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성전과 들의 백합화
솔로몬 성전은 예루살렘에 지어진 세 개의 성전 중에 첫 번째에 해당한다. 다윗이 그토록 짓고 싶었으나 피를 많이 흘렸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막으셔서 결국 성전 건축의 과업은 솔로몬에게 돌아갔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초의 성전이 완공되었을 때 그 영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비록 헤롯 성전에 비하면 작은 규모였지만, 당대 최상품의 재료가 사용되었고, 당대 최고의 장인들이 동원되었다. 하나님은 친히 당신이 머물 공간으로 이 성전을 택하셨다. 물론 성전의 규모와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다윗이 열망하여 준비하였고, 아들 솔로몬이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정성 들여 완공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영광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성전은 마침내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되었다.
성전을 건축할 당시에 하나님과 솔로몬 사이에 이뤄진 대화를 보면 성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열왕기상 8~9장에 기록되어 있다. 8장에는 솔로몬이 성전에 대해 가진 생각이 나타나 있다. 곧, 성전은 하나님이 더 이상 캄캄한 데에 계시지 않고 이스라엘 중에서 영원히 거처할 처소였다. 솔로몬의 건축 의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 가시화하려는 것이었다. 이어지는 기도를 통해서도 성전에 대한 솔로몬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다. 누가 기도하든 또 어떤 일로 기도하든 성전에 와서 혹은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음성을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성막에서와 같이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었다. 성막과 성전은 다만 규모에서 차이가 있을 뿐 기능에서는 동일했음을 알 수 있다.
성전에 대한 솔로몬의 생각과 기대에 하나님이 반응하셨다. 그곳을 거룩하게 하며, 그곳을 당신의 거처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솔로몬의 열심과 정성을 받아주신 것이다. 이어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셨다. 이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처할 성전 자체가 아니라 솔로몬이 성전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 주신 법도와 율례에 따라 사는 일에 더 큰 비중을 두신 것이다.
솔로몬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땠을까? 성경은 그의 성전 건축에 대해 어떤 형태의 멘트도 전해주지 않는다. 건축 과정에 대해서만 언급할 뿐이다. 바벨론 포로기 후에 고국으로 돌아와 세운 스룹바벨 성전 같은 경우, 하나님이 직접 챙기신 일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사실에 비춰볼 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에 대해 아무런 멘트가 없다는 사실은 조금 의아하다. 다윗의 열심을 보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짓는 것을 허락하시긴 했지만, 혹시 하나님은 성전을 원하지 않으셨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곧, 예수님은 들에 핀 백합화를 환기시키면서,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신 부분이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이라 함은 솔로몬이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행한 모든 것을 가리킨다. 건축을 포함하여 나라의 부귀영화를 포함한다. 이 부분을 읽고 또 묵상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솔로몬의 성전과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생각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지는 않을까? 사실 들에 핀 백합화는 비록 아름답긴 하지만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는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낫다는 말이다. 이 말을 솔로몬이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분명 솔로몬의 성전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이스라엘과 이웃나라에게 나타내기 위해 지은 성전은 하나님이 원하신 일은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의 참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는 데에 있어서는 들에 핀 백합화만 못하다는 말씀을 한 것은 아닐까.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하며, 기도하고, 예배하는 곳이다. 그러나 성전이 성전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위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전은 아무 의미가 없다. 솔로몬 성전이 느부갓네살 왕에 위해 무너졌는데, 이는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하셨기 때문이었다.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몸을 성전이라고 불렀다. 교회가 아니고 왜 성전이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당시에 회당 문화가 일반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성전으로 표현한 까닭은 구약적인 맥락에서 성전의 의미를 환기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성령이 거하는 곳으로서 그리스도인의 몸은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어쨌든 믿음을 가졌다고 말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몸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에 몸을 쓰지 않는다면, 아무리 화려하고 수려한 외모를 갖고 있고, 머리에는 많은 지식이 있으며, 또한 높은 권세를 누리는 몸이라 해도 오히려 들의 백합화만도 못할 뿐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들은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밝히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인정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면, 부유한 자, 권력 있는 자, 학식과 명예가 있는 자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