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쇼에 오면 꼭 찾아가는 데스크가 생깁니다.
펜쇼에 한번이라도 오신 분이라면 못 보신 분들이 안 계실 거에요. 민트향기님 데스크입니다.
매번 펜쇼 때도 뵙고 그리고 가끔 번개에서도 뵐 수 있어서 저는 매우 친근한데요(일방적인 짝사랑입니다). 많은 분들께 소개를 드리고 싶었어요.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을텐데 이번에 드디어 제대로 인터뷰를 할 수 있어서 데스크에 가기 전부터 신이 났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만년필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언제부터 만년필을 수집하신 건가요???
1966년, 중학교 1학년때부터
"1966년에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그때부터니까 한 60년이 넘었네요."
2026년 올해가 딱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가 알기로 1966년이면 학교에서 만년필로 필기를 하던 시대였고, 민트향기님도 공부할 때 만년필을 쓰셨다고 해요. 그런데 다들 그러다 말잖아요, 하고 여쭤봤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맞는 펜 하나씩은 갖고 있어요, 중학교 다닐 때. 근데 저는 그냥 더 좋아져서 계속 하게 된 거죠."
'더 좋아져서'. 그 한마디가 눈 앞에 보이는 수백의 만년필들과 그것들과 함께한 60년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펜쇼에 나오신 것만도 10년이 넘었다고 하시는데, 지금도 계속 모으고 계시냐고 여쭤봤더니 "지금도 계속 모으고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60년을 모으셨는데 아직도요.
현재 보유 700자루, 다 합치면 천 자루 가까이
"지금 현재 한 700자루 있나 그랬어. 싼 것까지 다 긁어 모으면 한 800자루, 거의 천 자루 가까이 될 거예요."
오늘 데스크에 가져오신 것도 전체의 3분의 2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집에 아직 가져오신만큼 더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천 자루면 한 번이라도 다 써보셨을까, 하고 여쭤봤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안 써본 게 아니라 못 써본 것도 있어요"
그런데 그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이 더 인상적이었어요.
민트향기님도 꼭 써보고 싶었는데 아직 못 구해보거나 구경 못 해본 것들이 있는지, 즉 못 구해서 미련이 남는 만년필이 있으신지 여쭤봤는데요. 민트향기님은
"여한이 없어요. 펜에 대해서 여한이 없어. 더 이상 모으고 싶지도 않고, 이제는."
통달의 경지. 60년을 오롯이 한 가지를 수집해보신 민트향기님은 만년필을 보는 시선과 감정, 어떤 경지(?)가 더 궁금집니다.
제일 사랑하는 펜, 제일 비싼 펜
제일 친근하게 오래 쓰신 게 어떤 건지 여쭤봤습니다.
"셰퍼 임페리얼이요. 셰퍼 임페리얼 터치다운. 제가 제일 사랑하는 펜이에요."
민트향기님 같은 분이 제일 사랑하고 오랜 시간 아껴온 펜이라면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겠죠.
궁금합니다. 오늘부터 이베이에서 검색 들어갑니다! 아니, 가을 펜쇼에 스노클님 데스크를 방문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ㅎ
그리고 제일 비싼 건 물어보기 좀 조심스러웠는데, 민트향기님은 흔쾌히 말씀해 주셨어요.
"몽블랑 엘리자베스 888이죠. 영국 엘리자베스 1세를 기념해서 나온 한정판인데, 전체가 18k 골드로 돼 있어요. 제가 옛날에 400만 원에 샀는데, 수리비는 100만원 더 들었고. 지금 시세가 5천만 원 가까이 가요."
금값이 오른 영향도 있겠지만 언젠가 쓰셨던 파카51님의 칼럼처럼 역시 주식보다 빈티지 만년필인걸까요? 주식보다 수익률이 좋다고 하니 민트향기님도 그 말에 웃으셨어요.
"근데 갖고 다니고 싶어도 쓰질 못해. 너무 무거워서."
그런데 무거워서 못 쓰는 게 아니라, 보통은 무서워서 못 가지고 다니고 못 쓸 것 같습니다.
제가 3년째 노리고 있는 민트향기님 데스크의 만년필이 있습니다.
