와서는 창원시장 당선을 축하한다며 내게 꽃다발을 건네는 게 아닌가. 그러다 눈을 떴는데 그때부터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무시로 실실거렸다. 한 마디로 같잖아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꿈해몽법책을 보니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씌어있어서 속으로 은근히 그 ‘좋은 일’을 기대하였다.
또 있다. 정초에 지인들이 새해인사차 보내온 문자메시지 내용이 한결같이 ‘문운이 가득하시길’이었다.
어쨌든 많은 분들이 나에게 문운을 빌어주었고, 어처구니 없는 꿈으로 인해 시도때도 없이 입꼬리가 올라가다 보니 좋은 기운들이 나에게 닿았던 모양이었다.
외로울 때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수필을 읽던 중,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끔 하필이면 맨얼굴 같은, 일기장 같은 수필을 선택하였을까 싶어 다른 장르를 동경하기도 했다.
이번 수상 소식은 느슨하게 풀어지려는 내 마음을 다시 바짝 죄게 해주는 큰 힘이 되었다.
기쁜 마음만 드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 더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문단선배, 동료,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졸작품을 격려하고 칭찬해주신 고마운 심사위원님들께 앞으로 보석같이 빛나는 글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감히 약속드린다.
이번 수상의 광영은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약 력
·1993년 '한국수필' 로 등단
·수필집: '좋은 예감' '세 번째 나무' ‘꿈꾸는 섬’
·경남수필문학회 회장, 가향문학회 회장, '경남문학' 편집장, 경남문협 부회장
·(현) 한국수필작가회 · 창원문협 · 경남문협 이사
·수상:'남명문학상신인상' ‘경남문학상신인상' '경남문협우수작품집상'
'부산한국수필문학상' ‘시민불교문화상(문학부문)’
*심 사 평
강현순 님은 1993년 《한국수필》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수필집 『좋은 예감』(2000년)과 『세번째 나무』(2006년)를 출간했고, 이번 수상작품집 『꿈꾸는 섬』은 세 번째 수필집이다. 담백한 문장과 글의 향기로 이미 경남지역에서 여러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강현순 님은 아름다운 남해의 자연 속에서 사유를 근간으로 하는 수필이 대부분인데, 지나친 수식이나 현학적이지 않고 묘사와 서사가 잘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인간본연의 깨달음과 가치, 미학을 설명하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통찰한 안목으로 새로운 의미와 미적요소를 찾아내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16년 6월
심사위원 정목일, 지연희, 유혜자(심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