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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 저주 풀며 시즌 첫승... 세계랭킹 1위도 탈환
한국여자프로골프의 간판 신지애(22.미래에셋)가 드디어 해냈다. 알프스의 저주로 불리며 지난 17년간 한국인의 우승을 허락지 않던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하며, 세계랭킹 1위도 동시에 탈환했다.
신지애는 25일 밤(한국시각) 프랑스 에비앙-르뱅의 에비앙 마스터스GC(파72. 6344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에비앙 마스터스' 최종라운드에서 5타를 줄이고 최종합계 14언더파 274타로 우승했다.
선두였던 모건 프레셀(22. 미국)에 2타 뒤진 공동2위로 최종일 경기를 시작한 신지애는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으면서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펼친 끝에 2010년 첫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이로써 신지애는 2000년에 LPGA투어에 편입된 이후 그 동안 한국선수에게 단 한번의 우승도 허락하지 않았던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11번째 대회 만에 한국인 최초의 우승자로 역사에 남게 됐다. 이날 우승으로 신지애는 2000년 에비앙 마스터스 창설 이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았다.
2005, 2006년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던 미셀 위, 2007년 연장전 끝에 내털리 걸비스(미국)에게 우승을 내준 장정, 2008년 연장전에서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에게 무너졌던 최나연(SK텔레콤)과 안젤라 박 등 유독 한국 선수들과의 인연을 거부했던 에비앙이었다. 이날도 최나연은 하루에만 6타를 줄이며 13언더파 275타로 프레셀, 알렉시스 톰슨(미국)과 함께 마지막까지 공동선두를 기록하며 연장전까지 기대했지만 다시 한번 분루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그런 에비앙도 여제 신지애 만은 거부하지 못했다. 또한 긴 침묵을 깨고 진정한 골프 여제의 자리를 향해 의미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신지애의 저력은 무서웠다. 수술을 받고 처음 출전한 LPGA 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에 오른 신지애는 제이미 파 오웬스 코닝 클래식 5위, US여자오픈에서 공동 5위를 차지하며 샷 감각을 회복한 뒤 마침내 특급대회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특히 에비앙 마스터스 마지막 라운드에서 보여준 신지애의 선전은 경쟁자들을 공포에 떨게 할 만 했다. 그가 왜 `파이널 라운드의 퀸'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는지 알게 해 줬다. 2타차로 뒤진 채 4라운드에 들어간 신지애는 초반 이글을 잡으며 상승세를 탄 모건 프레셀(미국)과 맞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경기를 풀어나갔다.
이번 에비앙 마스터스대회는 마지막 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우승자가 결정되기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가 이어진 최고의 이벤트였다. 프레셀과 함께 챔피언 조에서 라운드를 한 신지애는 라운드 중반까지 줄곧 1, 2타 차로 끌려가는 불안한 시합이었다. 신지애는 4번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 1타차로 좁히자 프레셀은 5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을 그대로 홀에 집어넣는 이글을 만들며 물러서지 않았고, 신지애 또한 이 홀에서 버디로 응수하며 2타차를 유지했다. 신지애는 거의 매홀 정확한 아이언 샷으로 버디 기회를 만들며 차분하게 경기를 풀어나갔지만 2타차를 좁히지 못하며 끌려가야 했다.
프레셀이 10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 실수로 보기를 기록한 틈을 이용해 1타 차로 좁힌 신지애는 13번홀(파4)에서 3m짜리 버디 퍼트를 집어넣으며 동타를 만들었다. 이후 17번홀(파3)까지 두 선수는 엎치락 뒷치락 동타를 유지하며 공동1위를 유지했다. 이후 한 선수가 실수하면 나머지 선수도 실수하고 멋진 샷으로 앞서가려 하면 다른 선수도 똑같이 묘기에 가까운 샷을 성공시키면서 물러서지 않고 일진일퇴를 거듭한 둘의 승부는 이번 대회 최대의 승부처로 불려지던 17번홀(파3)과 18번홀(파5)에서 갈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두 홀 모두 신지애에게 위기가 먼저 찾아왔지만 위기를 잘 관리한 신지애가 최후의 승자가 됨으로써 경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시니지애는 17번 홀에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티샷이 짧아 그린 가장자리에 떨어졌고 첫 번째 퍼트가 홀을 1.5m나 지나친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피를 마르게 하려는 게임의 신의 뜻인 것처럼 프레셀 또한 짧은 버디를 성공시키지 못했고, 신지애는 차분히 파로 막아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둘 다 13언더파로 18번홀 마지막 승부를 시작했을 때 5연속 버디쇼를 펼친 한국의 최나연과 15세의 어린 나이로 스타급 선수들 못지않은 명승부를 연출한 미국의 톰슨까지 13언더파로 홀 아웃하여 4명이 공동선두를 이룬 상태였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언더파로 끝낸 18번 홀을 남긴 두 선수 중 하나가 우승할 가능성은 90% 이상이었고, 전날 이 홀에서 이글을 했던 프레셀을 감안한다면 신지애에게 역시 불리한 상황이었다.