워터맨 레이디 패트리샤(Waterman Lady Patricia) 인데요. 저 펜을 손바닥에 올리고 천천히 돌리면 샹들리에 처럼 빛에 반짝이는데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 아마 올해 안에 다른 분이 안 가져가시면 내년에는 제 책상에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물건 보면 가격이 딱 나와요
테이블에 놓인 펜들의 가격을 물어봤을 때, 민트향기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답하십니다.
이 펜 얼마, 저 펜 얼마. 순식간에.
"저는 딱 보면 대충 얼마짜리인지 알아요. 외관부터 해서 금촉 재질, 만년필 재질, 희귀성 이런 거 다 감안하면 계산이 딱 나와요. 굳이 검색 안 해봐도 돼요."
60년이 쌓이면 이렇게 됩니다. 지식이 감으로 바뀌는 경지.
새 펜을 구입할 때는 어떤 걸 먼저 보시냐고 여쭤봤습니다.
"우선 외관부터 봐요. 모양이 내 스타일인가. 가격은 크게 신경 안 써요."
저도 제 스타일 하나 골라봅니다. 아까 셰퍼를 말씀하셨으니 그 중 하나로. 셰퍼 타가 프레드입니다. 타가 중에는 프레드, 오팔, 브라스 3개는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 중에 으뜸인 프레드를 실물로 보고 만져보다니 감동입니다.
이런 말은 좀 싫더라고요
인터뷰하면서 하나 여쭤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방문하시는 분들한테 듣기 싫은 말도 있으시냐고요.
"몽블랑을 30만 원이라고 했더니, 어디 가니까 7만 원이던데요, 하는 거예요. 완전 빈티지 몽블랑인데. 브랜드가 있는데 7만 원이라고. 할 말이 없죠, 그런 소리 들으면."
빈티지 만년필을 대하는 마음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벼룩시장 물건 흥정하듯 가격을 깎으려고 하시기도 하나봅니다. 60년을 공부하고 쌓아온 안목으로 책정한 가격에 "딴 데서 더 싸던데요"라고 하는 건, 민트향기님이 듣기 싫은 말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오늘 데스크에서 추천할 만한 만년필을 여쭤봤는데, "다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뭘 특정하기 어렵다"고 하셨어요.
"보는 것마다 다 이쁘기 때문에 어느 것에 편향을 할 수가 없어요."
제 눈에도 하나같이 예쁜데 60년을 수집하신 민트향기님이 어떤 것을 고르고 추천하는 게 어려우신 게 당연한 것 같았습니다.
수리도 잘하시던데
번개에서 민트향기님께 분양받은 만년필을 몇 번 점검받고 치료도 받았었어요. 요즘은 동호회 안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잘 안 하신다고 하셨어요.
"공적인 위치에서는 안 돼요. 그러면 그냥 안 하는 게 낫고."
"제 거는 잘 봐주시던데요"라고 했더니, 민트향기님이 웃으셨습니다.
"개별적으로는 하는 거야 뭐"
본인도 잘 하시면서 후학들이 더 잘 한다고 인정해주시는 말씀과 겸손한 태도에 존경스러운 어른은 이런 분이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펜쇼가 항상 기대되고 설레는 이유,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다양한 만년필을 볼 수 있는 펜쇼인 이유도 민트향기님의 데스크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펜심으로 가득한 민트향기님에 대한 팬심이 더 커졌습니다^^
마치며
민트향기님 데스크에 오시면 만년필의 역사를 실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펜 하나하나가 구하기 쉽지 않은 것, 50년-100년이 지났어도 새것같은 만년필, 누군가의 손을 거쳤지만 새 것 같은 상태좋은 만년필이 즐비합니다. 거의 모든 브랜드의 만년필과 그 시간이 담겨있고 가격으로 환산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인터뷰 중에 제가 눈독 들이고 있던 만년필 하나를 슬쩍 여쭤봤더니 45만 원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른 가격이 아니라 옛날 가격 그대로 판매하신다고 하시네요. 금값만해도 올랐는데 작년과 같다니! 샀어야 하는데...... 가을에는 놓치고 후회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대화가 재미있어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네요. 더 다양하고 멋진 사진은 전문가이신 사막여우님의 후기를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