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이렇게 삽니다
— 은퇴는 했지만, 호기심은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많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내 생활을 보면 젊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바쁜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생각한다.
“오늘은 좀 쉬어야지.”
그런데 이 결심은 대개 오래가지 않는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곧 발간될 정보통신 만화를 들여다보다가 고칠 곳이 보이면 손을 대고, 과천과학관에서 본 양자 전시가 생각나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만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친구의 옛날 사진을 보면 또 생각한다.
“이 친구가 살아온 이야기도 만화로 남겨주면 자녀와 손주들이 좋아하겠는데?”
그러면 또 일이 하나 생긴다.
나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없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정보통신 역사를 쉽게 설명한 책이 부족한 것 같아 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정보통신 역사를 어려워할 것 같아 이번에는 만화를 만들었다.
과학관에서 양자 전시를 보다가 설명이 어렵다고 느끼자 또 생각했다.
“아이들이 쉽게 볼 수 있는 만화 리플릿이 있으면 좋을 텐데….”
결국 그것도 직접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정보통신박물관이 제대로 없는 것도 늘 아쉽다.
“대한민국이 정보통신 강국인데, 그 역사를 보여주는 국가 박물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지금도 여기저기 건의하고 있다.
가족들이 보기에는 아마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없는데 스스로 일을 찾아 만드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다.
산과 아름다운 풍경, 꽃을 보고 사진 한 장 찍었으면 그것으로 끝내면 될 텐데, 이번에는 시 한 편이 생각난다.
여행 → 사진 → 시 → 사진시.
그러다 보면 여행 한 번에 몇 편씩 새로운 작품이 생긴다. 이제는 사진을 찍으러 가는 건지, 시를 만나러 가는 건지 모를 때도 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여행길에 오르기도 한다.
요즘에는 친구들이 옛날 사진과 경력을 보내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친구가 살아온 지난날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며 4~6컷의 짧은 인생 만화로 만들어본다.
젊은 시절의 모습,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던 때, 가족과 함께했던 순간들이 만화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친구에게는 지난날을 돌아보는 추억이 되고, 자녀와 손주들에게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가족 기록이 된다.
그리고 요즘 나에게는 든든한 조수도 하나 생겼다.
ChatGPT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 이런 것들일 것이다.
“다시.”
“조금 크게.”
“인물만.”
“정장으로.”
“날짜 삭제.”
“4:5 비율로.”
ChatGPT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오늘은 한 번에 통과시켜 주시면 안 될까요?”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자주 하는 말이 하나 더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이 말을 하고 나면 새로운 일이 시작된다.
양자 전문가는 아니지만 양자 만화를 만들고,
만화가는 아니지만 만화를 만들고,
시인은 아니지만 여행 사진시를 쓰고,
박물관 전문가는 아니지만 정보통신박물관을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내가 요즘 이렇게 사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그냥 가지고 있다가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통신의 역사도,
친구들이 살아온 이야기도,
여행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도,
조금이라도 기록으로 남겨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엇인가를 만든다.
가족들이 가끔 말한다.
“이제 좀 쉬세요.”
나도 대답한다.
“그래, 이제 좀 쉬어야지.”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면 또 생각이 난다.
“그런데 이것 하나만 더 해볼까?”
아마 이것이 요즘 나의 생활이고,
내가 나이 들어가는 방식인가 보다.
은퇴는 했지만, 호기심은 아직 은퇴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일도 아마 ChatGPT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좋은데… 조금만 다시 해줘.”
첫댓글 정말 참 열심히 잘 사시는 것입니다! 우선 격려와 응원부터 해드려야 되겠네요!
하면 할수록 할일이 생기고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자꾸 생기는 것은 젊어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젊어지는 이인학 형에게 응원의 박수를 한아름 드립니다!