역시나 운이 없었던지 프레셀의 첫번째 샷이 약간 러프에 빠지는 상황으로 투온이 불가능해졌다. 똑같이 쓰리온 어프로치 샷을 하게 된 것은 비거리가 짧은 신지애에게 행운이었다. 어프로치 샷을 먼저 한 프레셀 선수가 버디 찬스를 잡으면서 승부가 갈리는가 싶었고, 신지애의 어프로치 샷은 그린을 넘어갈 뻔하는가 싶었는데 뒤로 미끄러져서 그린쪽으로 굴러들어왔고, 다소 멀지만 버디찬스를 얻는 두번째 행운이 신지애에게 찾아왔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승부를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네 번째 버디 샷부터는 사실상의 연장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켜보는 사람이나 선수들이나 심장이 멎을 만한 상황이었지만 신지애가 좀더 강심장이었다. 홀까지 거리가 더 멀었던 신지애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2m 조금 넘는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뒤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이미 내적으로 흔들려버린 프레셀은 1.5m 정도 거리 퍼팅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슬아슬하게 홀을 맞고 스쳐 지나가 버리자 아연실색한 프레셀과 환호하는 신지애이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신지애는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우승권에 접근해가는 저력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마지막 라운드에서는 정확한 아이언샷으로 거의 모든 홀에서 버디 기회를 만들었고 그린을 놓치더라도 파로 막아내는 위기관리 능력은 세계 1인자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여기다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던 18번홀(파5)에서 2m 짜리 버디 퍼트를 대담하게 집어넣는 강심장은 `화룡점정'이었다.
신지애는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으로 세계랭킹 1위 탈환과 함께 상금랭킹 1위로 도약했고,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에서도 105점을 쌓아 미야자토(138점), 커(121점)를 바짝 추격하면서 하반기 각종 레이스에서 대반전을 일으킬 힘을 얻었다. "맹장 수술을 받고 2주간 휴식을 취했던 것이 체력 보충에 도움이 됐고 샷도 더 좋아졌다"며 남은 대회에서 선전을 기약한 신지애는 29일 잉글랜드 사우스포트에서 개막하는 시즌 마지막 대회 브리티시여자오픈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대회 이후 세계랭킹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소렌스탐과 오초아 이후 여제를 노리고 있는 신지애 뿐만 아니라 역시 여제를 노리고 있는 세계랭킹 상위권 선수들에게 이번 대회는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었던 대회였다.
신지애가 오초아 은퇴 이후 잠시 세계랭킹 1위를 차지하는가 했지만, 그녀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미야자토 아이와 크리스티 커가 1, 2위를 주고 받으며 앞서나갔고, 수잔 페테르센마저도 3위로 올라서며 신지애는 4위로 밀려났고, 최나연이 6위로 치고 올라오며 신지애를 압박했다.
지난해 신지애는 LPGA 투어 신인왕과 상금왕, 공동 다승왕 등을 차지하면서 주가를 높였지만 여제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와 치열한 경쟁 끝에 올해의 선수상을 넘겨줘 아쉬움을 남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오초아가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을 하면서 신지애가 여유롭게 여제의 자리를 물려받는 듯 했지만 필드 여왕자리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오초아가 은퇴직전 의미있는 세계랭킹 1위를 탈환하며 마침내 소렌스 탐, 오초아에 이어 신여제가 되는가 싶었지만 여제등극에는 생각지 못한 통과제례가 있었다. 지난해 9월 'P&G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좀처럼 승수 추가에 성공하지 못했던 신지애는 올 시즌 들어서는 맹장수술까지 하면서 주춤하는 사이 세계랭킹이 4위까지 떨어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한수 아래로 여겼던 미야자토 아이(일본)가 시즌 상반기에 4승을 쓸어 담으며 무섭게 치고 나갔고 청야니(대만)는 시즌 첫번째 메이저대회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트로피를 가져갔다. 아시아 선수들에게 기를 펴지 못하는 듯 했던 미국 선수들도 베테랑 크리스티 커가 메이저대회 LPGA 챔피언십을 포함해 2승을 거뒀고 부상으로 한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던 폴라 크리머까지 US여자오픈 챔피언에 오르면서 신지애를 압박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지애는 지난달 스테이트팜 클래식 대회를 앞두고 맹장 수술을 받는 바람에 2개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고 결국 세계랭킹 1위 자리를 넘겨주고 말았지만 신지애의 저력은 무서웠다. 시즌 도중에 이런 악재를 만나면서 천하의 신지애라도 올해는 힘들겠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 올 시즌 10번째 출전 대회 만에 자신의 시즌 첫 우승이자 LPGA투어 통산 7번째 우승을 신고하면서 자력으로 세계랭킹 1위를 다시 탈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계랭킹 1,2위를 다투던 미야자토와 크리스티 커는 이번 대회 우승권에서 멀어지면서 세계랭킹 경쟁에서도 뒤쳐졌고, 그 사이에 3위 페테르센과 6위 최나연의 점수는 올라가면서 랭킹경쟁에 본격 뛰어들게 되었기 때문에 상위랭커들간의 점수차는 그만큼 좁혀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